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간다운 죽음을 꿈꾼다 - 마지막 순간, 놓아 주는 용기
황성젠 지음, 허유영 옮김 / 유노북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사랑하는 이가 내 곁을 떠났을 때입니다. 서양에서 결혼 서약을 할 때 보통 "죽음이 우리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란 어구를 관습처럼 되뇌곤 하죠. 죽음이 아니라 성격 차, 경멸 - 혐오감, 불화 따위가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건 제3자 입장에서 안타깝고 딱하긴 해도, 당사자들 사이에선 가슴을 찢어놓는다 같은 슬픔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해로(偕老)하고 도 여전히 설레는 감정이 살아 있는데 노환, 중병 등으로 상대방이 유명을 달리한다든가 하는 건 참 못 견딜 일입니다. 혹은, 꼭 각별한 효자가 아니라도 해도,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편이 되어 주시고 낳아 주고 길러 주신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것도, 그냥 떨어져 산다거나 장기 출타 같은 사정이 아닌, 앞으로 영영 뵐 수 없는 성격의 이별이라면, 웬만한 사람에겐 굉장한 충격이며, 그 상실의 극복에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내내 꿈에 등장하시며 "평생에 고쳐 못 할 일"을 후회하게 만드실 수도 있죠.

하물며, 난치병이라든가, 교통사고라든가의 후유증으로,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참아 가며 생명을 연장하시는 경우라면 사정이 더욱 심각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는데, 심폐 소생 등을 위해 인체에 삽관(관을 집어 넣음)하여 임시방편으로 치료받는 게 (말을 못 해서 그렇지) 환자 당사자에게는 엄청난 고통이라는군요. 환자 입장에서는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품위 있게 목숨을 끊고 싶은데, 가족 입장에서야 어디 그렇겠습니까. 아직 0.00001%의 가능성이라도 생존에의 희망이 있다면 무슨 수라도 쓰고 싶어하죠. 가족이 손을 안 쓰거나 조치를 덜 해서 아픈 분이 돌아가셨다면, 그 죄책감을 무슨 수로 달래려고 말입니다.

어쩌면 이기심의 발로일 수도 있습니다만 상식이 있는 이상 그렇게는 또 생각이 안 될 겁니다. "아프신데 그만 떠나게 해 드리자." 당치도 않죠. 할 수 있는 건 다해봐야죠. 이 사이에 끼어 진퇴양난의 고초를 겪는 건 응급실의 닥터들입니다. 그들은 한두 번 이런 일을 겪은 게 아니기에, 무엇이 합리적인 처사인지 이미 알면서도 직업인의 양심, 가족의 독촉 때문에 결과가 뻔한 무의미한 행위(100이면 100 그런 건 아니고, 대단히 신중할 필요가 있겠습니다만 이 책 저자의 취지를 고려하여 일단 이 표현을 씁니다)를 반복합니다.

이 책은 이런 인간적인 고뇌를 치열하게 겪은, 대만의 어느 의사분이 진솔한 고백을 털어놓은 내용을 담았습니다. 문장을 읽다 보면 내내 벅찬 휴머니즘으로만 일관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이기에 때로는 지쳐서 내뱉는 솔직한 푸념도 있습니다. 다만 그런 푸념을 털어 놓으실 때도, 어디까지나 의사로서 직업인으로서의 소명은 투영되어 있습니다. 광의의 연명치료는 물론, 중상을 입고 응급실에 실려 온 상태에서 이뤄지는 응급처치 역시, 고통만 증강시킬 뿐 환자의 소생, 당장의 안식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경우 사전의 DNR(Do Not Resuscitate) 동의서는, 무의미한 연명 치료에 드는 노력의 낭비를 막는 효과가 있겠으나, 이 DNR 동의서를 놓고도 별의별 소동이 다 빚어지는 게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대만이나 우리나 동아시아에서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한 게 많아서, 일부러 작정을 하고 발전시키는 오해, 음모, 혹은 정반대로 애틋한 정 때문에 벌어지는 가슴 아픈 갈등, 하소연 등이, 대만이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 벌어질 법한 사연들의 집약, 회고처럼 느껴졌습니다. 

