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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 불어판 완역 ㅣ 청소년 모던 클래식 4
가스통 르루 지음, 박찬규 옮김 / 구름서재(다빈치기프트)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세칭
세계 4대 뮤지컬을 운위할 때 <오페라의 유령>은 거의 단연 첫손에 꼽힙니다. 개개인의 취향이 다양한 문명사회에서,
터무니없게도 어떤 획일적 표준을 강요하는 듯한 "3대, 4대" 타령은 정작 뮤지컬의 본고장에서는 입에도 안 올리지만, 일단 많은
이들 입으로부터 좋다고 정평이 난 작품은 챙겨 볼 필요가 있긴 하죠. 게다가, 뮤지컬 포맷의 완성도로 볼 때 <오페라의
유령>은 각 넘버들이 하나같이 명곡이기도 하며 어느 하나 흠 잡을 구석이 없는 클래식 중의 클래식입니다. 죽기 전에(?) 한
번쯤은 일류 배우들이 꾸며내는 무대로 꼭 감상을 해야 여한이 없을 명작임에는 누구로부터도 이론이 없습니다.
우리가
W A 모차르트의 오페라 부파 <피가로의 결혼>을 인류 전체가 기념할 만한 명작으로 기려도, 피에르 보마르셰의 희극
대본까지 일일이 고전으로 높이며 탐독하거나 칭송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모차르트의 명작이 남긴 휘광과 영향이 워낙 지대하기에,
음악의 참 가치를 온전히 평가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해당 텍스트에도 관심을 줄 뿐입니다(단, 보마르셰의 해당 작품은, 혁명 전야
점증하던 시민 계급[부르주아지]의 각성과 불만을 훌륭한 풍자 기법으로 표현했다는, 일종의 사회학적, 역사적 의의가 더불어 새겨질
만은 합니다). 음악 작품이 훌륭히 고유의 미학적 성취를 거두었다 해서, 평행 효과처럼 원작이나 영감을 준 원 미디어까지 덩달아
빼어난 고전으로 존중될 필요는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됩니다. 애써 걱정할 필요도 없이 완성도가 떨어지는 "원작들"은 대중에게겐
전문가, 평자에게건 세월의 풍화와 심판을 받아 잊혀집니다.
그러나
가스통 르루의 이 작품은 어떨까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너무도 유명하기에, 현대인들은 해당 작품과 공연에
"원작 소설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에 새삼 놀라기도 합니다. 혹 추리 소설 장르에 관심 많은 분들도, 그 유명한 소년 탐정
룰르따비유(훌타빌)의 창조자이자 그 탐정의 대표 활약 작품, 나아가 밀실 트릭의 고전인 <노랑방의 비밀>의 작가로만
알고 있기가 대부분이라서, 바로 그 원작 소설의 작가가 G 르루인 줄 깨닫고는 한 번 더 놀라기도 합니다. 추리 소설
애호가라면(설령 뮤지컬 등에 담을 쌓고 사는 이라도), G 르루의 이름을 봐서라도 이 작품에 눈길을 줄 만합니다. 대개 추리소설을
즐기는 이들은 지적인 취향이 대부분이라, 장르를 불문하고 어느 작품이든 작은 동기, 연계만 생겨도 그 가치를 충분히 즐길 만큼
빠져들 만한 집중력이 있더군요.
헌데 이
작품은 그 이상입니다. G 르루의 작품이 아니라고 해도(읽어 보면 그만의 재기가 뿜어나오기에 아닐 수가 없긴 하나, 작풍이 사뭇
다르긴 해서 새삼 꺼내는 말입니다), 스케일도 크고 인간 본성의 제법 깊숙한 곳을 묘파하는 통찰도 돋보이는데다, 시대와 공간을
따지지 않고 언제나 누구에게건 어필하는 "러브 스토리"이기에, 웬만해서는 일단 펼쳐들고 끝을 보아야만 뒤커버가 간신히 덮일
겁니다. 쫄깃한 표현의 맛과 특유의 유머, 전설이나 야담류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연의 매력, 통속 소설만이 발휘하는
플롯의 흡인력과 장중한 고전의 덕목을 함께 갖추었을 뿐 아니라, 역자 후기에서도 지적되듯 미스테리물의 은근한 잔향도 함께 풍기는
등, 타고난 이야기꾼만이 빚을 수 있는 아름다움을 확고히 장착한 명작임이 분명합니다.
고전이라고
해도, 아니 고전이기 때문에, 역자의 주가 충분치 못하면 그 시대상을 이해할 수 없고, 맥락도 분명히 잡아내기가 힘듭니다. 이 책
p156을 보면 네 개(씩이나)의 각주가 특히 배치되었는데, 제가 전에 다른 번역본들을 읽곤 했을 때는 못 보았던 설명이, 이
구름서재판(박찬규 譯)에는 여럿 발견되어서 읽기가 편하더군요. 사정을 알고 지식에 밝은 독자에게도 주의 환기 차원에서 이런 각주는
필요합니다.
