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는 보았다! - 회계사의 눈으로 기업의 '뒷모습'을 밝혀내다
마에카와 오사미쓰 지음, 정혜주 옮김 / 도슨트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회계사는 대개 소심하고 꼼꼼하고 내성적이며 남 앞에 주견을 분명히 드러내지 않는 성격처럼 간주됩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접하는 "진짜 회계사" 중에는 안 그런 분이 훨씬 많은데도 말입니다. 이 작고 유익한 책 표지 일러스트에도, 그런 우리들의 전형적인 선입견을 모두 충족이라도 하듯, 머리 기장 짧고 안경을 썼으며 날카로운 눈빛을 번득이는 캐릭터 하나가 그려져 있습니다. 단, 뭔가 심상치 않은 광경이라도 목격했는지 표정, 그 중에서도 입매가 비장한 모양새입니다.

예전에는 회계사를 두고 "기업의 판사"라고까지 일컬었습니다만, 지금은 그런 높은 평판과 선망이 많이 주춤해진 모습입니다. 이 책 중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지만 이른바 "적정의견"의 허상이 어느 정도나 심각한지 이제 일반 대중에게까지 널리 공감대가 확산된 탓도 있습니다. 장부상에 뻔히 드러나는 사기 행각, 모순된 분개, 뻔뻔스러운 분식 등을 두고도 불의 앞에 눈 감거나, 오히려 적극 가담까지 하는 "비겁한 전문직"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거죠. 그래도 이 책 저자님처럼 정의롭고 예리한 진짜 회계사, "검객"들도 많기에 아직은 기업 비리가 사회 전체를 더립힐 지경까지는 가지 않은 듯합니다.

이 책은 우리 일반 독자들도 교양, 상식으로 익혀 두어, 일부 타락한 기업에서 흔히들 저지르곤 하는 눈속임, 잔재주, 가까운 미래에 닥칠 심각한 부실의 징후를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앞서 간파해 낼 수 있을지 아주 요긴한 팁들을, 예화와 함께 제시합니다. 예로 든 이야기들이거의 전부 실제 일본에서 벌어졌던 큼직큼직한 스캔들이기에, 우리는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격언의 생생한 실증, 케이스 스터디도 시도해 볼 수 있고, 우리가 어차피 직장 생활 하며 익혀 둬야 하는 상식, 교양의 일부인 회계 지식의 activation, 프라이머로도 활용 가능합니다. 요렇게 아주 드라마틱한 사례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봐야, 지식이 그저 머리 속 지식으로 머물지 않고 실감과 흥미를 덧입힌 채 다가올 수 있습니다.
 
꼭 비리 같은 사례만 다루는 건 아닙니다. 저자께서 말하고 싶은 건, 대체 기업의 재무제표와 여러 전자공시 자료에서 우리가 무슨 "스토리"를 읽어 낼 수 있는지입니다. 일단 이 책에서는 반 세기가 지나는 동안 가전제조 분야에서 금융으로 주력 업종이 완전히 바뀌다시피한 SONY의 예를 p38에서 듭니다. 여기서 저자께서 주로 활용하시는 자료는 캐시플로 계산서인데, 사실 이건 일본식 용어죠. 우리는 실무에서, 또 교과서나 법규정에서 "현금흐름표"란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2010년부터 대체로 비금융과 금융 부문의 액수 크기가 역전된 듯 보입니다. 특히 2013년에는 전년대비 83%가 감소하는 등 가전분야가 쇼킹한 타격을 입습니다만, 이 차이를 금융분야의 26% 상승분이 어느 정도 보전하는 모양새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 소니의 이사가 기자회견장에서 당사는 금융사업을 핵심 사업으로 삼습니다 같은 발언을 할 가망은 전혀 없는데, 이는 '일렉트로닉스의 소니'에 아직도 그만큼 강력한 브랜드 파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p39)" 이처럼, 기업이 대외적으로 전략적 표방을 하는 이미지와, 그 사업의 실속, 내실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날 수 있으며, 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재무제표의 분석입니다. 이 과정에서 추이라고 할까, 시계열 자료의 분석이 의외로 큰 구실을 함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코지마는 요즘 어느 연예인이 CM을 부르며 광고하는 안XX자 때문에 한국에서도 부쩍 인지도가 상승했지만, 일본에서는 가전 전분야를 통틀어 꽤 높은 매출을 올리던 중견 기업이죠. 뜻밖에도 저자는 어느 택시기사에게, "사원을 쓸데없이 울리는 기업"이란 평가를 듣습니다. 이는 비전문가인 개인의 판단에 지나지 않으나, 저자는 이 기사의 예사롭지 않은 한 마디가 어떤 실증 근거를 갗췄는지 따로 알아보기로 합니다. 이처럼, 마치 평범한 이웃 아저씨처럼 소박한 동기를 품고 격의 없는 어조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사실은 꽤 큰 종합 회계 사무소의 대표님입니다만)

요즘 한국에서도 큰 문제가 되는 비정규직 문제, 무분별하게 인건비를 그저 줄이는 데에만 신경 쓰느라 정작 피용인의 사기 문제는 고려하지 않고, 이를 통해 무형의 부작용만 양산한 게 이 기업의 실수였다고 저자는 매출총이익, 급여, 매출액 등의 대조를 통해 주장합니다. 라이벌 업체인 케즈덴키는 사원의 평균 급여가 높은 데도, 또 이런저런 압박을 주지 않고 알아서 잘 하라는 다소 방만한 분위기인데도 여전히 실적이 좋고, 사원을 닦아세우는 어느 곳은 실적이 심각히 떨어졌습니다. 이럴 때, 저자의 언급처럼 마스시타 고노스케의 시대를 앞서 간 혜안이 떠오르기도 하고(불경기에도 해고를 자제), 혹은 독재자이긴 했어도 헨리 포드 같은 이가 취한 "생산직 고급여' 정책이 생각나기조 하죠.

