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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스타트 - 실리콘밸리의 킬러컴퍼니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나
브래드 스톤 지음, 이진원 옮김, 임정욱 감수 / 21세기북스 / 2017년 11월
평점 :
실리콘 밸리는 1970년대 처음 형성된 이래 80년대부터 전성기를 맞으며 지금까지도 미국과 세계 경제의 주요 성장 동력으로 기능하는 지식 산업의 메카입니다. 처음 이곳이 산업의 새로운 집적지로 자리매김할 때 그 유효기간을 대단히 짧게 보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언제나 서투르고 가능성 높은 청춘의 단계에 머무를 것만 같았던 이곳은 이제 근 반 세기에 가까운 연륜을 맞이했습니다만, 여전히 젊고 여전히 역동적이라 누구도 그 외관을 중년으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반면 전통적인 공업도시로 수십만의 직접 고용을 창출하며 꺼지지 않는 엔진의 화체와도 같이 떠받들어진 공업 도시들은 지금 황폐한 고스트 타운이 된지 오래입니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소 지역이든 활기와 생동감을 줄기차게 유지하는 비결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상시적 파괴적 혁신의 기조를 지켜 나가는 길인데, "파괴적 혁신"이란 말은 이 책 중에서도 여러 번 등장합니다.
책에는 이런 파괴적 혁신을 이룬, 우리 시대의 총아라 부를 만한 두 기업이 중점적으로 다뤄집니다. 실리콘 밸리에서 파괴적 혁신을 달성한 모범적인 숱한 예를 거명하며 광범위한 분석을 시도한 책들은 많이 나왔고, 반대로 딱 한 기업만을 선정하여 그 성공 가도를 평전처럼 조명한 책들도 우리는 자주 접합니다(이런 책은 스폰싱을 받고 쓰여진 홍보성 성격이 짙기도 하죠. 다 그렇다는 건 아니고 객관적으로 선명한 문제 의식을 지니고 집필된 저서도 여럿 읽었습니다만). 그런데 창업자 사이의 인적 연계가 거의 없고, 그 활동 분야도 판이하게 다른 두 기업을 놓고 교차 조명하는 책은 좀처럼 보질 못했습니다. 이 책은 그처럼 신선한 시도와 편집의 시도 속에, 그 취하는 관점마저도 매우 신선합니다.
책 제목은 "업스타트"입니다. 정확하게는 복수형인데, 두 기업을 다루니 그렇기도 하겠거니와, 이 두 "발칙한" 기업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실리콘 밸리의 생명력과 놀라운 적응력 비결을 보다 일반화한 카테고리로 정립하려는 의도도 있겠습니다. 책 서두에도 권위 있는 어떤 사전 항목을 그대로 인용함으로써 어의를 제시하지만, 사실 그런 건조한 기술적 설명만으로는 느낌이 확 와 닿지는 않습니다. 영어권에서 누굴(혹은 어떤 곳을) 두고 "업스타트"라고 부르는 건, 십중팔구 폄하하는 의도입니다. 요즘 왜 유행어처럼 근본없다 근본없다 해 대는데, 업스타트는 지금 당장 잘나가기는 해도 뭔가 격이 떨어지는, 그런 자격을 충분히 못 갖춘 부적격을 은근히 암시하는(아니면 대놓고 비웃은) 의도로 많이 쓰이는 말입니다.
뭐 오랜 세월을 두고 시장과 국가 거시 경제에 기여하며 장구한 성장을 이뤄온 기업들에 견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정도로 가볍게 넘겼는데, 책을 읽다 보니 그렇지도 꼭 않았으며, 정말로 이 두 혁신 벤처 기업의 "근본 없는" 출세기를 다루는 의도에서 제목이 그리 붙었음도 눈치 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두 벤처기업을 폄하, 고발하려는 목적이냐, 그건 또 당연히 아니죠. 모든 룰과 환경과 당연히도 여겨 온 전제가 송두리째 뒤집히는 이 격변의 세상에서, "얘네들처럼 발칙하고 근본 없는(!) 성장을 꿈꾸지 않는다면. 무작정 박살 날 각오하고 현실의 장벽에 도전 않는다면, 니네들(즉 우리 독자들)도 살아남을 수 없음"을 강조하려는 의도라고, 책을 다 읽은 후 저는 결론 내렸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근본 찾고 체면 따지고 순서 챙기다가는 굶어죽기나 딱 좋다는 뜻입니다.
