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라는 은하에서 - 우리 시대 예술가들과의 대화
김나희 / 교유서가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대기 오염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요즘, 정말로 별이 빛나는(starry) 하늘 구경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만, 나안(裸眼)으로 아무리 은하를 만나기 어렵다 해도 은하의 본체, 본질이, 헤아릴 수 없이 먼 거리에서 내재의 에너지로 빛나는 "별들"이라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압니다. 또, "예술이라는 은하"에 반짝이는 별들이라면 물론 예술가들이겠습니다.

물욕과 이기심, 터무니없는 거짓과 위선으로 찌든 세상을, 말 그대로 은하의 별처럼 환히 비춰 주는 이들은 바로 이들입니다. 예술인들은 물론 흔한 상업적 호객 멘트가 아닌 "작품"으로 우리와 소통합니다만, 우리들의 눈이 어두워 이 소중한 작품을 통해서조차 예술인들의 참 뜻을 곡해, 간과하기 쉽습니다. 예술인들 역시 말을 삼가고 낯을 가리는 이들이 대부분이기에, 일부러 말을 고르고 골라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이미 작품으로 할 말을 다 했기에) 우리에게 "말"로 말을 걸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과의 대화, 인터뷰는, 예술인들의 생리와 속마음을 잘 이해하는 예술인이면서, 동시에 그들을 메타적으로 분석하고 거리를 두어 관찰할 수도 있는 인터뷰어의 능력이 성공 관건이라 하겠습니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었습니다. 1부는 "고통과 고뇌 사이"란 제목인데, 음악인이 아닌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감독이라든가, 신경숙 작가와의 인터뷰도 실렸습니다. 국외인이면서 비 음악인으로는 미셸 슈나이더(작가), 알랭 바디우(철학자) 등과의 대담이 있는데, 이처럼 인터뷰이의 스펙트럼이 다양한 건 <객석>, <씨네 21>, <중앙 SUNDAY>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된 글들을 한 책에 모은 연유가 있다고 있다고 저자 서문에서 밝혀 줍니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에 대해, 특히 이 영화의 성공이 <골드베르크 변주곡> 등을 국내에서 더욱 자주 들리게 한 원인도 되었다고들 하죠. 인터뷰어 김나희님도 이 점에 대해 특별히 짚고 넘어가는데, 여기 대해 봉 감독은 "....나는 영화계에 몸담고 있지만 진짜 위대한 예술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라는, 다소 충격적인 진술을 합니다(이런 당혹스러울 만큼 솔직한 대답을 이끌어내는 것도 인터뷰어의 능력이라고 봐야겠죠). 이어 그는, "나는 그러나 음악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하며, 앞서 (영화)음악감독 벨트라미(마르코 벨트라미. <울버린>, TV 시리즈 <V> 등의 배경음악을 맡았죠)의 도움을 운 좋게 입었다고 한 이유가 뭔지 독자들에게 잘 밝혀 주는군요.

박찬욱 감독과의 인터뷰는 비교적 최근에 이뤄졌나 봅니다. "블랙리스트" 관련 질문이 오가는 걸 보니 말입니다(이와는 대조적으로, 민감한 질문이 없는 걸로 봐서 이 책 중 신 작가와의 인터뷰는 꽤 오래 전의 분량인 듯합니다). 인터뷰는 역시 꽤나 흥미로운데, 박 감독은 본인을 "완벽주의자와는 좀 다른, 철저한 화면과 서사에 노력한 연출자"로 규정하며("철저한"에 방점이 놓입니다. 인터뷰어의 표현대로, 한국 영화에 새로운 장을 열어젖힌 그이니만치 "he on himself"가 어떤 워딩으로 채워지는지는 언제나 궁금해지죠), 이어 김나희 인터뷰어는 그의 개성과 성취를 두고 네덜란드의 지휘자 베르나르드 하이팅크에 비유합니다. 스케일이 크면서도 깐깐한 원칙 속에서 벗어나지 않는 스타일이 과연 닮기도 했습니다.

