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앞에 겸손할 필요가 있다는 말은 언제나 사람을 숙연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위대한 학자나 사상가들의 업적, 노력, 유산에 대해
경의를 표하지만, 과연 그 가치를 합당히 평가할 자격이 있어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요? 그보다는, 내가 속한 사회와 공동체,
세상이 그런 이들의 기여와 성취에 대고 공인된 권위를 바치기에, 나 역시 그런 대세에서 이탈하지 않겠다는 제스처라든가, 아니면 이
정도씩이나 학문에 대한 존경, 신뢰를 보내는 자신을 두고 "그 역시 많이 배운 사람"이라며 타인들이 인정해 주길 바라는 아주
속물적인 동기가 작용하지는 않을지요.
어떤 학문적 진리나 법칙의 참된 가치를 알아보려면, 그 사람이 뭘 평가할 만한
충분한 소양과 지혜를 갖추는 게 우선입니다. 그러려면 많은 공부와 수양이 요구될 테고, 이 단계를 안 거친 채 무엇인가를
찬양하거나 혹은 맹렬히 반대한다면, 그 사람은 그저 사이비 종교를 열심히 믿는 신도나 다를 바 없습니다. 어떤 주장의 진위를
평가하려면 기존의 지식과 논란에 대한 충분한 이해, 그리고 흔들림 없이 공정한 논리적 기준이 필요합니다.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정돈된 인식의 틀에 의해 판단이 가해져야 하고, 이에 자신이 없으면 섣불리 뭐가 옳다 그르다를 남 보란 듯 목청 높일 게 아니라
겸손하게 "의견 유보, 잘 모르겠음" 정도에서 그쳐야 합니다. 필요 이상으로 과격한 판단을 즐기는 사람은 뭔가 불순한 의도가 따로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가
현재 과학적 진리, 통념, 상식으로 간주하는 많은 사항들은, 훗날 혹은 가까운 장래에 청천벽력 같은 새로운 증거나 치밀한 이론의
출현으로 한순간에 기반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믿어야 할 건 증거와 논리일 뿐이며, 그럴싸한 설명이나 아름다운 비유란,
언젠가는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할 가설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을 때 그
"생각"이란 "합리적 의심"에 가까운 의도였습니다. 이 책에서 우리 독자가 만나는, 발칙하고 대담한 의문 제기, 혹은 대안에
가까운 "썰들"의 전개는, 물론 대수롭지 않은 농담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천재적인 직관(비록 지금은 치밀한
근거를 못 갖췄더라도)이었다며 열렬한 지지, 재평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 독자들은 독자만의 특권으로, 정교한
논리와 튼튼한 근거에 의지하여 얼마든지 저자의 주장에 재반박을 가할 수도 있겠고 말입니다. "Nothing lasts
forever." 영원한 것은 어디에도 없는 법이며, 영원한 진리가 있다면 오직 이 말 하나뿐입니다.

"신대륙의
발견"이란 사건은 저들 서유럽인들이 자신들 중심으로 구성한 세계사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갖습니다. 감자, 담배, 코카나무를
비롯해 특정 작물, 그리고 여러 종의 동물들은 1492년 콜럼버스의 탐험 이전에는 구대륙이 전혀 모르던 존재였으며, 그 이전에
모종의 교역이 있었다는 사실은 확고히 굳은 상식과 믿음에 반하는 터라, 이는 뭔가 사실과 소재를 다루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다는
식으로 무시되곤 했죠. 하지만 스베틀라나 발라바노바, 로잘리 데이비드, 미셸 레스코 등(공교롭게도 모두 여성들이군요)의 문제
제기에 의해 이집트(구대륙) 미이라에서 (신대륙에서나 자생하던) 식물의 니코틴, 코카인 성분이 발견되었죠. 이를 계기로 혹시
고대부터 대륙 사이의 물자 교역에 열심히 나선 종족이 따로 있지는 않았는지, 현재 통념으로 받아들이는 세계사의 줄기에 중대한 구멍
하나가 뚫렸던 건 아닌지 의문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플라톤의 아틀란티스 대륙 논의 이래, "잃어버린 고대사"에 대한 탐구와
상상은 (그토록 많은 비웃음과 비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태 흐름이 끊어지지 않고 추종자들을 유지해 왔죠.
저자께서는
이 오래된 의문에 대해, 여러 학자들의 논의 성과와 저자 본인의 독창적 가설을 섞어 꽤 치밀한 줄거리, 혹은 대안을 제시합니다.
