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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를 위한 롤모델 유일한 이야기 -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걸은 유일한의 도전하는 삶과 아름다운 나눔 ㅣ 꿈결 롤모델 시리즈 3
정혁준 지음 / 꿈결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유일한
박사님은 엄격한 가풍에서 특별한 훈육을 받고 자란 어린 시절을 거쳤습니다. 그에게는 사업에 전념하여 가문을 융성하게 할 개인적
책임감과 동시에, 하필 그때 우리 민족 전체에 닥친 암울한 시련을 극복해야 할 집단적 책무가 동시에 부과되었습니다. 그는 유교적
교육을 명문가의 전통에 따라 뼈속까지 새기며 일깨운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도도한 흐름에 맞춰 서구의
신지식과 문명을 습득하는 다른 과제까지 성실히 해내어야 할 짐까지 지워진 청춘기이기도 했죠.
유일한
박사님은 이처럼 생의 매 순간마다 "두 가지 이상의 숙제"가 주어진, 다른 이들보다 갈등해야 할 이유가 많은 삶을 산 분입니다.
한국 최초의 제약 회사 창립자로서 유일한 선생은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현대적 과제와 이슈에 비추어서도 메우 모범적으로
재조명될 가치가 있는 위인입니다. 이익의 사회 환원이라는 아름다운 이상을 그 이른 시기에서부터 몸소 실천한 점도 위대하지만, 기업
활동의 친환경 목표 설정이라든가 하청 기업에게 갑을 관계를 따지지 않고 공존공영의 생태계를 조성하려 애 쓴 점 등은, 왜 한국이
지금 고도성장의 과실을 마음 편히 못 누리고 이처럼 불편과 분쟁을 겪어야 하는지 그 모든 대답을 내려 주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사람의 업적에 대한 평가라는 게 시일이 지나면 퇴색하거나 정반대 방향을 틀기도 일쑤인데, 선생처럼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만인에게
존경, 흠숭 받는 인생을 살기도 참으로 드물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유일형(유일한의
아명)은 기독교 신도이자 부유한 상공인이었던 부친 유기연의 슬하에서 각별한 관심을 받고 자라난 장남이었습니다. 당시 평양
일대에는 그간 조선왕조 통치하에서 서북인이라며 차별 받던 설움을 극복하려는 듯, 프로테스탄트 신앙이 큰 활기를 띠며 널리 퍼지고,
신교 특유의 자활자조 이념이 이들 사이에 자리잡아 전에 없던 경제 호황을 맞는 중이었죠. 이 무렵이면 아직 국권침탈 국면으로
넘어가기 대략 십 년 전쯤인데, 특히 유기연 선생은 개화파 청년 박장현을 만나 신문물의 놀라운 성취에 눈을 뜨고, 장차 엄청난
국난을 맞이할 민족의 앞날을 대비하고 개개인(자신과 자녀들)의 장래를 윤택히 만들려면 선진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탁견이었으며, 위대한 인물은 그 부모님의 각별한 정성과 교육에서 탄생할 수 있음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이 책은 어린이용이지만 고증이 비교적 치밀하게 된 모습이 돋보입니다. 페이지를 넘겨 가며 저자께서 한
문장, 한 점의 정보라도 정확하게 전달하려 애쓰신 흔적이 잘 드러나는데요. 정확히 그가 몇 살 때 유학길에 올랐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밟아 목적지에 이르렀는지 다소 엇갈리는 다양한 기록들을 최대한 다 소개해 주시는 성의가 좋았습니다. 유기연 선생이
"미국 중부 지방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한 나라의 중심부가 가장 문물이 번성했을 테니..."라고 하는 말에 박장현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장면(물론 작가의 상상력이겠지만)이 재미있었는데요. 아마 작가님도 미국 사정에 밝으시겠지만 사실 네브래스카 등 중서부
일대는 이른바 "인 비트윈 에어리어"로 불리는, 개성도 재미도 흥청거리는 부유함도 없는 심심한 촌구석으로 미국에서는 통하기
때문이죠(책에 그런 말은 없지만 말입니다). 다만 저자는 날카로운 분석도 곁들이시는데, 만약 동아시아 출신 철도 노동자들이 잔뜩
몰려들어 인종 차별과 갈등상이 첨예한 서부로 갔다면 어린 일형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그나마 인간미가 남아 있는 중서부라야 교육
여건이 유리하지 않았을지를 짚는 대목이 좋았습니다.
책은 유일한의 일대기만 서술하지 않고, 당시 국제 정세가
어떠했는지, 조선(한국) 내의 정치, 경제적 실정은 어느 단계였는지에 대해서도 유익한 정보를 싣습니다. 역사와 인물의 일대기란
이처럼 교차 조명되어야 그 참된 의미를 독자가 깨달을 수 있죠. 앞서서 유기연 선생이, 청일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고국의 실정을
개탄하는 장면에서도, 어린 독자들은 한국의 근대사 어느 지점에서 인물이 성장했는지 다시 확인이 가능하겠고요. "왜 유일한이
빈손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했는지, 왜 스스로 돈을 벌어가며 고학했는지"는 본문에서 다루지 않고, 여객선상에서 소매치기를 당했음을
박스 속에 넣어 유일한 생전의 회고 형식으로 가르쳐 줍니다. 편집이 단조롭지 않고, 어려운 단어 뜻풀이나 배경 설명을 최대한
친절히 곁들이는 태도도 책의 큰 장점입니다.

