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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3년, 미국 랠리에 올라타라
양연정 지음 / 쌤앤파커스 / 2017년 3월
평점 :
정치와 경제 변수는 서로 긴밀히 얽혀 돌아가기 때문에 함께 관측하지 않으면 그 정확한 원인과 효과를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이 책은 주로 트럼프 시대 어떤 종목을 눈여겨 보고 투자 포트폴리오에 편입해 둘 지 대강의 지침을 제공하는 게 목적이지만, 어떤 프레이밍이랄까 선입견에 갇혀 빤한 사실, 팩트를 못 보고 지나치지 말라는 선의의 권유, 혹은 충고도 담습니다. 물론 저자의 제안이나 의견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지는 독자의 몫입니다.
작년 세계인들을 충격 속에 몰아 넣은 두 가지 격변의 이벤트는 영국의 소위 브렉시트 레퍼렌덤과 미국 대통령 선거였습니다. 두 정치적 고비랄까 큼직한 절차는 첫째 주류 언론 기관의 예상을 빗나갔고, 둘째 결과가 확정된 후에도 (언론과 세계인 다수의 기대에 맞게) 반대자들의 격렬한 항의 표시가 있었으나(영국에서 재투표 청원, 미국에서 이른바 "Not my president") 큰 줄기가 변하지 않고 그 나름의 흐름을 찾아가는 것, 이 두 점에서 비슷합니다. 저자는 특히 두 사건 모두, 이른바 "조용한 상당수(다수까지는 아니라도)"가 묵묵히, 그러나 매우 강한 모멘텀을 줘 가며 대세를 이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게 일시적으로 경솔한, 무지한 일부 팩션이 사고를 친 게 아니라, 그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절실히 대변하는 추세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일시적인 변동 사항이라면 교란이 걷어지고 다시 정상으로 회귀하길 기다리면 충분한데, 그게 아니라 이 자체가 하나의 뉴 노멀 트렌드라면 생각을 달리해 볼 필요가 있겠죠. 특히 투자는 개인의 소신이나 취향을 떠나 살벌한 돈 문제가 달린 이슈니만큼 더 냉정히 현실을 직시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가 비교적 길게, "트럼프 측에서 파악한 상황" 내지는 "트럼프 쪽에 유리하긴 하나 어느 정도는 팩트에 가까운 사항"을 들려 주는 건 의미가 있습니다. 순전히 투자의 전망과 향방을 가늠하려는 독자라면, 객관적 현황을 이해하기 위해 두 쪽 모두에서 뭐라고 하는지 들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는 설레설레 고개를 젓다가도, 때로는 그건 미처 몰랐으나 들어 보니 그게 맞겠다 싶은 주장, 정보 전달이 제법 피곤할 만큼 책 지면을 가득 채웠습니다.
우선 제가 그 당시에 각각 관련 서평 쓸 때도 말했지만,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속설의 힘이, 실제로 두 거대 이벤트가 종료한 후 주식시장에서 드러났습니다. 경제적 번영과 호황에 대한 기대감은, 두 시장의 대세가 모두 "이거 잘된 거임"으로 판정을 내렸고, 그런 반응이 당일 부근의 일시적 변덕으로 그치지도 않은 채 지금까지 거의 이어가는 중입니다. 유럽 통합이라는 대의명분, 소수자 포용과 관용의 미합중국이라는 모토가 아무리 소중해도, 그래서 저런 현상들을 아무리 개탄하는 관측자의 입장이라도, 적어도 왜 시장이 이런 반응을 대뜸 보이고 그 체질을 이어가는지는 좀 생각을 해 보고 뭔가 설명을 내놓아야 합니다. 이론이 현실을 귀납할 수 있어야지, 현실이 이론에 꿰어맞춰져 왜곡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영미 양국에서 불평불만이 일상인 비뚤어진 저소득층이 브렉시트 찬성, 트럼프 지지층의 주류를 이룬다는 분석에 대해서도 저자는 과장되었음을 지적합니다. 아무리 최근에 소득양극화 추세가 심해졌더라도 이런 선진국들에서 그만큼이나 특정 계층이 늘어났을 리 없고, 위에 쓴 것처럼 증시 참여자의 기대와 성향이 그만큼이나 호의적 반응을 보인 것과 앞뒤가 안 맞다는 뜻이죠. 고학력자와 고소득자 상당수는, 우호적이지 않은 미디어의 프레이밍과 독려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를 찍었다는 얘기밖에 안 됩니다.
