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미래의 자동차를 지배할 것인가 - 세계 최고 자동차 전문가가 말하는 새로운 모빌리티의 세계
페르디난트 두덴회퍼 지음, 김세나 옮김 / 미래의창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20여년 전만 해도 내 차를 소유한다는 것, 이른바 "마이 카, 혹은 오너드라이버" 상태로 진입한다는 게 일종의 신분 상승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까지 있었습니다(지금은 왠지 이런 말 자체가 촌스럽기도 하고 잘 쓰이지를 않습니다). 이제 자동차 소유는 너무나 당연한 옵션이 되어 버린 단계이기도 하고, (이 책에서도 자주 언급되거니와) 한국 같은 중견 국가에서 어느 정도는 자동차 소유가 포화단계, 혹은 임계 수위에 다다른 느낌이기도 합니다.

한편 젊은 세대, 경제활동 신규편입 그룹의 기대 소득 전망이 비관적으로 바뀐 데다, 공유경제를 지향하는 우버 등의 혁신 업체 진출, 자율주행 기제의 얼마 남지 않은 도래 등이 함께 작용하여, 과연 가까운 장래라면 자기 소유 자동차를 얼마나 유지할지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예측이 지배적입니다. 우리 느낌으로는 주거공간의 연장, "내 집, 내 사적 공간의 확장으로서의 애마"가 그리 쉽게 사라지게 방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SNS에서의 프라이버시 포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듯 새로운 세대는 "뭐하러 돈 들여 내 차를 갖지? 출근길은 그냥 여러 사람이 어울려 잠시 고생하면 그만이겠고." 정도로 가볍게 생각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솔직히 근래 나오는 책들 읽어 보면 대부분이 트렌드 예측을 이런 식으로 몰고 가는 게 사실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책들은 일반론이거나 거대 트렌드 관측에만 전념해 온 저자들의 솜씨지 자동차 전문가가 쓴 건 없다시피했거든요.


사정이 정말 이렇다면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매우 어두울 수밖에 없겠는데, 과연 그럴까요? 제법 두꺼운 이 책 전체 맥락을 통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그와는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첫째 "인간이라는 종에게, 더 개선된, 더 쾌적한 모빌리티의 추구는 숙명이다." 둘째 따라서 자동차란 지금이나 미래에나 언제나 그 곁에 있어 줘야 하는 친구이다. 셋째 자동차 산업은 지금이나 미래에나 만족스러운 혁신에 성공할 것이며, 성장 가능성은 오히려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 정도입니다. 극히 일부의 추세징표나 막연한 느낌만으로 절대 미래를 속단하지 말라는, 저자(독일인입니다)의 치밀한 분석과 단호한 충고를 담은 게 이 책입니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도 물류 운반을(이는 이 책의 주제가 염두에 두듯 개인적, 여가 활용적 이동이 아닌, 주로 산업 물자의 이동이 목적이었죠) 주로 어떤 수단에 의존할 것인지 정책 설정을 두고, 고속도로 건설과 (기존) 철도 시설의 확충(복선화 등) 둘 사이에서 심한 갈등, 대립이 있었습니다. 정형화, 중앙집중화, 대규모화를 지향하는 철도 수단은 그러나 벌써 그 시점부터 시대에 뒤떨어졌었음을 우리는 지금 절실히 확인합니다. 이 책 역시, 혁신에 둔감하고, 라이프 스타일 트렌드에 반하고, 융통성이 부족한 철도 교통의 미래는 암울하게 잡습니다. 육상 교통의 유일한 경쟁자인 철도 산업의 전망이 이처럼 좋지 못하다면, 그 반사효과로도 자동차 산업은 더욱 활기를 얻는 게 당연합니다. (독자로서 개인적 생각이이라면 두 산업은 대체재보다는 보완재적 성격인데, 그렇다 해도 자동차 수요의 근원적 부분을 철도가 대신하지 못하리라는 점은 오히려 또 당연해지죠)

