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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서 배우는 경영 2 - 생존하는 기업은 실패에서 배운다 ㅣ 실패에서 배우는 경영 2
윤경훈 지음 /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반면교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훌륭한 성공자의 본을 받아 잘 닦이고 빛나는 길을 따라 걷는 게 아니라, 실패한 사람의 쓰디쓴 좌절 그 과정과
결과에서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같은 교훈을 추출해 경각심을 갖는 역(逆)의 벤치 마킹을 뜻합니다. 어쩌면 성공한 기업의
사례에도 미화, 과장이나 우연한 행운의 개입이 있을 수 있고, 진짜 성공 비결은 기밀 유지나 전략적 이유 때문에 공개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실패한 조직이나 개인의 사연은 가릴 것 못 가릴 것 구별하지 않고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게 보통입니다(물론
이 역시, 과하게 그 실패자의 탓으로 모든 걸 귀인하는 결과론의 오류가 낄 수 있지만요). 성공의 길은 좁고도 드물며 (그런
성공을 거둔 이에게 한 번 찾아 왔었듯) 두 번 같은 기회가 찾아오란 보장도 없지만, 실패는 타인들에 의해 (안타깝게도)
되풀이되는 게 보통입니다.
남을
따라해서 같은 성공을 거두기는 힘들지만, 남이 잘못 밟는 길을 피해가며 같은 실패를 면하기는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꼭 대박이다
싶은 성공을 못 거두어도, 최소한 큰 실수 없이 여태 갈무리한 바를 잘 지키기만 해도 적잖이 복 받은 인생입니다. 이 책은
그래서, 치명적인 실수를 잘 피하는 "차선"의 경영법, 나아가 처세 일반의 요령을 잘 가르쳐 준다고 하겠습니다. 게다가, 솔직히
말해 사람 마음이 본디 편협하고 사악한 데가 많아서, 남의 찬란한 승승장구의 무용담보다는, 무슨 이유에서건 본디 목표를 달성 못
하고 좌절하거나 강자, 적자(適者)가 의외로 패퇴하는 이야기가 읽기에도 더 재미나게 마련이겠고 말입니다(물론, 뭘 공부하면서 읽을
때는 그런 느긋하고 안이한 자세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요)
책에는
추상적인 설교, 교훈보다, 잘나가다 갑자기 쓰러진 기업, 그 좋았던 실적, 진로와 비전을 유지 못하고 위기에 빠진 기업, 누구나
승승장구할 것으로 내다보았으나 의외의 좌절과 파탄을 맞은 기업 등 매우 다양한 사례가 구체적으로 담겼습니다. 사례의 나열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저자의 독창적인 안목으로 정리, 유형화, 일반화까지 같이 따라옵니다. 사실 사회에서 치열한 경쟁을 치르고 이제
웬만큼 단련도 되어서 현황을 날카롭게 파악하는 독자, 세상 물정에 어지간히 밝은 타입(무슨 환상에 빠져 있거나 막 우기면 현실이
되는 줄 아는 이들 빼고)이라면, 이 책의 사례만 읽어도 자동으로 교훈 추출이 이뤄질 겁니다. 아직 나이가 어려 세상의 흐름이
절실히 와 닿지 않는 독자라면, 이 책 매 챕터마다 적절히 시도되는 저자의 "교훈화"를 통해 손쉽게 소중한 지혜를 배워 나갈 수도
있겠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방대한 사례와 깔끔한 명제화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는 데 있고, 그럼에도 전체 분량은 부담없이
독자가 소화할 만한 수준임이 만족스럽습니다.
