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머니 - 자본은 어떻게 정치를 장악하는가
제인 메이어 지음, 우진하 옮김 / 책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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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기 전에는 표지 이미지만 보고 작지만 두꺼운 책이겠거니 지레짐작했었는데, 막상 손에 쥐고 보니 사이즈도 큰데다 두껍기까지 합니다. "후와, 이걸 언제 다 읽지?" 어, 근데, 금세 다 읽어 버렸네요. 엄청 재미있었습니다. 재미있으면 암만 책이 두꺼워도 빨리 읽히지요. 재미있을 뿐 아니라, 유익하고, 상식이 많이 늘었으며(상식이 느는 비결은 게임 다음으로는 재미있는 책 읽기인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다는 어떤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자유"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의지에 따라 백 년 인생을 마음껏 누리고 살다 죽음을 준비해도 하는 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이 자유에 어떤 합리적인 제약, 혹은 모두의 합의를 통한 자제가 끼어들지 않으면, 모두가 불행해지기도 하는 게 현실입니다. 나도 자유롭고 너도 자유롭기를 추구하면, 결국 힘 센 자의 자유만 존중받는 걸로 나쁜 결과가 세상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법과 도덕이 어느 사회에나 필요한 건데, "자유방임주의"를 표면에 내 걸고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부도덕한 일부 기업 때문에 세상은 간혹 혼란과 무질서를 맞기도 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코크 가문, 그 중에서도 찰스 코크와 데이비드 코크, 두 형제가 그런 떳떳지 못한 흑막의 주인공들입니다. 두 사람 다 나이는 꽤 많고, 내일이라도 타계 소식이 세계의 전파를 탄다 해서 이상할 게 조금도 없는 고령자들입니다. 동생 데이비드 코크는 트럼프보다 고작 몇 살 많습니다. 이런 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날이 한참 남은 청년 세대의 미래까지 (나쁜 쪽으로) 좌우하며 검은 영향을 길고도 진하게 남기려 든다는 게, 이런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서도 한편으로 마음이 어두워지곤 했습니다.

코크 형제뿐이 아닙니다. 미국은 1990년대 들어 각종 규제 혁파를 외치며 돈의 흐름을 통제하던 그간의 법률과 행정규칙을 대대적으로 손 본 적이 있습니다. 왜 이런 법이 생겼냐면, 불건전한 투기 자본이 설치기 시작하면 질 나쁜 선동에 놀아난 일반 소액 투자자(대중)만 나중에 피해를 보고, 그 여파가 일반 중산층과 서민에까지 닿기 때문이죠. 헌데 뭔 까닭인지 "작은 정부, 최소의 규제"가 시대정신이 되다시피하며 방만한 금융 정책이 일상화되었습니다. 뒤에서 극소수의 일부 부자들이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립니다. 우리가 잘 봐 왔던 대로, 2008년에는 이 무모한 장난질이 드디어 부작용을 일으켜, 세계적 범위의 대공황 발생으로 전 지구 경제가 주저앉나 싶었을 정도였습니다(제 생각에는 오바마와 다른 나라 지도자들의 현명한 대처로 그나마 피해가 그 수준에서 멈춘 것 같지만요).

이 책에는 우리가 여태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한, 그야말로 막후에서 미국과 세계를 움직여 온 여러 부자들의 이름이 주루룩 등장합니다. 저는 처음에 "상어"라는 이름이 나와서, 와 그 이름답게 정말 나쁜 사람이겠구나 하고 더 집중해서 해당 대목을 읽었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사모 펀드의 타이쿤인 폴 "싱어"를 잘못 읽은 거였는데요 ㅎㅎ 이 사람은 트럼프보다 두 살 위고 아까 그 데이비드 코크보다는 네 살 아래입니다. 이상한 노래는 좀 그만 부르시고, 세상을 더러운 공기로 오염시킬 게 아니라 하루빨리 퇴장을 좀 하셨으면 좋겠는데, 아직도 정의를 실현시키기엔 시민과 청년의 힘이 많이 미약한 것 같습니다. ㅠ

코크 가문이 무서운 건, 그저 코크 인더스트리 한 기업, 한 가문만 이끄는 게 아니라,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정례적 회합을 통해 대기업(대체로 비뚤어진 반환경적, 반사회적 태도를 지닌) 수장들의 의사를 통일시키고 여론을 조작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어서입니다. 이 중에는 우리 귀에 익은 유수의 다국적 기업도 있습니다. 벡텔이라든가, 스티븐 코헨의 SAC라든가 하는 이름은 우리 귀에도 익은데, 대중에게 노출되고 공개된 기업은 그나마 간접이라도 사회적 통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덜 위험합니다. 진짜 위험한 건, 슈워츠먼 같은 이가 지배하는 정체 불명의 지주회사인 "블랙스톤" 같은 것입니다. 작년 롯데 경영권 승계 문제가 크게 이슈화했을 때, 뭘 하는지도 모르는 일본의 광윤사라는 작은 법인이 이 재벌 기업의 소유 구조 최상위에 서 있음을 다들 뒤늦게 알고 충격을 받은 거나 비슷합니다.

