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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화학 사전 - 법칙, 원리, 공식을 쉽게 정리한 ㅣ 그린북 과학 사전 시리즈
와쿠이 사다미 지음, 조민정 옮김, 최원석 감수 / 그린북 / 2017년 9월
평점 :
"알아
두면 쓸데없는 공식은 없다!" 이 책 뒤표지에 큰 글자로 인쇄된 외침입니다. ㅎㅎ 어느 특정인에게 설령 쓸모가 없다손 쳐도,
인류 전체에게는 너무도 요긴하고 고마운 공식들이었기에 우리가 네 발로 대지를 딛고 살던 미미한 존재에서 여기까지나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오늘의 자신을 만들어 준 여러 직, 간접의 기여자, 은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줄 알아야 합니다. 윤리적
차원에서도 그렇고, 현재의 자신보다 반 보의 걸음이라도 매일 향상할 수 있는, 자아 실현의 목적 때문에라도 그렇습니다. 하물며,
매일매일이 미래의 자신을 설계하기 위한 소중한 시간이 될 어린 학생들이라면 말할 나위도 없죠.
책은
크게 여섯 파트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 중 1, 2, 3, 6장은 물리학 관련이며, 4장과 5장은 화학 분야의 공식들입니다. 이
중에서도 1장은 "초, 중학교에서 배운 기본 법칙"이라 제목이 붙었는데, 여기서 다루는 대부분의 사항은 물리학의 명제들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중등 과정(중학교+고등학교)의 커리큘럼에서 다소의 차이가 있는데, 우리도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의 7차 교육 과정
개편 후 여러 차례 큰 폭으로 손질되긴 했으나, 대체로 이 책의 제2~제6장에서 설명하는 내용들은 늦어도 고2 코스까지는 학교에서
다 가르치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학생 때 충실하게 공부한 분들이라면 이미 익숙한 내용이겠으나, 문제는 과학 과목을 청소년기에
그리 몰입해서 학습한 이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이죠. 제가 아는 어떤 분은 현직 변호사인데 고1때 화학 과목 중간고사 20점(물론
학교 수준에 따라 출제 난이도의 차이가 있겠지요)을 맞은 적도 있습니다. 이 정도로 똑똑한 분이 학창 시절에 그만큼 고전했을
정도면 뭐...
여튼,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물리나 화학 등의 기본 지식이나 원리는 업무 수행에 요긴히 쓰일 데가 많습니다. 이 말은, 기초과학의 소양이 부족하면,
(의외로 분야 불문하고 광범위하게) 위에서 시키는 일을 척척 못 해내고 고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도 됩니다. 이럴 때 새삼
책방에 가서 애들 참고서 사 들고 몰래 공부하기란 모냥새도 빠지고 김도 샐 뿐 아니라, 업무에 관련된 부분만 요령껏 추출해서
살피기도 무척 어렵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을 할 때 응용될 과학 지식은 그저 결론만 알면 되는 암기 사항이 아니라, 그 건조한
공식이 일상에서, 실제 공정(프로세스)에서 지니는 의미, 용도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합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생활 밀착형 서술이라고 할까, 쉽고 재미있게 일상의 예를 들어가며, 각 공식의 활용 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 제목은 "공식 사전"이라고 되어 있으나, 정말로 건조한 사전처럼 "공식"만 잔뜩 나열한 형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책의 가장 빼어난 점은, 해당 공식이나 법칙이 역사적으로 도출된 과정(이 점에서, 과학사를 공부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이 명제가
우리의 아주 가까운 일상에서 어떻게 바로 적용되곤 하는지, 우리의 상식과 감각에 비추어 타당하긴 한지를 직관적이고 쉬운 설명으로
가르쳐 준다는 데에 있습니다.
어린
학생들도, 혹 교과서에 실린 건조하고 형식적인 설명에 질려 버렸다면, 이 책을 통해 "이야기책을 통해 과학을 배우는", 보다
편안한 과정을 통해, 원리와 배경을 이해하는 공부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공부할 때, 같은 내용을 다뤄도, 때로는 시야와
내러티브가 확 바뀐 버전으로 공부하면, 내용 이해가 훨씬 편할 수 있습니다.
p31에서
설명하는 "작용반작용의 법칙"과 "힘의 평형"의 차이점 설명은, 사실 제가 중학생 시절 공부한 참고서에도 나와 있던 내용입니다.
