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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의 내부담화 - 마윈 회장이 알리바바 직원들에게 고하는 개혁의 메시지
알리바바그룹 지음, 송은진 옮김 / 스타리치북스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마윈의 성공담을 다룬 책은 여태 (이건희책, 삼성책, 손정의책 만큼이나)많이 나왔습니다만 이 책은 제가 볼 때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다릅니다. 첫째 마윈이 그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담화, 방담이라는 점에서 매우 솔직하다, 두번째 2017년 현재 시점에서 알리바바와 그 CEO 마윈의 최신 상황을 (비록 간접적이지만) 반영했다는 점에서 최신 업데이트 버전이다, 이 두 가지가 이 책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독자로서 저는 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물론 아무리 "내부담화"용으로 작성, 표현되었다고 해도 이렇게 대외용으로 출판된 이상 그에는 윤색도 있고 가공도 끼어들게 마련입니다. 또 아무리 최신시점의 사정이 다뤄졌다 한들 출간시점과 독자가 실제로 텍스트를 접하는 시점 사이에는 또 간극이 생기게 되어 있죠. 그렇다손 쳐도 책을 직접 읽어 본 독자는 알 수 있지만 이런 형식과 내용에는 현장에서 마윈의 육성을 듣는 듯 묘한 박진감과 솔직함이 그대로 담겨져 있습니다. 다른 근거를 번거롭게 대기보다, 서점에서 한번 책을 펼쳐 내용의 일부라도 확인해 보길 권하고 싶습니다. 알리바바는 아무리 잘나간다고 해도 여전히 뭔가 좀 아닌 것 같고 엄청난 몸빵의 대륙 내수 시장의 거품이 빠지면 한순간에 몰락할 듯 허술해 보이지만(책에 이런 표현이 직접 나오지는 않아도, 마윈 회장 역시 그런 우리들 일반의 시각과 이미지를 자신도 안다고나 하듯 비슷한 셀프 디스를 책 중에서 실제로 합니다) 가면 갈수록 번창하는 게 지금 우리 눈으로 직접 보듯 객관적 현실이기도 합니다.
책 중에서(사실 이 책 출간보다 앞선 시점에 현장 연설을 통해 한 말이지만) 마윈은 지금 최고로 잘나가는 알리바바의 성공을 자기 직원들 앞에서 엄청 뽐냅니다. 뽐낼 만한 사람이 뽐내는 건 밉게 볼 게 아니라 당연한 존경과 찬사가 바쳐져야 하며, 성공도 이만저만 큰 성공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각별한, 합당한 경의를 보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은 우리가 잘 알듯, 싸구려 제조업의 엄청난 가동, 활황으로 경제 대국 반열(총생산 기준)에 오른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성공한 기업가의 대표랄까 특급 스타가 제조업 분야에서 부각되는 게 아니라(있긴 있으며, 우리 생각보다 숫자도 많고 성취의 질도 높습니다만), 이처럼 3차 서비스 산업(많은 전문가들이 중국은 이게 안 된다며 지적하곤 하는), 그것도 전자상거래라는 신산업 분야에서 등장했다는 게 이례적입니다. 재작년(햇수로는 2년이 안 됩니다만)에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 로그 네이션>을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이 상징적인 헐리웃 블록버스터 제작을 주도한 자본이 바로 알리바바입니다. 오프닝 크레딧에 대뜸 한자 로고가 나오는 장면(홍콩영화에서나 보던)에서 격세지감을 느끼는 건 한국 관객들뿐이 아니었을 겁니다.
이렇게 뽐낼 만도 한 마윈 회장이지만, (직원들 앞에서) 실컷 뽐내고 난 후 마 회장이 꺼내는 말이 반전이고 걸작입니다. "여러분들, 알리바바에 다니는 게 자랑스럽지요? 하지만 지금부터 우리가 정신 차려야 합니다. 진짜 시련과 도전은 지금부터 밀려올 겁니다." 이어지는 말은 상당히 충격적인데요. 핵심은 "나나 여러분이나 이처럼이나 큰 성공을 거뒀고 그 성공은 자랑할 만하지만, 우리가 잘나서 이렇게 된 게 아니다! 지금까지 해 오던 방식은 모두 잊어야 하며, 우리를 둘러싼 현실을 냉정히 관찰하고 신속히 정확히 적응하고 연구하는 것만이 살 길이다." 뭐 이 정도입니다.
