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기억하라 - 징비록
정종숙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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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건 집단이건, 과거의 치명적인 실수를 자각하고 그로부터 소중한 교훈을 얻어, 다시는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내면화된 후라야, 그 개인(혹은 집단)에 비극적인 운명이 거듭 닥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허나, 우리 주변의 많은 이들은 이런 가르침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back in the habit, 인간 좀 되라고 베푸는 충고와 훈육에, 못난 에고는 "이대로가 뭐 어때서?"라고 발끈해하며 오히려 종전보다 더 어리석고 자멸적인 오류로 깊이 빠져듭니다. 사람이건 집단이건 배배 꼬인 못난 심사가 거의 예술의 경지에 달한 모습입니다. 못나게 살아온 과거,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현재를 모두 왜곡하고, 그도 부족해서 손상된 두뇌, 형해화한 기억(이미 썩어 문드러져 기억이라고 부를 수도 없습니다)으로부터 말도안되는 거짓을 지어내어 사실인 양 고래고래 떠들기까지 합니다(현실이 아닌 망상 속에서만 사는 인간이죠). 개인의 경우라면 명예훼손과 무고죄를 걸어 감옥에 보내 교화를 이룬다고나 하겠습니다만, 집단의 경우는 대체 어떻게 해야 정신을 버쩍 들게 하여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 거듭나게 도울까요?

서애 유성룡은 미증유의 전란을 맞아 민족 전체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놓인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우선순위를 매겨 가며 난제를 해결했고, 저마다 제각각의 목소리를 내는 대소신료들간의 불협화음을 조울했으며, 점령군보다 까다롭게 구는 명 측의 장수들을 일일이 달래고 어르느라 자신이 모시는 나라님보다 더 노심초사하던 7년을 지새웠습니다. 국망의 순간을 넘겼으나, 현명한 그의 시선으론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해 또다시 구태(舊態)로 회구하는 주변을 보고, 가슴에 사무치는 기록을 남겨 당대와 후손 그 마음가짐을 단단히 추스리게 해야겠다는 결의를 가졌습니다. 그 징표가 바로, 국보 132호로 지정된 <징비록>이며, 지금 리뷰하는 이 책은 방송작가 정종숙님이 쓰신 그에 대한 친절한 해설서입니다. 정종숙 저자님은 한솔교육 등에서 출간된 여러 어린이용 도서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분입니다.

유성룡의 <징비록>은 우리 조선에서뿐 아니라, 명과 일본에서도 널리 읽힌 "당대의 화제작"이었습니다. 정종숙 저자님은 책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 노량에서 이순신이 적의 흉탄에 맞아 유명을 달리할 무렵, 서애 역시 탄핵을 당해 직을 내려놓아야 했다..." 구체적으로는 이후 북인의 영수로서 정국을 전횡하다 인조반정(일단 "반정"이라고 하죠)때 대숙청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정인홍이 직무태만을 이유로 그의 태도와 능력을 걸고넘어졌기 때문입니다. 정인홍 역시 공과 과가 뚜렷한 인물이긴 하나, 이 대목에서의 국력 소모, 국론 분열은 참으로 부적절한 처신이었다고 여겨집니다. 억울한 죽음을 맞긴 했으나, 어찌 그 쌓인 죄과가 적었다고 하겠습니까?

