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도시 - 스마트 시티는 어떻게 건설되는가? 한림 SA: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17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편집부 지음, 김일선 옮김 / 한림출판사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도시는 괜한 허영이나 탐욕의 공간적 산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흔히 너른 대지나 목초지, 농경지에 멀찌감치 간격을 사이에 놓고 자연에 파묻혀 지내는 삶을 원칙과 이상인 줄로만 알지만, 도회지에 모여 문명, 편의 시설, 지혜, 연대의식과 위기에의 대처를 공동으로 이루는 노력 역시 인간적 삶의 본연, 본원적 행태의 하나입니다. 오히려 역사의 진수랄까 참된 국면은 도시의 역사에서 그 대부분을 집약해서 관측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래서 도시의 영광은 인류사 전체의 영광이며, 도시의 위기는 현생 인류 전체가 절감해야 공통의 과제이며, 도시의 미래는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미래의 도시"를 예측하고 상상하며 개관하는 작업은 역사의 조망이나 과학 기술의 압축적 향방을 점치는 것만큼이나 의미가 큽니다.

도시의 환경, 구조가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면, 그 거주민들의 삶 역시 해당 지역에서는 종막으로 치닫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만약 모든 도시가 공통적인 문제를 안았다면, 인류는 자신의 장래에 대해 비관적 전망 속에 조심스럽게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입니다. 이 책은 그래서 "도시의 지속 가능성 높이기"를 주요 화제, 이슈로 대뜸 부각합니다. 이에는,

1) 도시 인프라의 활용 효율을 높이는 다세대 주택 수를 늘리기
2) 자원의 재활용, 재가공, 재사용을 위한 시설과 정책 수립, 연구/숙련 인력(전문가)의 확충
3) 자가용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는 이동수단 확대(자전거 포함)
4) 쓰레기 소각열로 전력 생산을 이룸으로써 인당 에너지 소비량 줄이기 (이상 p17)

등이 포함되는데, 사실 이 대목은 책 전체의 방향성을 독자로 하여금 미리 파악하게 하는, 기능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도시의 성패(盛敗)는, 한정된 공간과 자원을 어떻게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아이디어, 이의 현실화를 위한 정책의 고안 집행에 거의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 4)의 경우 책 저 뒤편 p130 이하에서 세계 여러 도시의 사례를 소개하며 자세히 해명됩니다. 이 이슈 뿐 아니라 책의 모든 논제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1장의 마지막에는 이 SA 시리즈의 평소 태도나 성격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게,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의견"이라는 제목 아래 시안적 성격의 단편적 제안이 여럿 나와 있습니다. 이 중에는 전문가의 묵직한 예측이나 아이디어도 있고, 어느 대학생(중국인)의 과감한 발상, 요구도 있으며, SF 작가의 좀 터무니없다 싶은 과격한 "구호"도 있습니다. 이런 파격적인 파트가 이례적으로 삽입된 건,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이 대부분 도시 거주인들이리라는 상정 하에, "당신 역시 얼마든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으며, 기탄 없이 정직한 느낌이나 발상을 표현하는 건 오히려 의무이기까지 하다."는 메시지를 우리 모두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도 아닐까 짐작합니다.

실제로 1)~4)는 인구의 상당수가 농촌 혹은 저인구밀도 지역에 거주하는, 국토가 매우 넓은 미국에서는 어떤 경각심이 생길 만한 이슈일지 모르나,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새삼스럽고 당연한 문제 제기일 뿐입니다. 인구의 절대 다수는 아파트 등 다세대 주택에 삽니다(다세대 주택이라고 하면 저가형 빌라나 원룸만을 대뜸 떠올리지만 본디 용어례의 원칙으로는 단독 주택을 제외한 모든 형태가 다 포함되죠). 3)도 어느 수도권 도시에서나 이것 관련 인프라를 만날 수 있고, 이미 시민 생활 패턴의 일부로서 자리한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특히 이 책은 한국 독자에게는 이미 선 이해의 대상으로 머리 속에 자리했거나, 피부로 느끼는 친밀감 덕분에 (시리즈 다른 권에 비해) 이해가 더 빠른 속도로 와 닿을지 모르겠습니다.

