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아시아 - 세계경제를 뒤흔드는 아시아의 힘
KBS <슈퍼아시아> 제작팀 지음 / 가나출판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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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출판사가 KBS 다큐멘터리와 연계하여 펴 내는, 몇 년씩마다 나오는 이 기획(단, 직전 편 "미국" 권이 나온지는 몇 달 되지 않았습니다)에서, 이번 주제는 "슈퍼아시아"입니다. 동남아시아권에서 여전히 인기 높은 SM의 아이돌그룹 슈퍼쥬니어...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요. 세계의 경제 성장 동력으로서 지난 십년기 동안 신나게 가동되던 중국의 움직임과 활기가 최근 눈에 띄게 죽은 듯한 지금, 어디를 주목해야 우리 사업체의 미래가 보이겠으며, 세계의 경제 새 심장 정확한 부위를 자극해야 효과적인 제세동(除細動)이 가능할지, 다들 고민에 잠길만한 시점입니다.

이 책 제목을 다시 보십시오. "슈퍼 아시아"입니다. 대체 어디를 가리키는 걸까요? 우리의 미심쩍인 짐작은, 결론만 놓고 보면 그리 틀리지 않았습니다. 유럽의 자원과 토지(본디부터 빈약하고 협소합니다), 상상력과 활기와 창의력은 고갈된 지 오래입니다. 끝도 없을 것 같던 미국의 부존자원과 광활한 토양도 어느새 인종과 계급, 신념과 지향성의 갈등 끝에 슬슬 그 한계가 보입니다. 반면 아시아는 아프리카처럼 정치적, 군사적, 사회적 갈등이 극심하지도 않고, 특히 동남아시아는 최근 지도층이 실리 위주의 약아빠진 정책을 본격 구상하면서 사회 제 세력 간 타협이 이뤄지거나, 혹은 (지난 수백년 간 그야말로 죽어라 싸워 왔던) 인접국 간의 대립이 서서히 완화되는 추세입니다. 여기에, 노련한 중국 공산당(여튼, 이 책을 보면 그런 느낌을 부인할 수 없군요. 산전수전 다 겪은 장사꾼 트럼프도 그들의 수완에 혀를 내두르지 않았습니까)이 이 지역 정세에 개입하여, SOC 건설 비용을 대면서 무역 편의를 추구하거나 장기적 관점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추세입니다. 무엇보다, 살벌한 국경 분쟁과 자연 지형의 장애물들이 해소되고 나니, 라오스, 캄보디아 사람이 태국 회사에 다니며 월급을 받는가 하면, 미얀마와 태국의 국경에서 "관세 없이(이게 얼마나 중요한 팩터인지요)" 농민들이 장터를 열어 물품을 거래하기도 합니다. 동기가 무엇이 되었건, 지금으로부터 한 세기도 넘은 이전부터 서양 기업과 정치인들이 꿈꾸던 "자유 무역"의 이상이 지금 전혀 뜻밖의 환경과 원인으로부터 현실화되는 중입니다. 이러니 "슈퍼 아시아" 소리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이상하게도 우리는 중국을 제외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 현재 한창 개발이 진행 중이며 이제서야 부존 자원 등 자신의 장점에 주목하기 시작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물론 일반 대중이 그렇다는 거고, 눈 밝은 이들은 이미 십여 년 전부터 현지에 진출하여 최대한 선점과 친숙해짐의 이익을 누리려 애써 왔습니다. 예컨대 라오스에 일찍 관심을 지닌 이들은 "적은 인구와 광대한 영토..." 같은 말을 합니다. 인구가 적은 건 그러려니 하는데, 그 좁은 동남아시아 구석에 박힌 나라가 클 데가 어디 있어서 영토가 광대하다고 하나? 뭐 이런 의문을 가볍게 제기할 만큼 우리는 무신경하고 그들에 대해 무지합니다. 객관적으로 라오스는 한반도 전체와 맞먹을 만한 영역이고, 그 중엔 개발과 번영을 기다리는 자격 갖춘 토지가 상당수인데도 말이죠.

오늘도 신문에 그런 기사가 났습니다만, 인공지능 분야에서 한국은 내내 제자리걸음인데 중국은 그간 의미있는 발전을 거듭한다고 합니다. 여태 짝퉁 수출로 종잣돈을 모았을 비천한 과거를 지닌 그들이지만,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고 그들은 그간 전망 있어 보이는 온갖 분야에 투자하여 여튼 외관상으론 의미 있는 결실을 낸 듯 보입니다(얼마나 내실까지 갖췄을지는 또 다른 평가가 이뤄져야겠습니다만). 이런 최첨단 분야의 혁신은 별개로 하고도, 최근 중국은 그저 노동집약적 구조의 이점에 얹혀 편한 길을 간다는 외부의 선입견을 보기 좋게 비웃기라도 하듯, 생산 자동화와 공정 개선을 통해 전에 없던 세련되고 효율적이며 지속 가능 발전 양상을 갖춘 모습입니다. 중국은 이제 우리가 알고 비웃던 예전의 중국이 아닌 셈이며, 책에 나온 대로 "쫓아가는 중국이 아닌 앞서 나가는" 퍼스트 무버가 슬슬 되어가는 셈입니다. 우리로서는 참 조바심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죠.

