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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 - 우리 미래를 가치 있게 만드는 83가지 질문, 2018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도서
피터 싱어 지음, 박세연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어떻게
살아야 바른 삶을 살며, 어떤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더 나은 누리가 될지는 누구도 그 답을 자신있게 내어 놓기 어렵습니다.
<다윈주의 좌파>, <메타 윤리>, <세계화의 윤리>, <무신 예찬>,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등의 명저로 한국에도 폭 넓은 지지층과 독자들을 지닌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도덕철학자 피터 싱어의 이
저작은, 종전의 책들보다는 한 걸음 더 독자와 대중에 친화적으로 다가간 문장, 화법, 편제를 취했다는 게 특기할 점입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편안한 말투와 진솔한 문제 제기로 이 척박한 세상에 새삼 "정의"에 대한 관심과 각성을
촉구했다면, 이 책은 그보다 더 구체적인 이슈 제기를 통해, "윤리, 도덕"이라는 거창한 논점이 사실은 우리의 흔한 일상에 매우
밀착한 주제였음을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실 그간 피터 싱어의 책들을 읽어 온 독자들은, 이 책에서 그가 새로 시도하는
"파격적인 눈높이 낮춤", "쉽고 간단히 끊어지는 문장", "편안한 문제 제기와 상식적으로 수긍이 가는 타당한 논리" 때문에 과연
그의 책이 맞는지 잠시 표지 앞으로 돌아가 확인을 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반면 그런 편안한 형식 속에 담긴 내용은, 여전히 깊이
있고 심오하며, 보편 타당한 결론은 일상인의 상식으로도 흔쾌히 수긍되는 법임을 다시 확인하게 돕습니다.
모두
11장의 구성 속에 83가지 질문을 담았습니다. 이 83가지 질문은 어느 국가, 사회, 공동체에서건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바로 우리 한국에서도 무엇이 맞고 그른지 갑론을박이 치열히 일어나기도 했던 흥미로운 주제들입니다. 83가지 질문이
하나같이 절실한 관심, 혹은 일상사의 절박한 문제와 연관 있는 문제들인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며(뛰어난 사상가는 본디 적실하고
유효한 질문부터를 잘 뽑는 법입니다. 질문이 좋으면 절로 빼어난 대답이 나오기 마련이죠), 그 질문들을 11개의 적합한 카테고리
속에 훌륭히 배치했다는 느낌도 누구에게나 바로 들 것입니다. 우리 독자들은, 단숨에 책을 읽어나가며 윤리적, 도덕적 갈증을 채울
수도 있고, 어쩌면 한 달에 한 장(章. chapter)씩 읽어나가며 중대한 윤리 논점(전통적인 논쟁점도 있고, 현대에 들어와
비로소 대두된 것들도 있습니다)에 대해 차분히 학습, 반추하며 생각을 성숙시켜 나갈 수도 있겠습니다.
비건인이라고
해서 근래 채식주의를 선호하는 분들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육식을 끊으면 건강에도 이롭고 여러 성인병을 막으며, 불필요한 흥분,
욕구의 비등, 집착을 막을 수 있는 기질상의 평형,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게 그들의 논리인데, 개인 차도 있고 하나하나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까지는 않았으나, 자연 친화적 삶을 영위한다거나 동물 애호(어느 정도는 보편적 가치 아니겠습니까) 등의 결과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누구나 참여해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이 피터 싱어 교수 같은 분은 예전부터 이 주제로 큰 관심을 모은
여러 저작을 쓰고 발표해 왔으므로, 포괄적 실천적 윤리를 주제로 삼은 이 책에서도 그 얘기를 안 꺼낼 수 없었겠습니다(단, 다른
질문 꼭지에 비해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하지는 않았고요[의외?], 이런 구성상의 절제, 균형 역시 이 책에 대한 신뢰를 더
높인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결론과 근거들, 예컨대 기업형으로 사육되는 고기소들이 메탄 가스를 대거 방출하고(지구 온난화 주범), 어떤 동물성 음식재가
윤리적/비윤리적 방식으로 생산되었는지 확인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아예 채식주의자로 전향하는 게 "윤리적으로" 안전한 선택일 수
있다는 겁니다. 싱어 교수뿐 아니라 많은 논자들(非비건인 포함)이 일찍부터 해 온 얘기고, 다만 그의 화법이라서 설득력과
친근감(반대로 권위)가 더하긴 합니다.
"인문의
위기"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효율지상주의를 추구하고 세계화를 앞세워 반사회적인 분업화를 밀어붙이는 추세가 대세를 타는
지금, 한가하게 인문 따위를 떠받들 수 있냐며, 심지어는 진보를 추구한다는 일부에서도 인문, 철학 "따위"를 하찮게 여기는 천박한
풍조가 일기도 합니다(과학이나 공학도 모르고, 인문/철학에 대해서도 아무 이해가 없는 개탄스러운 무지의 산물이죠). 이에
대해서도 싱어 교수는 실천적 인문과 철학의 소양이 얼마나 당사자들의 삶을 질적으로 풍요롭게 가꿔 주냐면서 통렬한 개탄, 비판과
열정적인 동참 호소를 펼칩니다. 역시 우리 독자들의 상식(상당량은 싱어 교수 자신이 전작들을 통해 가꿔 주었습니다만)에 지극히
부합하는 내용들입니다.
