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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한국경제 대전망
이근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1월
평점 :
연말이면 언제나 지난 한 해의 실적과 성과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함께, 밝아오는 한 해에 대한 "전망"이 필요합니다. 전망서, 예측서도 참 많이 발간되는 요즘인데, 이 책은 한국에서 왕성한 활동상을 보이는 권위자들이 필진으로 대거 참여하여, 종합적이고 큰 스케일에서 바라본 "진짜 전망, 대 전망"을 담았다는 점이 특기할 만합니다. 서두에 보면 "30인의 필자를 대표하여" 다섯 분의 석학이 책을 여는 말씀을 남기셨는데, 이 다섯 분만으로도 묵직한 예측서 한 권이 나올 만한(아니, 그 중 한 분만으로도) 비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책을 여는 독자가 기대를 갖기에 충분하고, 설레기까지도 합니다.
서문에서 정확히 요약되듯(잘된 책은 목차뿐 아니라 서문에서, 그 책이 자체 나아갈 바를 독자에게 분명히 선포하고 넘어갑니다. 자신이 있으니까요), 책은 세 가지 키워드, 주제 방침 위에서 진행됩니다. 첫째 한국은 일본처럼 장기 침체의 트랩에 빠져들고 마는가(반면교사인가 혹은 깊이 패인 전철에의 편입 답보인가), 둘째 보다 단기적인 전망으로서, 과연 소득 주도- 혁신 주도형 성장으로 이 함정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을지의 아젠다 집중 점검, 셋째로 (저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이 둘을 연결한 고리 역할로) 중국 기업들의 상대적 감속 운행 와중에서, "선진국의 역습, 복수 차원에서 전개되는" 4차 산업혁명 트렌드의 전망은 어떠한지 등을, 큰 뼈대 위에서 짚습니다.
특히 우리 독자들이 주목할 것은, 예의 4차 산업 혁명을 두고, "지금까지(라고 하면 대개 21세기 초 10~13년 간을 지칭하겠습니다)는 신흥국이 세계 경제 흐름을 주도했으나, 이제부터는 게임의 판을 새로 짜기 위해 선진국이 근본 혁신을 이끄는 추세"라며 선명한 성격 규정을 하는 점이 돋보입니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게임의 룰 그 전면적 전복이 후발자들에게 기회의 창으로 새로 열릴지", 반대로 선두 주자들이 기존의 우세를 굳히는 회심의 한 수가 될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고도 하십니다(구체적 워딩은 독자인 제 해석과 기준으로 조금 바꿨습니다).
사실 경제학의 오랜 화두는, (이 책에서는 슘페터를 거론하십니다만) 거셴크론 식의 "아무 전례에도 얽매이지 않고 장점만 배워 가며 상큼하게 출발하는 후발자의 이익"이 현실에서 어느 정도의 의의를 갖는지의 확인이 그 중 하나였습니다. 이 대표적인 예라면 19세기의 신흥 공업국 프로이센(이후 독일 제국), 20세기의 미국과 러시아, 이후 등장한 일본이나 우리 한국 등이 좋은 모범이죠. 반면, 후발자의 이익은커녕 맨날 우는 소리, 피해의식에 젖어 과거의 가난에서 벗어날 생각을 못하는 후진국의 수효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4차 산업 혁명의 대(對)결전은 과연 누구의 이론이 옳은지, 가장 치열한 랩(lab) 환경에서 극명하게 그 당부를 가려 줄 테스트베드라는 의의가 하나 더 마련되는 셈입니다(그러나 학자, 평론가들에게 그렇다는 거고,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목숨이 달린 레이스죠).
제가 몇 달 전 리뷰한 어느 책에서 한 전문가께선 "다수의 우려와는 달리 한국은 결코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며 아주 확언을 하고도 있었습니다. 그게 뭐 국뽕에 쩔어서 아무나 다 하는 소리 어깨 너머로 주워들어 흉내내는 식의, 근거 없고 막연한 민족주의 찬가를 부르는 게 아니라, 산업 구조와 일선 경영인들의 기질, 근성 등을 들어서 그런 결론을 낸 건데요. 여기서는 그런 직관적 담론(이런 것도 물론 필요합니다. 전문가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촉", 툭툭 던지는 예언 같은 한 마디는 결코 무시 못합니다. 다만 서로 쓰이는 국면이 다를 뿐)이 아니라, 재정 구조와 제도 도입의 배경이 사뭇 다르다는 실증의 근거를 먼저 들고 있습니다. 즉, 같은 고령화 트레일을 밟아도 복지 지출이나 사회 안전망 재원이 민간에 의지하느냐, 그렇지 않고 공적 자금(지겹게 우리들도 특정 시기에 들었죠)에 크게 기대느냐에 따라 일본과 한국이 크게 다르다는 겁니다. 젊은 직장인들이 너무 많이 떼어간다며 건보, 국민연금에 대해 죽을 소리를 하는 것만 봐도 누가 어느 상황인지 바로 짐작되죠,. 여튼 민간이 이렇게 큰 부담을 지는 편이기 때문에 일본 같은 곤경은 비껴갈 수도 있다는 겁니다(근데 왜 별로 반갑지가 않을까요?ㅋ).