터프트(이
책은 정확히, 소년 일형의 은인이었던 가족 이름을 "터프트"라고 명기합니다) 가족은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었고(책에는 왜 독일계
이민자들이 이 시기 대거 미국으로 몰렸는지 배경 설명이 실려 있습니다), 소년은 지역의 헤이스팅스 고교에서 공부면 공부,
리더십이면 리더십, 운동 능력이면 운동 능력, 모든 면에서 두각을 나타냅니다. 인재라고 해도 이처럼 그 잠재력을 계발할 수 있는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구요. 미국 고교에서 백인 친구들을 다 제치고 풋볼 센터포워드("센터"가 맞겠죠?)포지션을
맡았을 정도이니 그 체력과 센스, 튼튼한 체구 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궁금한 건 소년 유일한이 미국에서 꿈을
키울 때 그 가족분들은 뭘 하셨냐인데요. 여기 대해서도 용케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 주시려고, 책에선 "간도로
진출(1909)하였으나 의외로 큰 손실을 봤다"며 자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책의 뒷부분에서 이어지지만 아마도 이때부터 유일한이
호미리 씨와 결혼할 무렵까지 가족들은 계속 북간도에 거주한 것 같네요. 확실히 이재에 밝은 분들은 어떤 시스템이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재능을 발휘하여 생존과 번영에 성공하는 것 같지만 이런 예기치 못한 역경도 언제나 따르게 마련입니다. 일형 소년이
헤이스팅스 고교에 입학할 때가 막 한국(조선)이 국권을 잃었을 무렵임이, 이 책 맨 뒤의 깔끔한 연표를 통해 잘 나와 있습니다.
고교
성적이 워낙 좋아 어디든 입학할 수 있었겠지만 이런 아버지의 딱한 사정을 보고 마음이 편할 수 없었던 유일한은, 잠시 대학
진학을 미루고 아르바이트를 통해 번 돈을 송금하여 본가를 부양하기로 합니다. 이때 처음 멀리 미시건 주 디트로이트 변전소에
취직하여 하필 크리스마스에 그 지역 일대가 정전을 맞게 하는 큰 사고를 내지만, 동료와 직근상관이 한사코 "누구보다 성실한 미스터
유의 잘못이 아님"을 입을 모아 변호하는 통에 해고의 위기를 잘 넘깁니다. 이때의 아찔한 경험은 그의 일생을 통해 큰 교훈이
되었음을, 본인과 그 조카분(유승흠 이사장) 등의 입을 통해 술회됩니다.
이 책에는 유일한의 성장기에 영향을
직간접으로 끼친 독립투사, 애국지사들의 이름도 여럿 등장하는데, 하와이에서 이승만과 알력 관계로 잘 알려진 박용만 선생이라든가,
독립협회에서 주동적 역할을 맡은 서재필 생 등이 그 좋은 예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생애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당대 미국
산업상의 눈부신 발전상을 설명하며 에디슨, 포드 등 자수성가형 기업인들의 활약에 대해 짧게 언급하는 것도 교육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겠네요. 뿐만 아니라 록펠러와 그의 사업 스타일, 철학 등을 비교한 대목도 있습니다.
중국 출신 호미리씨와
결혼하며 유일한은 더욱 경제적으로 안정된 기반을 다져 나갑니다. 중국에 체류할 당시 어느 허름한 행색에 낡은 가게나 운영하던
장사꾼이, 집으로 돌아오자 고대광실 살림에다 더할 나위 없는 호사를 누리는 걸 보고 이유를 묻자, "잘 꾸며 놓으면 탈세를
못한다"는 대답이 돌아오는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이때 그가 다짐한 건 한국(이미 일제에 병탄되었지만)에 돌아가서는 걸코
탈세하는 일이 없어야 국가가 위난에 처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었는데요. 훗날 유한양행으로 국내 굴지의 기업을 일구고서도 모범
납세자로 여러 차례 표창을 받은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선생은
통조림 사업 성공을 기반으로 큰 돈을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자금 상당 부분을 광복군의 독립 투쟁 지원에 썼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그가 단지 신의와 자조 정신으로 성공한 사업가일 뿐 아니라, 민족 모두의 귀감이 될 만한 애국지사이시기도 함을 알
수 있죠. 해방 이후에는 대한상의 회장직을 맡아 사리의 추구보다는 민족 경제 전체가 고루 회생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
애쓰셨는데, 그 척박하고 악착스러운 경쟁 풍토에서 이런 선비 정신으로 경영과 처세에 임한 분이 계셨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산업화 초기 많은 기업들은 헐값에 부지를 사들여 점유하다가 뜻하지 않게 지가가 급등하여 가외의 횡재를 맞게
되었는데요(이런 풍토는 이후 20년 후까지 이어져, 당시 정부에서는 소위 대기업의 "비업무용 토지 보유"를 제한하려
절치부심했죠), 유 회장님은 주저없이 "사회 환원"을 내세우며 처분을 지시합니다.
유한양행은 그 이른 시기부터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내세우며 현대 기업이 지향해야 할 바른 행보를 앞장서서 끌고 나갔습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같은 개념이
아니라도, 소비자와 생산자, 기업과 대중이 공존 공영을 도모할 길이 무엇인지 일찌감치 답을 제시하고 관대한 실천에 나선 이런
선구자적 기업인, 애국자의 면모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란 끝이 없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