미래의 도시상이라 하면 대뜸 누구나 떠올릴 만한 게 "스마트 도시"입니다. 그런데 필자(해당 아티클)는, 이 주제를 설명하며 대뜸 리비아나 이집트에서의 민주화 운동 이야기를 초두에 꺼냅니다. 일단 이들 나라에서 당시 그 사건이 스마트 기기를 이용한 젊은 층의 소통과 공분의 확산을 통해 이뤄진 건 맞습니다만, 그것과 "스마트 도시"가 서로 무슨 상관일까요? 해당 필자가 떠올리는 미래상의 "스마트함'은, 도시 거주인 전체가 유기적인 네트워크 속에서, 긴밀히 소통하고 친밀감에 기반한 유대를 이루는, 밀도 높은 민주주의가 지배적 원리로 작용한다는 의미에서 "똑똑한 도시"입니다.

민주주의는 대개 명분상, 도덕적으로 정당하기는 해도 의사 결정 속도가 느린 것이 취약점이었는데, 이제 모바일 혁명으로 인해 그런 기술적, 구조적 한계까지도 극복하게 된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구성원 모두의 합의를 바탕으로 삼기에, 느려도(과거였다면) 일단 한번 체제가 가동만 하기 시작하면 무서운 힘을 냅니다.  잘 뭉쳐진 게 강하고 똑똑해지리라는 기대는 근거가 분명히 있습니다. 또 이로부터 밀도 높고 지속적인 혁신이 출현 가능합니다.

"대도시가 효율적이다." 맞습니다. 상식을 갖춘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도시는 경제적으로 생산성을 높일 뿐 아니라 거주자들의 건강도 개선한다." 건강 이슈에 대해서는 여기(p63)뿐 아니라, 특히 책의 제일 마지막(p222 이하) 같은 대목을 동시에 교차 참조할 만합니다. 아니 도시에서 매일 매연에 찌든 공기만 마시는데 무슨,... 이라고 하실 분이 있다면, 사실 시골의 대기도 (예를 들자면) 중국발 미세먼지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뿐 아니라, 비위생적 요소(천연이라고 다 깨끗한 건 아니죠?)로부터의 위협에도 노출된 게 사실이며, 전염병(人 혹은 獸 어느 편이건 간에) 같은 게 돌 때 전문 인력으로부터의 체계적 지원을 못 받는다면, 결코 "건강 친화적"인 거주지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말은 어떻습니까? "높은 인구밀도가 오히려 환경 친화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좁은 환경에 모여 사니 기본적으로 대사작용 끝에 나오는 부산물이나 생활 쓰레기만 해도 얼마인데....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일단 1인당 제공되는 인프라의 건설 유지 비용이 낮아지므로, 한정된 재원(물론 세수가 늘어나므로 재원 자체도 크기가 커지죠)을 훨씬 다용도, 고효율, 광범위로 쓸 수 있고, 거주자들이라는 게 남 안 볼 때 환경을 망치려 드는 양심불량만 있는 게 아니죠.

우리는 자신들에 대해선 환경(뿐 아니라 모든 걸) 걱정하는 의식 있는 시민으로 평가하면서, 다른 시민들은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면 새로운 발상을 해야 하는 동기도 늘어나며, 아이디어나 고안, 발명의 질도 더 높아진다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해당 필자의 "건설적이면서도 낙관적인 비전과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농경지가 확대되며 사막화 속도도 늘어나고, 남벌 밀렵 등으로 환경이 더 빨리 파괴된다는 사실은 이제 놀랍지도 않은 뉴스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도시화가 덜 전진되거나 (역으로) 쇠퇴하면, 사람들은 농촌으로 회귀하여 과거처럼 보편적 빈곤상이 늘어날 것이다." 참으로 맞는 말 아니겠습니까? 물론 "농촌=빈곤"의 등식은 현대에서도 그저 기계적으로 성립하는 법칙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는 도시/농촌 간의 거주 비율이 (요즘처럼) 합리적으로 조정되었을 때의 이야기며, 중근세 전근대처럼 절대 다수 인구가 농촌에 거주하는 상황이라면 토지의 효율적 이용이 어려워지고, 이는 보편적 빈곤을 초래하는 게 필연입니다.

