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여인실록 - 시대가 만들어낸 빛과 어둠의 여인들
배성수 외 지음 / 온어롤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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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과 편견이 끼어들지 않은 채, 우리 후손들이 마음껏 우리 시대의 시각으로 해석과 평가를 내릴 수 있는 1차 사료가 조금 더 풍성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누구나 가질 만합니다. 이런 아쉬움이 있기에, 역사에 대해 애정과 상상력을 듬뿍 지닌 재기 넘치는 저자들이, 오히려 자신만의 관점으로 풀어낸 역사의 자락을 놓고 우리 독자들과 즐거이 소통도 할 수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해석이나 추완의 여지를 전혀 남기지 않는 치밀한 과거에의 기록이 어쩌면 후세 사람들을 더 숨막히게 할지도 모를 일이며, 현실이 이렇지 못하기에 우리는 조상들의 다소 희미한 흔적과 더 진지한 대화를 시도하려 애쓰는지도 모르죠. 더군다나 그 대상이 현실의 엄청난 제약 속에 힘겹게 자아의 실현, 혹은 욕망이나 포부의 발휘를 꾀한 여성들이었다면 말입니다.

모두 여섯 분의 실존 인물, 그 중에서도 여성들만 짚고 있는, 저자들의 주관을 강력히 투사한 에세이 모음입입니다. 편마다 집필자가 다르므로 아주 세심히 읽은 독자라면 뭔가 관점이 일관되지는 않다는 느낌이 올 수도 있는데요. 어차피 네 분 저자들이 쓰신 내용이니만치 다른 저자들의 시선에 따라 재미있게 읽고 독자 나름으로 생각에 잠길 계기를 가지면 충분합니다. 성리학적 도그마에 (자신도 모르게) 갇힌 채 그간 독자 자신이 (특정 인물, 특히 여성들을) 너무 편향되게 바라보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해 보는 것만으로도 책을 읽은 보람은 충분하다고 하겠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 이보희씨 주연의 <어우동>이란 영화가 당시 서울에서 큰 흥행을 기록하면서, 범죄자, 음녀로 단죄받고 죽은 성종 연간의 한 여인이 대한민국 국민 상당수의 뇌리에 그 이름이 새겨질 만큼 인지도가 높아졌습니다(그 전에 故 신봉승 선생의 통속물도 있었지만). 이상한 건, 왜 버젓한 가문에서 출생하여 남부러울 것 없이 성장한 미모(...)의 여인이 그토록 무모한 애정 행각을 일삼았고(사회적 폐습의 제재를 받으리라는 결과가 뻔한 데도), 또 간통과 음행에 통상 의율되는 형벌을 훨씬 넘어선, 극형까지 선고, 집행받아야 했냐는 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여태 많은 역사학자, 저술가 들이 그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며 숨은 진정한 곡절을 추측해 왔습니다. 저자 역시 다분히 어우동(이 책에서는 어을우동이라는 표기를 따릅니다)에 대해 우호적, 동정적인 논조로 그간의 시각을 요약하거나, 자신만의 견해를 풀어 놓습니다.

다만, 확고한 유교적 도그마에 기반한, 제도 정비와 백성의 이념적 순치에 주력한 군주답게, 이 사건을 일벌백계로 다스려 어떤 본보기를 보이려 들었다는 해석에 대해서는 저자가 가볍게 "헛소리"라며 일소에 부치는군요. 그보다는 뭔가 절박한 현실정치상의 필요라든가 이 건과 연계된 다른 스캔들을 덮으려 든 게 직접 동기가 아닐까 하는 쪽으로 논의의 방향을 트는 저자입니다. 이능화의 저술 한 대목을 인용하며 "성종 본인이 행여 '기생으로 전업하다시피한' 어을우동과 모종의 관계를 맺지 않았을까" 하는 가설도 소개합니다. 이런 입장은 여태 많은 대중서에서 친숙히 접해 온, 또 그만큼 많은 공방과 검증을 거친 내용들이지만, 여튼 저자가 많은 문헌을 검토한 후 재치 있는 사견을 첨언했다는 점은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p42:5에 나온 "無乃選上新妓?'처럼 1차 사료에서 직접 뽑은 문장들도 신뢰를 더하는 저술 태도입니다. "無乃~?"는 "~가 아니겠는가?"하는 확인형 의문투입니다.

