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놀란 한국의 과학기술
그레고리 포코니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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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발전상에 대해 외국인들이 놀라 감탄하는 평가를 들을 때 우리의 반응은 대개 둘로 갈립니다. 하나는 지극히 자연스럽지만 "뿌듯함, 긍지" 비슷한 느낌이 드러나는 미소이겠고, 다른 하나는 "언제는 그렇지 않기라도 했는지?' 같은, 예의만 간신히 갖춘 어색한 긍정입니다.

이런 놀라운 발전을 이룬 건 물론 우리 국민 모두 애써 노력한 결실이겠으나, 그 중에서도 특히 남다른 재능과 열정으로 훨씬 큰 기여를 한 분들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 성과와 업적이 당사자 개인의 여유와 명성에 그치지 않고, 한국인, 나아가 전 인류의 복리와 번영에 이바지하는 과학, 기술, 의학 섹터에서 이뤄졌다면, 이는 각별한 경의와 찬사, 존경, 기림이 바쳐져야 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의 부강한 조국이 이 정도까지 오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운 저 놀라운 애국자들, 혹은 천재적 지식인들에 대해 과연 얼마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을까요? 혹은, 그 정확한 이름 석 자와 업적을 채 인식이라도 하고 있을지요?


이 책은 모두 네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천문학, 정보통신기술, 의학, 그리고 지식정보입니다.

첫째 파트 "천문학"에서는 우리의 예상대로 세종 대의 천재 과학자 장영실, 이순지, 혹은 훨씬 이전 신라시대로까지 거슬러올라간 "세계 최고 수준의 천문측량기술" 등이 언급됩니다. 당대의 우리 조상들이 향유하고 구사하며 발전시킨 모든 테크놀로지가 다 순수하게 우리겨레의 기여는 아니었겠지만, 여튼 우수한 두뇌와 집요한 탐구정신을 지닌(이런 규정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하겠습니다) 조상들은 자신들의 삶을 풍요롭고 의미 있게 가꾸는 수단으로 아낌없이 이 기술과 인식틀을 활용했습니다.

이런 우리 조상들의 업적에 대해 서양에 최초로 알린 분은 윌 C 루퍼스라는 학자였는데요(어떤 목적으로 한국에 왔건, 미국인들 중 이런 호감과 선의로 무장한 이들이 꽤 많습니다. 일부의 예만 보고 괜한 피해의식을 갖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이분이 길러낸 빼어난 석학 중 한 분이 바로 이원철 박사입니다. 일제 강점기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맥동설"의 주요 이론적 지지 기반을 마련했으며, 일본인들의 조선문화 훼손, 자료 밀반출에 항의하며 군정 총책 하지 중장을 면담한 게 계기가 되어 이후 타계시까지 한국 천문 행정의 큰 어르신으로 뚜렷한 공직 봉사를 하신 분입니다.


이런 분의 업적을 발판으로, 한국의 우수 천문학 연구진들은 "두 개 이상의 항성을 공전하는 행성"의 존재가능성에 대해 종래의 통설과는 반대로 긍정적인 논변을 개진했으며, 세계 최초라는 영예는 미국 NASA 측에 뺏겼지만(좀 치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파트의 집필자인 토비아스 힌제(책에는 "힌세"라고 표기되었습니다) 같은 독일 등 유럽 학자들에게는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일제 시대 간악한 식민 통치자들의 횡포 때문에, 학자들이 가진 망원경까지 빼앗겨야 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 마젤란 프로젝트에 참여한 우리 과학자들의 현황은 실로 자랑스럽습니다.

의학 분야에서는 일단 생체 장기 이식 수술 분야에 큰 업적을 남긴 장기려 박사의 일화가 나옵니다. 성인과도 같았던 장기려 박사님의 일생에 대해서는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도 자세히 배웠는데, 상대적으로 잘 몰랐던 이호왕 박사님의 이야기가 제게는 더 인상깊게 다가왔습니다. 소개를 보면 과연 명문의 혈통에서 이런 우수한 인재가 나옴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넉넉한 지주 집안의 후손이었지만 해방 후 무모한 김일성의 공산화 조치 때문에 한순간에 모든 걸 잃고 빈한한 환경에서 학업을 이어가게 되었지요.