벤담 등
전통적 공리주의자들의 입장이 무엇이었는지는, 오히려 이 싱어 교수의 저작들을 읽고 난 후에야 비로소 정확히 이해하게 되는 재미있는
역설적 체험을 겪는 독자들이 많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의 본격 전공 필드라고 할 수 있는 이 분야를 다분히 상징적으로 표현한
"범죄자들에게 어느 정도까지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과 그 논의에서, 그는 자신의 체험담과 역사적 사례 몇을 들며
"자비의 본질"에 대한 치밀한 논증과 사색을 전개합니다. 다분히 이 이슈에 대한 결론은 독자를 향해 "열려" 있는 느낌입니다.
이
책에 실린 두번째 질문(순번이 앞이라는 건 그만큼 무게, 가중치가 더하다는 뜻도 될 수 있습니다)은 "절대적인 진리란
존재하는가"입니다. 이게 진리 일반을 뜻한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의 분량을 합친 볼륨과 영겁의 시간을 동원해도 답은 안
나오겠지만, 싱어 교수는 "윤리적 객관주의"에 대한 논의로 범위를 한정하고 있습니다. 윤리적 객관주의는 어쩌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며, 동시에 싱어 교수의 여러 저작이 끈기 있게 탐구해 온 도전이기도 하고, 나아가 우리 독자들이 "과연 인문,
철학, 윤리에 대한 책을 우리가 읽어 나갈 이유가 있는가?' 같은 질문을, 보다 마음 편하게 해결하게 돕는 실용적 처방이기도
합니다. 생각이 성숙하고 깊이를 확보할수록, 짧은 말 속에 더 많은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데, 모두 네 페이지 분량이지만 읽고
나서 울림이 깊고 오래 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른번째
질문은 "담뱃갑 표면에, 강력한 주의를 촉구하는 이미지(상당히 혐오스러울 수 있는)를 강제로 삽입할 수 있느냐"입니다. 이
문제는 애연가들의 반대와 (그에 못지 않게 강력한) 혐연 진영의 열렬한 지지가 한국에서도 맞부딪는 지점이기도 하죠. 싱어 교수는
최근 미국과 호주에서 내려진 두 상반된 판결을 소개하며, 표현과 영업의 자유와 공공의 보건권이 어떻게 충돌하는지, 이 두 권리 중
한쪽이 전적으로 부정되고 다른 쪽이 전적인 승리를 거둬야만 하는지, 아니면 어느 중간지대에서 점진적인 타협점이 모색되어야
하는지를 놓고 역시 그만의 치밀하고 자상한 의견을 전개합니다. 온화하지만 열정이 담겼고, 그만의 방향성도 분명히 드러난다는 게
특이합니다. 그의 책을 읽어 온 독자들은 다 알지만 이 저자의 개성은 "주례사 톤"을 매우 거부하는 편입니다.
"사회적
지위를 돈으로 살 수 있는가", "동성애는 비도덕적인가", "인류의 종말은 (과연) 비극인가" 등의 질문은, 보는 이에 따라
"아 이건 어차피 답이 안 나오는 문젠데 본인이 해답을 내겠다니 무슨 과대망상인가" 같은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한번 읽어 보십시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사람은, 문제 자체의 스케일과 난점에 매몰되지 않고, "어떻게든 해결이 되어야만
한다"는 실용적 욕구에 더 충실합니다. 어떤 질문은, 제목이 부르는 기대와는 달리 화제를 급격히 좁혀서 논의를 시작합니다. "이게
그거하고 뭔 상관?" 읽다 보면, 결국 선명한 지엽적 사례가 의외로 확장성을 넓혀, 난제로만 여겨졌던 질문에 대해 의외의
착안에서 시사점을 마련해 주기도 하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질문 중에는 "투표를 잘못하면 어떻게 되는가"도 있습니다. 이런 건
한국의 교수님들과 비교해서, 투정 부리는 듯한 태도와 관점이 그리 다르지도 않구나 같은 생각도 들게 하더군요.
에이미
추아는 여러 도전적인 주장을 담은 책으로 미국 사회는 물론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킨 저자입니다(하긴 한국에서는 추아 이전에도
극성스러운 타이거 맘들이 많기는 했지만요). 우리가 예상할 수 있듯, 저자는 타이거 맘보다는 코끼리 엄마, 즉 타인과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공유와 연대의 가치를 자식들에게 함양하는 사려 깊은 맘들이 더 늘어나길 기대합니다. 결국 윤리 도덕의 문제도,
종교라는 가면을 쓴 독선(이 주제에 대해서는 책의 다섯번째 질문에 상세한 논의가 담겼는데, 진화생물학자 마크 하우저와 함께 쓴
아티클임이 밝혀져 있습니다)이나 이기심을 멀리하고, 화합과 연대를 기반으로 한 "인간 본성(p36)"에 눈을 떠야만 해결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던집니다. 책이 쉽고 재미있게 쓰여진 건, 이런 자신의 신념 그 실천의 일환으로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