여튼 이 때문에 서애는 영영 벼슬을 잃었고, 뉘우치기도 잘하는 선조가 그를 다시 조정에 불렀으나, 사양하고 내내 자택에 칩거하여 깨끗한 이름을 지켰습니다. 심기가 불편해서가 아니라, 간곡한 언사를 통해, 이미 병을 얻은 노구의 처신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진정어린 사의(辭意)를 임금께 전달한 과정이 따로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일종의 흥정이나 "몽니"를 부리는 소이라면, 이는 중대한 불충이자 뼈대 있는 사대부 출신 원상으로서 오히려 부끄럽고 격 떨어지는 처신에 해당합니다(밑바닥에게는 아예 이런 개념이 없죠). 그가 노년에 칩거한 고장은 오늘날 "하회마을"로 유명한 안동이며, 본관은 풍산이고 출생지는 인접 의성이지만 외가가 안동입니다. 그의 직계 후손인 탤런트 류시원 가족이 소유한 고택(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이십여 년 전 방한했을 때 신을 벗고 마루에 올랐죠)이 안동에 자리한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처럼 한 발짝만 걸어도 자랑스러운 조상들의 흔적이 곳곳에 스민 경상도 해당 지역민의 높은 긍지는 번거롭게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실패한 과거, 부끄럽고 부족한 자신,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오, 현재까지도 관리에 실패하여 파탄이 난 환경, 이런 것들을 왜곡하고 윤색하고 제 편할 대로 꾸며댄다면, 그런 영혼은 구제불능으로 타락하여 영원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원문 그대로는 아니고 독자인 제 기억에 의존했습니다) 이런 저주받은 나쁜 습성은 대개 타인에 대한 얼토당토 않은 중상모략, 뻔한 거짓 망상으로까지 이어지는 게 보통이라, 경솔하고 천박한 처신이 얼마나 중대한 결과(전과자가 된다거나)로 이어질 수 있는지 우리는 가까운(혹은, 이제 곧 가까워질)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시 내각을 이끈 최고위직 관리의 반성문이자 국난 극복의 역사 철학서". 바로 이 구절에서, 우리는 저자의 역사 인식이 얼마나 정확히 현실을 꿰뚫고 민족의 올바른 각성을 정당히 촉구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당대 관념으로 왕이 수도를 비우는 그 자체가 이미 망국의 신호탄이요, 몽진의 행렬이 국경을 넘는 그 순간 국권이 포기되었음을 선언함이나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때로부터 800년 전 당 현종이 안사의 난을 맞아 서방으로 피신했을 때도, 아들 중종에게 보위를 물려준 후에야(완전한 자의는 아니었지만) 비로소 발길을 떼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무능하고 우유부단하며 때로는 대책 없는 독선에 빠져 자신과 주위를 모두 위기에 몰아넣었던 부족한 군주였다고는 하나, 귀한 신분으로 태어나 거물 왕족의 사저에서 금지옥엽처럼 자란 분이 이처럼이나 모진 고초를 겪은 것도 안타깝기는 한 일입니다.

명이 이여송, 조승훈 등을 앞세워 참전했다고는 하나, 왜의 강력한 역공을 겪은 후에는 전의를 상실하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동병을 회피했습니다. 서애는 이런 이여송에게 간청도 하고, 국토 수복을 조선 조정이 이룸이 바로 명 제국의 안보에도 직접 기여하는 전략적 선택임을 정연한 논리와 빈틈없는 근거를 대며 설득에 나섭니다. 허나 탐욕과 비겁함으로 점철된 그의 인격은 이런 탁월한 통찰에 눈과 귀를 막았으며, 충무공은 이 와중에도 해전에서 왜를 연전 격퇴하는 전공을 올려, 침략군이 보급을 받고 원기를 회복하는 길을 원천 차단했습니다. 만약 이때 해상이 무방비로 뚫렸다면, 무능한 장수 이여송은 세 길로 진군하는 왜의 협공을 받아 평양성에서 궤멸했을 수도 있고, 재정이 부족하고 내정이 불안했던 명은 군사를 물려 한반도를 포기했을 지도 모릅니다. 이 경우, 풍신수길이가 전 중원을 먹는 오타쿠 만화에서나 볼 법한 사연이 현실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남에서 군사력으로 왜의 혼을 빼 놓았던 분이 충무공이었다면, 북방에서 내정과 외교를 통해 왜가 망상을 못 품게 동분서주한 분이 바로 서애입니다. 이 책은 이처럼, 남과 북의 두 영웅이 조국을 피땀흘려 구한 간절한 사연을 텍스트로 곱게 수놓고 있습니다. 왜와 명이 서로 눈치를 보며, 힘 안들이고 반도를 반분할 흉계까지 꾸미던 와중, 서애께서는 피눈물을 흘리며 명의 한심한 장군들을 설득하고, 이 강토가 비참하게 열강의 손에 분할되지 않게 만전의 노력을 기했습니다. 이때로부터 200여년 후, 호언촐러른, 합스부르크, 로마노프 세 제실(帝室)의 농간에 의해 폴란드가 과분된 역사를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번 휴지기를 맞은 전쟁은 풍신수길의 진노(심유경이가 중간에서 농간을 부린 게 폭로된 탓입니다)로 인해 다시 재연되기에 이릅니다. 서애의 비통함은 이 시점에서 극에 달합니다. 그러나 한심한 소인배들이 국정에 참섭하여 나라를 망쳐간다 쳐도, 자신까지 의욕을 잃고 손을 놓아 나라를 파탄지경에 방치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서애의 위대한 인격은 이 지점부터 그 본연의 빛을 발합니다.

책의 문장이 참 빼어납니다. 본래 작가님이 문장력이 좋은 덕분이겠습니다만, 이 임진란과, 사건을 다룬 소재인 <징비록> 원문, 그리고 집필자 서애의 철학과 인품에 일일이 저자가 공명 공감하며 글을 쓴 이유가 더 크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나의 조선과 당신의 대한민국이 대체 다른 게 무엇인가?"
서애는 지면을 통해 우리 후손들에게 이처럼 준엄한 가르침을 내리고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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