어을우동의 경우 아무리 전적으로 마음을 주고 진한 사랑을 나눈 상대(들)이라고 하지만, (그 과정이 간단치만은 않았을) 몸에 먹물을 새겨가면서까지 그 정인(情人)들의 이름, 추억을 간직해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이분이 남자를 한번 상대하면, 어느 정도 자신을 아낌없이 바치는, 그 나름으로는 순도 높은 사랑을 나눈, 말 그대로 순정의 여인이었음을 오히려 알 수 있는 대목일까요. 저자는 "요즘 젊은이들의 세태"를 유비하며, 연인의 이름을 타투로 새기는 풍조와 다를 바 없으니 현대형 사랑을 몸소 (수백 년 앞서) 실천한, 꽉 막히고 정직하지 못한 시대에 온몸으로 반항한 여권운동가로까지 평가할 수 있다는 입장 같습니다. 그렇게까지는 몰라도 좀 짠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지거비라는 천인에게 성폭행을 당한 내막에 대해서도 저자의 추론이 서술되었으니 읽어 볼 만합니다. 성종의 인품과 치적에 대해 일반의 인식이 과대평가된 면이 없지 않다는 저자의 지적은 날카롭습니다.

이 1장은 이렇게 마무리되는군요.

"사람이 누군들 정욕이 없겠는가? 다만 내 딸이 남자에게 혹하는 게 너무 심할 뿐이다."

人頗疑於乙宇同之母鄭氏 亦有淫行 嘗曰

人誰無情欲 吳女之惑男 特已甚耳

앞부분은 "사람들이 자못 그 어미 되는 정씨도 음탕하지 않은가 의심했는데, 일찍이 말하기를.."이란 뜻입니다. 마지막 구절 중 "오녀(吳女)"는 문맥상 "吾女"의 잘못 같습니다.

신사임당의 경우 제가 아주 어려서 읽은 아동물(故 조풍연 선생 저)에서도 이분의 정확한 함자에 대해 알 수 없다는 말로 시작하고 있어서 좀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어떻게 이런 위인에 대해 기초적인 인적사항도 규명이 안 되었을까?" 이 책에도 대뜸 "인선이라고 전하지만 확실한 출처가 없다"는 서술로 글의 단초를 엽니다. 여성들이 아무리 재능이 빼어나고, 체제에 의해 칭송받는 위상까지 올라서도 여인에 대한 시각이 "누구의 아내, 여식, 어머니" 이상의 어떤 평가도 허락지 않는, 당대의 편협한 분위기를 짐작하고도 남죠. 대신 "임", "사"라는 당호를 구성하는 글자의 연원에 대해선 또 아주 흔히 설명을 접할 수 있습니다. 이분의 생애가 다분히 체제의 이념을 위해 선전되고 미화된 느낌이 없지 않기에, 5만원권 지폐 도안 선정 당시 적지 않은 반대가 여성계로부터 일었지만, 뭐 그럴 필요까지 있었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필치와 화풍에 그 단아하고 안정된 품성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저자의 평가에 동의합니다(비단 사임당의 경우에 한하지 않고 말입니다).

허난설헌의 경우 속 좁고 못난 남편 때문에 불행한 생을 살고, 이후 복권되었다고는 하나 대역죄인으로 몰려 금기시된 허균의 누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평가를 받은 게 사실입니다. 아마도 당대 남성 문인들은, 일개 여인이 뛰어난 글재주로 중국 본토(...)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큰 인기를 끈 게 시샘이 나 표절이라느니 허균의 편집 가필의 흔적이라느니 하는 폄하를 일삼았을 것입니다. 허나 문인의 작품마다 드러나는 독특한 개성과 풍취란, 눈 높은 감별가에게만 캐치되는 고유의 시그니처와도 같아서 이런 걸 삼류 가필가가 사후 조작할 수는 없죠. 물론 반대로 재능이 전무한 엉터리가 그 지경에 머무는 걸 무슨 여성이라서 불리한 평가를 받았다느니 가당치도 않은 핑계를 들이대는 행태가 합리화될 수는 또 전혀 없습니다.

