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 메이커스 - 세상을 사로잡은 히트작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데릭 톰슨 지음, 이은주 옮김, 송원섭 감수 / 21세기북스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원 어떻게 된 게 모든 밥벌이가, 결국 "히트작"을 내냐 못 내냐로 그 성공 여부가 결정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사실 자신이 히트작을 내는 것과, 시대를 앞서갔든 혹은 다른 우연한 사정이 끼어들어 그 본연의 가치가 잘 알려지지 않았든 해서 당대에는 성공 못 했지만, 크리에이터 본인이 죽고 나서야 비로소 엄청난 인정을 받는 것은, 창작 단계에 있어 그 비결이랄까 과정이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한번 시드니 셸던이 누군지, 한국은 고사하고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물어 보십시오. 모른다는 층이 대다수일 겁니다. 존 그리샴도 현재는 그 이름이 잊혀져 가는 중이라고 저는 봅니다. 이 작가들은 각각의 전성기에야, 시쳇말로 삼척동자들도 그 이름을 다 알 만큼 유명한 이들이었습니다. 후대에까지 그 작품의 완성도, 높은 평가가 길이길이 이어지기란, 어쩌면 동시대와의 짙은 교감을 희생해야 얻어지는 고달픈 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만, ㅎㅎ 우리는 그런 건 생각지도 않죠. 생전 히트작(어느 분야의 무엇이든) 하나만 내어 봤으면 소원이 없겠고 목숨도 걸고 양심도 다 팔아넘길 판입니다.

목숨 내놓고 양심까지 팔아치우는 요란까지는 떨지 않고도, 히트작 하나를 어찌 근사하고도 우아하게 내놓을 방법은 없을까요? 그것도 생전에 수십 수백만의 불특정 다수 대중에게 환영과 사랑을 받으면서 말입니다. 책 한 권 읽고 그 답을 찾을 수야 없고, 그런 사행심 가득 섞인 기대를 해서도 안 될 일입니다(복권은 본디 벽촌의 무지렁이들이나 긁는 거죠). 그런데 이 책은 제법 구체적인 비결을 담고 있더군요. 혹시 마케팅 경영서 아니냐고 오인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 서평을 통해 그런 오해라도 좀 불식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생길 정도입니다.

이 책은 현명한 독자라면 정말 마케팅서로도 잘 소화할 수 있습니다. 기업의 컨셉 크리에이터라면 간담이 서늘해질만큼("아니, 아직 내가 이걸 모르고 있었다니") 날카로운 지적이 있는가 하면, 무엇보다 이 책을 가장 열심히 읽어야 할 층이 대중예술 분야 종사자들 아닐까 싶을 만큼, 기본적으로는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포괄적이고도 심도 있는 분석서입니다. 물론, 대중의 인정 따위는 필요 없다며 고독한 예술혼을 불태우는 이라면 이런 책에 관심 없겠지요.(그런 분들은 결국 혼자서 승부를 내어야 합니다)

이 책은 차라리, 고달프게 상사한테 오늘도 내일도 깨지는 샐러리맨들이 머리 쥐어뜯어가며 읽어야 하는 내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방송작가 (스크립터), 방송관련직업 종사자들이라면, 혹은 장차 지상파나 케이블 방송사 PD가 되고 싶어하는 어린 학생들이라면, 이 책이 아예 직접 타깃 그룹으로 삼았으므로, 이런 좋은 지침서를 놓쳐서야 또 너무도 아깝겠죠(지망자들이 그리 많지는 않겠습니다만). 책이 참 쉽게 쓰여졌으면서도 사례가 풍부하고 챕터 말미에는 묵직한 결론과 충고까지 담아, 저로서는 너무나 좋은 내용이 줄을 이어 눈에 들어오는 통에, 아 이거 드디어 인생 책 하나 만나는 건가 잠시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습니다.

경매에서 수십억을 호가하는 명화는, 과연 세상 사람, 지구촌 70억 인구가 그 가치를 알아봐서 그 정도 가격이 매겨지는 걸까요? 전 단언컨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심미안은 나면서부터 정해지는 거고, 이 분야는 특히 교육 과정을 통해서도 별반 개선이 안 되는 겁니다. 사람들이 대개 저거 명화라며 떠드는 행태는, 마치 예술의 전당에서 어느 대목에서 박수를 쳐야 할지 몰라 주위 눈치만 살피다가 허둥지둥 남 따라 손을 놀리는 것처럼, 뭔지도 모르면서 남의 말을 주워섬기는 심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자는 까막눈이면서도 무슨 그림이나 볼 줄 아는 양 남의 말을 베껴 늘어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단호히 말하는군요. "노출, 노출, 어디까지나 다중 앞에 잦은 노출을 이루는 작품이야말로, 명작이고 히트작이라며 높은 평가를 받을 가망이 커지는 녀석이다." 범속한 대중이 느끼는 건 고작 "익숙하다"는 것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걸 본인은 그렇게 여기지 않습니다. 스스로 정제된 미학적 판단이나 내리는 양, 그저 익숙하게 느끼는 걸 두고 "좋다"라며 자체 뻥튀기를 하는 거죠. 이런 반응이 모이고 모여 보십시오. "많은 이들이 인정한 명작"이 되는 겁니다. 많은 이들이 좋다고 하는 건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어? 그게 아닙니다. 대개는 노출의 힘이죠.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잦은 노출은 오히려 거부반응, 역겨움을 유발하기도 하죠. TV 모 행락 업계 사이트 광고라든가, 거대 포털에 매번 최상단에 게재되는 배너는 너무도 잦은 노출 때문에 오히려 시청자나 방문자들에게 항의를 받는 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잦은 노출만으로는 성공적인 전략이 아니며, "유창성"이란 중간다리를 반드시 거쳐야 하고, 이것이 바로 (다분히 기만적이지만) "친숙함과 공감"으로 이어지는 비결이라는 겁니다.

