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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전 - 여성의 삶을 말하다 ㅣ 인문플러스 동양고전 100선
유향 지음, 김지선 옮김 / 동아일보사 / 2016년 11월
평점 :
조선의
경우도 그렇고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대체로는 왕실의 친족, 종실 출신의 인사들이 백성 풍속의 교화나 모범 사례의 현창을 위해
이런 열전류를 집필, 출간하는 일이 왕왕 있었습니다. 같은 이름, 혹은 비슷한 제목을 달아 둔 것들이 여럿 발견됩니다만 특히 이
책은 전한 시대의 유향이 저술한 것으로서, 그 유서(類書) 들 중에는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꼽힙니다.

사실
전한시대만 해도 이후 중화 제국 문화의 기틀이 막 자리잡히기 시작할 무렵일 뿐, (이 책 역자 김지선 선생님의 말씀처럼)
"숨막힐 듯한 여성 억압적 문화와 풍토"가 민중을 억압할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습니다. "열녀(烈女)"라고 하면 대뜸 죽은 남편의
길을 따라 은장도를 가슴에 품다 어느날 장거를 결행하는 섬뜩한 모습을 떠올리기 일쑤이지만, 정확히 말해 이 책 제목 "열녀전"의
"열(列)"은 그 글자가 아닙니다. 뒤의 것은 "아름답다(물론 문제가 많은 가치판단입니다만), 빛나다, 대차다" 같은
의미형태소입니다만, 앞의 것(즉 列)은 그저 "여럿"이란 의미일 뿐이라서, 소위 허신의 <설문해자>에서 거론하는
동음동의의 원칙에도 해당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책 제목은 그저 "여인열전"으로 풀어도 무방하며, 기술적으로 철저히
가치중립적인 문구일 뿐이죠.
더욱이, 이
책에서 저자 유향이 다루는 여인들은 (책 서문에도 나와 있듯) 그 상당수가 춘추전국시대의 인물들입니다. 공맹의 가르침은 아직은
국가의 교전, 도그마로 채택, 확립되지 못했을 시절이며, 그저 제자백가의 한 입장 정도로 아찔할 만큼 불안정한 위상에 그쳤을
뿐이죠. 저자 유향이 여러 여인들의 생을 검토하며 모종의 교훈을 추출한 후 이를 보급하려 든 의도는 사실이었겠으나, 이것이
(이후에 변질되듯) 철저한 남녀 차별의 억압적 기제를 뭇 독자들에게 강요, 세뇌하려는 뜻은 거의 없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그
근거로, 이 책에 수록된 여성들의 삶은 그 묘사가 지극히 발랄하고, "거침 없고(책의 표현입니다)", 인간 본성의 밝은 면 어두운
면, 용기와 음험함, 절제와 적나라한 욕망을 모두 고루 다루는 중이니 말입니다. 따라서 역자의 규정대로, 이 책은 옛날
이야기처럼 "재미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첫
장 모의전에서 "모의"의 의(儀)는 기본 틀, 모범 같은 의미입니다. 격식에 맞춘 행사를 "의식(儀式)"이라고 하는데 바로 그
글자죠. 이 장은 어머니의 모범이 될 만한 여러 여성들을 소개, 분석합니다. 아버지건 어머니건 자식들을 잘 키웠다는데 그게 흉이
되거나 다른 이유로 트집잡힐 이유란 없습니다. 어떤 빌미에서건 무슨 여성에게 현모양처를 강요한다느니 하는 가당치도 않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됩니다. 그럼 자식을 낳아 놓고 마음대로 엇나가도록 방치를 해야 옳단 소립니까?

춘추시대
위(衛)나라 정공(定公)의 부인이었던 정강은 그의 며느리가 남편(아들)이 죽은 후 자식(손자)도 없이 세월을 보내자 그 재가를
기쁘게 허락했으며(벌써 여기서부터 책의 취지가 어디에 있는지 드러나죠. 성리학적 도그마는 이때로부터 천 년이 지나야 출현합니다),
군주가 강대국 진(秦이 아니라 晉입니다. 이 晉나라가 아직 쪼개지지 않고 있었으니 춘추 시대입니다)으로부터 망명객의 재송환을
요구받자 얼른 이를 수락할 것(싫어도 다시 데리고 있을 것)을 조언합니다. 일시적인 위신과 단순히 감정상의 유불쾌를 따지다가
냉혹한 국제질서에서 큰 실리를 놓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후 친아들이 아닌 간을 위 헌공으로 옹립하다 그 자질의 용렬함을
깨닫고 후회하며, 다시 그 동생 자선을 추대하여 보위 폐립의 주도권을 쥡니다. 당대나 후세의 평자들은 그녀를 두고 "세상사에
통달한 여성"으로 칭송하지만, 제 생각에 이는 도덕적 측면보다 정치 수완의 능란함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여튼 이 점에서도 이
책이 맹목적 열녀(烈女)상을 주입하는 의도가 아님이 잘 드러나죠.
