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크라이시스 - 위기 후 10년, 다음 승자와 패자는 누구인가
루치르 샤르마 지음, 이진원 옮김 / 더퀘스트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역사가 그를 전후로 어떤 성격의 전환을 맞은 중요한 사건을 두고 기원으로 삼는 건 매우 드물게 보는 일입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천자가 새로 등극한다거나, 그 외 특별한 계기로 연호를 바꾸는 게 중요한 결단 때문이었지만, 현대에서 모두의 동의를 얻어 역법의 기원이 새로 바뀐다든가 하는 건 거의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가 2007~09년의 경제 위기를 하나의 새로운 기점처럼 삼자며 화두를 꺼낸 건 다분히 비유적 의도이긴 해도, 서서히 기억에서 잊혀져가는(우리의 무신경이 진정 놀랍죠) 그 사건이 그만큼 중대한 의의를 지녔다는 뜻도 됩니다.

많은 이들이 삶의 보금자리를 잃고, 직장에서 떠나기도 했고, 세계 굴지의 기업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기도 했습니다. 우리네의 일상에 파급이 크게 미친 그런 아픈 파문도 중요하긴 하나, 저자는 "그 일" 이후 국가나 정치 체제, 경제 시스템에 대해 인류 전체가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혹은 얻었어야 했으나 위험하게도 태평스레 지나치는 중인지를 지적합니다. "지적"의 궁극적 의의는 무엇인가. 08년의 파문이 그나마 그 정도에 머물렀다면, 다가올 '18년(벌써 내년이기도 하지만, 정확한 지칭의 개념보다는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의도가 더 큽니다)에는 어느 정도나 우리를 위협할 큰 파장이 닥칠지를 선제적으로 대비하자는 게 저자의 의도입니다.

1장은 생산가능 인구에 대해 논합니다. 요즘 운위되는 4차 산업혁명은 더 이상 사람의 기여가 크게 여겨지지 않는 전면적 자동화, 기계화의 코드가 핵심 중 하나이지만, 일단은 그런 대세가 당장(적어도 가까운 미래에는) 닥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그래도 "여전히 중요한" 사람, 노동이라는 생산 요소애 대해 자세한 분석의 칼을 들이댑니다. 이 챕터를 보면 똑같은 인구라는 팩터에 대해서도 그간 각국이 참으로 다양한 태도를 취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책 전체에서 공통으로 느껴지는 분위기인데, 저자가 인용하는 팩트 중에 아주 새로운 건 없다시피합니다. 어느 정도는 우리 기억에 (뉴스를 통해서건 혹은 다른 경로였건) 자취가 남은 것들인데, 저자가 새로 구축한 맥락 속에서 접하니 대단히 신선하게 보입니다. 어떤 건 당시에 수긍했으면서도 이런 새로운 논의의 틀에서 바라보니 "믿을 수 없는" 것들도 나옵니다. 우리의 확신이나 막연한 기대가 기실 얼마나 근거부족이었는지 살피는 좋은 예증이었습니다.

경제이론은 돌고 돈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때 완전한 오류로 판명되거나 폐기처분에 가까운 취급을 받던 게, 세월이 흘러 여건이 변화하고 난 후 그 의의가 재조명되는 게 꼭 나옵니다. 음산한 맬서스가 냉소적으로 인구 위기에 대해 말을 꺼냈을 당시에, 생산에 큰 기여도 못 하면서 사회 불안 요소로만 작용(그의 관점에서)하는 하층 계급 노동 인구의 문제가 여튼 적지 않은(오늘날에는 상상이 잘 안 되지만) 동조를 부른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헌데 4차 산업혁명의 파고로 기존 노동력이 대부분 쓸모없는 취급을 받는 지금, 황당하게도 다시 맬서스 패러다임이 적용될 여지가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일각에서 신 맬서시안들이 대두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물론 이런 결론이 "역시 맬서스가 옳았던 거야!"같은 퇴행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고, 서평 앞에서 지적한 대로 "위기의 근원과 징후를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지옥의 도래를 막을 수 있음"을 다시 상기하려는 게 저자의 의도겠습니다.