자동차 산업의 무한 질주에 대해 기존에 비관적이었던 또하나의 유력한 요소를 들라면, 환경 오염을 향한 심각한 공적 여론, 비판입니다. 이미 KTX 등 고속 전동차 운용이 주류가 된 한국에서도, 기차 하면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달리는 증기기관, 디젤기관형이 아직도 대뜸 떠오르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책에서는 "자동차를 제외한 모든 운송 수단은 이미 전기동력형으로 모두 바뀌었다"고 잘라 지적합니다. 희한하게도 구시대적(?) 디젤 엔진(환경 오염의 주범)에 여전히 의존하는 건 자동차뿐이라는 겁니다. 이런 점만 보면 친환경 트렌드에 역행하거나 혁신에 둔감한 건 오히려 자동차 섹터이며, 기업의 탐욕과 타성, 사악한 로비를 통한 현상 유지 음모 때문에 이 반환경적인 스탠스가 근본적으로 고쳐지질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앞으로 모든 분위기가 바뀔 것이고,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업계의 경직된 태도가 이미 심대한 전환점을 맞았다고 지적합니다. 이 책이 쓰여지기 몇 달 전 터진 폭스바겐 등의 소위 "디젤게이트"가 큰 계기를 마련했고, 그보다 몇 년 전 도요타의 대량 리콜 사태도 산업의 지평이 바뀌는 데 일정 모멘텀으로 작용했다는 거죠. 다시 환기하자면 저자는 (여태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의 본거지로 여겨진) 독일의 전문가인데, 특히 미국 진보 여론의 온상인 캘리포니아 같은 곳에서 운전자의 안전, 친환경 가치, 탄소 연료에 대한 반감 등을 선도적으로 끌어 온 업적을 높게 평가합니다. 이런 여론이 안착시킨 법제적 제약은 오히려 엔지니어들의 반성적 혁신을 폭발적으로 이끈 면마저 있다는 겁니다.

저자는 경력상 자신이 개인적으로 직접 겪은 사례를 놓고 흥미로운 실화를 하나 들려 줍니다. 대중들은 업무와 여가 선용에 기능상의 실질적인 필요, 혹은 주관적 만족과 달콤한 환상, 이 둘 중 어느 동기를 통해 자동차를 구매하는 편일까요? 밀착적 경험을 통해 만난 결론이니 더 단호할 수밖에 없지만, 저자의 견해는 주저없이 후자입니다. 포르셰 터보 911 모델의 마케팅과 장기 전략 파트에서 근무하며, 저자(가 속한 팀)는 종전 지나치게 운전자의 숙련 기술과 "힘"에만 의지해야 했던(다른 말로, 안전사고가 날 위험이 컸던. 명시적 설명은 책에 없으나 아마 모델이 안은 근원적 위험 때문에 제조사에선 소송 리스크를 인식했을 겁니다) 이 모델의 엔진파워를 희생하는 대신 보다 쉬워진 조작이 가능한 쪽으로 전략 수정을 해야할지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시실제로 그런 험한 조작을 도로 환경에서 쓸 데가 없어도, 운전자들은 잠재적, 혹은 환상의 기회만으로도 만족하며, 이는 대부분이 브랜드가 부여하는 주관적 착시라는 점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소비자들의 성향은 자동차 산업의 미래에 영향을 줄까요? 여기에 대해서 저자는 다소 모호한, 혹은 엇갈리는 태도인 듯합니다. 우선 왜 자동차 산업이 미래에도 창창한 전망이냐 하면, 이런 모빌리티의 환상, 나만의 애마가 나를 다른 세계로 인도해 주리라는 벅찬 감동은 미래라고 해서 쉬이 개개인의 내면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겁니다(저는 제발 이 예측이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반면, 도심 한복판의 근사하게 잘 빠진 자동차 전시장의 쇼윈도를 보고 몰려드는, 또 딜러의 현란한 말솜씨에 넘어가 감성적, 충동적으로 구매 결정을 내리는 시대는 (이 책 다른 파트에서 상술되듯) 또 이미 저물어간다는 거죠. 새로운 시대에는 소비자들이 인터넷에 명시된 성능과 디자인의 세부 사양을 보고 결정을 내리며, 알리바바나 아마존 등 새로이 등장한 플랫폼이 이런 식으로 대체 불가의 "구매 플랫폼"을 선점하고 확고히 장악하면, 자동차 메이커는 "되놈에게 돈 벌어다 주는 곰"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지적입니다. 마치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제조업 관계, 혹은 기민한 앱 개발자와 통신사 사이의 관계를 연상시키는 프레임이지만, 솔직히 그 지경까지 갈 수도 있다는 예측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반대합니다. 벤츠나 아우디 같은 브랜드 파워보다, 모바일 기기에서 홈으로 설정한 알리바바 등 리테일 벤더 환경의 익숙함과 신뢰도에 끌려 구매를 결정한다? 글쎄요.

"자동차 업계의 교황"이란 어마무시한 평가를 받는 저자답게, 특히 엔진과 마력의 상관관계, 이를 둘러싼 자동차산업 외적 요인의 추세적 영향 분석이 매우 쉬운 말로 잘 풀어져 있어 도움이 크게 되었습니다. 특히 근래의 추세는 친환경 지향의 규제와 맞물린 "연비 중시" 그리고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뜻밖의 행운으로 여겨졌을) 유가의 지속 하락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흐름이 맞물려 여러 흥미로운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대세에 적응해 가는 양상, 전략도 유럽이나 미국, 일본 업계가 다 제각각이라는 점을 저자는 흥미롭게 짚습니다.

