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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스 ㅣ 버티고 시리즈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애 둘이 딸려 있는 당신, 그 부인은 사랑스럽긴 하나 별다른 생활 능력이 없는 평범한 가정 주부일 뿐인데, 어느날 갑자기 정리해고를 당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면, 당신은 아마 꽤나 절박한 심정일 겁니다. 처음부터 직업에 대한 강한 애착도 능력도 갖지 못하고 반쯤은 허공을 떠다니는 현실 도피자 마인드(이런 사람이라면 가족에 대한 책임감도 없습니다)라면 모르겠으나, 이 소설 속의 주인공 버크 데보레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리에서 일을 잘하던 사람인데, 회사의 사정으로 이 꼴이 된 겁니다.
배경은 1990년대 후반 한창 미국 업계를 덮치던 사무자동화 트렌드(당시 경영학과에서도 열을 내며 학생들에게 가르치던 토픽이죠)가 초래한 대량 해직 사태를 메인으로 삼습니다. 이 소설을 읽던 독자 중 혹시 서두(주인공 버크의 1인칭 독백)를 꼼꼼히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 이거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양산되던 그 실업자 그룹에 속한, 중산층에서 상류층으로의 상승에 대한 꿈이 갓 좌절된 세대 이야기구나 하고 착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게 아니고 혹 1920년대 대공황기를 배경으로 창작된 각양각색의 실업자 소재 미스테리인 줄 오인하는 독자들도 있겠죠. 허나 이 장편(조금 분량이 짧습니다만)은 그 중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그 사이에 낀 1990년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어쩌면 그 두 메가트렌드 스타일과 이처럼이나 닮아 있을까. 점점 드물어지는 자본주의의 호황기, 만성화된 경기 침체와 저성장, 이런 현실을 어느덧 필연으로 수용해 가는 대중에게, 어느덧 분노한 실업자, 중산층에서 하류층으로 떨어지는 중 가정을 지키려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1인칭 화자의 사연이 더 이상 예외가 아닌 보편상에 가까움을, 어쩌면 이 작품은 성공적으로 납득시키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판단과 선택은 독자의 몫입니다.
실업자가 궁지에 몰려 범죄의 나락에 한 발을 담그는 진행은 (앞에서도 말했듯) 일찍부터 (다시는 그런 시절을 겪고 싶지 않다는 듯 진저리치는 대중에 의해) 미스테리 장르물의 인기 높은 소재로 이미 부상했던 적 있습니다. 근데 이 작품은 그런 익숙한 경로를 밟는 게 아니라(즉 누가 마련해 준 범죄 음모에 소소한 도구로 쓰인다는 식이 아니라), 이 주인공이 적극적으로 자신이 세운 플랜에 의거하여 사람들을 해친다는 게 특이합니다. 무슨 동기로, 누굴 해친다는 걸까요? 다름 아닌, 자신이 이력서를 제출할 회사에, 같이 지원하여 경쟁자가 될 만한 이들입니다. 혹은, 자신보다 하등 나은 자격을 못 갖췄으면서 그 자리만 차지하고 앉은(주인공 버크 본인의 독특한 해석, 혹은 인지입니다. 누구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죠), 따라서 자신에게 그 자리를 내줘야 마땅한 기 취업자들을 죽이려 다닙니다.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 여튼 이 작품의 메인 플롯이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취업난에 신음하는 한국의 젊은이들도, 옆에 면접 보러 온 경쟁자들에게 "너(희들)만 좀 어디가서 죽어줬으면 내가 당장 합격이 될 텐데." 같은 생각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텐데, 여튼 젊지도 않고 먹여 살려야 할 입만 잔뜩 딸린 주인공 버크는 이처럼이나 놀라운(어찌보면 기발하기까지 한) 망념에 사로잡힙니다. 헛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지금 버크 데보레 씨는 매우 진지하고, 이 길만이 사회에 폐를 최소한으로 끼치면서 동시에 자신이 자신의 긍지를 지키면서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작가도 그런 의도로 이런 집필 방향을 잡았겠습니다만, 주인공은, 더 이상 사회 시스템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핑계를 잡아, 부당한 방식으로 남의 부를 가로챈다며 재산가들로부터 직접 돈을 탈취하고 다니는 소위 "의적"으로의 비화보다는 이 방식이 훨씬 온건하다고 여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 체제 전체를 부정하기보다는 몇몇 개인에게 흠을 잡는 편이 훨씬 부담이 덜하기도 하겠고요. 