"만약 제품의 절대적 가치를 알 수 있다면 사람들은 아무도 브랜드에 의존하지 않는다." 제 생각에는 이 멋진 말이, 소비자 대중이 아니라, 그들에게 뭘 팔려고 드는 마케팅 책임자들이 명심해야 할 사항인 것 같습니다. 내공이 떨어지는 날품팔이 같은 셀러들이나, 얄팍한 속임수로 대중을 혹하게 만들려 들기 마련입니다. 진짜 크리에이터는 이처럼 대중의 얕은 심리를 꿰면서도, 컨텐츠 창조의 정도를 걷기 위해 애 쓰는 거죠. 저 말에 숨은 또 하나의 의미는, 대중 역시 브랜드의 휘광에 속고 마는 자신을 창피하게 여긴다는 겁니다. 모르니까 그거라도 의존해서 결정하겠다는 건데, 아예 이 사실조차 자각 못 하고 "남들 따라 사는 게 절대 진리"라고 우기는 무지렁이도 있습니다.

책에는 심지어 칸트도 인용됩니다. 허 참 나, 제가 읽으면서 저자님께 완전 넉아웃된 게, 아니 그 고전의 그 구절을 그런 뜻으로 이해하여 마케팅에다 적용할 수도 있었나 하는, 기발한 센스에 대한 놀라움 때문이었습니다. 어디서 이 철학 고전이 모듈화하냐 하면, 그의 저작 <판단력 비판>에서 저자는 여러 대목과 논지를 인용하네요. 사람은 본성적으로 무엇을 판단하고, 지각과 그 상위의 판단 기제를 분화하려 든다는 겁니다(그 판단이 옳고 그르고는 별개 문제). 이 과정에서, 사람은 단조로운 걸 싫어합니다. 또, 자신의 판단이 단조로워지는 것도 같이 싫어하며, 변화무쌍한 판단을 내리는 자신의 모습을 더 즐긴다는 거죠(실제로는 조삼모사처럼 어떤 패턴에 속아 이곳저곳을 왕복하는 것에 불과한데도). 하긴 이 주장도 메타적으로 한번 적용해 봅시다. 우리 중에 이런 결론을 누가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난 단순한 게 좋아. 어제도 오늘도 똑같은 것만 마시고 읽고 소비하지." 아무도 이런 무지렁이가 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무려 이걸 칸트가 주장했다고 하면 "거 과연 맞는 말씀일세!"라며 경탄하는 겁니다. 사실은 칸트의 입을 빌려 나온 자기 자신의 생각(ㅋㅋ)에 박수를 보내는 것뿐인데도요.

이 책을 보면 저기 조셉 캠벨의 원형, 원질신화 이론도 거명되는데, 이 저자님 평가가 뭐냐면 "탁월한 분석으로 이미 캠벨 자신이 한 원형이 되었다"입니다. 캠벨 이야기가 왜 나오냐면, (이 정도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겠지만)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가 왜 그토록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는지에 대해, 구조론적 분석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그 "히트 비결"을 논할 수 없기 때문이죠. 이처럼 이 책은 아득한 지성의 원전, 원천과,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우리 시시한 독자들의) 당대 히트작들의 즐비한 성공 사례를 종횡무진 오가면서, 지적인 욕구와 생업에의 절실한 니즈를 동시에 만족시킵니다. 이미 독자로서 제 개인에게는 이 책이야말로 원형 중의 하나로 자리잡았네요.

우리는 어쩌면 우리 자신이 다 알고 있는 결론을, 정제되고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는 저자에 더 열광하는지도 모릅니다. 너무나 낯선 컨셉은 그것이 옳건 그르건 무관하게, 대중 사이에서 배척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이런 책처럼, 다 알고 있는 내용을 핀셋으로 집어내듯 지적해 주되, 그 배후에 숨은 불편한 진실, 뭔가 감은 스치고 지나갔는데 확 잡아채질 못하고 느낌으로만 남은 것들, 요런 걸 이처럼 콕콕 짚어서 알려 주기란, 그저 후크송을 찍어내듯하는 얄팍한 속셈이나 재주만으로는 도저히 안 될 결과물입니다. 히트 메이킹의 비결은 히트 메이커한테 들어야겠으니, 히트메이커스(란 제목을 단 도서)가 진짜 히트메이커(이 책을 읽고 각성한 독자 겸 타 분야 크리에이터)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게 재미있습니다. "낯선 걸 익숙하게 만들고, 익숙한 걸 낯설게도 만들어라."

"앞서나가되 딱 반 보만 앞서나가라." 결국은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감동도 너무 재미있을 때 감동이 밀려오는 거고, 마치 다른 감정인 양 우리가, 메타적으로 포장하기 좋아하는 우리가, 그리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거죠. 남을 쉴 새 없이 재미있게 만드는 우리가 되기 위해, 이 책도 그런 소임을 충실히 다하겠다는 양 쉴새없이 재미있게 쓰여졌습니다. 애덤 그랜트도 격찬했고 미국에서 높은 판매부수를 기록했다는 이 책인데(그 사람 어느 책하고 표지도 닮은 것 같아요. 영어 원서까지), 거 그럴 만합니다. 하긴 히트 메이커를 만들어 주겠다며 자신은 히트작이 아니라면 그것도 곤란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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