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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최인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때로는
무엇을 바라보느냐 보다,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준거틀, 혹은 간단히 "frame(of
reference)"의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대상은 분명 본성과 외관이 변치 않은 채 그 자리에 머무릅니다만, 이를 바라보는
우리 눈이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결과가 초래됩니다. 때로는 (고정된) 대상을 바라보는 이 시각 차 때문에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에 다툼이 빚어집니다. 이렇게나 프레임이 차이 나는 사람들이 물체가 아니라 아예 서로를 바라볼 때 얼마나 극심한 싸움이
벌어질지도, 프레임의 중요성을 알게 된 뒤라면 충분히 짐작 가능합니다.

이
책은 서울대학교 최인철 교수님의 유명한 심리학 대중서를 십 년 만에 개정하여 다시 독자들 앞에 내어 놓은 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프레임"이란 말 자체가 낯설었고, "프레임이란 프레임"을 써서 우리 자신의 행태라든가 주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을
고찰한다는 게 무척 신선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제목이 그저 "프레임"으로 붙어, 아 무척 어려운 내용을 서울대 교수님이
설명하시겠구나 하고 지레 겁먹고 간신히 책을 열었다가, 의외로 쉬운 내용, 그러면서도 신변의 여러 골칫거리에 두루적용할 수 있는
가르침이 들어 있는 걸 알고 엄청 고마워하는 독자들도 많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10주년 개정판 프레임"의 발간 소식을 무척
반겨할 이들도 많을 줄 압니다.
심리학뿐
아니라 모든 순수학문이, 어떤 실제상의 효용이 바로 생겨서, 대학에 학과가 설치된다거나 정부, 기업 측으로부터의 상당 규모
지원이 유치된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길게 보아 응용학문이 산출할 수 있는 효과의 몇 배를 이들 섹터에서 기대할 수 있음을 알고
시설과 인력에 대한 투자가 감행되며, 넉넉히 지적으로 계몽된 사회 전반도 이미 이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순수 학문 분야의
성과를, 다름 아닌 우리 일상의 복잡한 문제에 다소나마 응용, 해결할 수 있기까지 하다면, 학자의 그런 대중을 향한 수고에 이
또한 각별히 고마워해야 할 일 아닐까요. 심리학자가 쓴 이 책은 마치 본격 자계서마냥, 수양이 덜 된 탓인지 사회 구조가 모순에
가득찬 탓인지 우리의 속을 썩게 하는 여러 문제에 대해 제법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해 주기도 합니다. 많은 독자들이
호응을 보낸 대중서라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번
10주년 기념판은 변화한 그간의 사정을 반영하여, 구체적인 예시도 그 10년 사이에 벌어졌을 법한 사례들이 담겨, 책이
업데이트판임을 실감케 합니다. 서양의 석학들이 자기 책에서 즐겨 쓰는 "셀프디스성 위트"도 곁들여져 저자의 여유 있는 심성과
현황에 대한 짐작도 가능하고요. 캠퍼스의 주자난을 겪고 있는 저자의 재직 학교를 소재로 삼아, "그 나름 창의성(좀 과하지 않나
싶습니다만)을 발휘한 주차"가 "웬 몹쓸 무개념 얌체짓"으로 돌변한 예는, "맥락"을 제거하고(쉽게 말해, "앞뒤 자르고")
그것만 부각했을 때 사람들의 평가와 시선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잘 보여 줍니다.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를 두고 외과의사가 "이 아이는 내 아들이니 수술할 수 없습니다!"라고 외친 에피소드는 예컨대 IQ 테스트(실전용
말고요)라든가 유머를 담은 책에 자주 등장하죠. 이 이야기는 성별(젠더)가 명확히 갈리는 언어 중 하나인 영어로 읽어야, 왜
독자(청자)들이 그리 쉽게 낚이는 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좀처럼 잘 안 속는 편인데, 어쨌든 이 소재는 10년
전(정확히는 9년 전) 초판에도 실려서, 한 단편적 사실을 이해하는 데 맥락의 활용과 선 파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
줍니다.