조선시대 풍운의 삶을 산 여인을 거론하며 또 김개시가 빠질 수는 없습니다. 이 역은 신봉승 선생 각본의 MBC 드라마에서 원미경씨가 맡아 열연하기도 했다는데, 여태 여러 차례에 걸쳐 극화된 인물이지만 대중에게 뭔가 선명한 이미지로는 다가오지 않습니다. 국정을 망친 요녀로 지탄받다가, 아니다, 재조명 재평가가 필요하다며 옹호론이 반대편에서 강력하게 결집하기도 하는 인물들(장녹수, 장옥정이라든가)도 많은데 말입니다. 저자는 소위 국정농단, 비선실세 파동과 관련하여 이 인물의 부정적 측면을 강하게 부각합니다.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여튼 국가의 정식 계선,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사적 채널을 의존해 국정을 운영함은 군주로서 큰 과오가 아닐 수 없죠. 중립노선이다 실용주의 외교다 하며 폭군으로서의 오명을 거두려는(서인 세력에 대한 비판까지 겹쳐) 움직인 속에서도 끝내 광해군의 발목을 잡는 게 바로 이 인물의 행적입니다. 웬만해선 무슨 실드를 치는 게 불가능해서죠.

풍류를 알고 빼어난 문재를 과시하면서도 체제를 정면으로 비웃은 포지티브 캐릭터 중에 (실존인물) 황진이가 있습니다. 정식 기록보다는 야사나 문학 속에서, 통쾌하게 위선자들을 비웃고 다닌 어떤 문예적 상징으로 더 부각된 느낌인데, 여튼 우리 전통 문화의 지난 내역에서 이 뚜렷한 개성의 일류 문인이 빠지면 얼마나 내용이 빈약해지겠습니까. 황진이가 양반가 출신이었으나 자신 때문에 상사병에 걸려 죽은 어느 남성의 사연을 듣고는 (또, 무슨 움직이지 않던 관이 뭘 덮어쓰고 나서야 상여가  지날 수 있었다는 둥) 기문에 입적했다는 설에 대해 저자는 아주 강경한 어조로 반박합니다. 이 설화 요소는 꽤나 인기 있어 이미 월탄 박종화 시절부터 소설 속에 편입되기도 했죠.

마지막 김만덕의 일화야말로 현대 여성들의 귀감이 될 만한, 실천과 행동으로 여성 고유의 능력과 가치를 입증한 모범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본디 기적에 이름이 올라 있었으나 본인의 강력한 항의로 명예를 되찾고, 해당 지역이 기근에 시달릴 때 통 크게 손을 씀으로써 많은 백성들을 도탄지경에서 구해 내는 등의 업적은, 그녀의 활동 시기가 정조 연간이라는, 아직 근세의 질곡이 시대를 공고히 감싸거나 개혁에의 열망이 전면적으로 부상하지 못하던 국면이라는 점에서 더 놀랍습니다. 이 책에는 제주 지역에서 일어난 소요 사태와 그의 진정 국면까지 부수적으로 짚고 있어서 독자에게 도움이 되더군요.

세상의 절반을 지탱하는 든든한 기둥인 여성이 무시, 천대받는 사회와 체제란 어떤 경우에도 합당한 발전과 번영을 이룰 수 없고, 그런 공동체가 요즘처럼 개명된 세상에서 올바른 대접을 국제사회로부터 받을 수도 없습니다. 여러 우호적인 여건이 형성된 후에야 자신의 자질을 발휘하는 것과, 이처럼 악조건과 억압 속에서도 타고난 재능과 이상을 떨쳐 보이는 경우는, 사실 평가가 같을 수는 없죠. 무릇 타인의 모범이 된 인생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그 모친의 다음과 같은 절규와 함께 그 전 생애와 행적이 이상한 페이소스를 부르며 오버랩되는 어을우동에 대해서도 다시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는 그런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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