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혁명 2030 - 주거의 의미가 변화되고 확장되는 미래 혁명 2030 시리즈 2
박영숙.숀 함슨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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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뿐 아니라 사회 전분야에 전례도 없고 돌이킬 수 없는 "혁명"이 몰아닥치는 지금입니다. 소유보다 사용 중심의 패턴이 자리한다, 비혼자나 1인 가구가 증가한다, 무조건 큰 평수를 선호하기보다 여러 지역에 거점을 마련하여 변화와 이동성을 추구한다, ... 주거 패턴에 대한 이런 변화의 전망은 새삼스럽지도 않고 벌써 6, 7년 전부터 여러 전문가들이 발표, 개진해 온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이상"을 담고 있습니다. 즉, 주거 패턴이 단순히 과거의 A에서 현재의 B, 미래의 C로 바뀐다는 표피적인 현상의 진단이 아니라, 사회 계층 구조, 사람들의 의식상 근본 변화, (어디에나 빠지지 않는) 4차 산업혁명의 큰 파고와 맥락 속에서 입체적으로 관측한, 혹은 예측한, "살아가는 모습이 진화하는 인간 사회"에 대한 총체적 논증입니다. 물론 주제가 주제이만치 별의별 희한한 주거상의 신 트렌드, 패턴에 대한 자세한 소개도 있습니다. 그러나 심층의 모멘텀에 의해 움직이는 "맥락"의 분석과 연동된 소개가 아니라면, 다양한 실례의 나열이 그저 잡담이나 공상에 그칠 위험도 있습니다.

이 책은 첫째 과연 우리 주변에서도 감지되는 두드러진 변화가 그저 변덕이나 국지적 예외가 아니라 트렌드 시프트의 시그널이었구나 하는 확인, 둘째 그럼 장단기 주거계획이든 재테크든 가까운 장래에는 사람 사는 모습이 이렇겠구나 하는 구체적 대비, 셋째 (이 책의 진짜 가치는 여기에 있다고 보지만요) 주거 패턴의 변화를 통해 역으로 짚어내는 "인류의 미래가 움직여가는 방향"입니다. 이 미래는 그저 기계적, 기술적 진보에 한정한 게 아니라, 하고많은 가능성 중에 하필 그 길(들)을 택한 사람들의 심층 심리까지 되짚어내어 담은 인문적 자화상에 가깝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책은 그저 "이렇게이렇게 될 것이다" 같은 점쟁이의 요설이 아니라, 인문적 영감까지 독자에게 제공하는 점이 큰 매력이었습니다.

1장은 한국과 세계의 주거상 변화를 공시적으로 정리합니다. 벌써 오래 전부터 지적되었듯 수도 서울의 인구는 공식적으로 감소하는 반면, 그 인근 "수도권"으로 몰려드는(밀려나는) 비중은 커지는 추세입니다. 흥미로운 건 2년 전 런던 주택임대료 폭등 사태가 세계적으로 큰 뉴스가 된 데서도 알 수 있듯, 도심의 렌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게 우리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거죠. 이에는 초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인력과 그렇지 못한 경제인구 사이의 격차가 갈수록 커진다는 이유가 작용합니다. 요즘의 추세는, 부모로부터 부를 물려받은 층의 소비, 경제 참여 패턴이 중요한 게(=주거난을 심화시키는 게)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4차 산업혁명을 맞아 또래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새로운 고소득자 집단이 등장하여, 이들이 자신의 발밑에 있는 계층과의 주거지 선점 경쟁에서 호가를 높이 부르기 때문이죠. 반면 오랜 경제학상의 진리처럼, 토지는 공급이 제한되어 있어 생산자(제공자) 간의 경쟁이 벌어질 수가 없습니다. 수급의 사정이 이러하니 결과도 자명할 밖에요.

한편으로 탈 도심의 동인 중 하나는 대기오염 등 보건상의 불리한 여건도 한몫은 합니다. 이는 앞서 지적한 바와는 반대의 방향성으로, 부유층의 선도적 선택을 거쳐 향후 쾌적한 환경의 교외(한국과 중국의 사정을 동시에 예거합니다)로 대거 러시가 이뤄지리라는 전망입니다. 사실 이 두 현상은 모순이라기보다는 다른 국면 다른 동기에서 별개의 경로로 벌어진다고 봐야 하는데(혹은, 전자가 일시적 과거에 대한 설명이라면, 후자는 미래의 대세에 대한 언급이죠), 저자들은 조직의 업무 여건 개선, 초고속망의 진화, 이동성의 제고 등의 힘을 입어 점차 재택 근무가 늘어나고, "홈"과 "오피스"가 구별이 점차 어려워지리라는 추세("오피스 셰드", p37) 등을 들어 이런 예측에 방점을 진하게 찍습니다.

pp. 188~191에 보면 주택 양극화 현상이란 결국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8단계의 "주거 진화" 설명이 더 흥미롭습니다. 현재는 관리형 스마트홈에서 예측형 스마트홈으로 넘어가는 단계이지만, 앞으로는 자립형 주거나 하우스모핑(마치 살아 있는 듯 에너지 생산, 형태 변형. 하수 처리, 농경 등이 알아서 수행되는 패턴), 나아가 거주자와 일체가 되어 자아실현을 이상으로 삼는 구조까지 등장하리라는 전망입니다.