제가 짐작하기로 더 합당한 이유는, 시스템 전체를 적으로 삼기보다, 자신의 앞길에 장애가 되는 몇몇 개인을 응징하거나 제거하는 편이, 응보와 추적의 손길(공권력)에서 도피하기에 훨씬 편하다는 이유도 있었겠습니다. 실제로 그는 처음에 저지른 몇 건의 살인을 성공적으로 은폐했고, 아 이거 해 보니 할 만한 노릇이구나, 내가 감당 가능한 영역이구나 같은 어이없는 확신도 체득했을 법합니다.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나는 이처럼이나 체제에 순응하고, 그를 긍정하는 성실한 사회인이다. 부적격자를 제거하여 회사의 비능률요소를 함께 없애 주고, 더 유능한 나를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서로가 윈-윈하는 결과를, 다소 비상식적이며 긴급한 방식으로 이루려 했음이니, 어느 누가 나를 범죄자라며 비난하겠는가?" 신랄한 반어법으로 모두가 모두를 적대하고 갉아먹는 신자유주의 트렌드를 비판하려 했음은 어느 독자라도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웨스트레이크는 스타일리시한 문체와 개성 있는 구성으로 오래전부터 독자를 매혹해 온 전업 장르물 작가입니다. 그런 그가 어쩌면 시대를 앞서간 안목으로, "궁지에 몰려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은 실업자의 킬러 변신기"의 기괴한 행각을, 의외다 싶은 뚜렷한 주제의식까지 겸해서 이렇게 한 편의 소설로 빚어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은 예전 80년대 학번 어르신들이 익숙해할, 사회 비판 성향의 감독 코스타 가브라스(<Z>, <계엄령> 등이 유명하죠)가 십 년 전쯤 영화화하기도 했는데(그 다운 선택이죠?) 설정들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제지회사의 중견 관리직으로서 소설 곳곳에 배어 있는 업계의 디테일도 제 눈길을 끌었는데요. 당시 한국의 한솔제지도 삼성그룹에서 갓 독립해 나와(예전 상호:전주제지) 공격적인 경영으로 주목을 받았었거든요. 신기술에 관한 구체적인 묘사가, 당시 글로벌 규모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던 해당 업계의 상황을 잘 반영합니다(이런 거 보면 진정 작가는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죠). 여담입니다만 한솔은 이 기세와 성과를 발판 삼아 PCS 이동통신업에도 진출했으나, 그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였습니다. 만약 잘 되었다면 그 사세가 지금의 CJ를 능가했을지도 모릅니다.
웨스트레이크의 평소 스타일대로, 어쩜 이런 순간에 이런 기괴한 상황과 공교롭게 맞닥뜨릴 수 있을까? 싶은 희한한 장면들이 대거 삽입됩니다. 예를 들면 버크는 잠복 중 뜻하지 않게, 자기 어린 딸(질이 안 좋은 여대생)을 스토킹하는 어느 교수로 오인받아 그 어머니에게 항의를 받는데,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황당하기로는 지금 자신이 저질렀거나 저지르려는 범죄의 동기가 훨씬 더하죠) 여튼 이런 결정적인 목격자를 남겨 둬서는 안 되겠으므로 그 부부를 모두 죽여 버립니다. 부잣집에서 잘못된 성장 과정을 거쳐 "내 부모가 모두 죽고 유산으로 편히 살았으면" 같은 미친 생각을 품는 여성은 소설 속에(간혹 현실에서도) 자주 등장하는데요. 여기서 버크가 우연히 마주진 케이스도 그러합니다. 그 딸은 귀찮은 늙은이와 성가신 부모가 몽땅 죽어나갔으니 이런 대박이 또 없다 여기며 쾌재를 부릅니다. 버크 역시 딱 의심 받기 좋은 용의자가 알맞게 자살까지 해 줘서 살인 혐의를 말끔히 벗습니다(이 건에 한해). 여기서 그의 심리 묘사에 주목해야 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여인이었던가. 이 역시 죽어서 아까울 게 없는 인생이었으니..."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합리화에의 한계가 없는 듯한 정신입니다. 루신이나 니콜라이 고골 등이 일찌감치 정착시킨 "광인 일기"류를 엿보는 느낌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