DNR에 서명할 자격은 꼭 직계비속 장남일 필요는 없고, 배우자나 그 외 혈족이면 충분한 듯합니다. 그런데 일생을 속 썩이다 마지막에 그 부친(뇌간출혈로 넘어져 이미 소생 가능성이 없는 분) 가시는 길을 히 보내 드리는 일에 작은 도움을 준 아들의 사례가 나오더군요. 의사야 구체적인 사정을 모르니 왜 이렇게 아들을 기다려가며 서명을 미루는지는 그 여동생(딸)의 설명을 듣고서야 알게 됩니다. ".... 외아들이라 어려서 엄격하게 기르느라고 매를 많이 맞았어요. 이걸 참지 못해 가출도 하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결국 감옥에도 가게 되었지요.. " 사실 아들만 나무랄 게 아니라, 아이에게 맞지 않은 방법으로 훈육한 부모의 잘못도 적다 할 수 없습니다. 아이가 전혀 재능과 적성을 갖추지 못했는데 기대만 터무니없이 부풀려, 자라서는 과대망상 허언증 환자가 되어 나이 육십이 되고서도 정신 못 차리는 한심한 예도 보지 않습니까. 그런 훈육도, 이 책에 나오는 폭력 부모의 방식과 크게 다르다 할 수 없습니다.

"오빠랑 사이가 안 좋았다는 것 알아요! 하지만 어떻게 이런 잔인하고 비열한 방법으로 복수할 수 있죠?" 손아래 시누이는 폭언을 퍼붓고, 손위 시누이는 따귀를 때립니다. DNR에 서명하고 연명치료를 중단하자 시월드(....)에서 찾아와 퍼붓는 언행들입니다. 물론 망상의 투영으로 남편을 도구처럼 활용하려다 뜻대로 안 되자 발악과 원한만 남은 졸혼 부부도 세상에는 있겠으나, 보편적인 부부의 삶이 또한 어찌 그렇겠습니까. 미운 정 고운 정 다 쌓이면서 그렇게 비슷한 시기에 한 생을 마쳐 가는 거죠. 결국 저자(의사)는 망자의 딸에게 전화를 걸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용기 있는 결단이기까지 했다며 차분한 설득을 벌입니다. 이후 노부인은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는군요. "평생 쌓인 억울함이 다 씻긴 것 같아요!" 이런 경우, 비록 배우자라고는 하나 자신만의 결정으로 진행할 게 아닌, 시댁 인사들과 충분히 협의를 거쳤더라면, 적어도 사전 통고는 하고 의사의 의견도 듣게 했다면 이런 험한 풍경이 벌어지지 않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때로는 같은 의료진 간에도 의견 차이가 생깁니다. 항암 치료임상 실험 중인 환자가 갑자기 뇌출혈이 생겼는데, 경험 없는 레지던트는 수술을 권하나, 이 저자분은 혈소판 수치가 너무 낮다는 사실을 들어, 수술 성공 가능성이 매우 낮고 성공한다 한들 중증 장애가 남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합니다. 암병동 레지던트와 그를 지도하는 주치의는 자신들을 무시한다며 불쾌감을 표시하지만, 환자의 복지와 행복이 최우선이라고 판단한 저자는 자신의 결정에 후회가 없습니다. 병원 안에서도 "정치"가 필요한 엄연한 현실을 감안할 때, 이 저자의 행동은 환자 입장에서라면 참으로 고마운 처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DNR 동의서를 작성하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한다는 뜻은 아니다.... 환자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죽음이라는 고요한 골짜기까지 환자를 배웅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p89)

대만 최고의 호스피스 전문의께서 들려 주시는, 인생의 마지막 무대에서 각양각색의 슬픈 제스처와 소통을 연출하는 모습들을 보고,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겪게 될, 치러 내어야 할 아픔임을 공감하며 마음이 무척 숙연해졌습니다. "아름답게 죽음을 맞을 권리를 누리고 싶다면, 우리 모두는 준비해야 할 게 무척 많다." 언제나 알기 쉬운 언어로 소통해야 환자와 그 가족들의 아픔이 그나마 덜어질 수 있다고 믿는 저자의 말씀입니다. 또한 저자는, 이런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아 자신과 가족의 아픔을 최소화하려면, 평소의 식생활 습관이 철저히 절제된 것이라야 한다고도 조언합니다. 아무리 현대 의학이 발전해도, cure가 불가능하고 오로지 care만이 가능한 경우가 아직은 훨씬 많습니다. 이런 호스피스 전문의가 최상의 식견과 인도주의를 발휘하시는 한, 우리 사회는 아직 살만한 곳임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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