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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문화의 무지개다리 - 한.일 영원한 우호를 위하여
이케다 다이사쿠.조문부 지음, 화광신문사 옮김 / 연합뉴스동북아센터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두 문화권, 혹은 두 국가가 치열하게 대립하고 서로를 증오하는 비극이 좀처럼 잦아들질 않을 때, 이의 화해와 타개에 나서야 할 이들은 첫째가 과거의 원한에 물들지 않은, 순수하고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볼 수 있는 청년들이겠고, 둘째가 이성과 냉철한 판단에 근거해 사태를 파악할 수 있는 지성인들입니다. 이 두 집단마저 구원(舊怨)에 사로잡혀 눈이 멀어 있다면,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관계 설정은 거의 가망이 없다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 과연 한-일 양국의 현황은 어떤 편이겠습니까?
이 책은 일본의 영향력 있는 명사인 이케다 다이사쿠 회장, 제주대학교 전 총장을 지낸 조문부 교수 두 분의 대담집입니다. 지식인들이 만나 대담을 나눌 때도 마냥 우호적이고 이지적인 톤과 분위기에서 말이 오가는 게 아니라, 때로는 시정 잡배보다 더 험악한 대립상이 빚어지기도 합니다. 허나 이 책은 두 연로하신 명사 사이에 시종일관 훈훈한 덕담과 서로를 이해하는 온화한 배려와 전망이 주고받아집니다.
이유는 첫째 이케다 회장이 (넓은 의미의) 지한파인 까닭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는 스스로 밝히길 부친(당연히 일본인)이 징병 조치에 의해 서울(제 추측에는 국권 상실 훨씬 이전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 이미 임오군란 전후로만 해도 일본 병력이 한양에 주둔한 적이 많았으니)에서 병역에 복무한 경험(부친에게서 전해 들었을)을 술회하는데,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등 한국 속담을 자연스럽게 입에 올릴 정도로 친근감을 느낀 분이었다고 하네요. 1차 대전 당시 전선 주변에 마련된 참호 속에서 죽음에 이르는 대치를 벌인 독- 불 양 군이었지만, 합의 휴전 시기에는 서로 담배도 교환하고 농담도 하던 게 양국 젊은이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투옥된 안중근 의사의 높은 의기와 됨됨이를 사모하여 각종 배려를 베푼 게 어느 일본인 교도관이었으며, 강점기 시절 인권을 침해 받던 조선인의 처지를 동정하여 현해탄을 건너 무료 변론에 나선 일본인 변호사분도 있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비록 소속 집단이 적대할망정 국지적으로는 개인 간에 은근한 정도 싹트는 게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런 걸 일절 부정하고 증오와 대립만 부추기는 자는 민족 구성원의 자격을 따지기에 앞서 벌써 사람이 되지 못한 말종입니다.
그래서인지, 책은 분위기가 훈훈합니다. 물론 훈훈한 덕담만 오가는 게 아니라, 두 노장 지성인(이라고는 하지만, 이케다 회장의 연세가 조 총장님보다 열 살 가까이 많습니다)들은 그간 인생의 관록을 통해 한국과 일본 고유의 민족성, 역사, 사회 구조적 특성에 대해 깊은 성찰을 거친 분들이라, 서로 처한 입장이 다를지언정 "심심상인격으로 말이 잘 통하는" 관계입니다. 책에는 이케다 회장과 이어령 (당시) 문화부 장관이 27년 전 어느 공식 석상에서 조우하여 악수를 나누는 사진도 실려 있습니다. 사진을 보면 이어령 선생이 보다 젊어 보이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어령 선생은 지금 이 책의 조문부 총장님과 비슷한 또래이기 때문이죠. 남자 나이 이 즈음만 해도 누가 연상이고 연하인지는 시각적으로 분명하게 구별이 되는데, 안타깝지만 일흔만 다들 넘기셔도 특별한 경우 아닌 이상 젊은이들 눈에는 그저 친구처럼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이어령 선생이 괜히 언급되는 게 아니라, 젊은 시절 날카로운 탁견으로 일본인 고유의 행동 특질과 정신적 개성을 분석하여 문명(文名)을, 그것도 일본 현지에서 얻은 분이었기에, 지금 한 일 양국의 정치사회적 실태, 그 저변에 깔린 역사적 연원을 분석함에 있어 그분의 담론, 혹은 존재 자체가 빠질 수 없습니다. 조문부 총장은 대체로 당신 본인의 지론을 독자에게 담담히 들려 주지만(형식은, 물론 이케다 회장과의 대화입니다만) 여러 대목에서 이어령 선생의 견해를 인용, 원용합니다.
이 중에는, 국경이 곧 천하의 경계선이었기에 소속 집단의 대의와 명분을 바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자아가 아닌 자신을 절단해야만 했던(요 대목만큼은 이케다 회장의 표현입니다)" 융통성 없는 민족성을 왜 일본인이 가질 수밖에 없었던지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전후 시바 료타로 같은 작가도 "융통성 없이 외골수로 자기만의 이상에 매몰되어, 2차 대전 같은 무모한 도발을 감행한 군국주의 세력"에 대해, 사실 반성이라기보다는 미국인들 보기에 창피하다는 쪽의 각성을 여러 번 토로하는 걸 봤는데, 그냥 제 개인 생각이지만 역시 일본인은 도덕적 참회보다는 "수치심"을 더 중시하는 정신 구조인 듯합니다. 그게 과연 "융통성"의 문제이겠냐 하는 점에서요.
한국인의 특성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분석을 두 분은 주고받습니다. 일단 한국에선 가업을 일으켜도 그게 가족 사이의 관계입니다. 사업도 우리 집안의 화목과 번창을 위해 벌이는 것이므로, 일과 가족 둘 사이에 우선관계가 당연히 혈연의 끈끈한 재확인 쪽에 놓입니다. 사업이라는 게 당연히 가족과 집안 안에서만 범위가 끝나는 게 아니고 사회에 경계와 교차 부분을 확장하는 것인데, 사고 방식이 이러니 기업 내 정실, 부정, 비리가 그칠 날이 없습니다. 세금은 으레 정직하게 내지 않고 빼돌리는 게 원칙(?)입니다. 반면 일본은 일, 가업이 우선이고 그를 중심으로 자녀를 훈육한 후 계승시킵니다. 서양의 비즈니스 제도와 문화를 이어받을 때 이 점이 특히 유리하게 작용했으리라는 게 조 총장님의 견해인데, 아니나다를까 내내 "코리아 디스카운트"되던 한국 기업, 특히 삼성 등의 주가가 "사주가 투옥되고 나서" 내내 상승 행진인 것도 외국인이 이제서야 뭘 믿기 시작했다는, 그래서 기업의 진짜 가치를 평가해 주기 시작했다는, 대단히 씁쓸한 해석도 부각되는 게 사실입니다.
남북한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정립될 것 같습니까? 라는 질문에, 십여 년 전 조 총장님은 "그건 중국의 장래에 달려 있다"고 답하셨다는데, 이 부분에 대한 더 심화된 논의랄까 고견이 전개되지 않아 저 개인적으로는 그게 좀 아쉬웠습니다. (책의 주제와 의도가 그렇다보니 어쩔 수 없죠) 이케다 회장이 남북한에 대해 고루 보이는 관심, 한국(남북 모두)이 평온하고 번영해야 일본도 안정된 장래가 보장될 수 있다는 평화주의적 세계관이 특히 돋보였습니다. 한일 양국이 서로의 좋은 점을 보고 우의를 다져야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는 절박한 인식을 공유하며, 무엇보다 젊은 독자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