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을 뒤바꾼 아이디어 100 100 IDEAS 시리즈 8
짐 볼턴 지음, 홍석윤 옮김, 장병탁 감수 / 시드포스트(SEEDPOST)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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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책입니다. 책의 내용과 형식상 아름다움이 독자를 매료시키기에, 책의 주제인 "웹"까지 덩달아 아름다워 보이게 만든다고나 할까요? 일찌감치 특급 엔지니어, 분석가들은 "인터넷이란 말부터가 낡은 어휘가 될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는데, 현재 웹은 너무도 우리의 일상에 깊이 파고들어 그저 당연한 공기나 가재도구처럼 인식되기도 합니다. 해서, 그 "아름다움"을 느끼기란 여간해선 어려운데, 당연한 게 결코 당연하지만은 않았다는 진리를 우리는 여기서도 실감하게 됩니다. 웹은 초기의 그 어설픈 걸음마를 딛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름답기도 하고 동시에 대견하기까지 한 녀석입니다.

"인터넷이 인쇄기의 디지털 대체물이라면, 웹은 이동식 활자다." 이 책 p57에 나오는 저자 짐 볼턴의 말입니다. 바로 뒤에 나오지만 그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에 따른 기독교 성경의 배포를 빗대어 이 "사건"을 감개어린 어조로 회고하는 겁니다. 구텐베르크의 쾌거, 지식과 권위 독점의 타도가 지금으로부터 근 육백 년 전 사람들이나 동시대의 목격이 가능했던 대단히 희귀한 변혁이기에, 이 저자의 벅찬 의미 규정이 새삼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그 축복의 강도와 파급력을 실감케 한다고나 하겠습니다. 이 파트에 언급되는 CERN은 물론 우리가 아는(몇 년 전 힉스 입자의 발견으로 세계적 유명세를 탄) 그 연구소입니다. 그들 연구자들이 경과와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만든 프로토콜(이 책 pp. 44~45도 참조하십시오)은, 이제 널리 세계인을 이롭게 하는 편리한 탐사선, 브라우저(여러 종류가 있고 아직도 주도권 경쟁 중입니다만)로 다시 태어나 우리에게 정보의 민주화를 통해 권력과 부의 재분배에까지 그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

책은 모두 100가지의 테마를 다룹니다. 이 중에는 "사건"도 있고, 여러 사건과 연구를 통해 초기의 형태와 기능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엘리먼트"도 있으며, 도구도 있고 포맷도 있고 현상도 있고 트렌드도 있습니다. 범주의 층위가 다른 이런 여러 "주인공"들을, 자유자재로, 또 살뜰히 살펴 초대장을 보낸 후, 이렇게 예쁜 책 한 권에 큐레이션으로 마련한 저자, 역자, 출판사 들에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센스 있고 매력 넘치고 귀한 신분의 빈객들이 성장(盛裝)을 한 채 우아한 무도를 즐기는 모습은, 그냥 구경만 해도 뿌듯하지 않습니까? 하물며 이 책은, 그 무도회를 구경하는 옵저버(우리 독자들)까지도 충분히 배려한 진행까지 마련합니다. 어쩌면 주(主)와 빈(賓)이 하나가 된, 무아지경의 놀이터가 바로 웹이고 인터넷인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와이파이는 처음에 와이브로, 와이맥스 등과 헷갈리곤 하던 통신 기술입니다. 뒤의 둘은 현재 거의 잊혀지다시피한 존재가 되었습니다만, 와이파이 역시 그 태반이 된 시초 기술이 탄생한지는 의외로 꽤 오래되었음을 이 책은 어느 미녀의 흑백 사진을 통해 독자에게 의미심장하게 상기시킵니다. p68 사진의 주인공은 헤디 라마르(이 책의 표기로는 "라마"인데, 우리나라 나이드신 영화팬들도 그리 알고 있을 겁니다), 1940년대 후반 성경 소재 에픽 걸작으로 꼽히는 <삼손과 데릴라>에서 완벽히 원형 심상을 구현한 그 전설적인 여배우입니다.

치렁치렁 곱슬곱슬한 흑발 때문에 누구 눈에도 유대 혈통이 드러나는 외모인 그녀는, 합스부르크 치세의 번영한 빈(Wien)에 오랜 세월 머물러 살았던 풍족한 가문의 소생이었습니다만, 흥미롭게도 종교는 가톨릭으로 개종한 케이스입니다(이런 경우가 꽤 많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분이 두뇌까지 총명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데, 빼어난 공학자의 자질까지 겸비했던 그녀는 오늘날 와이파이 활용에 핵심적으로 쓰이는, "주파수를 건너 뛸 수 있는 무선 통신"의 아이디어를 무심히 몸매 관리 비법에 대한 수다 끝에 거론했고, 이것이 해당 기술의 특허가 그녀 이름으로 공동 등록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창시자라고까지 치켜세우기엔 다소의 무리가 따르기도 하지만, 여튼 순간 번득이는 영감을 구체적인 창의로 변환시키는 데 능한 그들 민족 고유의 개성이 확인되는 또하나의 대목이기도 합니다.