저자는 세계 각국을 순회하며 "당신만의 탁견을 제시해 주시길" 요청 받는 전문가, 권위자 중 한 사람입니다. 이런 분의 관심사에서 리더십의 문제가 빠지면 또 곤란합니다. 2장의 토픽은 4장의 주제("정부의 개입")와도 밀접히 연관됩니다. 많은 경우 번잡하고 느린 민주적 의사 결정 방식보다는, 신속하고 과단성 있는 전체주의 유사의 기제가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믿음이 지지를 얻어 온 것도 사실입니다. 08년 이후 중국이 무섭게 치고나올 기미를 보이고, 당 수뇌부의 기민하면서도 정확하고 먼 미래를 내다보는 영리한 조치가 눈에 띄자, 세계의 부자들은 앞다투어 베팅 경향을 바꾸었습니다. AiiB 설립 때 절대 다수의 서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돈보따리를 싸들고 온 것처럼 이때 중국이 성공했으면 진즉에 세계의 패권과 리더십은 중국에 안겼을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대단히 조심스럽게나마, 그런 기대가 매우 설익은 것이었음을 시사합니다. 대개 책에서 지나치게 단순한 결론을 과도한 어투에 담아 확언하면, 신빙성이 떨어지는 수가 많습니다. 저자는 대체로 시원시원하게 논지를 펴는 편이지만, 이런 대목에서는 전문가의 신중함으로 행간에 결론을 심는 현명함을 보입니다.

역사의 결과를 빤히 알고 과거를 반추하면 모든 게 당연합니다. 성공한 자는 저렇게 했기 때문에 성공했고, 망한 조직이나 국가를 보면 저러니까 망할 수밖에 없었다며 경솔한 결과론을 마구 디미는 게 우리들입니다. 허나 가장 권위 있는 경제학자들이 내놓은 예측 중에는, 머지않은 장래에 소비에트 경제의 규모가 미국의 그것을 추월하리라는 보고도 들어있었다는 게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이런 "연구"도, 발표 당시에는 많은 동의와 추종을 유발한 게 사실 아니었겠습니까. 물론 이런 극단적으로 실패한 (일각의) 연구와, 현재 수치적으로 기정사실화한 "중국의 미국 추월(명목 GDP 기준)"을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세상에 통계만큼 못 믿을 게 없음"을 다시 지적하며,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 중상위권에 오른 러시아는 왜 이토록 자국 기업의 망명이 러시를 이루며 외국에서 진입하기를 꺼리는지 설명이 안 된다고 합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내가 애써 가꾼 주식 상당수가 푸틴 측근들로 명의자가 바뀌어 있더라..... 어떤 기업가도 소름끼쳐할 악몽이 태연히 현실화하는 환경에서도, 통계는 현실을 무시하고 꿋꿋이 상향합니다. 마오 시대에도 관료들이 작성해 보고하는 통계만 보면 중국은 아무 문제 없이 성장을 지속하는 건전한 국가였습니다. 故 덩샤오핑의 위대한 점은, "믿을 수 없는 쓰레기 통계를 모두 폐기하고, 보기 싫어도 현실을 반영하는 자료를 작성해 올리라"는 지시를 단호하게 내렸던 데에 있습니다. 저자의 관점으로는, 그런 놀라운 리더십을 보였던 덩조차도 절정의 장악력은 (우리 통념과는 달리) 그리 긴 시간 지속되지 못했으며, 나머지 시간은 측근들, 잠재적 라이벌들과 공유하는 형식이었다고 합니다. 저자가 인용하는 명언은 "영웅이란 대중에게 얼마나 지겨워지기 쉬운 존재인가"입니다.