업스타트를 구성하는 형태소 둘의 순서를 바꾸면 (공교롭게도) "스타트업"이 됩니다. 이 책 서두에서도 대뜸 그런 문제의식부터 던지고 시작을 잡습니다만, 스타트업이랍시고 척박한 시장에 발을 디디는 쬐그마한 기업들 중 절대다수는 채 떡잎을 틔우지도 못하고 말라죽습니다. 업스타트로 성공하고 가벼운 고개를 쳐들며 잘난척하기도 전에 아예 태양빛을 못 본다는 뜻입니다. 스타트업 단계에서 고사하는 게 오히려 정상 패턴인 이런 살벌하고 가망 없는 판국에서, 이 두 발칙한 "업스타트"들은 어떻게 생존하여 오늘날 거시 경제 전반에 두루 영향을 끼치는 자리에까지 올랐을까요? 사실 현재 시점에서도,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마냥 탄탄한 위치라고만 평가할 수 없습니다. 우버는 현재까지도 여러 국가에서 실정법의 규제를 받거나 철퇴를 맞아 주춤거리며, 자신이 애써 확립한 사업 모델을 "보다 온건하고 타협적인 후발주자들"에게 내어주고 있습니다. 에어비앤비 역시 일부 가입자들의 일탈적 행태를 예견하거나 통제하지 못해 송사에 휘말리거나 번거로운 추문에 시달리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비전, 장래성을 가장 냉정하고도 정확히,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건 아마도 시장이 아닐까요? 실제로 투자자들은 이들의 장래를 매우 밝게 봅니다. 두 회사의 창업자들(물론 서로간에야 전혀 별개의 과정으로 성장해 온 이들)은 이 책 곳곳에서 털어놓듯(혹은, 저자에 의해 폭로[?]되듯), "내 다시는 투자금 유치를 위해 이런 구차한 구걸을 하나 봐라"라면서 아주 학을 떼듯 초기 곤경을 회고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그들도 팍팍한 자금 사정, 빠듯한 시간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햄버거가 아닌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는 건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습니다. 초기 투자 자금을 조달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그들이 어렵사리 유치한 돈을 갖고서 부닥친 사업 영역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말그대로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아슬아슬 넘나드는 위태로운 것들이 태반이었더군요.
우버나 에어비앤비나 이른바 "공유경제"라는 거대 트렌드가 배경을 받춰 주어야만 활개를 펼 수 있는 신생 섹터를 겨냥한 기업, 스타트업, 아니 "업스타트"들입니다. 안 그러면 도둑놈 소리나 듣기 딱 좋은, 그야말로 개척과 범죄의 판가름이 종이 한 장 차이인 와일드 웨스턴 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아슬아슬 줄타기에나 비길 발걸음이, 과거는 물론이거니와 (놀랍지만) 현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과거 음원을 불법 공유하게 조장한다고 해서, 미국이나 한국이나 이런 서비스를 인터넷에서 시행하는 업체들은 이해관계자의 험악한 저항에 여러 번 직면했습니다. 캘러닉 역시 그런, 언제나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에나 딱 좋은 한계성 영역에서 모험 산업을 영위하다 위기에 여러 번 처한, 어느 부모라고 해도 자녀에게 "커서 저런 사람이 돼라" 같은 소는 못 들을 법한 인생이라고 해도 될 발자취들이었습니다.
책에는 이들 파이오니어가 처음부터 맞닥뜨려야 했던 각종 규제와의 전쟁에 대해 자세히 서술합니다. 우리 독자들이 일단 표면적으로 원하는 스토리란, 예컨대 맥도널드 체인점이 초기의 각종 장애와 몰인식, 편견을 이겨내고 어떻게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모으며 당당한 승자로 거듭났는지와 같은 "감동적인" 미담입니다. 헌데 이들 "업스타트들"은, 처음부터 세상과 치고받는 사고뭉치들입니다. 법을 정면으로 어기기도 합니다. 자신들이 벌여 놓은 사업 때문에 이익을 뺏기거나(기업주), 실업자가 될 노동자 계층으로부터 끝없는 항의, 위협을 받습니다. 어떤 수사 미드를 보면 실제로 이런 갈등이 범죄, 살인의 소재가 되었다는 설정도 나올 만큼이니, 전쟁도 이런 전쟁이 없습니다. 사업 자체가 본래 전쟁에 가깝고, 제가 며칠 전 리뷰도 남긴 어떤 책에서도 "편하게 경제적으로 사업 하려면 남이 다 닦아 놓은 모델을 따라야 한다"고 했는데, 이 사람들은 그런 상식과 편안한 편견에 정면으로 반기를 듭니다.
허나 세상은 결국 그런 근본 없고 발칙한 개척자들이 타협 없이 벌여 나가는 좌충우돌이 모이고 모여 더 나은 모습으로 바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유 경제 역시, 과시적 소비에 쏟는 거품을 걷어내고 보다 도덕적인 효율을 달성하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쏘스타인 베블렌이 처음으로 지적했듯, 이런 CONSPICUOUS CONSUMPTION은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아무 기여하는 바가 없는 낭비적 프로세스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제학상의 오랜 난제는 결국 "소유에서 사용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의해 해결의 한 가닥을 찾는 셈입니다. 또, 자원과 공간이 한정된 지구라는 행성에서 수많은 인구가 이처럼이나 저마다 최대한의 (허상에 가득찬) 만족을 추구하다 보면, 모두가 파국으로 치닫게 됨은 결국 자명한 결말입니다.
업스타트들은 큰 그림을 보고, 결국 다중이 사는 미래가 이러이러한 모양으로 탈바꿈하리라는 확신이 서 있으므로, 거친 반대와 실정법의제재를 감수하면서도 자신들의 비전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에는 그저 막연하고 추상적인 이상만으로 절로 동력이 마련되지는 않습니다. 그런 목적이라면 힘들게 사업체를 꾸릴 게 아니라 바로 정계에 입문하면 됩니다. (실제로 이 책 중에도 여러 번 언급이 나오듯 어떤 이들은 청년시절부터 C-span의 폐인 시청자였다고도 합니다) 기업은 기업으로서의 고유한 소명과 기능이 있고, 이는 시장의 요구에 기민하고도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예리한 후각과 반사신경, 매 순간 혁신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하고도 정확한 혁신에의 의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