위(衛)나라
장군 오기는 전쟁터에서 일개 병졸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 주며 격려하는 놀라운 전우애를 보여 그 부하들이 미친 듯 분발하여 전투에
나서게 했습니다. 이를 가리켜 연저지인(吮疽之仁)이라 부르는데, 이 오기는 이후 초나라 조정에도 몸을 담죠. 그 초나라에
자발이라는 장수가 있었는데, 이 사람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모친 이야기가 역시 "모의편"에 나옵니다. "졸병들은 겨우 콩밥을
먹는데 너는 장수의 몸으로 혼자 기름진 식사를 즐기니, 어찌 저 부하들이 생사를 건 결전에서 너를 의지할 수 있겠느냐?"
어머니의 준열한 꾸짖음에 정신이 버쩍 든 그는 이후 장군, 지도자로서 몸가짐을 바로했다는 내용입니다.
이
장에는 우리가 잘 아는 전국시대의 대사상가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 이사한 이야기와 더불어, 아내(며느리)를 홀대한 아들(물론
맹자)을 호되게 꾸짖는 일화가 실려 있는데, 읽으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 예전에 이처럼 집안의 평화와 질서를
지키는 데 현명함을 발휘한 시어머니가 다 있었을까요? 더군다나 구색맞춤으로 적당히 돌아가며 편을 들어주는 식이 아니라, "네(아들
맹가)가 먼저 예의를 어기고서 오히려 상대(그 처)를 비난하니 어찌 이치에 맞겠느냐?"라며 조목조목 논리에 근거한 훈계를 내리는
품이, 가히 저런 흐트러짐 없는 어머니 밑에서 올바른 아들이 나올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사마천
사기 <관안열전>에 보면 안자의 마부가 멀쩡한 허우대를 하고서도 고작 마부자리에 만족하고는 줏대없이 히죽대는 모습을
보고 그 아내가 분발을 촉구하는 일화가 나오는데, 이 책에도 같은 내용이 수록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이것 말고도 초나라의 광인
접여의 처 이야기가 소개되는데, 반드시 남편을 잘 내조하여 공경대부의 자리에 오르게 했다거나 하는 뻔한 사연(이 역시 고착화한
유교 도그마가 독서 대중에게 불어 넣은 환각에 가깝죠)이 아니라, 평범한 가계를 일구고 사는 서민들의 삶도 그 현명한 아내의
처신에 따라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음을 오히려 잔잔하게 깨우쳐 줍니다. 참된 인생의 도락이 먼 곳에 있지 않다는,
다분히 현대적인 기조가 물씬 배어난다 하겠습니다.
인지전을
보면 자식을 잘 키워 출셋길에 오르게 했다거나 하는 정형화한 어머니들의 패턴 나열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도에 넘는 빠른
승진, 깜냥을 감당 못 할 중책에의 보임 등을 만류하고 나서는 어머니들의 처신이 보입니다. 해당 인재를 낳아 기른 어머니만큼 그
장단점과 한계를 훤히 파악하는 입장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 아들의 개성과 약점, 기국(器局)의 경계를 손바닥처럼 꿰는
어머니야말로, 뜻하지 않은 좌절과 재기불능의 실패로부터 개인의 인생을 구원하는 첫째의 기둥이며, 동시에 한 나라, 거대 조직의
명운까지 좌우할 최적의 참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장에서도 역시 사기열전에서 자주 접하던 사화(史話)가 보입니다.
역자께서는
장들의 중간에 독창적인 논평을 삽입하여, 예컨대 정(貞)과 순(順) 같은 대립되(어 보이)는 덕목이 어떻게 한 개념, 한 인물에
포섭될 수 있는지 친절한 설명을 읽는이들에게 베풉니다. 쉽게 말해 정은 강하고 적극적인 본성이요, 순은 그 반대에 가까운데
왜(어떻게) 이 둘을 결합할 수 있냐는 거죠. 이에 대해 역자의 정교하고 치밀한 논증이 있지만, 저는 저 나름대로 "얼핏 모순되어
보이는 두 이치를, 한 몸에 품고 다른 이(남편이라든가 자식들)에게 그 빈 곳을 채워주며 온전한 인성으로 길러 주는 능력,
자질이야말로 여성에게만 가능하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 불가능해 보이는 과업을 해 내는 게, 바로 다름 아닌 이 책에
실린 여걸들의 인생이 몸소 입증해 보인 바 아니겠습니까? 이 책은 그런 뜻에서, 뭇 남성보다 우월했던, 잘났으면서도 이런
아름다운 천품을 과시하지 않고 은근히 실리와 행복을 챙길 둘 알았던 여성들의 삶을 통해, 오히려 "세상을 구원하는 건 여성"임을
깨우치는, 시대를 앞서간 페미니즘 고전이라고나 불러야 마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