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네 편이야 - 세상을 바꾸는 이들과 함께해온 심상정 이야기
심상정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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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는 언제나 진보정치의 아이콘으로 우리 대중에게 인식되어 온 분입니다. 특히 대표님은 소탈하고 가식 없고 진정성 있는 인품과 매너로 우리에게 깊은 공감을 끌어내었으며, (아마도 이념과 지향과 인격이 일체가 된 기반에서 가능했을) 시원한 언변(언변을 위한 언변이 아니라)과 토론 솜씨로도 많은 이들의 경탄을 자아냈습니다. 능력도 있고 인간적 매력도 같이 갖춘 정치인, 그러면서도 언제나 내 간절한 아픔도 함께 나눠 줄 것 같은 정치인은 극히 보기 어려운데, 바로 이런 이유에서 심 전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소수 정책정당 후보 초유의 높은 득표율을 올린 게 아닐까 다들 분석하기도 합니다.

가난한 시골 동네에서 자라나 타고난 총명함 하나만 믿고 서울로 올라와서 명지여고를 다니던 그녀는, 작은 키에 수줍은 성격을 지닌 평범한 여학생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그녀였지만, 상식과 통념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담임 선생님이 훈육, 지도할 때에는 단호히 일어나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참으로 당찬 학생이었습니다.

"제가 잘못했으니 제게만 벌을 주셔야죠, 왜 반 전체를 볼모로 잡으십니까?"

물론 일개 여고생일 뿐이고 당시에는 아직 전교조 조직도, 사회과학 서적의 너른 보급도 안 이뤄졌을 시절이니 어떤 분명한 의식이 있어서 한 행동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건 그저 그녀가 타고난 기질, 정의감의 발로였을 뿐이죠. 또 이런 꾸밈 없고 무슨 남보란 듯한 쇼맨십이 아닌 스타일이, 많은 이들로 하여금 그를 따르게 하는 진짜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저항도 가식화, 상품화된 세상이 아닙니까.

소녀 심상정은 대학에 진학하여 처음으로 전태일을 만나게 됩니다. 물론 그녀는 전태일과 세대 자체가 다르며, 그 사건이 일어졌을 당시 겨우 초등학생 청도였겠으므로 in person으로 조우할 수는 없죠. 대학에 들어간 후 엄청나게 많은 사회과학 고전을 섭렵한 그녀는, 토론과 심포지엄에서 감히 대항할 수 없는 실력을 갖추게 됩니다. "전태일을 만났다" 함은, (나중에 저자 진짜 명의가 밝혀진) <전태일 평전>을 읽고, 한국에도 이런 노동 운동의 선구자가 있었음을 알게 된 후, (과연 그녀답게) 봉제 공장에 직접 취업하여 진짜 노동자로서의 삶을 시작한 계기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전태일은 그렇게 외치면서 죽어갔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그가 요구했던 건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 "모두가 결핍과 가난에서 해방된 지상 천국" 같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법이라고 정해 놓은 최소한의 약속이나 지켜지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 정도였던 거죠. 잠시 앞으로 돌아가, 고교 시절 담임 선생님께 정당한 항변을 하며 비합리적인 처사에 맞선 것도, 어쩌면 "전태일을 만나기 전"부터 이미 그에게 태생적으로 공감했던 그녀였기에 가능한 에피소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튼 이런 현장에의 투신이 있기 전까지는, 심상정은 모교에서 가장 멋을 부린 패션을 걸치며, 그 나름으로는 가장 뽀얀 얼굴빛을 자랑하며 캠퍼스를 누빈 여학생이었다고 스스로를 회고합니다. "괜찮고 똑똑해 보이고 멋있는 남학생들을 쫓아가면 대부분 운동권이었어요." 이때 그는 "대학문화연구회"에 가입하는데, 이 중에는 이후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유죄를 선고한 (학생 시절의) 김문석 판사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 서울대 법대 교수를 지낸 한인섭 박사님도 그 멤버였다고 하는군요.

그녀의 롤모델이 된 이는 칠레의 바첼레트 같은 정치인입니다. 2016년 대선에서 그녀는 "여성 대통령 후보"라는 타이틀에 대해 꽤 부담도 느꼈는데, 어떤 정치인이 진정 유권자 총체를 대변할 자격이 있으려면, 그 정치인이 다수 민중의 고통을 해소하는 데 앞장선다는 확신이 모두에게 공유되어야 하고, 이 결과로 "노인들도, 남성들도(아마 바첼레트나 심 전 대푠에게나 지지율 취약 계층일)" 그녀를 지지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1984~85년에는 구로공단은 물론, 대구 시내에서도 택시 기사들의 파업이 있었다는군요. 이걸 두고 심 전 대표(뿐 아니라 대부분의 학자, 전문가)는 1946년 미군정 당시 철도 총파업으로 개시된 노동 항쟁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는데, 그 엄혹하던 시절 이런 기층 노동차층에서 과감한 움직임이 태동할 수 있었던 건 그 상당 부분이 심 전 대표 같은, 젊은 시절부터 현장의 노동자들과 공감하며 헌신했던 이들의 노력 덕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이 무렵 그는 이승배 변호사, 즉 현재의 배우자분을 만나게 됩니다. 처음 데이트를 한 곳은 압구정동 아파트 근처였는데, 여느 청춘 남녀와 다를 바 없이, 그들의 만남과 연애도 참 달콤한 시간이었다는 회고군요. 이 무렵 노동계나 정보기관에선 "단문심"이 유명했는데, 단병호 - 문성현- 심상정 등의 요주의인물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심 전 대표가 워낙 유명한 거물이었기에, 정보기관에서도 심-이 커플의 밀회 장소마다 일일이 추적하여 사진을 찍고 동태를 파악하는 등 오늘날의 시선으로는 참 어이없는 일이 많이 있었나 봅니다.

p113에는 젊은 시절 아들 이우균씨를 낳고 모자가 함께 찍은 사진이 실렸습니다. 이 책은 심 전 대표의 인생 주요 국면을 담은 컬러 사진이 여럿 나와서, 개인사는 물론 한국 현대사의 중요 자료집으로도 의의가 클 듯합니다. p151에는 1996년 당시 국제 행사를 준비하던 심 전 대표의 모습이 나오는데, 이때만 해도 참 젊은 모습이었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군요. 이해 하반기에는 국회에서 노동법 관련 날치기 통과가 이뤄지고, 이 사건을 계기로 김영삼 정부의 기반이 크게 흔들립니다. 바로 1년 뒤에는 외환위기가 터져 나라가 망하기 직전까지 갔죠.

크레인 농성으로 유명한 김진숙씨, 고발 보도로 유명한 MBC 이용마 기자 등과의 인연도 소개되고, 우리가 잘 아는 노회찬 씨 같은 이(pp. 222~237에는 같이 진행했던 단식 투쟁 관련 회고가, 관련 사진과 함께 실렸습니다), 혹은 동갑인 유시민씨 같은 이들과의 인연도 소개됩니다. 이 외에도 민노당 안에서 벌어졌던 자주파 - 평등파 간의 내부 알력에 대해 심 전 대표의 소회를 털어놓는 대목도 읽을 만합니다.

심 전 대표의 오늘을 만든 건 이런 걸출한 인물들과의 깊은 유대와 소통도 큰 몫을 했던 것 같습니다. 책에는 자신의 투쟁 과정을 소개할 뿐 아니라, 특히 젊은 독자들에게 당부하는 정책적 제언도 큰 비중을 두어 개진합니다.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메갈리아 관련 곤란한 입장 표명도 한 말씀 있으니 관심 있는 독자들이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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