이 토픽과 직접 관련은 없습니다만, 그레이엄 핸콕이 쓴, 어떤 일련의 책들이 이끈 열풍 덕분에 "뭔가 설명이 필요한, 그러면서도
열정적인 탐구자들이 내어 놓는 설명은 왠지 사이비 같은" 난감한 이 주제에 대해 다시 근래 들어 주목이 이뤄졌다가 지금은 다시
주춤해진 느낌입니다. 개인적으로 1) 빈약한 근거만으로 무작정 환상을 우기는 태도도 문제겠고 2) 여튼 기존의 학설로 설명이 안
이뤄지는 현상에 대해 그저 언급만 해도 무작정 사이비라며 매도하는 태도 역시 큰 문제입니다. 후자의 경우 막상 (그들이
지지한다는) 주류학설에 대해 물어보면 꿀먹은 벙어리인데(암기한 몇 마디 구호만 빼고), 그저 목소리만 높이고 과격한 태세만 취하면
뭔가 신분상승이라도 하는 양 한심한 착각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죠. 가설이나 제안에 대해 찬성을 하든 반박을 하든, 인적권위에의
의존이 아닌 구체적인 논거를 들며 담론에 참여해야 합니다.

독자로서
제 생각에는, 일단 모든 교역과 활동이 콜럼버스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진다는 고정 관념만 버리면 간단하게 해결되지 않나 봅니다.
기록에 없다고 증거가 안 남았다고 실체까지 없었으리라는 단정은 무리입니다. 마치 잃어버린 고리 몇 때문에 진화론이 통째 부정되는 게
아니듯 말입니다. 아마도 이 문제는 남아있는 유적도 없고 믿을만한 기록도 없으니, 한반도의 고대사 디테일마냥 영원히 해결되지
못할 미스테리로 남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대인들이나 그 직근 후대인들에게 어떤 크레딧을 못 받았다고,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교역에 종사한 종족 혹은 집단(저자께서는 구태여 "종족"으로 한정하십니다만)"이 아예 부정될 이유는 없죠. 증거가 없으니
논증을 컨스트럭트하기도 힘들고, 기존의 이론으로는 설명이 또 안 되고, 이런 딜레마는 인문역사학의 영역에 한두 개가 남아 있는 게
아닙니다. 앞으로 고고학에 기여할 수 있는 인접 분야의 기술 발전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고, 그 전까지는 모두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를 존중하며 신중한 논의에 머무는 게 필요합니다. 누가 이런 문제에 대해 손쉬운 단정을 할 수 있겠습니까?
UFO
이슈는, 이 책에도 나오듯 다소 뜬금없는 전향적 태도를 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의 말처럼, "unexplained
aerial phenomena", 즉 "설명이 어려운 공중 관측 현상들"로 바꿔 설명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미확인은 둘째치고
그게 과연 비행 물체이기나 한지도 확인이 어렵고, 보도되거나 (당국에 의해 감춰졌다고 일부에서 주장하는) 모든 사건이 같은 성격을
가졌다고도 못하기 때문이죠. 그냥 "설명이 힘들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전혀 없는지도 모릅니다.
