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현대 미술 예술 쫌 하는 어린이 3
세바스티안 치호츠키 지음, 이지원 옮김, 알렉산드라 미지엘린스카 외 그림 / 풀빛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은 "예술 쫌 하는 어린이"입니다만, 정말 어린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현대미술에 대한 확실한 관점이 잡힌다면 그 어린이는 커서 "예술을 쫌 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아주 큰 사람이 될 것만 같습니다. 현대미술뿐 아니라 그 이전의 사조를 대변하는 명작에 대해서도, 선이나 색, 명암과 구도, 소재 배경에 깔린 방대한 인문적 배경에 대해 막히지 않고 설명할 수 있는 "어른, 성인"은 손으로 꼽을 만큼 적습니다. 어린이들이 읽기에 매우 편한 형식, 설명, 디자인이지만, 책 내용이 너무 좋아서 "어른들도 쫌 읽고 교양을 쫌 갖출 수 있는" 멋진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채만식의 단편 중에도 "레디메이드 인생"이란 게 있습니다만, 미국에서 재능을 자랑한 마르셀 뒤샹은 "레디메이즈" 즉 기성품(평범한 공산품)을 갖고 기발하게 활용하여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천재 예술가였습니다. 그의 대표작 "분수"는 그저 평범한 변기 하나로 대 이슈를 유발한 문제작인데요. 아상블라쥬를 아예 새로운 예술 조류로 떠오르게 한 그의 재기 넘치는, 발칙한 행보는 이후 많은 후배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책에는 뒤샹이 여자로 변장한 모습, 체스에 몰두하며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얻은 명예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는 듯 쿨한 태도를 보인 그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일러스트가 여러 컷 담겨 있습니다. 변기 하나라고 해도 그 뒤에 숨은 예술적 동기는 일반인이 쉽게 동감하기가 어려운데, 이런 재미있고 친근하게 그려진 일러스트 덕분에, 뒤샹의 장난기가 어린 독자들에게도 쉽게 다가올 것 같아요.

실도 메이렐레스는 브라질 인들의 민속 설화를 이해하는 이들에게만 보이는, (혹은, 마음이 착한 이들에게만 보이는?) 자그마한(그 크기에 대해서도 관람객들은 아무 정보가 없답니다) 예술품(1969~70)으로 만인의 화제에 올랐던 분입니다. 한 변의 길이가 1cm도 되지 않는 작은 주사위 하나가 전부인데요. 그나마 박물관 바닥까지 엎드려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고 하죠. 제목은 "남십자성"인데, 아무것도 아닌 듯하나 두 조각의 나무가 맞닿아 불꽃을 일으키는 감사한 섭리를 오랜 세월 원주민들이 품어 왔고, 작은 주사위는 그런 신비와 겸허한 마음을 그 조그마한 몸체에 상징한다고 합니다. 전시관은 사방이 그저 햐얗기만 한 벽면인데, 관람객더러는 그 흰 벽면까지를 함께 제시하며 예술가와의 공감을 유도하는 거죠. 이런 설명을 들어도 어른들은 납득이 잘 안 되겠지만, 예술가처럼 마음이 깨끗한 어린이들이라면 오히려 더 잘 소통할 것 같기도 해요.

90페이지에 보면 "UR집"이라는 작품이 나옵니다. 그레고르 슈나이더의 작품인데, 수리인지 새로운 탐색인지 모를 만큼 여기저기를 고치고 이어붙이고 덧대며 그가 열여섯 살 꼬마 때 "지은" 집이라고 합니다. 이 집은 어디가 중심인지, 어디서부터 입구를 삼고 들어가며 전체를 둘러볼 수 있을지 난해한데, 제 생각으로는 에셔의 철학, 미학 세계와도 한 맥이 닿아 있지 않나 여겨지네요. 책에는 그런 설명이 없으나, 독일어 접두사 ur-는 원(原), 바탕 같은 뜻입니다. 집 이전의 어떤 구조물에 대해 그 해체에 가까운 탐색을 함으로써, 집이 인간에게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파악하려 든 거겠죠. 작가가 어린이들과 비슷한 나이 또래에 만든 작품아라 더 호기심이 생길 만합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는 꽤 오래 전부터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지요. 요안나 라이코프스카(p146)가 바르샤바 시내에 만든 "야자수"는 사실 지중해를 바라보는 팔레스타인, 레바논 일대에서나 자라는 식물인데, 에술가의 창의로 꽤 싸늘한 편인 동유럽 중위도에서 만나게 되었네요. 어느 지방이든 고향을 떠나 살아온 이들에게, 고향을 대뜸 떠올리게 하는 풍광을 자신이 현재 사는 장소에 재현시키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다만 이 "야자수"가 독특한 건, 유대인들에게는 "아우슈비츠"라는 끔찍한 아픈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바른 예술은 바른 역사 인식과도 뗄레야 뗄 수 없는 과제이고 영역이기도 합니다.

일종의 업사이클링 정신일까요, 아님 구조의 해체를 통해 감춰진 본질을 찾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일까요? p190의 가브리엘 오로스코는 멀쩡한 시트로엥을 해체시켜, 가운데를 잘라내고는 다시 좌우를 이어 붙였습니다. 저는 작품 자체보다 이 "작품"에 대한 저자님(세바스티안 치호스키)의 설명이 더 재미있었는데요. "마치 다이어트를 한 몇십 kg한 후의 모습 같지만, 너무 모습이 심하게 바뀌어 더 이상은 못 달려요."가 그것입니다! 오로스코는 해변에서 169개의 고래뼈를 모아 "움직이는 매트릭스"를 만들었는데, 이에 대해서도 작가는 " 그 전시된 작품 밑에서 책을 읽기라도 하는 관람객은, 졸면서 서늘한 파도가 머리 위를 넘실대는 꿈을 꿀 거에요."라고 하십니다. 예술가의 창의력을 능가하는, 유쾌하고 신선한 "해석' 아닐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