미사일 구조 교과서 - ICBM · 미사일 방어 체계 · 핵탄두 미사일의 메커니즘 해설 지적생활자를 위한 교과서 시리즈
가지 도시키 지음, 신찬.박종성 옮김 / 보누스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문명의 발달은 그 도약 단계가 하나하나 다 필연인 듯해도 면밀히 살펴보면 기이하거나 언밸런스인 구석이 많습니다. 핵무기만 해도, 인간이 더 평화롭고 온순한 기질을 지닌 종이었다면, 더 긴요한 쓰임새를 지닌 기술과 장치보다 훨씬 늦게 출현했을 겁니다. 아무튼 정신적 성숙도에 비해 너무 일찍 등장한 핵무기 때문에 인류는 20세기 내내 절멸의 공포와 히스테리에 시달렸고, 이 핵무기 못지 않게 군사적 긴장을 유발하는 게 바로 미사일입니다.

아무리 폭발력, 파괴력이 강력해도 목표물인 적국에 이를 "배달"하지 못하면 오히려 자살골이나 먹기에 좋을 뿐입니다. 따라서, 정확하고도 신속하게 적을 타격할 수 있는 비행 매체, 수단이 탁월해야 파괴력 증강의 연구 개발 그 보람(?)이 생깁니다. 이런 저주받은 기술은 문명 사회로부터 멀찌감치 치워져야 합당하겠습니다만, 자측을 노리는 상대방이 섬뜩한 칼을 가는 중인데 나부터 먼저 평화를 실현하자며 가진 무기를 다 내려놓는다면 최악의 불의에 자진해서 부역하겠다는 뜻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유 불문 근거 무시하고 무작정 평화를 외치는 태도는 그 저의를 의심해 봐야 합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제공권을 장악한 후 브리튼 섬에 상륙하려는 의도가 매번 실패하자 히틀러는 다른 꾀를 냈습니다. 파일럿이나 비행체를 통하지 않고 유럽 대륙에서 직접 포탄을 쏴 해협 건너에 떨어지게 하자는 발상이었습니다.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로켓 기술을 보유했던 독일이었던지라 이 미친 착상이 탁상공론으로 그치지 않고 집행 단계에까지 이르러 실제로 V2 등이 영국 본토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습니다. 단지, 파산 직전이었던 나치 정권 재정으로 더 이상 이 비싼 무기의 제조와 운용을 감당할 수 없었고,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성공, 소련군의 베를린 진공으로 전쟁 수행의 본진이 털리고서는 모두가 한 줌 물거품으로 사라졌습니다.

이 책에도 자세히 나오듯, 전후 소련이 급속도로 핵무장에 성공하고 동유럽 장악을 위한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베를린 점령 후 독일 미사일 기술진을 대거 빼돌려 자국 전력 강화에 전용할 수 있어서입니다. 사실 이 과정이 비밀리에 추진되기도 했고, 일본이나 미국에서 반공 프로파간다로 널리 활용하기도 했기에 한 마디 한 마디를 다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는데, 이런 공신력 있는 책에도 언급이 되거니와 소련 붕괴 후 봉인해제된 기밀 문서를 봐도 대개 맞았다는 게 판명이 되었습니다.