이 책은 또한 소수인종 상당수가 놀랍게도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점도 잘 요약해서 제시합니다. 이런 뉴스는 대선 캠페인 기간 중에도 시청자들에게 전달은 되었습니다만, "이런 별난 이들이 다 있다"는 기조와 함께 보도되었기에 역시 큰 인상을 주지 못했죠. 허나 이 역시 뉴스가 채 캐치 못한, 도도한 저류의 일종이었음이 결국 판명되었습니다. 트럼프나 그들의 말을 들어 보면, "법을 지킨 이민자, 소수 인종들, 따라서 합법적 체류권을 얻어 내고 미국에서 경제활동을 이어가는 이들은, 싸잡아 불법이민자로 몰리기 싫다"는 뜻에서 그런 성향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또, 추방대상이 된 이들도 영원히 미국 땅에 다시 발을 들이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일단 나간 후 다시 법절차를 밟아 들어오라는 정책의 선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도 하네요.
물론 겉으로 표방한 말이 실제로 얼마나 당사자들의 편의를 배려하며 실천될지는 의문이긴 합니다. 저자는 "이런 정서는 우리가 조선족, 혹은 남아시아 출신 노동자에 대해 갖는 태도와 별반 다를바도 없다"고 하지만, 제노포비아는 그것이 우리 안의 것이건 바깥의 현상이건 대단히 우려스러운 경향입니다. 또한 저자는, 트럼프가 갓 취임한 현재 각종 경제지표는 대단히 양호하며, 트럼프는 호조건의 미국을 물려받은 만큼, 또 그가 지닌 각별한 사업상의 수완을 고려하면 앞으로 미국의 경제현황은 순풍에 돛 단 모습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이 논의의 단서로부터 본격 "트럼프 랠리에 올라타라"는 책의 본론이 전개됩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그 역시 전임자 오바마가 8년 동안 국가를 잘 핸들링한 유산, 업적임이 반증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도 해 봤습니다.
자본은 트럼프에 대해 호의적이고, 진보 좌파 성향의 각종 세력은 트럼프를 혐오하는 구도인가? 후자는 몰라도 전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월가만 해도 큰손 투자가 상당수는 트럼프의 노선에 대해 공개 반대를 표명했고, 시장 당국 역시 주로 트럼프 쪽에서 꺼내든 개혁방안을 대부분 거부하고 힐러리 클린턴 지지를 선언한 바 있습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타성에 젖은 월스트릿이 자기들에게 익숙한 클린턴식 처방만 옹호한 것"이라며 개혁 거부 세력으로 분류하는 쪽입니다. 이 논리라면 트럼프야말로 적폐를 청산하는(ㅋ) 개혁 주도 진영이죠. 또, 책 초반에 자세히 설명해 주듯, 팀 쿡이라든가, 베조스라든가, 그 외 실리콘 밸리의 첨단 산업 CEO들은 여러 이유에서 힐러리 클린턴 지지를 일찌감치 내세웠습니다. 이런 불리한 요소만 용케 맥락화하면, 도대체 지금 생각해도 사방이 지뢰밭이었던 트럼프가 선거에 이길 가망성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지배적인 예측은 자기 실현력 효과 때문에라도 그대로 현실로 이어지기 일쑤인데도요.