그 바로 앞대목(p68)을 보면, 해당 필자는 인구가 늘어날수록 도시의 "사회경제적 효율이 높아지는"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이) "초선형확장"이라 부른다는 언급을 합니다. 이에 반대되게, 소규모 도시일수록 인프라 건설 비중도 적고 단위당 비용도 높아지는 걸 두고 "부선형 확장"이라고 한다는데, 원어는 각각 superlinear, sublinear입니다. 만약 linear라고만 하면, 1이 늘어날 때 덜도 더도 아니고 딱 1만 늘어나거나, 2배면 2배, 3배면 3배, 이렇게 정해진 배수로 밖에 안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superlinear면, 3배, 4배, 혹은 제곱 비율 등으로, 초기보다 더 높은 효율이 추가로 달성된다는 거죠. sublinear는 처음 나오던 효율에도 갈수록 못 미치는 비경제적 패턴이 고착화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해당 필자는, 한번 똑똑해진 도시가 그 시민들에게 보장하는 삶의 질이 이처럼이나 "지.속.적.으.로." 상승할 수 있음을 확신하고, 도시의 장래에 대해 (깨어 있는 시민들의 참여를 전제로 하여) 이만큼이나 낙관적인 미래를 떠올리는 것입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지나친 기술 의존형 사고라는 비판도 가능합니다.

조시 보크 기자가 쓴 <환경 도시로 변모하려는 시카고>는 아마 이 책에서 가장 유머러스하게 쓰여졌으면서도, 환경 보존과 경제적 번영을 동시 달성하려는 동시대 (타)도시 거주자의 관심을 한몸에 모을 만한, 유익하고 재미있는 내용이 가장 많이 담긴 아티클이겠습니다. 시카고 하면 "아웃핏"으로 유명한 알 카포네 같은 무법자 깡패, 월드시리즈 승부 조작 사건, 업톤 싱클레어의 사회 고발 소설 등이 대번에 연상되는데, 이 도시 주민들도 그 점은 다 의식하는 듯합니다(그래서 더 잘하려 든다는 거죠).

리처드 데일리 시장, 그리고 아직 새파랗게 젊은 환경 담당 총괄 집행역 사두 존스턴은, 과도하게 탄소 에너지를 소비하게 설계된 노후 빌딩들을 모조리 때려 부수고, 이 잔해를 저렴한 에너지를 뽑아 내는 시설로 재활용할 야심찬 계획까지 마련한 후 이를 실천에 옮기는 중인 "무서운 공무원"들입니다. 타산적이고 얌체 같은 시카고 시민들을 동참시키려면, "이 프로젝트는 돈이 됨"을 충분히 납득시켜야 하는데, 유능한 데일리 시장은 현재까지 성공하고 있습니다. 사실 시카고가 어디입니까. 카포네만 나온 게 아니라, 힐러리 클린턴, 오바마 같은 스타 진보 정치인들도 대거 배출한 지역 아닙니까.

환경 보존이 중요한 만큼, 지능형 전력망을 치밀하고도 기발하게 설계하여, 같은 비용으로 종래의 몇 배에 이르는 산출을 이뤄내는, 생산 구조 자체의 혁신도 무척 중요합니다. 결코 혁신이란, 약탈적 자본의 탐욕만을 만족시키려는 사악한 구호나 독촉 기제가 아닙니다.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는 LEED인증이라 하여, (앞서 언급한 대로) 건물 구조나 기능 자체를 친환경 포맷으로 바꾸려 듭니다. 초고층 건물 자체가 필요악이라든가 환경의 적이 아니라, 처음부터 환경의 친구로 설계한다는 생각을 예전에는 왜 못했을까요. p148에서는 폐수로부터 얻는 청정 에너지를 설명합니다. 폐수라 하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지는데, 이로부터 에너지를, 그것도 청정 프로세스로 뽑아낸다니 실로 놀라운 발상과 기술이 아닙니까.

터무니없는 발상인 듯만 해도, 세상은 결국 이런 "미친 도전자, 그러나 착한 시민"들이 모이고 모여 더 나은 곳으로 바뀌늰 겁니다. 저는 책을 마치고서 다시 p35로 돌아가서, 일견 바보스럽고 터무니없어도 보이는 "의견들"을 다시 읽습니다. "불특정 선의의 참여"야말로, 우리 인류가 현재의 번영과 행복을 도시 속에서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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