간단한 텍스트를 활용한 기술에 불과한데 웹을 돌아다닌 모든 로그를 자그마한 덩치에 모두 간직, 기억하는 쿠키, 때로 범죄자의 구린 행적을 폭로하는 결정적 증인 구실도 하는 이 귀여운 이름을 가진 녀석도, 여튼 웹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 속 편히 망망대해를 유영하는 우리의 편의에 크게 기여합니다. 우리가 사우나나 여객선, 항구, 공항, 역(과거)에서 사용하곤 했던 물품표 중 증거증권이란 게 있는데, 본디 이것은 발행자(수탁인)과 수령자(위탁인) 사이에서만 오가야 정상이죠. 쿠키도 초창기에 비슷한 원리였던지라, 오늘날 우리 상식으로는 놀랍지만 1997년 당시 해당 태스크 포스는 제3자 발행 쿠키가 금지되어야 한다고 권고했다는군요. 이건 비유를 하자면, 유가증권 중 예컨대 약속어음 같은 것에서 배서, 인수를 배제하자는 주장과 같습니다. 많은 폐해와 부작용, 범죄를 예방할 수 있겠지만, 대신 거래에 큰 불편이 따르겠죠. 우리도 암묵적으로 제3자 쿠키를 매번 내 컴퓨터에 앉히면서 웹을 서핑하는 겁니다. 다만 이용자가, 주기적으로 쿠키를 삭제(브라우저에 따라 이름을 확인해 가면서 지울 수 있게 옵션도 마련합니다)해 주면서 표적 광고(지금도 당하고 있습니다)를 피하는 수 말고는 없죠.

이 책에 실린 100가지 아이디어 중 "하이퍼"라는 접두어를 단 아티클이 두 꼭지가 있습니다. 하이퍼텍스트와 하이퍼카드입니다. 전자는 오늘의 웹을 만든 아버지들이 그저 기능과 효용에 몰두하다 우연히 이룬 성취가 결코 아님을 증명하듯, 창의적이고 영민한 정신이 언제나 바른 방향으로 몰입하고 사로잡히는 주제가 "인문적 자유"임을 잘 확인시켜 줍니다. 올바른 인문의 상상이, 기술이건 자연과학이건 모든 의미 있는 발전을 추동하는 것입니다. 짐 볼턴의 감동적이고 유려한 문장을 이를 잘 표현합니다. 하이퍼카드는 글쎄요, 적당히 나이가 있지 않다면 떠올리기 힘든 프로그램 아닐까 싶은데요. 저자의 기술에 따르면 이 역시 건전한 네트워크, 올바른 소통을 꿈꾸던 정신들이 빚어낸 총아이나, 선(Sun) 같은 더 개방된 분위기에서 탄생했다면 대표 브라우저로 더 커나갔으리라며 아쉬움, "개탄"을 토로한다고 하네요. 여기서도 애플의 폐쇄성이 또 지적되는 셈인데, 그렇다 쳐도 어차피 MS의 끼워팔기 공세(이 책 꼭지 No. 22를 참조하십시오) 앞에 위축되지 않았을까요.

헉! p154를 보십시오. 이 책에는 아름다운 여배우 사진이 뜻밖에도 자주 게재되었군요. 저주받은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그러나 훗날 작가, 감독, 개발자, 과학자, 심지어 정치인들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영혼에 영감을 준 <블레이드 러너>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큰 혼란을 느끼며 담배 한 모금으로 번민을 달래는 레이첼의 자태입니다. "너는 인간이냐 기계냐?" 이 물음을 인간이 컴을 향해 던지면 튜링 테스트 같은 거고, 기계가 (인간이 작성한) 메일에 대고 물으면 그건 바로 "캡차"입니다. 저자는 재치 있게도 이를 "역(逆) 튜링 테스트"로 규정하는데, 사실 5% 유의수준 이슈만큼이나 이 인위적 기준은 미심쩍고 막연하며, 과학에 속한 중 가장 비과학적 색채가 짙다고도 생각합니다. 무튼 기계와 인간이 어디서 감정적, 가치 판단 개입의 소통을 이루는지 살필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이기도 하죠.

정성껏 꾸려진 모든 책의 공통점 중 하나는 충실한 인덱스입니다. 이 책 자체가 웹에 바치는 예쁘고 작은 인덱스인데, 그것도 부족해서 책 말미에 따로 사항 인덱스를 또 갖춰 놓았네요. 저런 인덱스 항목을 무엇무엇으로 잡았느냐에서 저자만의 가치, 컨셉, 지향이 또 드러나게 마련이죠. 오늘날의 성취와 자부가 있기까지 어떤 계단을 밟았을까를 벅차게 회고하는 작업은 언제나 흥미진진하고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과연 시드페이퍼에서 낼 법한 알차고 예쁜 책, 너무도 잘 읽었습니다. 책을 쓰신 분, 다듬으신 분 모두의 아름다운 마음이 오롯이 담겼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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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페이퍼 2017-10-27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시드페이퍼 출판사입니다. 먼저 이렇게 길고 정성스런 리뷰를 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이 책은 영국의 예술 전문 출판사 로런스킹에서 꾸준히 출간되며 많은 사랑을 받은 아이디어 100시리즈의 완결판으로 출판사내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출간한 책입니다. 그러나 분야가 웹이라는 점과 이전에 나왔던 영화, 광고, 그래픽디자인, 패션, 예술, 사진, 건축과는 살짝 다른 방향성을 담고 있어 어느때 내면 좋을지 고민이 많았던 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감사한 리뷰를 보니 마음이 더없이 따뜻해집니다. 저희 책을 읽어주시고 아껴주시는 독자분들을 위해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만들고, 많이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소중한 리뷰는 저희 블로그에 담아가 많은 분들께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추운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고, 포근한 금요일 저녁 보내시길 바랍니다.

-시드페이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