실제로 3년 전 홍콩에서 일어난 우산 혁명은 직접적으로는 대륙식 독재에 대한 저항이었지만, 직접적으로는 주거비 폭등 때문에 촉발되기도 했기 때문이죠. 책에도 나오듯 지금은 오히려 거품이 급격히 꺼져 그것대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 상승 현상은 이제 미래에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신기한 과거의 유물처럼 후손들에게 간주되리라는 게 저자들의 압도적인, 확신에 가득찬 진단입니다. 백 번 천 번 맞는 말씀이긴 하나, 그 "미래"가 현실로 닥치기 전까지는 우리는 과거가 남긴 룰의 잔재, 예외든 원칙이든 여전히 강력한 힘을 미치는 국지적 요동과 마주하고 살아야 합니다. 여전히 부동산 투자로 재미 봤다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나오는 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p117에서는 특이하게도 "네트워크 시대에 특히 강조되는 생존 본능인 제7의 감각"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제가 몇 달 전에 따로 이 주제만 다룬 책을 읽고 독후감도 남겼지만, 저자들은 조슈어 라모의 저서를 인용하며 "복잡하지만 사실은 복잡하지 않고 제어가 가능한 것"과, "복잡하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은 제어가 불가능한 것" 사이의 차이를 짚습니다. 이는 흥미롭게도 근 30년 전에 발표된 마이클 크라이튼의 스릴러 소설 <쥬라기 공원>에도 제법 큰 비중으로 소개되는 화제입니다.

개체를 둘러싼 환경이 여러 요인의 새로운 개입으로 복잡성이 증가되면, 개체 중에서도 영리한 몇 녀석은 새로운 본능을 발달시켜 생존과 (궁극적으로는) 진화에 성공합니다.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분들도 있겠지만, 컨설턴트 라모는 "트럼프 같은 이는 자신보다 훨씬 압도적인 경력과 지원 세력을 거느린 부시 가문, 클린턴 가문의 거물 둘을 예선과 본선에서 차례로 꺾었는데(생각해 보니 그렇더군요?), 이는 그가 탁월한 생존 본능을 갖고 네트워크의 발달이 근본적으로 바꿔 놓은 룰을 정확히 파악하여, 불필요한 액션은 피하고 철저히 계산적으로 승부 결정에 필요한 수만 영리하게 두어 결국 승자가 되었음을 증명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사실 작년 대선이 끝난 직후 힐러리 클린턴도 자인하다시피한 사항입니다. 그들은 필요 없는 유세는 너무 많이 했고, 믿음직하지 못한 정보와 조짐에는 너무 안도하는 경향을 보여 결국 패착을 두었습니다.

이 책이 이런 토픽을 책 중에서 꺼내든 이유는, 주거 패턴의 향방을 가늠할 때 종전처럼 한두 가지 요인만 대입시켜 단선적 예측을 하는 게 아무 의미없는 상황이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이 책은 (서평 앞에서도 지적했듯) 그저 주거 현상에 국한된 논의만 전개하는 게 아니라, 현대 사회가 홍역처럼 치르는 여러 근본 변혁상을 두루 조망하되, 그 요인들이 "주거"에 끼칠 영향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두어 흥미로운 논의를 들려 줍니다. 몇 장 뒤로 넘어가면 에릭슨 연구소가 최근에 발표한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5년 안에 AI가 스마트폰을 대체할 것"을 예측합니다. 이 역시 잘 생각해 보면 AI 만능론의 연장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고작) 스마트폰 정도와 일상의 도구로서 경쟁을 벌여야 하는 한계점을 오히려 지적하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책에도 나오는 것처럼) 스마트폰(이나 그 유사 단말기)는 (비록 요즘 분할 화면을 일부 지원한다고는 하나) 아직도 멀티 태스킹이 어렵고, 배터리 용량에 여전히 한계가 있으며, 작은 화면 때문에 유저를 답답하게 합니다. 반면 내 주변의 공간에 다양한 입체 좌표를 점하며 널려 있는 여러 (가상 아닌 실체를 지닌) 도구들은, 그것들의 재배열만으로도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곤 하죠.

아마도 이 책에서 (여전히) 독자들의 주목을 끌만한 화제는 콘투어 크래프팅일 것입니다(p93이하를 참조하십시오). 일본이나 미국 서부 해안처럼 지진이 잦은 지역에선 주택의 설계, 유지, 보수가 큰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와르르 무너져도 마치 레고 블럭 쌓아올리듯 간편하게 뚝딱 새 집을 지을 수 있다면 얼마나 이런 지역에서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한번 짓고 그 안에서 평생을 산다는 개념은, 이미 전통적 가족의 개념이 해체되고 이동성과 융통성을 강조하는 세태 속에 빛이 바랜지 오래입니다.