1980년대 중후반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미국의 강경 드라이브를 도저히 쫓아갈 재간이 없어 글라스노스트, 페레스트로이카를 선언하고 국제적 해빙 무드를 주도했습니다. 항복하려고 두 손 쳐든 게 만세 부른 꼴이 되었다고, 이 온화한 표정에 세련된 매너를 지닌 중년 신사가 우아한 그 부인과 함께 세계 무대를 누비면서 군축과 핵확산 자제 메시지를 전파하고 다니자 미디어에서는 연일 띄우기와 칭찬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세계적 군축 노력이 (이때 한번 탄력을 받은 뒤로) 지속되었다면 지금쯤은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을 텐데, 어째 긴장도 고조되고 갈등이 더욱 통제불능 국면으로 치닫는 듯합니다. p23을 보면 2013년(아마 이 책 원판이 저술된 시점이겠죠?) 기준 17,265발이나 되는 엄청난 수의 핵탄두가 존재한다고 합니다(책 저 뒤편의 p89도 함께 참조하십시오). 그리고 이들 중 대부분은, 여러 군데의 목표 지점을 돌아다니며 핵폭탄을 투하할 수 있는 놀라운 유도 성능의 미사일(다탄두 각개 재돌입 방식)에 의해 운반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1990년대 초 세계인들이 충격을 받은 건, 베트남 전 종전 이래 대규모 전쟁 없이 오랜 기간을 지내 온 터에 그간 얼마나 첨단 군사 기술이 발전했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다가 느닷 SF 영화처럼 전개되는 각종 신무기들의 활약상을 보고 일종의 "컬처 쇼크"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영상 유도를 기본 원리로 삼는 AGM-65 매버릭(p16)은, 미사일 앞부분에 부착된 소형 카메라를 통해, 본부에서 조이스틱 조작만으로 자유로이 작동 가능하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이미 1970년대 전반인 제4차 중동전쟁 당시에 이 기술의 원형이 실증 효과를 보았다는군요. 이 기술의 가장 진화된 방식을 적용한 무기는 현재 일본이 다량으로 보유 중이라고 합니다.

자연의 이치는 인간의 모든 기술적 문명을 일깨우는 스승입니다. 방울뱀은 일종의 적외선 센서인 "피트"를 가지고 먹잇감을 쫓는데(p13), 이에 착안하여 고안한 장치입니다. 나쁜 기후 등의 이유로 가시광선 등으로부터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얻기 어려울 때, 이 적외선 유도 장치는 타격 목표의 정확한 형태와 위치를 알아내게 돕습니다. 이 가공할 무기에 자신의 이름과 개성적인 생리, 신체 구조가 참고, 모방되었다는 걸 알면 방울뱀이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혹은 자연으로부터 만물의 궁극적 이치를 탐구하는 방법론을 주창한 남송 때의 유학자 주희 같으면 무슨 평을 내놓았을지도 말이죠.

센서가 발달하다 보니 제트엔진의 배기, 기체의 열도 탐지가 가능해져, 모든 정보를 영상으로 "해석, 전송"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책에서는 "전방위 타격"이 가능해졌음을 지적하는데, 그만큼 결정권자의 사려 깊음보다 일시적 변덕과 감정에 의해 비극이 초래될 여지가 많아졌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물 인터넷이나 AI 기기의 발달이 집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게 4차 산업혁명이라고들 하는데, 그보다 앞서 센서 영역의 대혁신이 이 모든 파장을 앞서 예비했다고 봐야 맞겠습니다.

중국은 독재 시스템이 지배하는 국가인데다 전통적으로 군부의 입김이 막강한 권력 구조입니다. 이런 중국도 아직은 미국의 엄청난 군사력에 대적할 마음을 못 품는데, 전력상 중요 열위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이지스함 단위에서의 현저한 낙후상입니다. 이 책 곳곳에서 강조되는 게 프랑스제 미사일 "엑조세"의 탁월한 성능인데, p58뿐 아니라 저 뒤 p78에 보면 아직도 국제 무기 시장에서 여전한 명성을 떨치는, 프랑스 군수산업계에 톡톡한 효자 노릇을 하는 아이템이라고 합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 측이 이런 순항 미사일의 위력에 별 마땅한 대응책이 없음을 뒤늦게 깨닫고(프랑스가 참 얍삽한 게, 당시 영국 엿좀 먹으라고 일부러 아르헨티나에 무기를 팔았겠죠ㅋ), 이 필요성은 소련 측애서 대함(對艦) 미사일 증강 기미를 보이자 이미 1960년대 초반부터 미국이 집중 연구한 분야라고 하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그 본격 개발은 포클랜드 전쟁이 안긴 충격파 때문입니다(결국 아르헨티나가 지긴 했어도 말이죠).