우리 한국 소비자들도 다 동의하는 것처럼, (저자의 모국인) 독일 메이커들의 가장 큰 메리트는 단연 파워풀한 엔진에 있을 뿐 아니라, 컨셉이 분명히 잡혀 있어 소비자에게 구매욕을 부르는 디자인에 있습니다. 이러던 게 최근 연비 중시, 친환경 규제가 업계의 과제로 부각된 가운데, 적응을 서두르다 여태 없던 엄청난 실패로 드러난 게 "디젤게이트"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사태를 구조적 모순과 한계 탓에 필연적으로 불거진 것으로 파악합니다. 곧, 실무진과 현장 최전선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직근 상급자, 최상위 관리자에게 정직히 보고하는 조직 문화에 어떤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이 생겼다고 보는 거죠. 구체적으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대신 질소산화물(이른바 NOx, 즉 NO, NO2, .... 등) 분량이 늘어났는데 이 결과를 조작한 게 게이트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이는 독일뿐 아니라, 그보다 몇 년 앞서 터져 세상을 시끄럽게 한 도요타 리콜(소위 리콜의 리콜) 사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상명하복 정서가 강한 일본 기업이 더 심각한 내연문제를 안고 있겠죠. 한때 안돈 시스템, 즉 하급자에게도 즉시 전 공정을 중지시킬 수 있는 권한을 주어 품질 향상을 꾀한 놀라운 경영 혁신으로 전 세계에 감동을 준 그들이지만, 공개된 장점은 후발 주자들이 또한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법이니 말입니다. 이처럼 조직의 투명성, 또 사회적 책임의 엄중한 추궁은 미국이 법제 마련에서 가장 잘 되어 있다고 저자는 칭찬합니다. "우리(이 책에서 "우리"는 모두 독일을 가리키지만, 우리 한국 독자들도 같은 시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죠)는 저들 미국이 시행하는, 가장 엄격한 징벌적 배상제 같은 걸 받아들여 기업의 체질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바람직한 규제는 오히려 혁신을 부른다" 이게 일관된 저자의 기조 중 하나입니다.

미국인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에 대해서도 저자는 마찬가지로 쓴소리를 내놓습니다. 한참 후에야 진상이 밝혀진 오토파일럿 시험 조치를 두고 이름입니다. 우리도 한때 네티즌들 사이에서 유행한 말처럼 "소비자가 무슨 베타테스터인 줄 아냐?"같은 따끔한 비판을, 테슬라의 경솔한 태도에 대해서 던집니다. 한편 전기차의 혁신에 따른 여러 부대 상황도 저자는 예측하는데, 정비소라든가 기존 디젤 엔진 구동 자동차가 무대에서 퇴장함에 따라 함께 없어질 여러 직업을 놓고 하는 말입니다(전기차나 자율주행차는 잔고장이 적다는 점 감안). 한편 스마트카(엔진 구동 방식과는 무관하게 또 대세가 될) 운행에 따르는 위험은 아무래도 소프트웨어 해킹 리스크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pc나 모바일 기기 펌웨어 업데이트를 그냥 집에서 하듯, 코드를 연결시키고 파일을 내려받아 적용한 후 재부팅하는 장면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저자는 기발한 표현을 많이 합니다. "지역이라는 코르셋을 입고 있는"이라든가(글로벌 코드에 빠르게 적응 못하는 기업 문화 비판) "사공은 많고 배는 적다"(중구난방식으로 충돌하는 미래전략 구상) 등 주로 자국 기업을 향한 비판이지만, 한국 역시 현기차 그룹의 실적과 성패에 수많은 이들이 생계를 의존하는 나라입니다. 이런 저자의 신랄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비판은, 독일 기업보다 기술력도 자본도 마케팅 노하우도, 확보한 자원도, 심지어 든든한 내수시장이나 능률적이고 청렴한 정부 시슼템까지, 모든 면에서 부족한 한국의 담당자들도 뼈를 깎는 마음으로 자성하며 경청해야 할 충고입니다. 자동차가 과연 미래에도 중추 산업일까? 저자는 주저없이 긍정의 답을 내놓습니다. 그렇다면 담대하고 지혜로운 인력들 역시, 아직도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이 지상(地上)의 모빌리티 비어클 산업에 자신의 미래를 헌신할 가치가 있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죠. 특히 정부 차원의 지원과 원대한 비전의 수립도 절실한데, 우리의 현실을 보면 그저 답답한 마음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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