레이건은 사실
엘리트 코스를 제대로 밟은 다른 정치인과 성장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어리석은 이들이 현혹되기 쉬운(이 자체가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만) UFO 따위나 믿는다며 폄하되기도 했고, 혹은 반대로 그분이야말로 우리들의 믿음을 공유한다고 일각으로부터 기대를 받은
면이 있습니다. 책에도 나오듯이 본인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이를 언급한 적이 없는데, UFO를 심각히 여긴다면 누가 그런 후보에게
신뢰를 갖겠냐는 우려 때문에 자신의 신조(확실치 않습니다)를 숨겼는지도 모르죠. 레이건이 재임 중에 "감당 못 할 진실(책
후주에 나오듯 원 표현은 handle입니다. 꽤 모호하죠)" 운운한 것도, 워딩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해석이 갈립니다. 전 사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좀 걱정도 되었는데, 저자께서는 뒤의 후주를 보면 가장 보수적(즉 레이건은 그딴 문제에 관심 없다)인 입장의
해석을 오히려 타당하다고 여기시더군요(그래서 안심했습니다). 음모론이건 반 음모론이건 어느 선을 넘지 않고 "상식선의 의문"을
제기해야(혹은, 무작정 떼를 쓰는 게 아니라 논리적으로 반박해야) 그게 "지적 호기심"으로 옹호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대통령도 모르는, 군부 수뇌부끼리만 대물림하여 공유하는 외계인에 대한 비밀(외계인과 UFO는 엄밀히 말해 별개 이슈입니다)이
있는가?"란 질문에 대해서도, 무슨 군부 파워 엘리트들이 대통령도 따 시키는 실세다, 이런 결론까지 비약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국가기밀로 분류된 사항은 현직 대통령도 오픈 못 하는 게 당연하고요(법으로 강제되니까). 고위 장성들이 군 통수권자의 명령과
위계까지 무시하는 건 아니죠(그랬다간 바로 파면). 위의 코카인 고대 무역(?)처럼 뭔가 미스테리한 사건이 있었던 건 맞겠지만,
파일 까 봐야 특별한 건 안 나온다고 봅니다(로스웰 외계인 같은 것). 이런 건 오히려 시원하게 공개해야 쓸데없는 억측이
잦아들겠죠. 행정의 다른 모든 분야처럼, 투명성이 공정성과 정의를 담보하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B급 오락물이지만
<스피시즈 2> 같은 영화에서도 이런 대화가 나옵니다. "건방진 놈, 내가 대통령한테 당장 전화해서 조치하도록
하겠어.""마음대로 하십시오 의원님. 그런데 이 문제는 대통령도 전혀, 전혀 감당 못할(This is way beyond the
President. Way beyond) 중대 문제거든요?" 이것도 무슨 미국의 권력 구조에 미묘한 뭣인가가 있다는 증거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영화의 각본가도 그런 믿음을 가졌기에 대본에 이런 장면을 집어 넣었겠죠. 원인과 결과를 반대로
혼동해서는 곤란합니다.
길버트 머레이 교수의 실험에 대해선, 물론 그 실험에 허위나 조작이 끼어들지 않았겠음은
믿어야겠지만, 한 개인의 특수한 예로 전체로까지 일반화하는 태도는 무리라고 봅니다. 프로이트와 융 사이의 갈등은 책에서 설명하시는
그런 이유(초상현상에 대한 견해차) 말고도, 다른 학문적 입장의 차이라든가 하는 요인이 끼어든 줄로 압니다. 다만 이 두 거물
학자들이 "이론을 실천으로 옮기기라도 하듯" 입양과 결별 과정에서 권위 상실 운운하는 설명은 흥미롭긴 했습니다. 파울리 박사의
활동 반경 주변에서 일어난 독특한 현상 역시 다른 설명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봅니다.
바그다드 유적에서 발견된
전지는 이른바 Out-Of-Place Artifacts, 줄여서 우파츠(ooparts)라고 부르는, 역시 설명이 쉽지 않은
경이로운(그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기술 중 하나죠(이건 전 몰랐는데 이런 흥미로운 사례가 이것 말고도 꽤 많다고 합니다. 다만
미스테리해진 이유는 각각이 다 다를 수 있으므로 이런 사례를 "우파츠"라는 하나의 카테고리에 묶어 둬야만 하는지는 의문이네요).
역시 이런 문제는 고고학, 역사학, 공학과 자연과학적 통찰이 두루, 균형감 있게 개입해야 하므로 해결이 까다로운 게 당연합니다.
단지
생존에의 목적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그처럼 경이로운 형태 변이를 이룰 수 있는가? 이 이슈도 그간 너무 소모적인 논쟁이 별 성과도
못 내고 감정싸움, 목소리 크기 경쟁으로만 이뤄져 좀 질리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는 첫째 수십 억년의 시간 단위란 어차피
인간이란 종의 인식 범위를 벗어납니다. 시간만 오래 지난다고 그런 마법이 이뤄지는가? 그러나 "오랜 시간"의 스케일이, 미미한
필멸의 존재인 인간의 어림으로 가늠되는 수준이 아니므로, "이상하다"는 이유만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건 근거가 빈약하죠. 이
점에서는 차라리 도킨스의 견해가 더 설득력이 있으며, 다만 저자도 지적하듯 그런 극단적인 결정론을 곧바로 "과학적 태도"로 여기는
건 역시 극단적인 어리석음의 표출에 불과합니다. "기계론=유물론=과학"의 등식은 절대 성립하지 않습니다.