그 나라의 지리적 위치(지정학 여건)가 그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건 오래 전부터 통념으로 여겨졌습니다만, 저자는 이 역시 상대적 개념에 불과하다고 지적합니다. 물론 한 나라의 경도와 위도는 대격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불변입니다만, 세계의 역학 관계와 무역의 판도는 수시로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때 거들떠보지도 않던 지역이 새로운 교역 허브로 부상하기도 하며, 영원한 요충지로 번영의 샘이 마를 날 없어 보였던 지점도 퇴락의 순간을 맞습니다(pp. 270~271의 지도를 보십시오). 이를 국가 단위로 확장해 보면, 한 나라에서 가장 번성하는 도시와 바로 차순위 도시 간의 인구 격차가 3:1이 넘으면 위기, 부실, 불건전의 징후라는 게 저자의 "공식"입니다. 누구라도 흥미롭게 반응할 만한, 거의 미신에 가깝게 들리는 놀라운 단순화인데, 이 기준에 의하면 한국의 경우 부산과 서울이 1:3을 넘지 않으며, 서울이 최근 감소 추세임을 생각하면 이 경향이 추세적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인위적, 행정편의적 경계선이 문제가 아니라, 범 수도권 전역을 생각하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만) 여튼 현상적으로는 결과가 척척 맞아떨어지기도 하니 흥미로운 건 틀림없습니다.

"서비스업은 제조업을 대체할 수 없다." 많은 기업이나 자산가들은 윟험 부담이 크고 사회적 저항이나 마찰을 직접 맞닥뜨려야 하는 제조업에서 점차 손을 떼고,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금융업에 진출하려 듭니다. 그저 선진 금융 서비스의 원활한 제공만으로 국가 전체가 먹고 살 수 있겠다는 근거 없는 낙관에 빠져든 이들도 많았습니다. 각국의 거시 경제는 그러나 그런 손쉬운 환상을 쉬이 만족시켜 주지 않고, 제조업 기반이 부실한 환경에는 더딘 성장과 자주 반복되는 위기, 침체와 공황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했습니다. 인도는 언제나 중국을 잠재 적국으로 여겼으며, 경제적으로도 반드시 추월, 극복해야 할 목표로 삼는 중이지만, 요란하게 조형된 그들 고유의 힌두이즘 신상과 부적들마저도 "메이드 인 차이나"가 압도적 점유율을 보인다는 사실 앞에 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21세기에 브릭스라며 신 성장 동력들로 꼽혔던 나라 중 그나마 현재까지 투자자의 기대를 유지하는 건 인도뿐(중국은 레벨이 달라졌으니 논외)이라는 게, 미디어와 평론가들의 호들갑이 얼마나 쉽게 꺼지기 쉬운 거품인지 다시 증명합니다.

세계 경제위기 이후 많은 개인, 기업, 정부는 뼈를 깎는 노력으로 부실을 정리하고 재도약의 발판을 어렵사리 마련 중입니다. 헌데 이런 패턴은 08년 이전에도 이미 반복되던 것입니다. 한번 세찬 폭풍이 몰아닥쳐야 부실한 겉치레가 떨어져나가고 고갱이만 남기 마련인데, 저자는 훨씬 전에 벌어졌던 좋은 교훈을,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횡행했던 1970년대 말의 대처 과정에서 찾습니다. 당시 폴 볼커는 대중의 반응은 아랑곳않고 금리를 충격적으로 인상해서 스태그플레이션의 악순환 고리를 끊은 것으로 평가 받는데, 저자는 이 책 곳곳에서 "인플레이션이야말로 성과의 과실과 경제 전체를 좀먹는 암"임을 지적합니다. 저자가 당대의 논객들과 맞장 뜨며 타당성을 설파한 실제 경험담도 독자의 흥미를 자아내는데, 한국의 고도 성장이 과연 고도의 인플레이션을 감수하고 이뤄진 것인지 여부를 놓고 대단히 핫한 논쟁이 벌어졌던 "실황 중계"라서 특히 우리 한국 독자들의 눈길을 끕니다. 경제위기 당시 중국은 통화 전쟁의 일환으로 대거 발권력을 행사했는데, 지금의 궁색한 성장 둔화는 그때의 대가를 치르는 중이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08년은 확실히 많은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만, 누가 세월이 부과한 시련을 이겨내고 최후의 승자로 떠오를지는 (책에 실린 흥미진진한 명시적, 암묵적 예언들과 함께) 더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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