보통 성공한 사람들이 부자 몸조심하는 차원에서, 또 이미지 제고를 위해 겸손을 가장하는 건 흔히 보는 전략입니다. 그런데 마윈은 그런 전략적 발언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소탈하고 솔직한 고백을 이어가네요. "나는 정말 보잘것없는 사람이다. 별 능력도 없고 머리가 좋지도 않다. 심지어 IT 기술에 대해서도 아는 바 없고 무슨 대화가 심도 있게 이어지면 평가는커녕 내용을 따라가지도 못 한다." 이런 말에 우리 독자가 충격을 받는 건, "에이 그냥 하시는 말씀이겠지"가 아니라, 마윈 같은 인물은 아닌게아니라 정말로 그럴 것 같다는 우리 선입견과 맞아떨어져서입니다. 그는 지식도 학력도 출신도 경력도 보잘것없는 인물이며, 심지어 외모상 사람 눈을 잡아채는 매력조차 부족합니다(그 정도가 아니라 극혐 레벨).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열등감이라든가 자격지심 때문에 허위 선전이나 사실 왜곡으로 자신의 단점을 감추려 드는 게 보통이고, 실제로도 우리가 주변에서 이런 예를 아주 흔히 보는 게 사실입니다. 아무 아이템도 크리에이티브도 없으면서 꼰대 같은 훈계만 늘어놓으면 뭔가 있어 보이는 듯 착각에 빠져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말은 자기 자신에게 먼저 적용한 후에야 남한테 설교를 해도 해야죠.
그런데 마윈은 이처럼 우리의 예상을 비껴가며, 정반대의 진술을 당당하게도 털어놓습니다. 이는 첫째 정말 실상이 그러해서, 괜한 위장이나 윤색을 통해 진실을 은폐할 게 아니라 생존 전략 마련의 절박한 필요에서 내부 직원들에게는 실상을 다 밝히고 긴장을 조성하자는 의도일 수 있습니다. 둘째, 전혀 그렇지 않고 그에게는 초인적인 안목이나 미래에 대한 비전이 하나하나 다 마련되어 있지만, 적들을 방심시키기 위해 "너희들의 선입견에 다 맞춰 주겠다"는 듯 위장막을 펴는 것일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 두 배경이 어느 정도는 모두 작용하지 않나 봅니다.
마윈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성공한 사람들이나 조직의 선례를 연구하지 마라. 그럴 시간에 너 자신만의 방식으로 위기에서 살아남는 방식을 깊이 성찰하라. 남의 방식은 그걸 적용할 똑같은 환경이 두 번 다시 닥치지도 않을 뿐더러, 남의 방식은 결국 남의 방식일 뿐 너로부터는 발휘 안 된다"입니다. 예전 같으면 너무도 과격하고 거칠게(그의 외모만큼이나) 들렸을 이런 말이, 꼭 그의 눈부신 사업 성공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과거의 조용한 도그마들은, 태풍이 몰아치는 지금의 현실 앞에서 전혀 적용될 수 없다." 링컨의 말입니다. 상황에 적응하는 자신만의 내공을 기르고, 밀림의 야수처럼 순발력과 칼날 같은 본능으로 대처해야만 시장의 승자로 올라설 수 있습니다. 많은 경영 구루들이 "혁신, 혁신, 파괴적 혁신"을 주문처럼 입에 올리는 게 이런 절박한 각성과 맥이 닿으며, 경영사상가들이 멋진 말로 다듬기 이전 마윈은 시장에서 마구 구르면서 몸으로 실적으로 진리를 확인했던 셈입니다.