프레임은
정의(definition)이고 질문이기도 하지만(그 외에도 프레임이 대체 어떤어떤 기능을 하는지 저자는 다양한 해답을 내놓습니다.
모두 각각에 어울리는 쉬운 예화가 곁들여진 설명이죠), 은유이자 순서이기도 하다시는군요. 무슨 뜻일까요. 일단 가족들과 저녁
식사 약속을 정하는 어느 군 출신 인사의 표현을 그 예로 듭니다. "집합!"을 태연히 문자 메시지 속 대화에 끼어넣는 그에게,
가장 단란하고 평화로워야 할 가족사마저도 신속, 정확이 미덕인 군대 업무 프로세스의 "비유"로 대응되어야 할 대상일지도 모릅니다.
저자와 같은 소속 학교의 김난도 교수는 인생을 시간대에 비유하며, 아직 청춘(오전 6시대)의 시기를 지나는 젊은이들이 왜 지레
절망하고 비관적으로 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지적한 바 있다고 저자는 간접 인용합니다. 어떤 회사는 "가족 같은 분위기"를
강조하는데, 이 역시 프레임의 마법으로 비합리적 관행과 원칙의 무시를 합리화하는 술책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일상에서
잘못된 은유, 언어 관행을 걷어내는 노력은, 바로 "숨어들어 구조의 모순을 은폐하는 프레임의 제거 작업"이기도 함을 저자는
강조합니다.
자기 준거 프레임이란
말이 있죠. 사람은 현상이든 물건이든 공부해야 할 내용이든 자신과 연관 지을 때 더 오래 기억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책에는
polite라는 단어에 관한 설문 조사에서, "오바마"라든가 "그 반대말"이라든가 하는 질문을 받은 이들보다, "당신(자신)"과
엮인 질문을 받은 이가 더 오랜 기억을 가졌음을 거론합니다. 내 일이 아닌 남 일은 관여하고 싶은 욕구도 적고 우선순위도
떨어지기 마련이죠(저자는 이 책의 다른 대목에서 "프레임은 곧 순서"라고도 규정합니다). 책에 그런 말은 없지만 공부도 이와
비슷해서, 예컨대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다양한 사건을 암기할 때 일일이 자신의 과거사나 일상과 연계시켜 본다면 기억이 오래갈 것이
당연합니다.
심리학교과서뿐 아니라
법학 교과서에서도 소위 "의무의 충돌(Pflichtkonflikt)"과 관련하여 이 트롤리의 사례가 자주 끌어대어지죠. 두 갈래로
나뉜 궤도를 당신이 조종 가능할 때, 한 명이 일하는 궤도와 다섯 명이 일하는 곳 중 어디로 차량을 틀게 할 것(차량이 지나는
궤도상의 노동자들은 다 죽게 됩니다)이냐를 놓고, 많은 이들은 보다 적은 인명의 희생을 위해 마치 숭고한 결단("나라고 마음이
편하겠어?")이라도 행하는 양 전자를 선택합니다. 이번에는 차량이 지나는 철교 위에 당신 말고 건장한 남성(이게 중요하죠)를 확
밀어 떨어뜨릴 때, 다섯 명의 노동자를 구할 수 있다고 했을 경우, 당신은 이 남자를 희생시키겠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아무도
흔쾌히 "예"를 답하지 않겠죠. 사실 이는 전혀 다른 상황 둘을 그저 "5냐 1이냐"의 문제로 단순화시켜 동일한 문제로 치환한,
(저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프레임의 마력 중 하나를 증명하는 예로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최인철 교수님은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한다는 명분은 어느 경우에도 이처럼 무리가 따르는 것임"을 보이려는 의도입니다.

