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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웨이 미술사 - 미술의 요소와 원리.매체.역사.주제 - 미술로 들어가는 4개의 문
데브라 J. 드위트 외 지음, 조주연 외 옮김 / 이봄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어렸을
때 집에 비치되어 있던 아동백과사전 전집이라든가, 혹은 가정백과사전(요즘은 이런 게 잘 없던데)에 보면 꼭 "왜 미술은
어려운가(요)? 어떻게 하면 예술품을 잘 감상할 수 있을까(요)?" 같은 질문으로 해당 파트(즉 미술)가 시작되곤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는 오히려 이런 질문이 이상하게 보였는데요. 물리, 화학, 미적분학 등이라든가, 하다못해 서양 고전 음악이 어려웠으면
어려웠지, 손으로 선을 그리고 예쁘게 색칠하면 될 뿐인 미술이 왜 어려운가, 또 위대한 예술인들의 작품만 해도 그 멋진 색과
조형과 표현을 눈으로 잘 감상만 하면 그만이지 그게 어려울 게 뭐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수학이나
물리를 잘 이해하려면 정해진 규칙과 논리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지능이 중요합니다. (창작을 일단 논외로 한다면) 미술도 그런
기술적 지능이 요구되는 분야일까요? 그냥 열린 마음과 풍부한 감수성만으로 (감상이) 충분하지는 않을까요? 요즘 핫이슈인
인공지능도 그 고도화한 단계에까지 개발이 이른다면, 학습과 (내재한) 규칙의 파악을 통해, 소양 있는 인간처럼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눈(심미안)을 갖추게 될까요? 현재로서는 알 수 없고, 완성도 높은 AI가 실제로 나와 봐야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만족스런 답이
구해지지 싶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미술 작품의 감상에도 전문가들의 어떤 도움, 가이드를 받아, 종전보다는 더 확실하고 더
세부적인 부분까지 파고들어갈 수 있는, 그런 "감식안"을 갖출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물론
저는 선천적인 감수성이나,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레 몸에 체득된 "센스"가 더 우선이라고 봅니다. 하나하나 교정을 받거나 인위적
학습을 통해 배운 느낌(이라기보다 이미 머리로 이해하는 과정)만으로는, 예컨대 스탕달이 구이도 레니의 거대한 프레스코화를 보고
실신할 뻔했다든가 하는, 총체적이고 강렬한 미적 감흥으로 이어지기는 힘들겠죠. 허나 전부가 안 된다고 또 모두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명작 명작 하는구나, 그 이유를 느껴가며 전시회도 찾고 화첩도 넘겨 가는, 일상의 작은 윤택이랄까
여유를 잠시라도 체감하는 삶과, 그저 루틴에만 찌든 인생이 서로 같은 선상에 놓일 수는 없습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그림이 눈에 안 들어오던 "미학치"들이,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떼어가며 미술 보는 실력을 기를 수 있는 멋진
입문서, 말 그대로 "게이트웨이"가 되어 줄 수 있다고 봅니다.

미술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저자는 에도 시절 일본의 가츠시카 호쿠사이와 고대 이집트인들 두 예를 들며, 미술이 일상의 여유와 현실의 필요
두 양극단 스펙트럼 사이의 어느 지점에도 위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미술이란 특별한 이들에 의해 창작되어 눈 높은 소수에 의해
맛보아지는 별세계의 진미(珍味)일 뿐이지 않고, 인간이 생계를 위해 할당하는 시간 그 나머지 동안에, 짓고, 표현하며,
"끄적이는" 모든 감성의 표현이 다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에 들인 수고와 재능과 영감을 타인이 얼마나 절절히 평가해 주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이런 의미에서 1) 공간을 점유하는 매체(media)에 의해, 2) 감상자의 "시각"에 호소하는 일체의
창작물, "포이에마"는 다 미술품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이
책은 큰 화제, 이슈의 설명(이 책의 저술 목적)을 위해 올메크 족의 거대 두상이라든가, 나스카의 지상화, 혹은
<실루에타> 같은 논란의 "작품들"까지 도판으로 싣고 그 "미술성"을 자세히 풀어 줍니다. 왜 이게 전혀 자격의 하자
없는 미술들이며, 또 우리는 어떻게 이 "작품들"을 게이트웨이 삼아 난코스를 돌파할 수 있는지, 쉬우면서도 정확한 언어적 레슨을
통해 차분히 가르쳐 줍니다. 미술을 그저 미술적 기호로만 설명한다든가, 오로지 실습을 통해서만 전달 가능하다(어느 정도는
사실이죠)며 완강한 태도를 유지한다면, 초심자들은 영원히 초심자에 머물 수밖에 없겠습니다. 이 책의 최고 장점은 미술을 미술
외적인(물론 그러면서도 내적인) 메타언어로 접근하게 독자를 돕는다는 데에 있음이 여기서도 확인되네요.