좋은 책은, 첨단 기기의 큰 흐름, 발전상을 그저 기술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일관된 맥을 짚어 보여 준다는 게 장점입니다(물론 그런 "맥"은 저자의 개인적 관점이기도 하기에 독자는 언제나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마땅하겠지만). 냉전 시대 소련은 내내 핵탄두의 폭발력 증강에 초점을 두었는데, 이는 타격의 정확도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반면 미국은 폭격기의 질적 양적 성능에서 우위를 보였으므로 미사일 개발에는 큰 관심이 없다가, 우리가 잘 아는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로 이 분야에 집중 투자하였고, 조준과 타격의 정확도 면에서 소련이 범접 못 할 수준까지 발전했습니다.

아무리 폭발력을 증강시킨다 해도, 더 빠른 선제공격으로 소련 측의 마사일 저장소(=사일로)를 타격, 무력화시킨다면 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됩니다. 해서 소련 측은 고정된 지점에 무기를 배치하지 않고, 열차 등으로 이리저리 운반해 가며 미사일을 쏘는 "자주식 시스템"을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이것과 직접 연관은 없고 시간적 배경도 소련 붕괴 후 러시아를 상정하긴 했지만, 드림웍스 제작 배급 작품, 니콜 키드먼 등이 주연한 <피스메이커>를 보면 열차에 실려 어딘가를 향하는 러시아산 핵무기가 유독 인상깊은 피처로 다가오기도 했죠. 또 냉전시대에 개봉된 <007 옥토퍼시>에도 "열차에 실린 핵무기"의 저지가 작품의 주된 스토리라인이었습니다.

구 소련이 어떻게 무기 체계를 발전시켰는지는 현재의 북한 문제 난맥상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북한의 기술 개발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의 성취는 인민의 막대한 희생을 담보로 하여 이룬 것이므로 전혀 건강한 성격이 아니고, 이미 타국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얻어낸 노하우와 체계를 카피한 데에 지나지 않으므로 어떤 독창의 산물도 못 됩니다. 스커드 미사일은 상온에서도 보존 가능한 액체 연료를 사용할 수 있다는 데에 장점이 있는데, 북한이 채용한 미사일은 상온에서 기화되기 쉬운 연료라서 그간 미국의 추적을 쉽게 받을 수 있었습니다(주입이 오래 걸림). 그러나 최근 기술 개량으로 고체 연료 사용이 가능해졌고(이 책에는 이 사정이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미국에게 선제 타격의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본토까지 날아갈 수 있는(저자는 벌써 집필 시점에서 이 점을 예측하고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단계입니다.

일본은 자국을 (넉넉히)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북한 측의 움직임에 신경이 쓰이겠지만, 더 근원적인 문제는 중국의 동향입니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의 영유를 놓고 중국은 언제든 "영토 탈환"을 위해 군사 작전을 시도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들을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일본 측의 대응 방안은 생략되었고, 중국 측에서 구사할 수 있는 여러 책략과 작전안들이 저자의 관점에서 설명되는데 이 대목이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미사일 전력은 현재 그 보유국의 군사적 전력을 측정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설명력 높은 지표입니다. 어떤 나라가 어떤 성격의 미사일을 얼마나, 어떤 체계 안에 배치, 보유하는지는 그 국가의 군사 전략 향방을 점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미사일 이슈는 군사 영역에 국한한 게 아니라 국제 정치의 가장 하드하고 살벌한 얼굴을 엿볼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도 합니다. 국제 정세의 긴박한 움직임 때문에 원치 않는 국민들도 뉴스를 통해 미사일 원리를 부지불식간에 이해하게 되는 착잡한 시국입니다. 허나 깨어있는 시민은 아는 게 또한 힘인 법이며, 사실을 정확히 안 후에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건전한 해법이 시민 사회로부터도 도출될 수 있음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