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명의 집: Beams At Home 2 - 훔치고 싶은 감각, 엿보고 싶은 스타일
빔스 지음, 김현영 옮김 / 라의눈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행복한 삶이란 남들이 정해 둔 기준, 혹은 시장이 기획한 트렌드에 얽매이지 않고, 참된 자아가 원하는 바가 뭔지를 정확히 짚어낸 후, 자기 스타일, 자신에게 어울리는 모두스 비벤디를 열심히 표현하고 살아 나가는 그 과정에 있지 않을까요? 이런 책을 보고 드는 느낌은 확실히 이런 쪽입니다.

이 책은 무슨 마사 스튜어트라든가 이효재 씨 같은 일류 살림꾼들이나 탁월한 감각의 소유자들, 혹은 트렌드 세터들, 유명인들의 작품(=사는 모습, 혹은 연출된 리빙스타일)을 각 잡고 촬영한 화보집은 아닙니다. 사실 처음엔 그런 책인 줄 알고 폈습니다만, 그런 쪽이라기보단 오히려 우리들 평범한 일상인들이 집에서 자기 흔적 자기 개성 찾아가며 그 나름의 스타일을 필사적으로 만드는 모습과도 그리 멀지 않았다고나 하겠습니다.



학교 다닐 때 보면 꼭 무난하고 흔한 소재로 두드러진 멋을 내는, 특별한 센스쟁이들이 꼭 있어서 "어떻게 하면 적게 돈 들이고 저런 효과를 낼까" 하는 주변의 부러움을 자아내곤 했죠.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도 말하자면 그런 분들입니다. 136명의 모범이 책 한 권에 다각도로 "찍혀" 있으니, 눈 크게 뜨고 열심히 훑으면 내가 따라할 만한 롤 모델이 적어도 한두 분은 발견될 겁니다. 사실 "한두 명" 정도가 아니라, 심각하게 연구해 보거나 마음 속에 담아 두고 응용 가능성을 키우고 싶은 예가 스무 명은 훨씬 넘은 것 같습니다.



136명은 어떻게 뽑힌 이들인가. 한국에는 아직 이런 형태의 소매점, 스토어가 대중적이지는 않고, 부유층이 밀집 거주하는 일부 구역(아니면 홍대 같은 특수 상권)에서만 간간히 보일 뿐인 소위 "셀렉샵"(혹시 청담동 같은 데 있는 분더샵이나 디스클로즈 이용해 보신 분들이 있을까요?)이, 일본에서는 이미 30여년전부터 널리 프랜차이즈화하며 대중과 호흡을 맞춰나가기 시작했죠. 이 책의 앙케이트 대상이 되어 자신만의 리빙 스타일을 당당하게 공개한 분들은 일본 빔스의 직원들입니다. 점주도 있고 스탭도 있고 디자이너도 연구직도 있으며, 나이 기준으로도 초로에 접어든 분, 갓 입사하여 사회 생활의 첫걸음을 뗀 분, 학부형 연배로 이제 이 기업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한 분 등 다양합니다. 근무지도 (당연히) 일본 번화가나 지방의 지점인 분들이 다수지만, 대만이나 태국에서 샵을 운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 빔스의 직원분들은 직장이 아닌 "집"에서 어떻게 하고들 사는가(직장에서의 모습이야 우리가 다 아는 바입니다만). 가장 자연스럽고 인위적 긴장이 다 빠져나갔을 때야말로 그 사람의 가치관, 개성, 취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겠으며, 이들이 혹 가성비 높게 자신만의 멋을 가꾸고 드러낼 줄 아는 센스쟁이들이라면 바로 이처럼 "집에서 퍼져 있을 그때"를 엿봐야 그 비결을 훔쳐낼 수 있지 않을까, 책의 기획 의도는 여기 있는 듯합니다.



아울러, 직장에서 직원들이 마음껏 즐기면서 밥벌이를 하게 해 주는, 직원들의 일과 삶이 하나되는 직장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해 주는, 빔스 특유의 기업 문화를 일반 대중에게 널리 홍보하려는 목적도 없지는 않았을 겁니다. 고객에게 도시 생활의 멋과 지향 그 최신 트렌드를 신뢰 가는 감각으로 "편집"해서 제안(여러 기업과 디자이너의 브랜드를 에디팅하여, 분명한 컨셉을 잡고 한정된 공간의 샵 안에서 판매)하는 직종이야말로, 직원 개개인의 기를 살리고 흥을 키워 주지 않으면, 그저 오너나 임원진의 밀어붙이기 식 경영으로는 도저히 유지가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매장마다 입지 조건, 주된 고객층의 니즈에 맞춰 제각각의 개성을 키워 나가야만 영업의 지속성, 혹은 유행을 선도할 수 있는 기업 이미지가 유지되겠죠.



