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만에게 길을 묻다 - 세계적 물리학자 파인만이 들려주는 학문과 인생, 행복의 본질에 대하여
레너드 믈로디노프 지음, 정영목 옮김 / 더숲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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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레너드 믈로디노프 박사는 학부생 시절(아니, 그 이전 청소년기)부터 은사(성함, 실명은 생략되어 있습니다)의 각별한 기대를 안고 이후 석박사를 마친 후 칼텍에 교수직을 얻어낸 기대주였고, 지금도 칼텍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중견 학자입니다. 이런 분도 칼텍에 갓 자리를 잡았을 때는 "과연 이 길이 내 길인지."하는 깊은 회의에 빠져들었었나 봅니다.

이 책은 아직 서른이 채 되지 않은 젊은 시절, 칼텍이라는 전당에서 리처드 파인만, 그리고 머리(이 책에선 "머레이"로 표기하며, 이하 이 책의 표기를 따르겠습니다) 겔만 두 천재 석학과의 짧은 만남을 소재로 삼아, 인생의 지표를 흔들림 없이 설정하고 목표에 매진하려면(혹은 반대로 과감히 방향전환을 이룬 후 좋아하는 일에만 푹 빠져들려면) 어떻게 해야 현명히 고비를 넘길 수 있을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들려 주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유머러스하게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라며 누가 묻지도 않은 답을 먼저 내어놓는데, 이는 독자의 오해를 피하고자 하는 진지한 의도가 아니라 작가로서 픽션 창작에 전념하며 살고 싶었던 자신의 한때 희망(이는 부분적으로 실현되었습니다)에 대한 약간의 풍자적 회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말 제목은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이며, 원제는 "파인만의 무지개"입니다.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에서처럼,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보거나 머리 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설레고 부풀어오르는 대상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입니다. 파인만뿐 아니라, 광학(이 저자분도 처음 전공이 이 분야였습니다)을 연구한 그 앞 시대의 선구자들은, 처음 물리현상에 관심을 두고 평생을 헌신할 때 "무지개(혹은 다른 무엇이든)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 분야를 파기 시작했고, 혹 뜻이 흔들리거나 회의가 느껴질 때마다 "그 아름답고 설레는 것"을 다시 상기하며 자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는 거죠. 적성과 욕구 사이에서 저자(포닥 시절의 젊은이)가 갈등할 때, 파인만은 이런 충고를 던져 줍니다. "가서 원자의 전자현미경 사진을, 아주 세심히 들여다 보게. 그냥 보지 말고 아주 세심히 말야."

파인만이나 겔만 같은 한 세기에 한두 명 날까말까한 천재는 아니라도, 저자 정도의 영재 코스를 밟은(우리 관점에서는 그냥 천재입니다) 이라면 남보다 확실히 우월한 자신의 열정을 매 순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진로에 대한 회의와 갈등은 우리 같은 평범한 이들이나 겪는 거겠고요. 그런데도 이제 창창한 경력을 막 시작하려는 이 청년은 왠지 자신이 없습니다. 몇 년 용 좀 쓰다, 간신히 낸 학문적 실적과 성과에 시큰둥해하는 대학 당국으로부터 쌀쌀맞게 해임 통보를 받거나, 아예 이 거대한 학교에 발령 받은 자체가 행정착오일 수 있다며 좀 과한 침체 상태에 빠집니다. 작가가 되고 싶은 소망은 (독자로서 제 생각엔) 그저 현실도피의 핑계인 것 같고, 속마음은 "이런 천재들 사이에서 내가 어떻게 버틸까?" 같은 중압감이 지배한 것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여태 탄탄대로를 걸어 온 그로서는 이런 느낌을 생전 처음 겪는 바이겠습니다.



이 책은 물론 파인만과의 짧은 접촉과 그로부터 받은 가르침(파인만 본인으로서는 그런 의식이 없었겠으나)을 주로 돌아보지만, 파인만 못지 않게 강렬한 개성과 비중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파인만보다 십여 년 아래인) 머레이 겔만입니다. 파인만도 보통 사람들로서는 이해 안 되는 괴벽과 까탈스러움의 소유자지만, 겔만은 전형적인 만능 천재이자 부르주아적 취향까지 함께 가진 유형이므로, 길 잃은 젊은이에게 자상한 멘토링을 해 줄 마음 따윈 전혀 갖지 않았을 겁니다(이 책에는 "나를 바라보거나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시간이 아깝다는 듯한 태도였다" 같은 말도 있습니다). 여튼 저자는 그런 겔만도 혼자 "사숙"하며(가끔 방문해서 대화도 나누는데, 이는 연구실이 가까이 위치해서인 이유가 큽니다. 나중에 "더 친분 있는 이를 곁에 두고 싶다"며 방이 바뀌게 되죠 쩝), 그런 겔만의 개성이나 철학으로부터도 교훈을 이끌어 내며, 겔만이 선배 파인만을 보는 시각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스승" 파인만(물론 저자와 파인만은 사제관계까지는 아니었으나)에 대한 탐구를 행하기도 합니다.