선(線)이란
무엇인가? 일단 구상(具像)을 구성(構成)하는 가장 기초적인 요소라고 하겠습니다. 책에서는 명시적이거나 암시적인 경계를 뜻한다고
정의하는데, 이 규정은 풍부한 도판을 통해 독자들에게 충분히 쉽게 전달됩니다. p26을 보면 베네치아 두칼레 궁(宮)을 담은
사진과 카날레토의 18세기 회화가 나란히 놓였는데, 이때 하늘과 건축물을 가르는 경계으로서의 "선"은 위 작품(사진)에선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아래 그림에서는 화가의 붓질을 통해 드러나죠. 또, 회화는 명백히 2차원 평면에서 벌이는 사람 손길의
(無로부터의 창조)이기에 입체감을 드러내려면 다른 기법이 따로 동원되어야 하는데, 위 사진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반대방향의)
대각선(행사를 위해 길게 늘어뜨린 줄)을, 그림에서는 구조물의 표면을 가로지르게 배치함으로써 "표면"의 느낌을 부각합니다. 사실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 건 저자의 다음과 같은 부가 설명이었는데요. "(처음 볼 때) 이 선은 간과되기 쉽다." 사진에서는 애초에
광학상의 효과로 잘 보이지도 않게 찍혔지만, 그림에서는 화가가 심혈을 기울여 배치한 것이 초심자에게는 스쳐 지나가고 만다는
점입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초심자들이, 대체 왜 무엇을 못 보고 넘기기에 미술로부터 "소외"되고 마는지 정확히, 이런 식으로
짚어 줍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들)이 의도한 대로, 초심자 수준의 독자가, 예술가의 본심과 속셈, 내공과 깊이를, 있는 그대로 명작 미술품에서
소통, 이해하고 싶다면, 다음의 네 가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는군요. 1) 기초 2) 매체 3) 역사 4) 주제. 이 중 앞의 두
가지는 협의의 미술 분야에서만 다루는 이론이겠으며, 뒤의 둘은 널리 인문 영역의 소양이 두루 커버해 줘야 하는 부분이겠습니다.
"기초"는 말 그대로 선, 면, 색, 대조 등 미술(품)이 어떤 언어로 표현되고 감상되는지 그 기본 요소에 대한 이해입니다.
"선"의 예를 다시 들자면, 저자는 고야의 그 유명한 <1808년 5월 3일(의 학살)>을 소재로 삼고, 이 작품에서
얼마나 많은 "방향선(암묵적인 선이죠)"들이 구도를 형성하고, 감상자의 시선 처리를 도우며 창작자의 의도를 알아채게 하는 데
기여하는지, 독자의 궁금증을 속속 긁어 주는 설명을 풀어 놓습니다.
아마
명품의 감식에 이미 익숙한 교양 있는 독자라면 "뭘 이렇게까지 번잡한 설명으로 명작의 고아한 터치를 스토킹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당사자가 해당 작품에 깊이 침잠해 들면 들수록,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범위도 늘어나겠으며, 이런 범위는
사실 확장에 한계가 필요 없습니다. 아는 건 많은데 표현을 못한다는 핑계가 가장 구차한 법이죠. 표현을 못 하는 건 잘 몰라서
못하는 거고, 그런 대가들이 초심자들도 자신과 공감하게 돕는다는데 그걸 탓할 이유는 조금도 없습니다.
다빈치가
조소와 회화에만 통달한 기능인이 아니라, 과학, 인문, 철학을 두루 마스터한 만능인이었음은, 현재 창의력을 중시하는 교육
트렌드의 상업적 구호 덕분에라도 우리가 잘 압니다. 책은 미술의 "매체(실제로 제작, 창조하는 방법론 연관)"를 논하며, 고대나
중세의 창작자들이 첨단(그 시대 기준) 도구의 사용에 얼마나 능숙했는지를 설명합니다. 미술과 과학은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인간 활동
분야의 좌뇌, 우뇌적 양극단으로 오해되지만(좌우뇌 구분 자체가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도 유력합니다), 지난 시절 대가들에게 두
영역은 서로 완벽히 통하는 공존의 필드였음을 잘 보여 주는 챕터였습니다.