양자통계학의
성과가 저자의 말씀처럼, 생명체 메커니즘 안에만 존재하는 모종의 "옴살"적 구조의 존재를 증명, 혹은 암시하는지는 더
연구가필요하다고 봅니다. 아울러, 저자는 왜 물리학은 반드시 정확하고 경성이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시지만, 이는 반대로 타
학문의 연구와 성숙이 거듭되어 물리학의 정합성에 수렴해야 할 문제지, 그 반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입장과는 정반대인)
최재천 교수님의 "선언"도 역시 너무 시기상조라는 느낌이구요. 저자께서는 "폐차장의 회오리바람이 부속품을 끼워맞춤"의 예를
드시는데, 역시 수십억년 단위의 세월을 감안하면 확률 계산을 다시 할 필요도 있고, 하필 저 예가 특정 진영에서 즐겨 쓰는 비유라
그 타당성 여부를 떠나 조금 불편했습니다.
첨성대의 미스테리는 제가 고등학생 때도 국사 선생님이 언급하신 이슈라서
다시 복습하는 감회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왜 결론을 안 내시지? 그래서 어쨌다는 건데?" 라고 불편해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모든 문제가 그리 관변적으로 편하게 오 엑스가 다 척척 결론나는 게 아님"을 가르쳐 주신 고마운 의도였다고 여겨지네요.
이 책에 나온 여러 주장도 그런 좋은 의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습니다. 절충설은 항상 옳은 법이지만(?), 저자의 주장은
현재까지 나온 모든 주장의 장점만 잘 모은 설득력 있는 가설인 것 같습니다(주변의 광선을 차단하고 누워서 관측해야 오히려 잘
보임& 인도산 불교 문명과 점성술의 세트 유입).

7장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저자의 결론에 동의하고 안 하고를 떠나, 존 바딘과 브라이언 조지프슨의 양립할 수 없는 이론상의 충돌에서,
어떻게 후자의 양자 관통 이론이 승리를 거뒀는지에 대한 설명은, 이전 바딘의 통설적 입장에 대한 이해까지 가장 쉬운 언어로
독자에게 이해시켜 주는 멋진 시도였습니다. 그 전에 학부 교과서를 슬쩍 엿볼 때는 참 어려웠는데 역시 대가의 솜씨로 접하니까
머리에 쏙쏙 잘 들어오더군요. 양자 현상(두 군데에 확률 분포로 동시 존재 등)이 거시계에서도 가능하다는 암시는 바딘 같은 확고한
전통주의자로서 도저히 수용 못할 결론이었을 겁니다. 이 파트를 잘 읽어 보면 바딘이 꼭 최종적으로 패배했다는 게 아니라,
조지프슨이 결국 노벨상까지 받아낸 그 이론적 성과를 좀 극단적으로 밀고 가는 바람에 결국 그의 이단아적 행보를 예측하고 그토록
배척했다는 쪽으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론의 디테일은 틀렸어도 학자 개인의 성향에 대한 거부감과 경계는 (주류 입장에서)
타당했다는 거죠.
물론 우리 독자들은 저자의 선호와 시점 덕분에, 소설 속 주인공에 대한 지지를 보내듯 조지프슨의
행보를 응원하게 됩니다(ㅎㅎ). 유리 겔라(이분은 현재 좀 심각할 만큼 평가의 저하가 이뤄졌습니다. 거의 사기꾼 취급)를
지지하기까지 했다는 그의 이후 행적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최고의 두뇌, 최상의 경력을 가꿀 수 있었던 이가 안정된 미래를 과감히
포기하고 구태여 가시밭길로 접어든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냐는 시각, 또 나이 들면서 총기가 흐려지고 뭔가 정신적 문제를
겪었다는 시각(저자는 공평하게도 이런 시각까지 다 언급합니다. 무조건 그가 맞다는 게 아니라)이 다 있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두뇌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는 양자컴퓨터다." 양자현상의 정의가 지나치게 확대 적용되는 것도 경계해야겠지만, 확실히 최근의
이론적 성과는 뭔가 전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함을 누구에게나 납득시키는 듯합니다. 중요한 건 어느 한 극단으로 치달을 때
과학의 붕괴, 미신화를 낳거나, 반대로 명백한 증거를 애써 무시하는 또하나의 사이비로 타락(설명이 안 되는데도 설명된다고 우김)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난제를 하나하나 해결할 수있는 유일한 희망은, 오직 논리와 근거에 의해서만 작동하는 "순수한 지적
호기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