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여자들
카린 슬로터 지음, 전행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초반에 아줌마들이 티격태격하는 이야기가 나와서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빅 리틀 라이즈)> 같은 분위기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더군요. 조금만 말을 꺼내도 내용 누설이 될 것 같아 리뷰 쓰기가 조심스럽지만, 여튼 뒤로 가면 갈수록 추악하고도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나고, 사건의 스케일도 엄청 커지는, 창작에 공을 많이 들인 뛰어난 소설 같았습니다. 재미있기는 한데 소재가 꽤 불편한 것도 사실입니다.

아줌마들이 티격태격하는 이야기 바로 직전에 굉장히 충격적인 인트로가 깔리긴 합니다. 갓 보호관찰에서 풀려난 멀쩡한 아주머니, 아직도 웬만한 젊은 남성에게 끈적한 시선을 충분히 모을 만한 미모를 간직한 분이, 바에서 남편을 기다리다 술 두 잔 마신 후 같이 귀가합니다. 바람직하죠. 바에서 배우자를 만나는 게, 만약 배경이 한국이라면 그 빈도가 얼마나 될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냥 집에 들어갈 게 아니라 으슥한 곳에서 간만에 기분 좀 내어 보자고 합의까지 보았다면? 역시 권태 때문에 서로의 체취만 멀리서 맡아도 진저리치는 실패한 부부보다야 훨씬 낫습니다. 나무랄 건 아닌데, 조심은 했어야 옳았습니다.

"조심을 안 한 피해자가 잘못이지!" 이게 아니라, 괜찮은 사람들이 공연히 쓰레기 같은 범죄자들의 밥이 된 결과가 안타까워서 하는 소리지요. 피해자를 오히려 비난하고 드는 후진적인 풍토는 미국에서도 여전히 일각에서 살아는 있나 봅니다. 조금 뒤로 더 넘어간 후리디아가 동네 아는 분과 테니스 치다가 격분하여 반 고의로 부상을 입힌 에피소드에서 지나가듯 등장합니다. 피해자나 그 가족(피해자이기도 하고 가족이기도 합니다) 입장에서는 치가 떨리기에, 그런 반응이 나왔을 법도 합니다. 충분히 이해는 가는데, 우리 독자 입장에서는 리디아에게도 쉬이 동감을 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너무 상처가 많은 분이고, 그런 못된 일을 겪기 전부터도 이미 그녀는 성격이 좀 불안정한 타입이었으며, 이후의 대처 방식도 그리 현명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끔찍한 상처를 입었더라도, 자기 파괴가 답이 될 수는 없죠.

"조심을 안 한 게 잘못이야!" 글쎄요. 사람에 따라서는 정말 이런 말을 들어야 할 경우도 있을지 모릅니다. 남편 폴 스콧을 두고 하는 소립니다. 그렇게나 똑똑하고, 매사에 사려 깊은(다 읽고 나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세심히 분위기를 세팅해 가는 작가의 너무도 노련한 솜씨 때문에 이 정도는 독자도 처음부터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왜 하필 그런 무모(미국은 치안이 불안하잖아요)한 충동에 이끌렸을까요? 평소의 그 답지 않은 행동입니다. 무장 강도, 성폭행범의 공격에 대응하여 그는 용감하게, 아내를 지키려 위험을 무릅쓰고, 놈의 칼에 찔려 중상을 입고 "죽습니다".

스릴러에서 드물지 않게 세팅되는 긴박한 상황에서 그래도 독자의 마음이 덜 불편(어차피 픽션이니까요)한 결단을 취한 폴이 마음에 들었습니다만, (이거는 정말 중간까지 읽어가야 아는 건데) 폴은 그런 행동이 어울리는 위인이 아니었습니다. 위험도 잘 피해다니고(분위기나 기분은 다른 선택을 통해서도 낼 수 있죠), 혹 판단착오로 위험에 빠졌다 해도 자기 목숨을 걸고 아내를 구한다.... 폴에게는 안 어울리죠. 물론 우리는 폴이 진짜 그런 사람(용기 있는 순정파)이길, 혹은 노력을 통해 그런 사람으로 바뀌길 기대하며 책을 내처 읽어 나가게 되지만(이게 이 작품의 진짜 매력입니다.

