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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미래보고서 2018 - 세계적인 미래연구기구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2018 대전망!
박영숙.제롬 글렌 지음, 이영래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미래를
예측하고 싶은 욕구와 그에 따른 노력은 "생각하는 인간"의 존재 본질을 규정하는 특성 중 하나입니다. "생각없이 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처럼, 삶이 사고와 계획에 의해 통제되어야지 그 반대가 되어선 짐승의 발버둥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쩌면 예측과 대비 없이 닥치는 대로 사는 삶이란 생존 자체마저 보장 못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연말 연시에는 이런 미래
예측서를 찾아읽고, 아주 먼 장래까지는 몰라도 내년 한 해 정도는 알차게 설계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모두의 습관처럼 자리해가는
듯합니다.
박영숙 대표와 제롬 글렌
회장 공저의 오랜 시리즈 올해판(내년판?)인 이 책은, 그간 "UN 미래보고서"란 이름으로 독자들과 꽤 친숙해진 기획입니다.
표지만 봐도 친숙하다 느낄 이들도 많겠습니다. 무척 변화가 빠른 세상이긴 하지만 보고서나 백서로 아젠다를 명료하게 짚어내기란 무척
어려운 과제이며, 거대 이슈가 한 해 단위로 바뀔 정도는 현재 아니기 때문에 중복감과 식상함 없이 매년 이런 책을 펴내는
노고에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독자들이 무슨 사진 같은 기억을 지닌 터도 아니라서, 2018년판에 이러이러한 체제와
취지로 책이 무엇을 제안한다면 숙고, 집중해서 읽어나가는 반응도 조건반사적입니다. 공자도 "배우고 때때로 (다시) 익히면
즐겁다"고 한 적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각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미래 타임라인을 5년 단위로 끊어서 주요 이벤트(역사적 사건)를 예측하는 체제를 취해 왔죠. 이
파트도 매년판 해당 부분을 특히 (연속적으로) 챙겨볼 필요가 있는데, 특히 대담한 예언으로는 "중동경제 붕괴(이건 2031~35
구간에 배치되었습니다)", "EU 붕괴와 재연합(이건 그 다음 구간입니다)" 등이 있네요. 탄소 연료 에너지 의존도가 줄어들어
현재의 안정과 번영 수준도 유지 못한다는 위기감은 그들 족장이나 왕실이 누구보다 먼저 느껴 왔기에, 예컨대 두바이는 메가시티
프로젝트와 금융 등 서비스 허브 정책 추진으로 국가 혁신을 일찍부터 꾀해 왔던 겁니다. 일부 국가에서 (엉뚱하게도) 원전 기술을
도입하려던 것도 다 그 나름 절박한 이유가 있었고요. EU 붕괴(적어도 "위기")는 그보다 훨씬 이른 시점에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각국의 경제 구조 내실이 저처럼 차이 나는데 눈가리고 아웅 식의 통합 화폐 관리 정책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그
장래는 꽤 어둡습니다.