저자는
"경영철학"과 "고집"울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따끔히 이릅니다. 고집은 그저 직원들에게 지루한 교장 선생의 전교생 상대
훈화처럼만 수용되지(도 못하고 한쪽 귀로 흘러나가지)만, 경영철학은 직원들의 마인드셋과 (심지어) 사소한 육체적 동작에까지 다
스며들어 흥하는 조직의 기세를 지탱하는 에너지가 됩니다. 좀 다른 맥락에서 이 책 저자가 소개한 일화지만, 일본 오츠카
가구회사에서 부녀 CEO가 소송전까지 불사하면서 대립하다 그 굴지의 기업이 크게 사세가 기운 사례를 두고, 이처럼 CEO들의
철학과 주장이 대립할 때는 그 직원들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도 합니다. 철학이 과연 조직에 부합하고 실제 운용과 경영의 동력으로
구실하는지는, 일을 일선에서 직접 맡아 몸으로 뛰어 본 이들이 가장 잘 알지 않겠냐는 겁니다. 사실 이 역시 한국에 적용하기는 좀
무리가 있다고도 저는 봅니다만(그 정도로 조직 내 알력이 심하면 이미 정치 팩션이 다 갈려서 이전투구가 벌어지기 십상이므로 누구
입에서도 바른 말 정직한 의견이 안 나오겠으므로), 그 회사처럼 사심없이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 온 정직한 직원들이 많다면
유효한 조언입니다.(저자는 사실 두번째 대안으로, "외부 전문가의 의견 청취"를 권하는데 이 역시 너무도 많은 "외부 전문가"들이
전문성도 떨어지거니와 이미 내부의 특정 팩션에다가 나름 줄을 댄 경우가 많아서 객관성을 담보 못 합니다)
얼마
전 큰 물의를 일으킨 이케아의 경우가 자세히 소개되어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저 역시 3년 전까지만 해도 이케아의 산뜻한 전략과
고객친화적 정책을 한껏 칭송한 책을 읽고 서평도 썼습니만, 그새 그런 좋았던 이미지를 한순간에 깨버린 사고가 벌어져서 일개 독자,
서평자지만 면이 좀 안 서기도 합니다. 이 책은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소비자 대중에게 가장 공감 못 하는 기업으로 순식간에
이미지가 추락한 해당 기업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합니다. 대부분 공감합니다만, 한때 그처럼 PR에 능숙했던 기업이 어떤 경위로
이런 치명적인 패착을 두었는지에 대해, (좀 무리이겠으나) 내부 사정이라든가 경영진의 개성 변화 원인 등을 짚는 분석이 좀
따라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태생부터가 불통이었던 조직이 (당연히) 아니었다는 이유에서요.
RJ
레이놀즈의 사례는, 이른바 전문 경영인 체제가 만능이 결코 될 수 없음을 잘 깨우칩니다. 전문 경영인이라 해도, 오래 전 경영학
교과서나 경제학 해당 분야에서 간파해 온 교리대로, 소위 에이전시의 딜레마가 존재하기 때문에, 주주의 이해나 계약상 수임인(혹은
고용인)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기보다 자기만의 실속(상여금 문제, 대외 평판)에 더 신경을 쓰는 위험한 유인을 외면할 수 없죠.
예화에서 소개된 갤러웨이 회장의 경우 적극적 배임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그럴 리가요), 그저 새로운 컬러로 경영 풍토를 쇄신하려는
좋은 의도였는데도 재앙에 가까운 결말을 보고 말았습니다. 한나라 재상 소하의 전철을 그대로 밟겠다는 조참의 선택이 차라리
지혜로웠듯, 잘 된 선례는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임을 배울 수 있겠으나, 이는 최근의 트렌드인 파괴적 혁신, 즉 잘된 것이건 못된
것이건 기존의 틀은 무조건 부수고 보라는 주문과는 또 배치되는 면이 있기에, 골디락스, 혹은 중용의 처신이 얼마나 힘든지
절감하게도 되네요.