마윈이 자신 있게 내놓는 진단이 있습니다. "우리(알리바바)는 현재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인자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 분야의 파이어니어는 이베이이며, 한국에서는 "옥션"이라는 브랜드로 활동 중입니다. 어떻게 해서 치열한 경쟁 끝에 이 굴지의 다국적 기업을 물리칠 수 있었는가? 마윈이 내어 놓은 해답이 걸작입니다. "이베이는 최고였고 우리는 존재도 없는 삼류기업이었다. 일류는 지금까지 해 오던 최고의 방식과 매뉴얼과 시스템으로부터 일을 추진한다." 그런데요? "바로 그래서 이베이가 실패한 것이다. 그들은 최고의 매뉴얼대로만 일을 했고, 우리는 삼류라서 아무 집착할 것 없이 마구 대응했다. 상황은 종전의 것이 되풀이되지 않았고, 다른 것 안 보고 현실만 직시한 우리가 결국 이긴 것이다."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이 맞는 게, 이제 알리바바 역시 지난 십 년 간의 자랑스러운 방식("이렇게 하니 되더라.")을 앞으로 밀고 나가면, 이베이가 그랬듯 다른 후발주자에 밀려 고꾸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 회장은 이걸 강조하는 겁니다.
마 회장이 참 무서운 게, 다음과 같은 말에서 잘 드러납니다. "우리가 똑똑해서, IT 기술이나 시스템에 밝아서 1인자가 되었을까? 나를 보라. 내가 남보다 잘나서 지금 이 자리에 섰을까? 아니다! 환경과 행운이 유리하게 맞아떨어져서이다." 밖에다 대고 이런 말을 하면 그건 부자몸조심인데, 이게 실제로 조직 내부에서 한 말이라서 더 놀랍습니다. "내가 성공한 건 그저 운이 좋아서였다." 이런 말만큼 현실에 대해 철저히 거품을 뺀 고백은 없습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람, 내세울 것 없는 인생도 뭔가 자신에게는 특별한 비결이 있는 양 허세를 피우고 싶어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마 회장은 영어강사 출신이지만 젊은 시절 미국이나 서유럽에 오래 체류하며 학문을 닦지 못한 인물입니다. 중국이 알고 보면 우리보다 더해서 유학파라고 하면 대단한 엘리트로 대접 받습니다(한국은 학벌 세탁이다 뭐다 해서 꼭 그런 눈으로 보진 않죠). 이런 그들에게 마 회장은 "어설프게 배워 오면 결국 외국에도 소속 못 되고, 그렇다고 고국에서 오래 분위기를 익힌 내부자 그룹에도 못 속하고, 이도저도 아닌 신세가 되기 쉽다"고 합니다. 이는 꼭 많이 배운 이들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라(그렇게는 안 들리더군요), 현지에서 성공하려면 철저히 현지(어느 곳이든)의 사정에 적응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려 든 것 같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글로벌하게 사고하고 로컬하게 행동하라"가 있는데, 앞의 것도 어렵지만 뒤의 것은 더 어렵다는 게 요즘의 분위기입니다. 일반론은 들을 때는 그럴싸해도 막상 현실에서 써 먹을 데가 없습니다. 반면 각론과 디테일은 생존에 직결된 사항입니다.