알랭 바디우는 이제 저만큼이나 늙은 분이지만, 프랑스 지성사, 나아가 역사 자체에 한 획을 그은 1968년 5월 혁명의 주역이었다고 자신을 자랑스럽게 소개할 정도로, 어떤 정체성과 소속감을 확실히하는 분입니다. 이 인터뷰는 2012년 한국 대선을 앞두고 이뤄졌는지, 그 사정을 감안하는 질문과 답변이 눈에 띄어 흥미롭습니다(단, 분명히 밝혀져 있지는 않으나 인터뷰어의 사전 프레이밍이 어느 정도는 개입한 듯도 보이네요. 이 대담은 유독 2012.6 이라고 일자가 명기되어 있습니다). "민주주의란, 어쩌면 불안정한 시스템일지도 모른다는 뜻인가?"라는 인터뷰어의 다소 절박한 질문에, 그는 "어차피 프랑스도 45%는 좌파, 45%는 우파인 구도가 고착화되었으며, 나머지 중도가 역사의 향방을 가른다"는 대답을 내어놓습니다. 진보와 긍정은 양립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진보주의자로서 나는 미래를 긍정하나, 철학자로서 지속적인 긍정주의자가 되기는 어렵다"라는 명답을 하네요.

19세기 이전 서양 고전음악을 즐기는 분들은 작곡가의 국적을 분명 염두에 둡니다. 그러나 예컨대 자크 오펜바흐에 대해서는 좀 태도가 애매해지기도 하겠지만 말입니다. 파스칼 뒤사팽에 대해, 인터뷰어는 "당신은 '프랑스' 작곡가인가?"라고 분명한 의도를 띤 질문을 던집니다. 이 질문에 그는, "나는 프랑스적인 작곡가가 아니라고 보며, 정명훈(물론, 이분과의 인터뷰도 따로 이 책에 수록되었습니다)이 한국인이지만 프랑스 음악에 대한 직관이 남다른 것이나 마찬가지로, 음악의 형이상학적 추상성에 따라 언제나 넘어야 하는 다른 고비가 있는 게 음악인의 길"이라고 명쾌히 답합니다. 우리가 잘 알듯 그는 사진집도 자주 내는 편인데, 어렸을 때는 사진작가가 꿈이었다고 하는군요. 시간 예술과 공간 예술의 접점이 한 인물 안에서 관측된다는 사실로 꽤 흥미를 유발하는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의학과 음악은 서로 얼마나 통한 것 같나요? 픽션 속의 캐릭터나 실제 의료인들을 보면, 창작이나 생산, 연주까지는 아니라도 감상에 꽤 깊은 소양을 지닌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특히 음악의 경우 감상 소양(이 역시 훌륭한 자질입니다만)과 창작 능력은 차원을 달리하는 벽이 그 사이에 가로놓여져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필립 헤레베헤는 자신의 생, 커리어에 그 두 영역의 넘나듦을 기록한, 좀 특이한 경우라고도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이분 이야기를 하면, 고음악(바로크 등) 복고 열풍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분이 규정하는 고음악의 정수, 그리고 자신의 예술 세계 핵심 키워드가 "자유, 완벽, 순수"입니다. 어쩌면 음악의 진짜 정수도, 흐릿하게 가려진 시야 때문에 온전한 실체를 관측 못하는 우리 대중들의 불찰이 아니라면, 이미 17세기 고음악의 시대에 나올 게 다 나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필립 헤레베헤는 그 점이 안타까워 자꾸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거죠.