도심에서 조금은 떨어진, 간단히 채소나 화훼를 가꾸고 재배할 수 있는 한적한 공간에 (임대든 자가소유든) 자신만의 터전을 가꾸고 사는 분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이런 분들은 무엇보다 "내 공간 안에선 내 마음대로 인테리어를 꾸려 나갈 수 있고, 가끔은 친구들을 불러 수다도 떨 만큼 모이기 편한 곳"이 주거의 첫째 기준이더군요(이런 걸 보면 빔스 직원들에 대해 갖는 일반의 이미지와는...). 물론 이런 대답을 하는 쪽은 미혼이거나 아직 젊은 직원들입니다만, 나이 든 이들도 대개 영혼이 자유로운(설문에 대한 다른 답을 보니 그런 인상이 들었습니다) 분들이 이런 패턴을 추구하는 것 같았습니다.



빔스가 의외로 오래된 기업임을 실감할 수 있는 게, 특히 젊은 직원들을 보면 "어려서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싶었다"거나, "빔스에서 알바생으로 일하다 정직원으로 뽑혔을 때 너무 기뻤다" 같은 소박한 대답을 읽을 때였습니다(이런 대답은 대개 빔스 자체 생산 브랜드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 같더군요). 아마도 이 책을 비교적 어린 나이에 읽고, 오빠 언니들의 자기 개성 물씬 묻어나는 당당한 모습을 보고 동경을 가진 독자라면 아마도 취업 적령기에 기업 빔스 입사를 설레는 마음으로 시도할 것입니다.

우타가와 마이코 씨(34)는 비슷한 취향을 지닌 또래 남성과 결혼,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가고 있는 빔스 가와사키 지점의 프레스입니다. 집에서 지인, 자매, 친척들을 자주 불러 넉넉히 식사대접을 하는 게 즐거움이라는 그녀가 손님 대접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은 확실히 비슷한 취향과 개성을 지닌 이들끼리 모이는 법이란 점 실감하게 됩니다. "멋진 사람들을 자주 만나 발전의 계기, 자극을 받는 게 빔스에서 일하는 가장 큰 장점"이라고 주저없이 대답하는 그녀는 준비된 빔스우먼이자 빔스가 잘 키워낸 성공적인 인재임에 틀림 없습니다.



시부야 지점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는 나쿠모 코지로 씨는 올해 쉰을 넘긴 최고참 중 한 분입니다. 다른 직원들도 그렇지만 이분 역시 집안 인테리어를 가꿔 놓은 감각이 예사롭지 않은데, 그 소품 중에는 평소부터 관심 가진 분야를 집중 분석한 원서(그 자체가 멋진 가구이기도 한)들부터 한국식 보자기, 조각가 하시모토 마사야의 작품, 젊은 시절부터 소중한 참고서 구실을 했을 플레이보이 잡지 등 다양한 아이템이 포함되어 있네요. 빔스에 입사한 계기를 묻는 질문에는 "너무 오래되어 잊었다"는 쿨한 대답으로 공란을 채웁니다. 나이 든 직원들은 "이 나이를 먹도록 다닐 수 있는 직장에 무슨 불만이 있겠냐"며 소략한 답을 내놓는 게 보통이던데요. 이런 답은 그 행간을 따로 짐작하게 만드는 고맥락 소통의 기법이기도 합니다.

빔스 직원들은 고객과 밀착된, 1차 집단식 소통에 능하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알바로 매장에서 일할 때부터 특정 고객과 스타일에 대한 진지한 상담과 자문을 맡고 아이템을 제안했는데, 정직원으로 채용되었을 때 축하를 보내 온 이후 계속 연락하고 지낸다는 경우도 있고, 매장에서뿐 아니라 온라인상에서도 친분을 이어가며 자신(빔스 직원으로서)이 연출한 스타일 전체를 (마치 연예인의 그것처럼 높이 평가하며) 모두 채용했을 때 매우 감동 먹었다는 고백도 적혀 있습니다. 여튼 이런 분들이 집에서 해놓고 사는 스타일을 보면 그 편안하고 느슨한 분위기에 일단 의외다 싶다가도, 사진을 차분히 뜯어 보면 이건 확실히 자기만의 결이 있는 패턴이란 각성이 확 다가옵니다. 그래서 생각 없이 페이지를 넘기다가도, 이게 그리 만만히 볼 책이나 구성이 아니다 싶어 긴장이 느껴지기도 한 그런 독서였습니다.

사람은 결국 같은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고 공동체에 일정 기여도 하면서, 동시에 동료들부터 받은 평가와 평판, 소통을 통해 그 존재가치가 결정되는 존재입니다. 더군다나 도시에서 수많은 개성과 지향 사이의 줄타기를 해야 하는 이들에게, 자기 스타일의 표현이란 가장 내밀한 공간에서조차 뭔가 자기 확신, 자기 확인을 위한 유의미한 과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직장에서의 모습이 남을 위한(그게 직무의 일부가 될 수도 있으니요) 표현이라면, 집에서의 모습은 내 스타일과 내 개성의 밀도가 어느 단계까지 이르렀는지, 나의 행복과 자존이 지금 어느 지점에 머무르는지를 정직히 드러내는 유일한 척도입니다. 직장에서의 성취가 집에서의 행복과 일체를 이루는 136인의 "비무스 피플"들의 모습은 이런 이유에서 독자들(특히 한국인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주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