이들은 추상적으로 지구의 미래를 위협하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기업의 횡포로 쑥대밭이 된 솔트빌이란 마을의 예가 이 책에는 나옵니다. 속이 검은 기업들이 환경을 망치는 쪽으로 정계와 사회의 분위기를 조장한다 한들 나와는 무슨 상관인가 싶은 분들은, 이 책에 나오는 애팔래치아 산맥 버지니아주 방면에 위치한 솔트빌(이른바 기업의존형 촌락)이라든가, 미네소타 로즈마운트 등에서 벌어진 엄청난 환경 재앙에 관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도널드 카슨 같은 이는 오랜 시간 코크 인더스트리의 고용인으로 일하다가 치명적으로 건강을 해친 예인데, 이 역시 백혈병으로 사망한 삼성전자 노동자인 황유미씨를 떠올리게 합니다.

책이 재밌다고 한 건 좀 다른 의미에서의 씁쓸한 이유도 있습니다. 사회를 향해 탐욕의 손길을 뻗는 기업, 그 기업이 일개 가문에 의해 좌우된다면 기업의 건전성도 의심스러울 뿐 아니라 그 가문 자체가 과연 화목하겠는지 우려가 생기는 게 당연한데요. 이 코크 가문은 안타깝게도 가정사 면에서 그리 행복한 집안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형제 중 윌리엄 코크 같은 인물은, 경영권과 기타 이해 관계 충돌 때문에 예의 그 코크 브라더스에게 소송을 걸기도 했습니다. 이분은 데이빗 코크의 쌍둥이 형제이기도 한데, 다른 형제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으며 기부도 활발히 하고 보다 대중과 소통하는 쪽으로 진로를 잡아 왔습니다.

중세 왕실의 비극적 동족상잔 스토리를 방불케 하는 이런 비화가 펼쳐지는가 하면, 역시 유력 가문에 편승하여 자신만의 야망을 달성하고자 애쓴, 무려 27세 대학원생 시절부터 구체적 출세의 꿈을 품은 사연도 독자들을 착잡하게 만들며 전개됩니다. 저는 책을 읽으며 혹시 저자가 코크 인더스트리 사 쪽으로부터 소송이나 당하지 않을지 걱정되었는데요,책은 여태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걸었던, 코크 사를 상대로 맹렬한 투쟁을 벌인(코크 사 역시 그들을 상대로 법정 투쟁을 벌인) 여러 다른 고발자들에 대해서도 상세히 정리합니다. 덕은 외롭지 않고 이웃이 있다(덕불고 필유인)는 말도 생각나고, 한편으로 책이 정말 논픽션인데도 무협지처럼 재미있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책이 마냥 재미있기만 하냐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자유방임주의의 사상적 원조는 하이에크라고 봐야 하겠는데요. 이 책은 한 세기 전 자유주의 진영의 거두였던 그의 입장에 대해서도 요령껏 유익한 소개를 담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한 게, 코크 인더스트리를 비롯 보수주의 진영 연구재단이 그 영구한 뿌리를 이 사상가의 주장에 두고 있으며, 특히 책에도 나오는 올린 재단 같은 경우 "마르크스와 케인즈는 내가 보기에 차이가없다"는 유명한 언명처럼, 철저한 기업 위주의 구조로 세계가 재편되어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을 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그래서 경제사상의 거대한 흐름도 때때로 짚는데, 그 중에는 토마 피케티처럼 현재의 큰 줄기 하나를 형성해 가는 소장파 경제학자도 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우리의 현재가 서 있는 현실, 그를 설명하는 각종 경제사상 사이의 갈등과 대립점이 어디인지, 지적인 기반도 마련 가능합니다.

왜 화석 연료를 그들은 싸고돌까요? 모든 기업이 이처럼 다 지난 시대의 산업 기반에 악착같이 의존하지는 않습니다. 지난 미 대선에서 실리콘 밸리는 노골적으로 민주당 지지를 선언했습니다. 미래 세계 경제가 지식 기반 위에서 중추적으로 작동할 것임을 감안하면 코크 인더스트리처럼 전근대적 원리와 신념 위에서 움직이는 기업이 좌지우지하는 세상이 얼마나 암울할지는 더 지켜 보지 않아도 자명합니다. 젊은이들이 이끌어나갈 세상을 낡아빠진 생각이 좌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환경과 세상은 우리의 깨인 눈과 마음과 행동이 지켜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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