아마도 동아시아의 여러 학습자들이 수십 년 동안 이 파트에서 비슷한 시행 착오를 겪었기에 이런 설명이 되풀이되는 거겠죠.
"작용-반작용의 법칙은, 두 개의 물체에 작용하는 두 개의 힘"이란 포인트만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사실 "힘의 평형"은 누구라도
정확히 파악하는 내용이니까요. 이 당연한 지적이 계속 반복되는 이유는, 뉴턴 제3법칙의 정확한 이해가 의외로 힘들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합니다.
p74에 나오는
"강체에 작용하는 힘의 평형 원리"에서 처음으로 "모멘트" 개념이 제시됩니다. 그간 교육과정이 여러 번 개편되었습니다만 이 파트는
주로 물리II에서 다뤄 왔습니다. 모멘트란 기본적으로 물체의 회전운동을 전제로 하여 상정되죠. 또, "강체"는 부피가 있고,
탄성체(같은 고체입니다)나 유체(액체+기체)와는 다른 고체를 말합니다. 이 개념 파악이 중요한 이유는, 이런 강체의 경우
"작용하는 모든 힘의 합력이 0"이어야 할 뿐 아니라, "모멘트까지도 같아야 함"이란 조건이 하나 더 붙기 때문입니다.
p77의
예제를 보시면 모멘트의 직관적 의미가 무엇인지, 문제를 풀면서 잘 이해되게 구성된 멋진 서술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개념이나 공식, 법칙은 그저 주어+술부로 구성된 문장이나 수식을 외운다고 내 것인 되는 게 아닙니다(그런 사람은 천재고요).
문제를 풀어 봐야 자신의 뇌세포에 타투를 새기듯 내면화가 가능한데요(감각으로 배이지 않은 지식은 지식이 아닙니다). 군더더기 없이
딱 개념 이해에만 최적화한 좋은 문제가 많이 실려 있다는 것도 이 책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다섯째
줄 ".... 그런데 원판 O2를 떼어내기 전을 생각하면..."의 뜻을 제가 좀 보충하자면, 떼어내기 전과 후가 여전히 전체
원판이 정지해 있으므로, 전이라면 당연히 모멘트가 0이고, 떼어낸 후에도 여전히 모멘트가 0이라는 거죠. 또, 왜 G에 작용하는
힘은 3W이고 O2에 작용하는 크기는 W인가? 전체 원 넓이가, 떨어져 나간 부분(작은 원)의 세 배라서 그렇습니다(큰 원 반지름
2r, 작은 원 반지름 r이므로 넓이는 네 배). 이 예제는 무게중심과 모멘트의 밀접한 개념관련성을 파악하는 데에도 아주
유익합니다.
혹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배운 지구과학 과목의 난이도에 절망했다 쳐도, 밤하늘을 올려다 보며 키운 꿈과 설레던 낭만은 영원히 자신의 마음에 남을
것입니다. 그 우주 천체의 운항 원리를 다루는 케플러의 법칙은 이 책에 3개가 다 수록되어 있습니다. 본디 지학에서 다루는
항목이지만, 기본적으로 뉴턴 역학 법칙에서 다 유도가 가능하므로 물리에서 언급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설명은 매우 깔끔합니다만,
데이타를 통한 케플러(와 그의 스승 티코 브라헤)의 귀납적 도출만 언급하는 게 (이 책의 다른 파트에서 구현된 멋진 장점에
비추어) 좀 아쉬웠습니다. 이 제3법칙은 뉴턴 역학의 기본 뼈대를 이루는 원심력, 구심력, 중력, 주기 공식 등 넷을 연립하면
자동으로(연역적으로) 유도가 되기도 하니까요. 케플러 제1법칙에 대해 보다 정확한 이해를 하려면, 이 책의 자매편인 <수학
공식 사전>에서 타원의 (두) 초점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먼저 공부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아이와
어른이 부딪혔을 때(혹은 체급이 다른 권투선수나 레슬러가 시합을 벌일 때) 왜 덩치 큰 쪽은 꼼짝도 하지 않는가? 사실
작용-반작용의 법칙 덕분에 둘이 받는 타격은 같다고도 설명합니다. 단 현실에서는 외관상 작은 쪽만 나가떨어지는 걸 흔히 보죠.