오바마가 막 취임하고 나서 혼란을 수습하고 전국을 다독이던 무렵, 소위 "환율 전쟁" 현상이 양국 사이에 벌어졌음은 다들 기억할 겁니다. 이때 쑹홍빙의 그 유명한(?) 베스트셀러도 출간되어 큰 반향을 불렀고, 세계의 기축 통화 지위를 나꿔채어 일약 패권국으로 도약하려는 중국측의 움직임이 활발했습니다. 서로 돈 찍어내기 경쟁을 벌이는 통에 결국 세계 경제는 유동성 위기만큼은 벗어났던 셈인데, 저자는 지금은 이와는 반대 현상이 물꼬를 텄음을 지적합니다. 우선 미국 달러가 추세적 강세입니다. 미국의 패권이 흔들린다는 시각이 지배적일 때 다들 금 사 모은다고 야단이었던 것 기억하십니까? 아파트 단지나 시장 골목 같은 데서 좌판과 텐트를 세우고 금 매집하던 이들도 많았죠. 지금은 오간 데 없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인민폐에 대한 관심이 어떤 뚜렷한 흐름을 이루지는 않았다는 기억이네요.
달러는 우리가 지금 매일 뉴스를 보듯 연일 강세입니다. 트럼프는 중국에 대해 여전히 "환율을 조작해(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에 유리한 여건을 만들려 든다"며 반드시 위안화가치를 절상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헌데 저자는 "위안화가치 절상이야말로 중국이 원하는 바"라면서, 이제는 싸구려 통화로 외연만 확장할 단계가 아니라 진정한 기축 통화의 위신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책에도 나오지만 이미 작년 9월에 SDR 편입이 이뤄졌습니다) 이제는 정책 방향을 그리 틀 시점이라는 겁니다. 트럼프가 이를 몰라서 헛발질을 하는 게 아니라, 자국 내 지지들을 겨냥해 "뭔가 하고 있음(어차피 그리될 것)"을 강조, 홍보하려는 정치적 제스처란 뜻이겠죠.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 사람이 결코 바보가 아니며, 충분히 주판알을 튀긴 후 가망 있는 쪽에 과감히 베팅하는 실리주의적 도박사라는 점에서 신뢰를 보낼 만하다, 뭐 이런 쪽이겠습니다. 이 책은 대체로 올해 2월까지의 최신 사정을 책에 잘 담고 있어서 편하게 읽힙니다만(업데이트가 안 된 책이라면 독자가 아는 최신 사정과 충돌이 잦아서 진도가 느릴 수 있습니다), 오바마케어를 대체한 소위 "트럼프케어"의 법안 철회(정치적 실패와 좌절)까지는 커버가 미흡하긴 합니다.
몇 년 전부터 "지금 중국 주식에 투자하면 십 년 후 강남아파트..." 같은 주장을 하는 책들이 여럿 나왔습니다. 이 말을 실천에 옮긴 이들도 꽤 되기에, 꼭 상관관계가 입증되었다고는 볼 수 없으나 코스피에서 빠져나간 개인 자금도 꽤 많습니다(이른바 개인 엑소더스). 이 책은 그에 일종의 카운터 아규먼트를 제기하며, "여튼 분산투자는 어느 경우에나 현명한 선택"임을 다시 환기, 꼭 중국에 투자한 이들이라고 해서 미국 증시에 눈을 감을 이유는 없다며, 트럼프에 대한 괜한 정서적 거부감을 떨치고 어차피 다시 랠리를 이룰 분위기인 판에 개운하게 올라타라는 조언을 합니다. 앞에서 "트럼프는 운이 좋다"라든가, 어차피 실리주의자들이기에 팀 쿡이건 베조스건 내내 트럼프와 대립각을 세울 이유는 없고, 옐런과 트럼프 역시 내심 계산하는 지점과 시선이 같을 뿐 아니라, (자기 당도 제대로 못 장악한다는 일각의 분석과 달리) 결국 공화당은 트럼프를 좇게 되어 있다는 예측도 내어놓습니다. 저자의 솔직함은 "어차피 특정 종목과 인덱스는 클린턴이 당선되었어도 상승세를 탈 기미였다"며, 대세가 호황으로 기운 미국 경기의 혜택을 과감히 맛보라는 결론으로 내닫습니다. 뭐 끝까지 트럼프가 싫은 투자자도, 오바마의 업적이 낳은 호황의 결실까지 거부할 이유는 없다는 쪽으로의 기분 전환까지 마다할 이유는 없어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