"폴! 우리를 실망시키지 마! 운명은 바꿀 수 있는 거라고! 당신은 할 수 있잖아!"), 사람 타고난 모양새란 게 그리 쉽게 휙휙 편할 대로 고쳐지는 게 아니죠. 이런 분들, 더 어려운 과업도 척척 해내는 능력자(ㅠㅠ)들도 있지만, 대개는 자신이 해결해야 할 진짜 숙제는 내내 피해 다닙니다. 그래서 정상인 범주에 못 드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을 그리 능숙히 조종하면서 왜 자신은 못 바꿉니까? 사이코패스가 비난 받아야 할 진짜 이유는 여기에 있는 거지, 무슨 머리가 좋다느니 매력이 많다느니 이런 게 잘못이 아니죠. 많은 이들은 그저 시샘 때문에 이들을 비난할 뿐, 남을 속이고 중상모략해서 부당한 이익을 챙기려는 못된 심뽀는 거의 공유하다시피합니다. 매력도 없고 무능하면서도 멘탈만큼은 똑같이 타락한 건데, 비난을 할 자격이 없죠.

클레어는 아름다운 여인이고, 내내 허술한 수컷들이 자신의 매력에 홀려 빌빌대는 꼴을 어쩌면 다분히 가학적으로 즐기며 살아왔다고나 할, 그 나름 축복받은 인생이었습니다만, 역시 이기적일 뿐 아니라, 모든 동기가 말끔한 양심에서 우러나오지는 않는, 쉽게 동일시를 이루기는 좀 어려운 타입입니다. 그녀는 "죽은" 남편 폴이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을 속였고, 내내 "훔쳐 보고" 있었으며,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나 자신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재미로 그토록 오랜 연극을 벌였다는 사실(이라고 일단 그녀는 판단합니다)에 치를 떨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 어디로 도피하건 인터폴의 추적도 받을 만한(연방 형법 차원의 범죄임은 말할 것도 없고) 끔찍한 일에 연루(적어도)되었음도 눈치 채게 됩니다. 혹시 이 책을 읽는 남성 독자들은, "와 야동 숨기는 방법이 저런 게 다 있구나. 흠, 통화 추적 안 당하려면 쌧컴 쓰면 된다는 거지?" 같은 나쁜 교훈은 습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별 쓸모도 없고, 이미 그 정도는 파훼법이 다 알려져 있습니다. 괜히 주목이나 끌죠.

클레어와 그 언니 리디아가 그리 건강한 내면이 아니라는 점은 앞에서 말했습니다만, 이것도 그녀들의 어린 시절, 끔찍한 사건이 터져 집안 분위기가 줄곧 정상이 아니었다는 점은 충분히 고려를 해 줘야 합니다. 이런 논리를 잘못 확장하면, "상처 있는 사람은 결코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같은 일종의 낙인 이론으로까지 부당한 일반화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여튼 지난 18년 동안은 몰라도, 리디아나 클레어나 지금 이 대단히 불행하고 불쾌하며 당혹스러운 비극을 접하고서는, 매우 성숙한 처신을 하려 애쓰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작가는 분명히, 특히 여성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당신 같으면 못난(여러 이유에서) 언니를 그 오랜 불화의 시간을 딛고 화해하려 들겠는가?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남편에 대한 온갖 추악한 진실을 정면으로 대해야 하는데, 그저 믿고 싶은 대로 편하고 믿고 말지 이제와서 불편한 진상을 수용, 소화할 자신이 생기겠는가? 차라리 루저인 언니를 마음대로 단죄하고 왜곡하는 편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