인터뷰어는 마렉 야놉스키와 롤랑 바르트, 그리고 바그너를 한 맥락에서 이해하는 듯합니다. 이 서평 앞부분에서 봉 감독이 "음악의 절대 우위"를 말했는데, 아마 서로 안면이 없을 듯한 지휘자 야놉스키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하네요(물론 그야 본격 음악인이니 당연한 소린지도 모르겠지만). "... 요즘 음악인들은 음악이 아니라 연극적 요소를 더 앞에 둔다.... 무대 장치, 새로워야 한다는 아방가르드적 강박이 음악 자체보다 우선이었다.... 파격, 아방가르드, 미니멀 등은 진보가 아니라 오히려 오페라의 몰락이라고 나는 본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베토벤의 <피델리오> 같은, 오페라라기보다 교향곡에 가까운(확실히 그렇죠?) 작품을 더 선호합니다. 그러나 슈트라우스의 <살로메> 등은 (연극적 요소가 강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레퍼토리에는 절대 오르는 일이 없을 것이라 단언합니다. 이 책에 실린 중 가장 보수적이고 단호한 언사가 채워진 파트였는데, 그의 스타일을 잘 아는 팬들이라면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이후부터는 연주자들 인터뷰가 많이 이어지는데 피아니스트 피에르로랑 에마르도 그 중 하나입니다. 바로 앞 야놉스키처럼 이분도 대단히 깐깐한 원칙주의자죠. "어렸을 때 신동으로 데뷔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억에서 사라져버리는 연주인는 되고 싶지 않았다...." 본인도 신동이었지만, 또 연주인들의 세계는 인생 초창기의 화려하고 극적인 데뷔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저 완벽한 기교에만 치중하는 스타일은 팬들에게 외면당합니다. 세련된 귀에는 "아직도 어려서 배운 정석의 재현에만 기계적으로 집착하는, 성장을 거부하는 신동"의 행보가 일일이 구별되어 들리거든요. 어려서는 "어쩜, 어쩜 저렇게 하나도 안 틀리면서, 제것인지 뭔지 모를 감정을 저리도 잘 표현하나!" 같은 감탄을 받습니다. 어린 연주자, 특히 신동에게는 다 너그러우니 말입니다. 신동도 기계적 정확성만으로 승부하는 건 아닙니다. 팬들이 그런 걸 원하는 걸 알기에, 어른들의 감정 표현을 슬쩍슬쩍 센스 있게, 결정적인 대목마다 집어 넣는다고요. 그러면 듣는 이들이 거의 미치려고 하죠.

하지만 나이 든 연주자에게는, 아무리 신동 시절의 각별한 성취와 기억이 있더라도, 이런 잔재주가 더 이상 안 통합니다. "당신은 이제 어른이거든요?" 그런데 어려서 신동으로 데뷔하기도 힘들지만, 커서 어느 앞선 연주자도 표현 못 한 스타일을 개발(속물적인 어휘라서 죄송)해서 나만의 것으로 정착시켜 이를 갖고 대중과 팬들과 소통하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피카소의 예를 들면 쉽죠. 그는 이미 8세 때에 라파엘로처럼 그릴 수 있었지만(이런 신동이 한 세기에 한 명이나 나오겠습니까?), 이후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졌기에 비로소 세계적인 거장이 되었습니다. "8세 때의 재주"만으로는 당대에야 화제가 되었겠으나, 백 년이 지난 지금은 아무도 기억 못할, 한때의 통속적 이슈에 불과했을 겁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자벨레 파우스트처럼 레퍼토리에 제약을 두지 않는 만능형 연주자도 좋아합니다. 진짜 천재는 이런 타입이 아니겠냐며 멀이죠. "단단하고 결집된 안쪽 소리"에 대해 그녀는, "악곡의 구조나 폴리포니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만 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게 바로 싸구려 떠돌이 악사와 예술가가 서로 길을 달리하는 지점입니다. 얕은 재능을 뽐내고 다니는 날품팔이(이보다 더 낮은 품계라면, 재능도 없으면서 남의 것을 베껴 사기치고 다니는 엉터리입니다)와, 후대에 길이 남을 해석과 재현의 전형을 완성한 예술가는 이래서 서로 다른 거죠.

"청중은 겨우 수십분 동안 우리에게 귀기울이며... (중략) 그 시간은 하나의 점과도 같은 찰나이다..... (중략) 한 점이 모여서 직선이 되고, 어찌 보면 직선에서 점이 차지하는 부분이 대단히 미미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 예술가의 인생 역시 연주와 창작 외에 다른 부분이 더 결정적일 지도 모른다(요 대목은 독자로서 저의 해석에 지나지 않습니다)고 그녀는 말합니다. "... 그래서, 다음 생에는 다른 일을 해 보고도 싶군요..." 솔직한 토로입니다. 예술가가 아닌 평범한 일상에 매몰되어 사는 우리들은, 반대로 강렬한 점들로만 채워진 다른 긴 직선의 삶을 내생에는 보낼 수도 있었으면 하는 꿈을 꾸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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