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암 박은식 평전 - 국혼의 지사
김삼웅 지음 / 채륜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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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식 선생 하면 대뜸 뭐가 떠오르십니까? 아마 입시 위주의 국사 교육을 받은 세대라면 "박은식의 혼(사상), 정인보의 얼(사상)"이라든가, "박은식의 유교 구신(求新)론, 한용운의 불교 유신론"처럼, 사항화하여 암기했던 기억도 나실지 모르겠습니다. 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항목이라면 선생이 저술한 <한국통사>라는 책 제목이 또 있겠는데요. 이때 "통"이란 글자는 보통 접하는 서술 형식의 "통사(通史)"가 아니라, 아플 통(痛) 자를 쓰는 게 독특합니다. 물론 이 책 중에도 자세히 그 의의가 기술되지만, 백암의 절절하고 비분강개한 심사와 의기와 신념을 담아, 글자 한 자를 바꾸어 독자와 소통하고자 하셨던 깊은 뜻이 담긴 작제(作題)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책에도 잘 설명되었지만, 선생은 황해도 황주 태생으로 그 출신 가문이 그리 명망이 높다거나 하지는 않은 것으로 학자들이 추정합니다. 대신 몇 대 전 선조부터 근면 성실히 축재(蓄財)하고, 자손들의 권학과 교육에 힘쓴 나머지, 선생의 존친인 박용호 님의 代에 이르러서는 넉넉한 위신을 마련하게 된 윤택한 살림을 배경으로, 학업에 힘쓸 수 있었습니다. 책에서 내내 강조되듯 백암은 어려서 바로 총기를 드러낸 유형은 아니고 다분히 대기만성형 인재였다고는 하나, 역시 책에서 서술된 여러 사실에 따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던 듯합니다. 어려서부터 한문으로 된 필수 경전을 널리 익혀 주변에서 수재가 났다며 칭송이 자자했고, 황해 감사 남정철에 의해 특선(特選)된 후 공직에 임용되었을 정도니 타고난 자질이 탁월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겠습니다.

과거에 준하는 특선 절차를 통해 공직에 나아간 경력을 봐도 알 수 있듯, 선생의 지적, 정신적 배경은 어디까지나 정통 유학 쪽이었습니다. 책에도 여러 대목에 걸쳐 청장년기(대략 40세까지)의 백암은 "이름난 주자학자"였다고 평합니다. 보통 어려서부터 수재로 이름난 이들의 학문적 지향성은, 특히 동아시아의 경우 보수적 색채를 띠기가 쉽습니다. 이슬람에서도 어려서부터 선발된 율법학자들이 주로 정통파 신앙, 교리 해석을 고집하고, 유대교 랍비들도 성향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0세기 서유럽 과학자, 수학자들 역시, 푸앵카레 등 천재적 두뇌를 뽐낸 명문대 출신에다 뉴튼식 세계관에 정통했던 이들일수록 기존의 확고한 프레임에 대해 전혀 의심을 품지 않았지요. 백암 역시 수재 출신인데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성장 배경이 뒷받침된 이였으므로 주자학적 세계관에 구태여 불편함을 느낄 이유가 없었겠습니다. 그는 특히 대원군과 대립한 사실로 유명한 당대의 대석학 화서 이항로의 수제자였던 박문일에게서 정수 주자학을 직접 교육받았으므로, 계보의 정통성에 있어서는 누가 넘볼 수 없는 위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백암은, 서세동점의 도도한 세계사적 물결 앞에, 기존의 사상과 제도 체계가 전혀 힘을 못 쓰는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고는, 대체 무엇이 부족하고 문제를 배태했기에 오늘날 청국과 우리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깊은 반성과 사색에 빠져들었습니다. 이전부터 그는 양명학이라는 (당시 기준으로는 이단시되던) 개혁 유파에 관심이 깊었고, 또래들이 속물적으로 빠져들던 (요즘 식으로 말하면 입시위주의) 지식 탐구, 암기를 경멸한 나머지, 자신만의 목표를 정하고 과시보다는 깊이를 좇는 공부에 몰두했던 분이죠(그래서 늦은 나이까지 과거합격이 미뤄졌던 겁니다). 소위 개신유학파의 거두로 거듭나게 된 건 이런 배경이 깔려 있지만, 그 전에 백암 본인의 개혁(진보) 성향이 체질적 팩터였음에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생은 청장년기 여러 벼슬을 지냈는데, 대개가 참봉직이었습니다. 녹봉이 적고 위세가 빈약하여 인기가 없는 벼슬이라 책에서는 미관말직으로 일컫습니다만, 종3품이긴 하므로 미관일망정 말직은 아니겠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 거쳐 온 직역이 기자 사당 참봉, 동명왕릉의 능참봉 등이었는데, 기자는 모화 사대 사상의 상징과도 같이 여겨졌고, 동명왕은 그와는 정반대로 진취적 민족혼의 아이콘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백암은 (책 후반부에도 여러 번 인용되지만) 만주족과 우리 배달 겨레를 한핏줄로 간주하는 입장(이와 관련, 이 책에서도 인용되는 박걸순 충북대 교수의 책을 참고할 만합니다. 참고로, 박 교수님은 백암과 출생 연도가 정확히 백 년 차이입니다)이었고, 이는 정통 성리학의 교조와는 그리 잘 맞지 않는 사고 체계입니다. 이항로의 엄격한 교리와 다산 정약용(그보다 훨씬 전대의 위인입니다만)의 실학 정신을 동시에 익히고 배운 수재의 마음 속에, 얼마나 불꽃 같은 갈등과 변증법적 대립이 이뤄졌을지 훤히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저자께서 여러 번 애석하다는 듯 느낌을 표시하듯, 능참봉 시절 백암은 동학교도들의 소요(현대적 규정으로는 혁명)를 겪어야 했습니다. 주자학자들이 대개 유지하던 태도처럼 그도 이들을 "동비(東匪)"라며 매도했고, 이후 갑오경장을 두고서는 그 주장과 정책을 두고 "사설(邪說)"이라며 경원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삼십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수구 쇄국 진영의 입장에서 별반 떨어지지 않은 신조를 계속 유지했다는 뜻도 됩니다. 그가 나이 사십에 이르러 펴낸 논설을 읽어 보면, 이 무렵에서야 결정적 회심, 대각성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백암은 일단 그 첫째가는 정체성이 "언론인"입니다. 황성신문 주필도 역임했고(그러니 위암 장지연의 후임자입니다. 단 나이는 백암이 몇 살 더 많습니다), 국망 이후에는 <독립>이란 신문 창간을 주도하여 논설도 쓰고 동포 계도와 민족 역량 결집에도 힘썼는데, 1890년대 후반 서재필 등의 독립협회가 주관한 "독립신문"이 주로 청나라로부터의 종속국 지위에서 벗어나자는 의미의 "독립"이었던 것과 달리(이 점 관련해서, 특히 이 책 p149:13에 실린 신용하 서울대 교수의 평가를 참조하십시오), 백암 주도의 신문은 명실상부 우리의 국권을 침탈한 일본을 겨냥합니다. 그는 민족주의, 불요불굴의 항일 노선에 있어서만큼은 타협의 여지가 없는 강경 노선을 취했는데요. 논설이나 저서 중에서 일본은 언제나 왜노(倭奴)로 지칭할 정도였습니다.