한국전 당시 UN군이나 중공 측 모두, 상대가 생체 무기를 쓰지 않았나 하며 비난을 할 만큼(이 책 중의 표현입니다. p104), 이상한 출혈열의 유행으로 장기가 훼손되어 죽는 병사들이 늘어나 세계적인 미스테리가 되었지요. 세계 의학계가 모두 매달려 원인을 밝히려 애썼으나 무위에 그친 걸, 1976년 이호왕 박사님이 드디어 들쥐의 "폐"에서 바이러스를 발견, 세계가 놀라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제가 유감인 건, 쓸데없이 정치인 등에 대해서는 불건강한 맹종 태도를 보이면서 이런 위대한 업적을 이룬 자랑스러운 한국인은 그 존재조차 모르는 몰지각한 시민들입니다. 이 정도 업적이면 당시 미디어에서 엄청 큰 뉴스로 취급했을 텐데, 현재 이호왕 박사님의 이름을 아는 국민이 몇이나 될까요? 당장, 변변치 못한 자신의 건강이 그만큼이나 유지되는 것도 이런 분들의 업적에 크게 기대고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일상의 은혜를 모르는 자가 도덕, 윤리를 입에 올리며 정치 현실을 개탄하는 모습도 참 우습게 보입니다. 참고로, "한타박스"의 효능에 대해서는 일각에서 여전히 회의를 표시하기도 하지만, 이런 독보적 업적에 대해선 비판 못지 않게 응원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IT 분야는 최근 다시 글로벌 수준에 크게 뒤떨어진 현황이지만 여튼 정보통신 혁명 초반기에 한국이 이뤄나간 광폭 행보는 대단했습니다. 이 책은 그레고리 포코니 박사의 책임집필을 통해, 특히 대단지 아파트가 좁은 도심, 부심에 밀집해 있는 한국적 현실이 IT 투자 조기 회수에 크게 이바지한 점을 독자에게 부각합니다. 1982년 체신부 차관으로 봉직하며 이후 십년기 한국의 눈부신 발전을 이끈 오명 씨를 특히 언급하는데요. 이분은 YS 정부에서 커리어의 절정을 맞이했죠(진대제 씨가 노무현 정부에서 전성기였던 것과 비슷하게). CDMA 기술은 흔히 우리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잘못 알고 있는 이들도 있는데, 정확하게는 세계 최초의 상용화입니다. 이 기술의 직접 적용 분야가 PCS 폰입니다. 그래서 당시 그토록 저렴한 비용(10초에 18원~19원대)로 대중 사이에 널리, 급속도로 퍼질 수 있었지요. 그전 냉장고 셀룰러폰은 요금 폭탄 때문에 누가 함부로 쓰지도 못했습니다. 이게 아니었으면 1990년대의 초호황, 그것이 이끈 신세대 문화 트렌드 같은 건 발생하지도 못했겠으며, 외환위기 당시 재기의 여지도 없이 최후진국으로 침몰하고 말았을 겁니다.

"한국 사람들은 빨리 변한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에요." 이런 융통성 강한 민족성이 한때 IT 강국 도약을 이끌었던 동력이란 점, 우리뿐 아니라 세계가 공감하는 대목입니다. 린 일란 서울대 교수(미국인이라고 하는군요)는, 이런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기질이, 세계적 대세이자 4차 산업혁명의 동력인 "지식기반 산업으로의 대거 이행"을 이끌 것으로 전망합니다. 자라나는 세대가 이런 지식 기반 산업의 역군으로 배출되려면, 먼저 우리 한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누가 가장 큰 기여를 했는지, 그 롤 모델에 대한 바른 인식이 자리잡혀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누굴 본받고 따라하려 노력합니까? 우수한 인재는 과연 어느 섹터로 과잉(혹은 과소) 진출하고 있습니까? 나라의 미래는 첫째도 둘째도, 지식 기반 인프라, 그 중에서도 과학기술의 창달 분야가 어느 정도 지원을 받는지를 보고 점칠 수 있습니다. 당신은, 혹은 당신의 자녀는, 한국이 만들어내고 세계가 놀란 과학기술의 선구자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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