주택 공급 역시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양호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사실 최근의 일부 부동산 버블은 특정 지역에만 한정하여 일어나는 현상일 뿐, 국민 전체를 위기로 몰고가는(예컨대 1990년초 전세 대란) 국면은 아니라는 게 차이입니다. 물론 전세난을 겪는 당사자 가구에게는 너무도 큰 시련이므로, 정책 당국은 우리 당대의 눈물이 더 이상 맺히지 않게, 아직은 여유가 있는 편인 재정을 활용해 시장에도 개입하고 적극적 액션을 취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청년 실업 문제도 사실은 일본이 훨씬 심각한 양상인데(어째 이렇게만 보면 모든 면에서 우리가 일본보다 희망적이군요?ㅋ), 일본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유발하는 미스매치의 해소에 보다 초점을 두고, 우리는 직접 고용 창출(예컨대 공무원 선발 인원 증가) 같은 방향에 주력을 두나, 책에서는 산업 구조 자체가 변혁을 겪는 국면에서 그리 바람직하지는 못한 선택임을 지적도 합니다. 직업 훈련이나 고용 인센티브 제공은 한국, 일본 정부(지자체 포함) 모두가 역점을 두고 시행하는 대안들입니다.
중국 산업 동향 분석이라면 국내 전문가 중에서 이근 교수님의 날카로운 안목이 또 빠질 수 없습니다. 일단 필자께선 최근 부쩍 두드러진 중국 게임업계의 활력을 짚고 계십니다. 현재는 '한국 개발- 중국 퍼블리싱"이란 패턴이 유지가 되기에 우리가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있지만, 흥미롭게도 "쿵푸 팬더(혹시 저자께선 이 게임을 해 보시거나 애들 하는 걸 구경은 해 보셨을까요? ㅎ)" 같은 제법 두드러진 주자가 어느새 국내에도 들어와 제법 선전하는 걸 보면 미래를 마냥 낙관할 건 또 아닙니다. 증강현실, 가상현실 등 기술 우위를 앞으로 어떻게, 얼마나 유지하느냐에 미래가 달렸다고 하겠습니다.
이어서 저자는 에너지 산업, 공유경제, 바이오 시뮬레이션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서도 심층적인, 그리고 치밀한 자료 분석이 기반된 의견을 내어 놓습니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도표와 데이터가 정확히, 또 곳곳에서 풍성하게 원용된다는 점입니다) 중국은 광대한 영역과 그에 부수한 풍부한 자원을 갖췄다고 밖에서 지레들 짐작합니다만, 내부에서 파악하는 사정은 그리 낙관적이진 않습니다. 일단 인구가 너무 많고, 거주 가능한 지역은 제한되었을 뿐 아니라, 밀집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탄소 연료를 소비해 댈 때 그 해악이란 상상을 초월합니다. (우리가 그 폐해를 직접 겪고도 있죠) 이런 중국이므로, 대체 에너지 개발, 보건 이슈, 자원을 가능한 한 적게 소비하는 공유 경제 등에 대해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는 게 당연합니다. 고령화 역시 중국이 곧 당면하게 될 문제이므로. 스마트케어 섹터의 활력과 동인이 남다르리라는 점 누구나 예측할 수 있습니다.
유통 혁신 하면 역시 알리바바로 대표되는 중국이나, 쿠팡, 위메프, 티몬 등이 각축을 벌이는 한국이 그 첨단 추세에서 별반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들 영역에서의 혁신은 곧 전자상거래 전반으로 그 성과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또 인공지능이나 핀테크, ICT 등 인접 영역으로 파급이 매우 빠르다는 이유에서, 거시경제 차원에서 결코 주목을 늦출 수 없는 이슈이기도 하죠.
2장에서는 아베노믹스의 성과 검증, 브렉시트의 경과 등 굵직한 문제를 주로 짚고 넘어갑니다. 저 1장 서두에서도 이미 제기된 문제입니다만 일본은 가뜩이나 재정적자가 심각합니다. 한데 "돈을 찍어내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호언은, 물론 부자의 부담, 희생으로 전 경제 구조에 유동성을 증가시키고 고루 피가 돌게 하겠다는 의도나 의욕은 좋으나, 과연 언제까지 건강성을 유지하며 지속 가능한 정책인지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죠. 이 2장에서는 "추격지수"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글로벌 거시 경제 분석이 이뤄지는데, 한국, 중국과, 미, 일 등 기존 경제 선진국의 그것이 어떤 양상적 차이를 드러내는지를 두고 독자들이 얻는 시사점이 많겠습니다.
세계 경제 전망을 하는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생존을 모색할지 답을 얻어내기 위해서입니다. "사회적 경제"는 과연 얼마나 실천적 의의를 담을 모델인가? 철강의 성장은 어느 시점까지 우리 경제를 추동할까? 한류 열풍도 과연 지속적인 성장 동력으로 간주할 수 있을까? 특히 IT 인력 공급 과잉에 대해 공적섹터에의 인위적 배치가 과연 답이 될 수 있을까? 재벌 개혁은 성장과 분배의 큰 그림에 어느 정도나 실용적 시사점을 던져 주는가? 나아가, 4차 산업 혁명에 대한 대응과 정책이 이 모든 고민과 건설적 합일을 이루는 방향으로 진행되고는 있는가? 필자들의 제언이 꽤 구체적이므로, 정책 결정자 입장에서는 물론, 우리 일반 독자들도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소스로 삼고 아이템을 생산할 기반이 될 논의가 많이 실린 편입니다. 웬만한 누구에게도 도움과 시사점이 제공되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