언론인이라고 다 문장력이 빼어난 건 아닙니다만 백암은 스승, 동료들에게서 한결같이 당대 최고의 문장가라며 칭송을 받았습니다. 위당 정인보 선생은 백암과 나이 차가 근 34년 정도인 까마득한 후배인데요. 책 후반부에 인용된 단평 속에서 그를 가리켜 "... 시중에는 백암을 두고 캉유웨이(무술변법의 주동자였다가 서태후에게 실각한 중국 정치인, 학자)의 제자라는 평도 있으나, 문장은 강유위보다 못할 바 없고 벼슬을 기웃거리는 비루함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더 위"라고 평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실제로 캉유웨이는 백암보다 겨우 한 살 연상이고, 백암과 강유위는 서로 접촉한 바 없습니다(저술이나 사상을 통해 영향을 끼쳤다는 의미겠죠). p72:5에는 이 점 관련하여 서울대 신용하 교수님의 의미심장한 평가가 실려 있습니다.

백암은 상해 임시정부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전횡으로 혼란에 빠지고, 급기야 탄핵 사태까지 불러 공석이 된 상황에서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그야말로 임시 정부의 임시 관리직으로" 제2대 대통령에 취임한 적도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 평생 자리 욕심 없이 학자로서 문인으로서 운동가로서 살아 온 그(이 책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반복되는 규정이자 문구일 겁니다)에게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는데요. 백암이 이승만이나 백범 김구보다 대략 14, 5년 정도 위입니다. 또 그 두 분처럼 기골이 장대하거나 카리스마, 리더십이 돋보이는 유형도 아니었죠. 백암은 이 직분을 그해 7월까지 맡은 후, 개헌이라는 까다로운 임무를 마치고 하야합니다. 이때로부터 몇 달 뒤, 노환으로 서거하는데 이때가 향년 67세였습니다. 책에서는 본디 건강이 좋지 않았던 체질을 거론하지만 그가 살아 온 험한 역정이라든가 당대 평균 수명을 감안하면 그리 이른 나이의 서거는 아니었겠습니다. 참고로 우사 김규식(역시 김삼웅 저자님의 평전이 출간되었고 저도 서평을 남긴 적 있습니다)도 어려서부터 그렇게 잔병, 중병치레가 잦았음에도 불구하고 꽤 오래 사신 편이죠.

위당 정인보 선생은 그의 "대통령 취임" 소식에 접하여 "... 마치 폴란드 대통령이자 작곡가, 피아니스트였던 패대래트스키의 사례가 생각난다. 학자, 문필가인 백암은 친숙하나 대통령 박은식은 낯설다... "고도 하셨는데, 이는 백암과 실제로도 비슷한 또래였던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를 두고 이른 것 같습니다. 장군 출신 독재자 필수즈키(표준 표기법으로는 피우수드스키) 대통령 밑에서 짧게 수상을 역임하긴 했으나 대통령은 지낸 바 없죠.

백암 사상의 핵심 중 하나는, 어느 겨레건 "혼"과 "백"이 있어서, 설령 "백(제도라든가 물적인 기반을 지칭)"을 빼앗길 수는 있어도 "혼"을 빼앗기면 안 되며, 이는 마치 멕시코에서 대다수 국민들이 토착민의 외형을 하고는 있으나 그 "혼"은 스페인사람의 그것이라 결코 옛 방식과 문화를 회복할 수 없음과 같다는 문장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는 인도의 예를 들면서, 비록 영국인의 지배 하에 있으나 브라만(바라문)들이 전통의 종교와 민족혼을 잘 지키기에 언젠가는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도 내다봤는데, 작금의 실상을 보면 맞는 듯도 합니다.

서문 중에도 나와있듯 김삼웅 저자께서는 이미 수 년 전 "백암 박은식 전집"을 번역, 발간하는 사업을 주도하였기에 누구보다도 이분의 평전을 쓸 자격을 갖춘 분이겠고, 독자로서 정말 알차게 읽고 많은 점을 배운 독서가 되었음을 고백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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