저자께서
장난스럽게 "후견지명"으로 부르는, 이른바 benefit of hindsight란, 지난 시점에서 결과를 다 알고 사태를
판단하는 누구라도 현자가 될 수 있음을 비꼬는 표현입니다. 이 책 초판에도 나왔지만, 2002 피파월드컵 어느 경기에서 이을용이
실축하자, "이 긴박한 순간에 대담한 이천수를 넣었어야지!"라며 감독의 결단에 손쉬운 비난을 하는 관중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는
예화를 읽고 다시 한 번 웃음이 나더군요. 만약 성공했더라면 "노련한 왼발잡이를 넣어 상대의 의표를 찌른 감독"을 두고 감탄이
이어졌거나, 혹은 이천수를 넣어 실패했더라면 "왜 경험도 없는 선수를 그저 간만 크다고 기용했는지"를 놓고 질타를 일삼는 모습이
훤히 그려진다는 저자의 지적은 매우 타당합니다. 스포츠 팬이 가장 자괴하는 대목은 바로 이런 "결과론의 성찬"입니다.
undocumented
worker란 직역하면 (법적)서류에 등록되지 않은 노동자라는 뜻이겠는데, 이는 쉽게 말해 불법 이주 노동자죠. 불법
체류자(불체자)라고 하면 당장 적발해서 제재를 가해야 할 대상 같고, "~노동자"라고 하면 정당한 노동과 기여를 사회에 베풂에도
불구하고 제도의 모순으로 핍박받는 희생양처럼 여겨집니다. 이런 말을 쓴다는 자체가 정치적 프레임이란 뜻인데, 사실 이는 우리가
조선족 범죄자들을 다룬 뉴스에서도 흔히 접합니다. "조선족 아무개씨가..."라고 시작하는 뉴스는 시청자들에게, "아니 조선족이
또!"라며 분노와 짜증을 유발하지만, "중국 동포 아무개씨..."라고 시작하는 기사는 "어쩌다가 이 먼 곳까지 와서..." 같은
동정심을 부르기에 충분합니다. 현재는 이게 프레임인 줄 알고 많은 이들이 시정을 원하는 눈치더군요. 프레임이란 이처럼 일상
도처에서 우리를 "인식의 함정"에 빠뜨리는 녀석입니다.
저자의
결론은 온정적입니다. 어떤 사태를 바라볼 때 "사람 프레임"에 얽매이지 말고 "상황 프레임"으로 보면 그 일(대개 불미스러운)을
저지른 당사자에 대해 더 온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놈은 원래가 나쁜 녀석이야."에서 "상황이 그렇게 되면 나라고
별 수 있었겠어?"로 시점이 전환된다는 거죠. 반면 저자께서 지적하시는 대로 무책임한 상황 논리, 혹은 숙명론으로 쉽게 타락할
수도 있고, 이런 "상황 프레임"의 편한 장막에 숨는 이들이, 정작 자신 아닌 타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잣대를
교활하게(아니, 자신이 그러는 줄 모르니까 대단히 어리석게)들이댄다는 점도 우리 독자 입장에서 지적 가능합니다.
앞서
말했듯 이 책은 일상에서 누구나 쉽게 접할 예화를 통해, 왜 비생산적인 갈등이 성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며, 개인들은 속을 끓이고
스트레스를 받는지를 간단히 풀어준다는 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어려운 심리학 용어(한번 공부해 보신 분들은 잘 알지만 예사
두뇌로는 본격 구조에 접근 못할 만큼 어려운 게 이 심리학입니다)를 전혀 쓰지 않는데다, 보통 독자들은 말은 못 외워도 이야기는
다들 기억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개념의 정수라든가, "당신이 당신 일상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가르치는 게 바로 이 책입니다. 읽고 나서 확실히, 어떤 레벨의 독자라도 뭔가 머리와 가슴에 남는 게 있습니다. 하드커버판이고
디자인이 세련되어 소장 욕구를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