패션도 이미 자라 등의 업체가 리딩했던 트렌드대로, 짧은 시간 동안 걸치고 버리는(dispose) 컨셉이 젊은 층을 상대로 무시 못할 대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집이라고 해서 다른 이치가 적용되라는 법이 없습니다. 빨리 마르는 시멘트, 3D 프린터로 융통성 있게 취향대로 설계하고 기존 구조에 손쉽게 편입할 수도 있는 이런 기법(이 대목 말고도 p262 등도 참조하십시오)은, 이미 중국에서도 실용화, 상용화의 단계에 성큼 다가섰다고 합니다. 지진으로 무너졌으나 하루 만에 다시 입맛대로 지을 수 있는 집,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마치, 망가진 윈도우에 잠시 절망했으나 포맷 후 곧 운영체제 재설치하고 빨라진 컴을 즐기는 상황과도 비슷하죠.

앞에서 스마트 하우스에 대해 잠시 언급했는데, p202에는 더 구체적인 기술상이 소개됩니다. 빗물을 모아 정수하고 적절히 보관하여 바로 생수로 음용하게 처리하는 기술은, 특히 가뭄이 심하거나 상하수도 시설이 빈약한 시골(사람이 안 사는 이유는 이런 인프라가 빈약해서 불편한 이유가 크죠)에서 여건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겁니다. 쓰레기나 하수 처리 역시 나노 기술의 혜택을 입어, 전혀 자연에 오염을 끼치지 않고 개별 가구 레벨에서 말끔히 해결합니다. 클레이트로닉스, 아포스트로피(p214 등)라든가 여타의 몰핑 기법 적용을 통해, 외관이나 내부 설계 자체가 필요와 시도에 따라 자유롭게 변형 가능하며, 집의 모든 표면이 홀로그램 발전을 통해 일종의 "터치 스크린"으로 바뀌어 주거자와 소통하며 업무를 돕습니다. 나노 기술의 다른 적용 양상은 pp. 231~232에도 다시 언급됩니다. 환경 보전 컨셉(재생 에너지 사용 등)이 반드시 삽입되는 것도 이들의 필수적인 특징입니다.

앞에서 탈도심이 하나의 대세가 되리라는 전망이 책에 나온다고 했으나, 이와는 별개 목적으로 난도 높은 과업의 성취, 국력과 위신의 과시, 일자리 증진, 권력 이동 등의 이유에서 "매가 시티, 메가 프로젝트"의 추진이 현재 여러 국가에서 현저하기도 합니다. 이런 프로젝트 속에서는 오히려 산만해졌던 인구 분포가 개발 도심에 집중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모순이라거나 혼란을 느낄 필요가 조금도 없습니다. 책에서 지적한 대로, 세상이 복잡해지니 그에 대응하는 생존 방식도 복잡해지는 겁니다. 제가 몇 주 전에 리뷰한 SA 시리즈 <미래의 도시>에서도 언급이 있었듯, 오히려 도시의 생존 조건을 첨단 기술을 통해 개선하는 게 유력한 미래 비전 중 하나이기도 하죠. 책에서는 두바이와 한국의 송도 국제지구 건설을 그 좋은 예로 듭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첨언하자면, 이런 프로젝트 추진 때문에 특정 지구는 부동산 가격 폭등의 주기적 출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겁니다. 대세는 대세고, 국지적으로는 전혀 다른 돌발사태가 벌어질 수 있음은 엄연한 역사상의 진리이죠.

왜 지표면의 70%가 해양인데도 인류는 이를 활용할 생각을 못 하는가? 우주보다는 바다가 더 수월한 개척대상이 아닌가? 아직은 많은 한계가 있지만 인공섬(이 아이디어 자체는 24, 5년 전부터 한국에서도 나왔습니다)도 대안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 몰디브는 수년 후, 그 외 방글라데시 여러 연안 거주지, 농경지도 해수면 상승을 못 견디고 수몰되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거의 일치된 예측입니다. 탄소 연료 사용 절감은 별개 이슈로 삼더라도, 자립형 해양 주거지를 바다에 띄워 이 문제의 일부 해결을 보자는 제안은 꽤 매력적입니다. 그저 바다를 표류하는 바지(barge)선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공학자와 전문가들은 오늘도 기발한 착상을 번갈아 떠올리며 실용화에 주력합니다.

저자들은 "의, 식의 문제처럼, 곧 '주(住)'의 문제도 편의와 취향 차원에서 간단한, 실용적인 처방을 갖게 될 것이다"라고 합니다. 근본적인 발상을 바꾸면 의외로 결정적인 해답이 나오는 걸 우리는 자주 경험합니다. 단 인간은 관성과 집착의 동물이라, 쉬이 자신의 신조와 스키마를 몰핑 못 한다는 게 약점이죠. 결과로 도출된 방법은 간단할 지 모르지만, 그 방법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기술, 사회학, 심리, 역사, 정치(지정학), 인류학, 인문 등에 대한 광범위한 모색이 바탕이 되어야 유효한 해법이 간신히 나올 수 있다는 점, 저자들의 치열한 고민이 물씬 배어나는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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