재미있게도 그나마 친분을 텄던 파인만을 두고는 내내 "파인만"으로 호칭하는데(딕이나 리처드가 아닌), 더 까다롭고 신경질적인 겔만은 계속 "머레이"로 부른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는 책에서 저자만 유지하는 태도는 아니고, 칼텍에서 구성원들의 분위기나 태도를 반영한 거겠습니다만. 저자와 파인만 자신의 규정대로, 세상에는 두 종류의 학자가 있습니다. 겔만(뿐 아니라 학계의 주류를 형성하는 모든 이들) 같은 그리스인 타입, 그리고 파인만 같은 바빌로니아인 타입(둘 다 비유적 의미입니다). 전자는 조화로운 전체 체계를 세워 두고 모든 각론이나 현상이 이 체계에 잘 맞아야 이론을 진리로 인정합니다. 후자는 그렇지 않고, 우리가 상식과 감각으로 겪는 개별 현상이 우선이며, 이로부터 도출되는 원리나 법칙이야말로 진리의 초석으로 여깁니다. 전자는 완결된 증명을 중시하고, 후자는 효용성을 강조합니다. 사실 이런 태도라면 "양자역학"은 바빌로니아인들의 전유물이라야 하지만, 겔만 같은 천재는 놀랍게도 자신이 아예 표준 모형의 기초를 놓아 "말이 안 되는 현상을 설명할 체계"를 하나 새로 세워 버립니다. 이 때문에 "그리스인들"도 양자역학에 대해 괜한 패러다임의 갈등이나 거부감에 시달리지 않고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었다고 해도 되죠.



그러나 파인만은 이런 태도에 대해 다 불필요한 허식이거나 심지어 환상, 기만으로까지 평가합니다. 개별 현상이 잘 설명되는 이론이 최고이지 기존의 체계에 뭘 맞출 필요가 뭐 있냐는 겁니다. 같은 천재라도 이런 타입은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세부 분야에 푹 빠지는 반면, 겔만 같은 이는 (그 특유의 부르주아 취향까지 작용해서) 자연과학뿐 아니라 모든 분야, 역사, 문학, 고고학까지 다 섭렵하고 하나의 체계를 이뤄야 직성이 풀리는 거죠. "쿼크"도 겔만이 제임스 조이스의 고전 <피네간의 경야>에서 따온 이름이며, 그는 한자나 산스크리트에도 해박하여(이 책에서는 마야 문자 천착에 대한 언급이 두 번 나옵니다. 두 번 다 다분히 그의 현학을 비꼬는 맥락에서) "사성제, 팔정도" 같은 이름도 붙인 게 그입니다.

파인만 스타일은 영국식 경험철학(귀납법 위주)과 통하고, 반면 겔만 스타일은 대륙의 합리론(연역법 위주)과 닮아 있습니다. 파인만이 그처럼 "끈이론"을 싫어한 것도, "근거도 없이 이론을 위한 이론을 만드는 허세"라는 판단을 그로서는 내려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어지간히 자신의 장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지, 저자는 존 슈워츠를 두고 "모두가 미쳤다고 손가락질하는 저런 연구를 몇 년째 이어가는 걸 보니 누가 뒤를 봐주는 게 틀림없다"는 주변 분위기에 합류하죠. 물론 이건 다분히 농담조로 한 말이지만, 충격적이게도 정말 실력자 스폰서가 있었음이 책 후반부에서 드러납니다! 그는 바로 겔만이었는데, 끈이론을 전폭 지지하지는 않아도 "저 친구들 길에 뭔가 놓여 있음"을 직감하기도 했고, 보편 이론을 완성한 후 개별 사례를 접근, 포섭시키는 그들의 방법론에 "그리스인"인 그가 공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파인만의 불후의 업적 중 하나는 책에도 나오듯 "경로 적분론의 완성"입니다. 경우의 수를 다 더하면(적분하면) 확률이 나온다는 건데, 이 기법이 "발견"되기 전에는 엄청 복잡한 계산이 필요했죠. 너무 간편해서 사람들은 그 타당성을 의심했는데, 그래도 실제 써 보니 너무도 실용적이라 쉽게 배척도 못하는 게 반대진영이었습니다. 책에도 나오지만 "파인만 식이 아닌" 보편적 언어를 통해 메타 증명을 하고 나서야 이 업적은 업적으로 평가되었습니다(이건 수학에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이걸 생략하면 골드바흐의 추측도 측이 아니라 법칙이 되어야 합니다. 다만 파인만은 물리학자지 수학자가아니므로...). 파인만은 근데 이런 게 너무 싫었던 거죠. 그는 엄격한 이론보다 자기 직관(천재니까)을 더 믿었고 이런 상상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싶어했습니다. 그의 상상은 그저 상상이 아니니 말입니다.



그는 이런 스타일 덕분에, 예를 들어 왜 1980년대 중반 챌린저 호가 폭발했는지 명쾌히 기술적 원인을 짚어내어(그의 전공은 이런 공학 계통과 거리가 꽤 먼데도, 해당 분야 엔지니어들이 못 찾은 걸 이론물리학자가 규명했다는 게 진정 경악할 일입니다. 그 실무자들은 다 뭐가 되는 건가요ㅠ) 다시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파인만과 겔만 두 분이 이처럼 개성이 다르지만, 이 책에 잘 나오듯 두 분 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또 지극하다는 게 공통점입니다. 책은, 지성의 첨단을 걷는 이런 학자들도, 우리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감정에 지배되고, 그 와중에서도 인간의 길과 가치를 끊임없이 모색하는 "피와 육신을 지닌 존재"임을 잘 가르쳐 줍니다. 진로 모색 때문에 고민이 많을 학생들이 읽으면 참 좋을 책 같습니다(입자물리학에 대한 이해는 덤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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