인공지능 하면
대뜸 떠오르는 게 (솔직히 그리 정교하게 창안, 설계되지도 못한) 영화(처음에 B급으로 시작)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상인 듯합니다. 상업용 기획은 그저 재미로 보고 넘겨야 하는데 오랜 세월 동안 세대를 달리하는 대중이
너무 (역시 상업화한) 공포감을 내면화한 느낌도 듭니다. 섬뜩한 지배욕을 갖고 빈틈없는 계산과 통제 기법으로 인간을 요리하는
AI가 나오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할지 모르지만(그 전에 미세먼지 등 환경오염 인자 때문에 다 죽을수도), 그
무엇이 자기 일자리를 체계적으로 빼앗아간다고 생각하면 공포감을 넘어 적개심과 분노가 존 코너 새러 코너 모자의 평균 게이지까지
상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은 비교적 똑떨어지는 진단을 내려주네요. "자기 분야에서 초고도 기능을 갖춘 이는 급여가 더 올라가고,
그렇지 못한 이는 실업자가 된다." 일자리 카테고리 자체가 "삭제"되는 일은 극히 일어나기 힘듭니다. 직업 이슈로 한정하면
결국은 1990년대부터 진행되던 자동화 트렌드의 연장일 뿐입니다. 말이 거창해서 "4차 산업혁명"일 뿐.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에 대한 예측도 이것만 특화해서 다룬 대중적 분석서가 이미 여럿 나와 있지만, UN 보고서(현재는 이처럼 이름이
바뀌었지만요)만의 특징은 간략한 기술(description)로 트렌드 지향성만을 알기 쉽게 봅아낸다는 데에 있습니다. 즉, 의료
분야에서는, 조시 잭맨 CEO는 이 가상현실 기술을, 극심한 통증을 겪는 환자의 주의를 다른 데로 분산하여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적을 합니다(사실 꽤 오래 전의 발견, 제안입니다만). 뾰족한 치료법이 개발 안 된 병증에 대해 일단 진통제(장기적으로
내장 기관을 파괴하는)를 대체할 수도 있고(근원적인 치료는 될 수 없죠. 통각은 장래 위험에 대한 시그널이므로), 각종 부작용이
따르는 전신 마취를 장기적으로 대신할 가능성도 열려 있습니다. 인간의 오감이란 참으로 기만적인 기제이니 말입니다.
개인이
유전적으로 타고난 질병에 대해, 문제가 되는 부분만 절단, 대체, 접합하는 크리스퍼 캐스 9 기술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노벨상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말도 있는데 노벨상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존재 양상이 통째로 바뀔 수도 있는 대사건이죠.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죽을 날만 기다리거나 두드러진 종양 때문에 활동이 어려운 이들에게, 서양식 외과 수술의 도입은 아마도 기적에
버금가는 혜택이자 인간 존엄의 진정한 실천이었을 터입니다. 허나 유전적으로 "교정된" 인간에 대해서도 우리가 종전과 같은 대등한
배려를 베풀 수 있을까요? 성형을 한 후보자는 결혼 시장에서도 냉대를 받는 게 이 시대 풍속도 중 하나라고들 말합니다. 현재
중국에서 이 분야 기술에 큰 관심을 주고 있으며 북미와 서유럽에서도 규제를 해제하라고 아우성인데, 무엇보다 인간들 자신이 일상에서
(출현 가능한) (이상한) 이웃들에게 성숙한 대접을 할 각오가 먼저 선 후에야 가능하지 않을지요. 말은 쉽게 하는 자들을 너무
많이 봐 와서 하는 소립니다.
가상화폐에 대해 말도 탈도 많은 요즘입니다. 책에서는 5대 화폐를 거론하는데 물론
"순위"는 재조정이 가능하겠습니다만 인지도 탑은 쉽사리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을 듯합니다. 요즘은 그런 말도 많이 들리는데
블록체인 기술에 국가 인증 시스템을 접목시켜 가상화폐 역시 정부의 독점 영역으로 만들자는 식으로 말이죠. 이런 발상은 익명성과
편의(이것과 동시에 보안이 충족되기란 종래 불가능으로 여겨졌는데 놀랍게도 이 문제가 기술적으로 해결되었죠)를 추구하는 가상화폐의
본성에 정면으로 어긋나긴 해도, 정부(딱히 한국 정부라는 게 아니라 정부라는 속성을 가진 그 어느 국가의 공적 섹터든
간에)로서는, 일단 과세의 사명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건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국(같은 독재 국가)이 최근 이
분야에 관심을 보이는 건 정말 당연한 반응이라 하겠네요.
미래에는 수명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예언도
나옵니다. 수명을 선택할 수 있다면 무기한 무한정을 당연히 택하리라는 게 흔한 상식적 반응이지만, 시몬 드 보부아르의 작품이나
그리스 신화에도 그 모티브가 나오듯 "무한정 깨달음도 성숙함도 없이 오래만 사는 건 무기징역이나 다름없는 형벌"일 수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과 문명의 편의를 누리는 것도 좋지만, 문화 지체 현상이나 소모적인 갈등, 반인륜적 범죄의 해악으로부터 우리가
자유로우려면 먼저 인간적 도덕적 성숙이 선결 과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