이걸 설명하는 게 운동량 보존 법칙입니다. 역시 예제를 보면, 충돌 전과 후 운동량이 (두 물체의 속도 변화를 통해) 일정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와 신기하다~" ㅎ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이런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이 법칙이 고안되었으므로 어쩜
이렇게 소숫점 단위까지 맞냐며 너무 놀랄 일은 아니죠.
마찰력에
대해서도 친절히 설명됩니다. "최대 정지 마찰력"은 정지 마찰력이란 게 그 물체에 가하는 힘과 같게 규정되기 때문에(힘의 평형
원리), 그 물체가 참다참다 못해 움직이기 시작하는 그 순간에 (내가 가해준) 힘의 크기와 정확히 같죠. 여기서도 알 수 있지만
물리학에서 말하는 힘 중 상당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구축된 가상의 힘입니다(구심력, 원심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때에도
참고서에 마찰력의 실체에 대해 "미세한 분자 구조의 맞물림"이란 해명이 있었습니다. 이게 예전에는 그저 경험적 타당성으로 제시된
설명들이, 분자, 원자 단위까지 측정이 가능해지다 보니(물론, 아주 최근의 것은 아니고 꽤 시간이 지난 성과들입니다)
이론적으로까지 말끔한 설명이 가능하게 되었죠. "이론"과 실험이 어디서 만나는 지 확인할 좋은 예도 되는데, 이 책 앞 파트에서도
자세히 가르쳐 주는 "갈릴레이의 낙하법칙"도 그렇습니다(달 표면에서 질량이 다른 두 물체의 낙하 시간을 재는 실험).
이
책에서는 일정성분비의 법칙, 배수 비례의 법칙 등을 놓고 "물질의 최소단위(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일단 일반화학에서 다루는 수준의
정의를 염두에 두죠)가 원자, 분자(성질 보존되는 한에서) 등이 이미 규명된 지금의 관점으로는 너무도 당연히 여겨지지만..."
같은 소회를 피력하기도 합니다. 과학 명제의 시대를 초월한 보편타당성과, 그에 내재한 역사성을 동시에 주목한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한편 모든 법칙이 현 시점에서 꼭 당연하게만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예컨대 p185에서는 아인슈타인에 의해 부정된
"질량 보존의 법칙"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이는 보는 관점에 따라 부정일수도 있고, 다른 현상에 대한 각각에 알맞은
다른 해명의 시도로 볼 수도 있으므로, "인문적 모호성에 기인한 말장난"에 너무 구애될 일은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를 너무 어려워하시는 분들은, p288, p306을 읽기 전에 먼저 p96을 찬찬히 살펴 보십시오. 제가 개인적으로 읽어 본 중에는 "관성계"에 대한 설명이 가장 쉽고 명쾌하게 이뤄져 있습니다.
저자
서문에는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지난시절 과학자들이 애써 일군 업적의 수확기"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기초과학의 응용 성과란
사실 범위가 무한대에 가까우므로, 이 과실은 우리의 먼 후손까지 두고두고 따 먹을 수 있겠으나(그 전에, 전쟁이라는 어리석음을
극복해야 하겠지요), 사실 현재는 그 빛나는 근대과학의 발전이 어느 정도는 한계점에 봉착한 시점이기도 합니다. 이 교착 상태를
돌파하려면, 먼저 지난 세대가 확립한 바탕 위에 확고히 올라설 수 있어야, 더 먼 거리를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의 기초 체질이
마련되겠습니다. 불변의 진리를 파악하고 익히는 기쁨은 그래서 인간이라는 種 고유의 특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