인도는 어제도 뉴스에 난 것처럼, 히말라야 인근의 지정학적 구도를 놓고 중국과 영원한 앙숙일 수밖에 없는 사이입니다. 이런 인도도 십여년 전 유능한 경제학자 출신 총리가 이끌던 고도 성장 추세가 한풀 꺾이고 그간 주춤한 기세 같았으나, 우리가 모르는 새 내실을 다지고 있었습니다. 인도 하면 무작정 실리콘 밸리로 그 나라의 최우수 인재들이 떠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세 얼간이>에서 보듯 무작정 주입식으로 공학 지식을 머리에 쑤셔 넣고는 원치도 않는 장래에 투입되어 신분 상승이나 바라는 이미지가 대부분이었습니다만, 어디 그런 불안정한 도약기에 내내 머물라는 법이 있겠습니까. 이제는 내수가 뒷받침되고, 미국에서 충분히 수련받은 IT 인력이 다시 돌아와 지식 산업을 이끄는 반면, 제조업은 그것대로 다시 도약의 기회를 맞았습니다. 미국처럼 제조업 전반이 침체하고 너무 서비스업(아무리 첨단 고부가가치라도)만 발달해도 문제이고, 산업 전반이 이처럼 균형 있게 발전해야 비전이 생깁니다. 이제 중국처럼 "우주 개발"이라든가, 여타 선진국처럼 바이오 섹터에도 광범위한 투자가 이뤄진다고 하니 앞으로 이 거인의 웅비 행보가 기대되는 형국입니다.

인도차이나는 일단 프랑스가 그렇게 쥐고 놓지 않으려 했던 게 다 이유가 있을 만큼 풍족한 자원, 광대한 영토가 기다리는 기회의 땅입니다. 이런 나라들도 이제 자신들의 조건이 얼마나 유리했는지를 늦게서야 깨닫고, 부족 간 국가 간 상쟁(얼마나 치열하고 잔혹했는지는 역사를 공부해야 알 수 있습니다)을 멈춘 채 상생의 길을 도모합니다. 특히 주목되는 건 미얀마인데, 이 나라야말로 영국이 인도 못지 않게 공을 들여 식민지 경영에 나섰던 역사가 있죠. 그간 군부가 무능하게도 기득권만 유지하려고 철저히 쇄국 정책을 폈습니다만, 아웅산 수지 여사와 타협이 이뤄진 것도 "우리 잠재력을 이용해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데 이대로 가면 망할 뿐이다"라는 위기의식이 이제서야 공유되었기 때문이죠. 하나 우려스러운 건 소수민족에 대한 인권 탄압인데, 묘하게도 이 부분은 중국의 비호를 받아 국제 사회에서 유야무야 되는 느낌입니다. 사회간접자본 역시 중국의 대거 투자가 이뤄지는 양상인데, 이를 이용해 지역적 영향력을 지나치게 확대하려는 야욕을 현 지도층이 얼마나 잘 통제할 수 있을지 우려됩니다.

아세안은 또다른 정치단위입니다. 과거부터 이 국가간 협의체는 동작해 왔습니다만 그간 각국의 의견차가 커서 제 구실을 못하다가, 최근 이 지역이 새로운 경제 동력으로 부상하고, 이제서야 대화와 타협, 협력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지 각성한 모습이죠. 여기에도 최근 거두어진 중국의 성공에 자극 받은 바가 크다는 생각입니다. 일단 이곳은 일본, 인도, 유럽을 잇는 항로가 반드시 거쳐야 할 요충지이고, 최근 문제가 된 남중국해와도 인접해 있으므로 물류의 허브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많은 인구, 갓 성장하기 시작한 중산층이 두텁다는 구조 덕분에 세계 최대의 단일시장으로 꼽히기도 하죠. 이 책(나아가 방송 프로그램)이 한마디로 규정한 성격은 "넥스트 차이나"입니다.

이런 최근의 놀라운 발전상이 가능했던 건, 역시 중국 자본이 지원해 주는 SOC의 확충입니다. 인프라 하나가 깔리고 나서 얼마나 경제 활동이 수월해졌는지 지역 주민들이 그 효과를 알아 보는 거죠. 허나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는 옛 속담이 재현되는 꼴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기회를 잡으려면 일단 현지화에 성공하고 참된 믿음을 얻어야 하는데, 중국인들이 과연 그 과제를 잘 해나가는지, 아니면 또다른 제국주의적 모순을 키워 나갈 뿐인지는 의문입니다. 우리는 어설픈 우월감을 가질 게 아니라, 제국주의적 침탈의 아픈 역사를 그들과 공유한다는 일종의 연대의식을 키우며, 함께 공영 공존의 마인드를 성숙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없는 자원과 토지의 이점을 나누며, 우리의 경험과 자본을 그들에게 베풀며 이웃으로서의 위상 매김을 이루는 길이, 이들이 품은 방대한 이점을 최대한 우리 것으로 흡수하는 방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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