마 회장뿐 아니라 중국인 사업가 대개가, 미국이나 유럽에 가면 일단 돈 때문에 존중받는 듯해도, 속으로는 멸시와 질시의 대상이 되기 십상입니다. 여기에 쌓인 게 많았는지 "꼭 보면 중국의 현실을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 인터넷상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둥(구체적으로는 말 안 하지만 공산당 정부의 통제, 검열을 지칭하는 듯합니다) 외국인들에게 불리하다는 둥. 나는 그럴 때마다 정부에서 터치하는 것 없고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다며 자신 있게 말을 한다." 책 후반부에 보면 "반 세기 전 공산당과 인민 해방군이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중국인을 해방시킨 것처럼 우리도 불모지에서 시작하여 혁명적 성과를 일궈냈다" 같은 말이 나오는 등, 정부 당국을 다분히 의식한 발언이 있긴 합니다. 또 시진핑 주석의 지도 지침("우리는 아직 초기 사회주의 단계에 머물러 있으므로 각별히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을 환기시키는 등, 통제와 감시가 일상적인 전체주의 국가의 한계가 느껴지는 발언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최소한 기업가에게는 재량을 주기에 이런 빛나는 성공사례가 나오기도 하겠지요. 이런 사람을 두고 "체제 선전을 위한 꼭둑각시"로만 폄하하기엔 오히려 현실을 너무 안이하게 본 소치가 아닐까 합니다. 중국의 시장은 충분히 공정하며(안 그러면 외국 자본이 거기 들어갈 리가 없고, 롯데 신동빈 회장도 여튼 발을 안 빼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변화무쌍하고 터프하다는 게 결론 같네요.
자사 성공의 비결에 대해("타오바오망"을 한자로 쓸 때 다른 책에 보면 다 중국식 간체자로 표기하지만 스타리치 북스에서 나온 이 책은 우리 한국에서 흔히 보는 정체자로 쓰인 게 눈에 띄더군요) 마 회장은 이런 날카로운 분석도 합니다. "미국은 각 회사가 모두 자기 공홈을 유지하며 거기서 물건도 파는 식이다. 그래서 이런 개별 회사들을 찾아 주고 소개, 연결하는 검색 사이트의 기능이 중요하다. 하지만 중국은 회사들이 대개가 역량이 떨어지는 중소기업들(그의 말에 따르면 수천만 개라고요)이라서, 알리바바 같은 거대한 쇼핑몰 사이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인터넷 서점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온라인 백화점을 지향하는 아마존도 사실 이와 비슷한 지점에서 알리바바를 상대하고 있습니다(혹은, 그렇게 되어갑니다). 앞으로 소비자들의 패턴이 세분화한 취향을 좇아 검색 포털의 도움을 받아가며 벤더, 셀러의 잘 꾸며진 개별 웹사이트를 찾아갈지, 이런 플랫폼에서의 쇼핑에 더 익숙해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 회장의 요점은 "중국이라는 열악한 상황에서 시작하고 그 사정을 정확히 파악한 후 적응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마 회장은 <삼국연의>에서 주유와 제갈량의 예를 듭니다. 주공근은 공명 못지 않게 식견이 넓고 판단이 빠른 엄청난 인재였지만, 결국 공명에 패배하고 맙니다. 그 이유를 놓고 마 회장은 이런 말을 인용하는군요. "재상의 도량 안에서는 몇 사람이건 마음 놓고 뛰놀을 수 있어야 한다." 리더는 똑똑한 것보다 국량이 크고 관대하여 온갖 개성의 사람을 다 품을 수 있는 자질이 중요하단 거죠. 자신은 잘난 구석이 없었어도 자신보다 뛰어난 인재를 여럿 거느릴 깜냥이 되어 오늘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는 건데, 이런 교훈화는 이미 한 고제 유방부터가 자신의 특장점을 널리 홍보하는 프레임으로 사용한 지 오래지요. 어느 일본인 저자가 쓴 책 <사장은 차라리 바보인 게 낫다>라는 제목도 생각하는 대목입니다. 다만 그저 식견이 부족하고 머리가 아둔하다고 해서 저절로 인성이 좋아지거나 그릇이 커지는 건 절대 아니라는 점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내면까지 비틀어진 예가 더 많죠. 사장이 넉넉한 매너로 아랫사람을 대하면 그걸 악용해서 회사 돈을 더 횡령하고 종국에 배신하는 모습도 흔히 봅니다. 정해진 교훈이란 없고, 모든 건 그저 상황의 정확한 파악을 통해 맞춤형 분석으로 도출된, 융통성 있는 전략과 혁신에 의해 타개해야 한다는 점, 그의 육성으로 생생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