"쿠르티유 언덕길"에
대한 설명은, 이곳이 포도농원과 가까운 구 시가지(파리 역시 여러 번의 역사적 격변을 겪은 큰 도시라서, 문학 작품들에 등장하는
도심, 부심의 지리적 상황이 시대에 따라 다채롭습니다)라는 점을 알아야, 무도회를 앞둔 크리스틴과 라울의 심경을 독자들이 온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저 비련, 혹은 치정 스토리로 일관하느냐, 아니면 (같은 소재를 놓고서도) 세심하게 문학적 장치를 요소마다
배치하여 미학적 효과를 다층적, 입체적으로 꾀했느냐에 따라 통속물과 고전이 갈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줄거리만 (그것도
간신히, 힘들게) 따라갈 뿐, 작가의 이런 치밀한 의도를 못 잡아내고 다흘린다면 고전을 읽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고전은
이를 독자가 읽는 시기와 정서적 환경에 따라 그 느낌이 천차만별로 다가옵니다.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고, 작가가 그만큼 완결된
세계 하나를 지면에 정성껏 꾸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당대에 큰 화제가 되었다 해도, 통속물이라면 뻔한 줄거리에 뻔한
상업적 노림수로 이야기를 지어내고 공략 포인트를 지뢰처럼 깔아 놓기 때문에, 두 번만 읽어도 바로 질려버립니다. 허나 이
작품처럼, 천품이 뛰어난 재능 있는 작가가 공을 들여 구축한 픽션은, 마치 진지한 추상화가들의 명작처럼, 감상할 때마다 숨어
있던(관찰자가 간과했던) 다른 진귀한 면모를 노출합니다. 당시 가스통 르루의 상황이, 그만의 미학적 소명을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뭔가 당대인의 심금을 짠하게 울릴 로맨스 명작을 하나 내어놓아야만 했었기에(비슷한 언급이 역자 후기에도 나오더군요), 그 나름 썩
내키지만은 않았던 작업을 하면서도 자기 스타일과 고집, 원칙은 그대로 담아내었던 거죠.
이미
읽은 이들은 알겠지만, 이 소설은 좀 별나다 싶게 시점도 자주 변화하고, 내러티브 포맷도 갑자기 진술 조서투가 그대로 나오는 등
현대인들에게는 낯선, 아니, 이 시대 작가가 왜 이런 형식을 내세우는 건지 같은, 지레짐작했던 선입견, 스키마와 어긋나는 데서
유래하는 생경함 등이 느껴질 겁니다. 이게 그만의 무슨 실험 정신을 내세운 흔적은 아닙니다(그런 류의 진지함과는 전혀 거리가 먼
작가였죠). 그보다는, 자신이 진정으로 몰입했던 추리소설의 아련한 세팅 연장, 혹은 "여튼 나는 이 소설의 창작에 충분히 몰입하고
열정도 불어넣는다" 같은 시그니처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형식상의 배리에이션은, 특히 추리 팬들의 마음을 끌 만한
기교(?)이겠습니다.
이미 다른
판본으로 읽거나 작품의 개성, 줄거리, 좀 특이한 설정 등에 대해 전해 들은 독자들은, 이 소설 후반에 느닷 페르시아인과 해당
지역의 사정이 등장한다는 점도 알고 있을 겁니다. 이 피처가 눈에 띄는 이유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원안(그리고 세계
각처에서 현재 공연되는 대부분의 포맷)에는 이런 세팅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 프랑스의 문인, 정치인, 귀족들은 여행차 페르시아를
심심치 않게 다녀왔고(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닌데도 말이죠), 가뜩이나 오리엔탈리즘(에드워드 사이드 식의 의미나 담론이 아닌)에
열광이던 서구인들에게 페르시아만의 지방색이 각별히 어필했던 게 사실입니다(이뿐 아니라 문호를 개방하고 갓 국세를 떨쳐 나가던 멀리
극동의 일본에 대해서도).
이 무렵
페르시아는 카자르 왕조의 말기적 병폐가 극에 달하던 실정인데, 독일은 이른바 3B 정책을 내세워 당시 인기 있던 오리엔트
특급으로 활성화한 철도 교통을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바그다드까지 연장하고, 이웃 나라인 테헤란에까지 자국의 영향력을 넓히려
책동했으며, 독일과 전통적 라이벌 관계이자
이때로부터 불과 수십 년 전 패전의 쓰라림까지 맛 본 프랑스 역시 이곳에서 팔짱만 끼고있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문인 특유의
순진함으로, 영국의 위압적인 행보, 독일의 계산적인 접근과는 달리, 자국의 외교 행보에는 뭔가 따스한 온기가 담겨 있다고 편하게
착각할 수 있었겠죠. G 르루의 페르시아 관련 미장센에는 그런 특유의 나이브한 오리엔탈리즘이 분명히 풍깁니다.
역자
박찬규님의 문장이 그래서인지, 이 번역본은 전에 읽었던 판본들과 달리 더 달달하고 더 애잔하게, 이뤄질 수 없었던 딱한 사랑의
비극미가 독자의 심금을 살뜰하게 건드린 듯한 느낌입니다. 혹은 눈도 안 내리면서 스산하기만 한 겨울 날씨 탓에 기분이 그리 흘렀을
뿐일까요? 제 개인적 기억으로는 매번 이 고전의 독서가 우연히도 겨울에 이뤄졌던 터라, 어디까지나 텍스트 자체의 힘(그리고 예쁜
표지 디자인)이지, 그저 착각만은 아닌 듯하군요. 행복한 독서였습니다(추운 겨울에는 남들의 비련이 내 욕구를 달래는 특효약이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