이 점에서 클레어는 정말 용감합니다. 또, 그런 클레어를 바로 보고는 이제부터 다시 우애를 회복하여 감싸려 드는 리디아도 일단은 높이 평가를 해 줘야 하겠습니다(그러나 좀 더 읽어 보시고요). 소설은 숨겨진 미스테리의 진상이 하나 둘 밝혀지는 과정도 빼어나게 잘 쓰였습니다만, 이처럼 등장인물들의 내밀한 심리, 미칠 것 같은 갈등을 세심히, 적나라하게 들춰 내어 독자 앞에 드러내는 기법도 빼어났습니다. 어리석은 타입은 마음이 불편하면 무작정 남탓만 하고 들지, 이처럼 자신의 내면에 곪은 상처를 들여다 볼 생각을 않죠. 죄를 내가 뒤집어쓰라는 게 아니라, 남이든 나든 원인 소재를 정확히 알고 치료를 해야 "자신이 앞으로 안 아플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이치를 모르고 취학전 아동처럼 무작정 눈에 먼저 띄는 타인에게 원인을 전가하며 큰 소리로 빽빽 우기는 이들을 보면, 하등 동물을 보는 양 딱해질 뿐입니다.

이 소설이 특히 재미있는 건("재미"라고 하면 좀 어폐가 있긴 합니다만), 모든 현재의 비극 그 배후를 캐고 들어가면 반드시 부모 대(代)에 그 원인이 싹트고 있다는 시사입니다. 내용 누설 우려 때문에 자세히는 말 못 하지만, 폴과 클레어 커플은 알고 보니 "부모 대에서부터" 달갑지 않은 연이 한 자락 얽혀 있더군요. 서브보컬처럼 간헐적으로 다른 톤을 빌려 들려 오는 "어느 분"의 목소리는, 계속 들어 보니 그 청자가 "그의 다른 딸"이었습니다. 이건 이유가 있더군요. 지척에서 달콤한 대화를 빙자하여 접근하고는, 바디 스내처처럼 상대의 내면으로부터 정보를 모조리 빼가는 무서운 인간 스캐너, 그 자의 본명이 후반부에 밝혀지고, 왜 하필 그들 부자(부자였다니!)가 다른 "부녀"를 주시하게(관음하게) 되었는지도 서서히 드러납니다.

[아래 내용은 읽지 마십시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중반쯤부터 낌새를 챘을 겁니다. 범죄의 징후가 보이면 사소한 가능성부터 일일이 의심하고 들어야 마땅한 경찰서장이, 왜 클레어에게만은 과도한 안심을 시키며(그 나름 둘러댄 근거가 치밀하기는 했습니다. 결국 그게 가짜였지만) 덩달아 독자에게까지 사태의 때이른 진정을 시도한 걸까요? 또, 그의 죽음이 페이크였다면 그런 연극의 공권력의 개입 없이 과연 가능했을까요? 시민의 공적 사망이 뒤집혀지는 전개라면, 작가가 바보거나 작품의 스케일이 엄청 커지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이 소설 작가는 엄청 똑똑한 분이라서, 소설은 정말 장난 아니게 파장을 불려 가며 독자를 빠져들게는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진행을 그리 달가이 여기지 않습니다만 이 스릴러가 워낙 치밀한 준비를 거쳐 이뤄진 작업이라 흠을 잡기도 힘들더군요)

소설 중에도 두어 번 언급되지만(지하실부터 해서) 토머스 해리스의 전설적 장르소설 <양들의 침묵>에서 영향을 받은 바 큽니다. 특히 전지전능하다 할만큼 객체의 심리를 훤히 꿰고 천리 밖에서 조절하는, 지적이고 섬세한 정신병자 한니발 렉터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실감 나는 캐릭터(들)의 재현은 압권입니다. 뿐 아니라 이 소설은 "피해자" 스탠스의 여성들에 대해서도 실감과 박력, 독자적인 선명한 위상을 배분해 두어, 장르소설의 진화가 능력 있는 여성 작가의 손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잘 실증한다고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진짜 취향은 아닌데, 완성도가 높고 재미가 풍부하단 건 분명히 확인해 줄 수 있습니다. 어설픈 피해의식에 가득한 싸이코패스물을 그간 너무 자주 봐 왔던 터라 이 장점은 더 두드러집니다.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은데 리뷰에서 자기 기분에 도취되어 내용 누설을 서슴지 않는 이기적이고 미숙한 민폐가 참 꼴불견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같은 어리석음을 범할까 싶어서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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