이에는, 문제를 제대로 짚었지만(인건비와 관리비의 상승이 적자 초래), 그 대응을 졸렬하게 했느냐, 아니면 직원의 사기도 고려해 가며 현장의 여론과 분위기를 존중했느냐에서 명암이 갈렸다는 게 저자의 진단입니다. 케즈덴키는 아예 정규직 정책을 더 강화했고, 야마다는 계약직을 늘리되 정규직(이 책에서는 "정사원"이라고 표현됩니다)도 소폭으로 같이 늘려가는 절충책을 택했습니다. 어느 회사 혼자서만 줄곧 고전한 이유를 저자는 여기에서 찾는 것입니다.

코지마는 어떻게 해야 해법을 찾을 수 있었을까? 대안 없는 비판은 무익할 뿐입니다. 저자는 이 회사의 문제가, "종업원 1인당 메출액이 적음"이란 뚜렷한 지표에 집약되었음을 발견합니다. 즉 직무 구조의 합리화, 효율화를 꾀하진 않고, 양적인 비용만 줄이기에 급급했던 게 패착의 본질이었던 셈입니다. 한국의 많은 기업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리라고 봅니다.

닛산도 경영위기에 직면하여 직원을 줄이되, 인당 급여는 삭감하지 않아 "일단 남은 사람들의 노력만으로 회사를 살려 보자"는 공감대를 확산시킨 게 회생의 비결이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 사례에서는 재미있는 대목을 또 하나 짚는 게, 코스트다운을 밀어붙이다 보면 납품업체(하청업체, 혹은 협력업체)에 가격 후려치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여파가 품질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을까요? 닛산은 그런 부작용을 대체로 피해갔다고 분석됩니다. 이 비결에 대해서는, 거래선의 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일단 계약을 유지하는 업체들은 일감이 늘어나므로 매출액 면에서는 오히려 더 나아지는 여건입니다. 물론 거래가 끊긴 업체들은 당장 타격을 받겠으나, 이는 앞에서 말한 희망퇴직 정책과도 맥이 닿습니다. "남은 이들에게 최대한 후하게 대접하여 일단 회사를 살려 놓고 보자."

저가항공은 우리보다 조금 앞선 시기 일본에서 활황을 띤 업종입니다. 이 선도업체 중 스카이마크란 곳이 있었는데, 한때 잘나가다가 특정 시점부터 (캐시플로 계산서에 나오듯) 현금 흐름이 급격히 줄어듭니다. 우리가 기업 분석할 때 그렇게나 현금 실탄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 가장 나쁜 사례가 이 5장에 나오는 셈입니다. 왜 이렇게 캐시플로가 심각한 악화를 겪었냐면, 바로 무리한 투자 때문입니다. 무엇에 투자를 했는가? 바로 에어버스 A380을 여섯 대나, 그것도 엔저가 두드러질 불리한 시기에 환차손이란 역풍까지 안아 가며, 터무니없이높이 매겨진 가격을 아무말않고 지불하는 악수까지 두었기 때문입니다. 저가항공사의 명목과 본질에 맞지 않게, 이런 초호화 자산을 매입하려 든 동기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죠(신분 상승 기도?).

마지막 장 도XX의 사례에서, 기업이 언제 컴컴한 속임수를 부리는지 그 개탄스러운 일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례가 소개됩니다. 우리가 회계의 ABC를 학교에서 배울 때 중간, 기말고사에서 단골로 출제되는 게 공사진척에 따른 회계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무작정 모범 답안을 보고 암기하기보다는, 이치를 따져 가며, 다른 방안도 가능할 텐데 왜 하필 이 원칙에 따르냐는 식으로, 능동적 문제의식 속에 이해를 해야 효과가 높을 겁니다. 다리처럼 유형 자산을 건설할 때는 누구나 동의할 만한 가시적 기준이 따로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의 말씀처럼, 소프트웨어 개발처럼 눈에 잘 안 보이는 활동이 문제인 겁니다(이뿐 아니라 R&D 전반이 다 그렇죠). 있지도 않은 자산을 완성되어 가는 것처럼 부풀리거나, 반대로 비용에 과다 계상하기가 일쑤인데, 이 항목이 너무도 많아 회계감사인 입장에서는 전수 조사가 어렵다고 합니다.

무형자산의 평가에서 분식을 일삼고 결과적으로 피해를 사회에 떠넘기는 도덕적 해이는 지탄 받아야 마땅한 행동입니다. 그러나 누가 어느 구석에서 잘못을 저지르는지는, 시민 모두가 감시의 눈을 뜨고 살피는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깨어 있는 시민, 주인으로 사는 국민이 되려면 그래서 공부가 중요하고, 그 중에서도 이처럼 살아 있는 섹터와 활동에 바로 응용이 가능한 지식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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