야후의 극적인
몰락은 모든 당대인의 예상을 비껴갔을 뿐 아니라 경영대중서, 자계서에서 너무도 즐겨(?) 거론하는 사례라서 좀 식상한 감이 없지
않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쉬이 납득이 가지 않는 드라마틱한 사건이라 여러 저자들의 각양각색 분석을 접하고 평하는 재미(!)가 또
있게 마련입니다. 결과론으로 무슨 말을 못하겠습니까만 일개 독자인 저도, 2001년쯤부터 야후가 구글에 검색 엔진 외주를 주고
편하게 마케팅에만 전념하는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검색창 옆에 powered by google이란 문구와 로고가
반드시 적혔더랬죠. 그때 구글은 인지도를 대중 사이에 갓 넓혀갈 시절이고, 광고도 없는 떨렁 허연 메인 화면 갖고 뭘 하겠다는
건지 우려를 사곤 했죠. 그랬던 게...). 책에서는 첫째 CEO 메이어의 능력이 전혀 기대에 미치는 수준이 못 되었다, 둘째
기술개발을 등한히한 패착이 이후 성장 동력을 완전히 꺼뜨렸다, 셋째 스마트폰 사업에 눈을 감았다 등을 듭니다. 찬동되는 바도 있고
결과론 아닌가 싶은 느낌도 있습니다.
참
재미있는 게, 미국 3대 자동차 메이커였다가 전국민의 애물단지가 된 크라이슬러는 1980년대 중반 아이아코카라는 (그 이전에
엄청난 인생의 굴곡까지 겪어 더 대중적 스타가 된) 경영자를 맞이해서 극적으로 회생, 이 사람을 미국 대통령으로 모시자는 섣부른
흐름까지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이때 회생 비결은, 아이아코카 개인의 독재였습니다. 신속히 전략 지침과 의사 결정이 이뤄지니,
현장에 대응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당연히 조직 전체에 활력이 돌고 실적도 나아지겠죠. 이걸 20년 뒤에 벤치마킹해서 큰 재미를 본 게
이건희 회장입니다. 그때 일각에선 "황제식 경영의 폐해가 아니라 그 승리"라고까지 했습니다.
이러던
게 한계에 달해서 결국 크라이슬러는 또다시(!) 존폐의 기로에 섭니다. 후임자인 로버트 이튼은 또 스타일이 극과 극으로
다릅니다. 그는 모든 권한을 하급자, 실무자에게 위임하여, 문제가 생기면 윗선에 보고하지 말고 자신의 재량, 전결로 대응하라는
파격적인 스타일을 내세웠죠. 이렇게 해서 다시 크라이슬러는 죽은 목숨을 되살리는데, 왜 이런 상반되는 방침이 성공을 거두었을까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의사 결정의 신속함"입니다. 독재자가 번거로운 자문 과정이나 토의를 안 거치고 내리는 결정이나, (그런
만능의 독재자 스타일이 한계를 드러내고, 그렇다고 다른 유능한 독재자를 어디서 모셔올 수도 없을 때) 똘똘한 실무자가 과감히 자기
책임으로 CEO처럼 중요한 결단을 내리는 시스템이 이번에는 먹혔던 겁니다. 스탈린도 독소전 당시, 전쟁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자신이 만기친람하며 나설 땐 다 말아먹었고, 주코프 같은 똘똘이한테 전권 위임을 했을 때 성과를 봤음이나 마찬가지죠. 요즘은
대체로는 이 후자가 대세인 듯 보입니다.
고정된
고립된 지침, 만능의 황금률이란 없습니다. 혁신의 시대를 맞아, 아무리 과거에 잘 작동한 시스템이라도 불과 몇 년 안에 꼭
결함과 약점이 노출되고 마는 게 거의 일상이며, 이상하게도 "저렇게 하면 망하더라" 같은 실패의 족적은 여전히 후발주자들에게
참고로 기능합니다. 이런 책, "실패의 비결"을 모아 놓은 책이 그래서 독자들에게 유용하죠. 사람이 타인의 실수는 물론, 자기
자신의 실수만 용케 피해가도 그 인생에 큰 시련과 좌절은 모면할 수 있습니다. 이 책들에 실린 실패담이, 그저 먼 데 떨어진 남
이야기가 아니라, 혹시 내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고 냉철히 자신을 반성하는 태도로 읽는다면, 책 한 권에서 정말
많은 교훈을 얻어 내면화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1권을 못 읽었는데, 내용이 좋아서 빨리 구해 본 후 좀 더 밀도 있는 공부를
이어가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