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혼자 살걸 그랬어
이수경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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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모르는 사이였던 남녀가 만나 깊은 정과 공감을 나누고 가정을 꾸리며 그 결실로 슬하에 자녀까지 두는 부부의 결합이야말로,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나 길지 않은 생을 이어가는 큰 보람과 행복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런 결혼이 배우자 쌍방에게 큰 상처만을 남기고, 차라리 만남과 결합이 애초에 아니 이뤄지느니만 못했다는 후회만 쌓인다면, 그건 당사자뿐 아니라 곁에서 지켜보는 제3자의 마음까지도 안타깝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파탄에 이르게 된 혼인을 놓고, 어긋난 감정을 억지로 누르고 왜곡해 가며 남 보기에 윤리적이고 체면 서는 쇼를 벌이게 강요한다면, 마치 사과할 마음이 없는 자에게 억지로 사죄를 시키는 것만큼이나 인간의 양심 본연의 영역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자신의 마음이 치유될 뿐 아니라 자신을 아프게 한 상대방에 대한 묵은 감정까지 서서히 아물며, 상대방에 대한 자연스러운 용서가 이뤄질 뿐 아니라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이 편해집니다. 무작정 솔직해지는 게 상수는 아니라 해도, 덮어지지도 가려지지도 않는 걸 애써 덮는 데 쓸데없는 수고를 아끼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가 꽤 넉넉히 찾아질 수 있습니다.

스스로도 밝히듯 기업인으로서 성공한 인생이고, 외관상 아무 문제 없는 가정을 일군 남편인 저자가, 어떻게 해서 "가정행복코치"라는 직함으로 더 유명세를 타시고, 숱한 "문제 가정"들의 위기를 조언하며 위기에 처한 부부들에게 "구원자"라는 칭송까지 받을 수 있었을까요? 저는 이처럼 "실천형(실전형) 이슈"에 대해 자타가 공인하는 진정성 있는 해결사로 맹활약하시는 분들의 경우, 이를테면 여성 문제의 경우 본인이 이혼녀라든가, 경단녀로서 모진 고생 끝에 여성 CEO로 거듭났다거나, 여튼 우여곡절과 거듭된 실패가 사람을 더 강하게 키운 사례의 주인공이라야 그 문제를 진지하게 다룰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 역시 부분적으로는 타당한 판단일 것입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남 앞에 서서 고민을 들어 주고 유효한 해답을 내놓으려면, 먼저 본인이 위기를 미리미리 잘 관리해서 흠 없는 진로를 걸어 온 분이라야, 남에게 뭐라고 충고와 조언을 베풀 자격도 생기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대중 앞에 자신을 살짝 비껴간 위기와 고비에 대해 진솔한 고백을 털어놓고, 그러한 고백담이 생기기까지 실로 뼈를 깎는 노력과 소통에 힘쓴 어느 남편, 지금까지도 한 여인만을 바라보고 사랑해 온 남편이야말로, 만인 앞에서 "행복 코치"를 자임할 자격이 생긴다 할 것입니다.

"키도 크고 예쁜 아내에 첫눈에 반했고, 십여 년 동안 큰 위기 없이 달달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저는 아내를 사랑한다고 믿었지만, 아니었습니다. 결혼만 하고 나면 무작정 다 잘 풀릴 줄 알았지만, 아니었습니다. 결혼에 관해서 저는 어린아이나 다름없었으며, 아내를 사랑한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제 자신을 사랑했을 뿐이었습니다.(p20, p93)"

의지는 서서히 약해질 때 호되게 나무라면 다시 제 자리를 찾아갑니다. 더 체질이 강해지는 수도 있죠. 하지만 감정은 절대 그리 다스리면 안 됩니다. 일단 내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그 실상을 알고 내 안의 다른 아이를 다른 어른이 나서서 도닥이듯 분명하고도 정직한 진단을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하물며, 그것이 타인을 향한, 혹은 타인과 엮인 감정의 한 단락이라면, 더군다나 얼렁뚱땅 임시방편 가면과 가식과 땜질로 지나쳐선 안 됩니다. 이수경 저자님의 "성공 비결"은, 문제가 생기기 시작할 때 정확히 그 국면을 똑바로 보고, "이건 지금 분명히 잘못되어 가는 중"임을 서로(부부니까요) 인정한 후, 함께 부둥켜안고 눈물도 지어가면서 정직히 해법을 찾는 데에 있었습니다. 부부 간의 관계야말로, 초기에 잘만 다스리면 나중에 가래를 막을 일을 미리 호미로 잘 건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시인 롱펠로의 말을 인용합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은 못이 되든 망치가 되든 둘 중 하나이다." 알쏭달쏭한 이 말을 두고, 저자는 명쾌하게 "내가 주도적으로 살면 내 삶의 주인이 되지만, 남의 손에 맡기면 피동적으로 만들어지는 삶을 살게 마련이다"라고 해석합니다. 여기서 다시 저자는 놀라운 결론을 이끄는데, 내가 지금 불행한 게 배우자 탓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이미 행/불행의 열쇠를 (배우자라는 그 사람에게) 넘겨 버렸으므로, 앞으로도 불행하고 영원히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 다음이 더 탁견인데, 현재 "난 당신 덕분에 너무 행복해."라고 말하는 이 역시, 배우자에게 자신의 행복 키를 넘긴 건 마찬가지이므로, 그 행복이란 곧 불행으로 바뀔 위험이 다분하다고 하시네요.

부부가 아무리 일심동체라고 해도, 인격과 감정은 엄연히 자기 영역이 따로 있으며, 존중되어야 할 내밀한 부분도 여전히 남아있게 마련입니다. 이걸 억지로 무시하고 과도하게 조기 폭주하면, 반드시 뒤에 탈이 납니다. 내 감정 내 행복이 내 것이 아니라 당신 것이라는 무리수는, 그게 상대를 향한 헌신적인 사랑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터무니없이 높아진 일방적인 기대치를 뜻합니다. 상대는 준비도 안 되었는데, 나 혼자서 열심히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김칫국을 마신다면, 그만큼 지독한 이기주의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게 사랑이라는 달달한 포장까지 뒤집어 쓰고 있으니 더 큰 문제입니다. 나는 지금 열심히 잘하려는데 왜 너는 몰라주느냐는 반응은, 억울함의 표시가 아니라 덜된 투정, 미리부터 부지런을 떠는 위선적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랑이 아닌 게 사랑인 척하고 있으니, 나중에 단단히 탈이 날 밖에요.

그래서 어르신들이 결혼 안 한 사람은 애 취급을 하는 겁니다. 부모 노릇은 좀 뒤의 문제고, 사람이 사랑이라는 달콤한 구름 위에서 생판 모르던 타인과 감정을 싹틔우고, 이를 대등한 인격체 간에 수습도 하고 갈등도 겪어 보고 다시 복원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되고 어른도 비로소 된다"는 뜻이죠. 저자는 겸손되이 "나는 어린아이나 다름 없었다"고 하시지만, 가화만사성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닐 겁니다. 사람이 자기 가정을 원만히 가꾸고 배우자와 성숙한 사랑을 일구는 일만큼 위대하고도 어려운 과업은 다시 없을 겁니다. 가정 경영의 달인이야말로 그 어느 CEO보다 유능한 인물입니다. "어른스럽게 상대의 배우자가 못 될 바엔 차라리 혼자 살아라!" 역으로, 결혼은 미숙한 인격이 생에 처음으로 맞는, 달콤하고도 가장 험난한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혼, 절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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