삽입된
여담 속에 "감상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잘 알려주는 의미심장한 정보도 있습니다. 렘브란트의 작품을 어렵사리 절도해 낸
범죄자들이, 결국은 저자(중 한 분인 로버트 위트먼)와 접촉하여 시가의 1%도 안 되는 금액에 넘기고 만 실화는,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명작 도둑질에서는 훔치는 능력보다 팔아넘기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확인시켜 줍니다. 무슨 뜻인고 하니,
(책에 그런 말은 없습니다만) 현대에는 워낙 정교하게 위조, 복제재현하는 능력이 뛰어난 기술자들이 많기에, 정확한 프로비넌스(이
책에서는 "출처"로 번역합니다)가 없으면 과연 진품인지 가품인지 알 방법이 없고, 출처도 모를 미술품을 거액을 주고 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입니다(책에서는 재판매 불가능성도 언급).
그럼
추리소설이나 케이퍼 무비에서는 왜 그처럼 범죄자들이 큰 돈을 버는 걸까요? 이는 위에 나온 대로, "그만큼 제 임자를 골라
접촉하여 제값에 떠넘기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설정으로 넘어가는 거죠. 만약에 재판매 가능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자기 만족을
위해" 소장하겠다는 부자라면 이게 가능합니다. 또, "이게 설령 가짜라도 무방하다. 이처럼 힘있는 진품의 터치가 재현 가능한
솜씨라면 그건 거액을 들여 구입, 나만의 공간에 모셔 두고 감상할 가치가 충분하다"라는 확신을 가져야 또 거래가 가능하겠죠.
요약하면
ㄱ. 그 정도 거금을 수중에 지닌 사람 자체가 드물고, ㄴ. 그런 부자가 진실로 소양까지를 갖춰 진품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지는
일이 또한 드문 법이니, 두 조건을 모두 구비한 구매자를 찾아낸 그 범죄자(그런 자가 있기나 하다면)의 능력이란 게 벌써
이만큼이나 희귀하다는 뜻입니다. 또, 아무리 기술적으로 정교하다 해도, 남(렘브란트 같은 거장)이 처음 시도한 걸 답습할 뿐인
장인의 솜씨는, 오리지널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라는 데에 미술전문가 모두의 의견이 일치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이런 점을 잘 이해 못 해서, 예컨대 크리스티나 아길레나를 기막히게 모창하는 한국 가수가 왜 빌보드에서 뜨질 못하는지
갸웃해합니다. 카피캣은 결코 원판을 넘볼 수 없는 법입니다.
디자인은
곧 산업의 총아입니다. 왜 미술이 저급한(?) 실용과 이윤 창출 과정에까지 한 발을 깊숙이 담그는가. 이는 "상징을 사용해
정보와 생각을 소통(p32)"한다는 미술 본연의 기능과 사명이, 현대의 산업디자인과 홍보 섹터만큼 절실히 발휘되는 곳이 또 없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면 미술은 (의식이 깨인) 선구자들의 손과 머리를 빌려 (지난 수만 년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제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사정 모르는 문외한들이 괜한 시비를 걸어 온 셈이죠. 우리가 상표, 도안, CI, 포스터 따위를 통해 너무나도
친근히 이뤄 온 미술적 소통의 예를, 책은 격의 없이 다뤄 가며 당신이 숨쉬듯 겪어 온 흔한 지점에서 미학의 기초를 확인하기를
강력히 충고합니다. 편하게 장난하듯 다뤄 온 게 알고보니 공부였다니 게으른 학생들에게는 이처럼 반가운 뉴스가 없습니다.

주제와
역사 등 인문의 논의는 여태 많은 대중서에서도 시도해 온 채널이자 교양이기에 이 리뷰에서는 생략하겠습니다만, 저자들의 관점은
현대 시민 소양을 널리, 탄탄히 갖춘 독자들의 기준에 충분히 부합할 만큼 온건하고 건전합니다(안 그런 초보 독자들에게라면, 충분히
유익하고 안전합니다). 무엇보다 미술을 내적(위의 1, 2번), 외적(위의 3, 4번) 측면에서 동시에 공략해 들어가며, 종래의
미술 개론서에서 보지 못하던 치밀한 분석과 인문언어에의 호환이 넉넉히 이뤄진 책이라서, 익히 알던 포인트라도 명징한 설명으로
재확인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예전에 어느 원로 교수님께서 "너희 1학년들이 공부하는 교필 국어작문 교과서를 읽어 보니, 어쩌면
그렇게도 알차고 핵심을 찌르는 명문장들만 수록되었는지 감탄했다"고도 하시던데, 그분이 기초 교재에 서술된 사항을 몰라서 그런
평가를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는 이들에게는 재확인, 시원한 복습의 쾌감을 선사하는 책이, 입문자들에게는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해결사 노릇도 겸한다는 점 다시 깨닫게 된 독서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