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 그림으로 읽는 제2차 세계대전 1
우지더 외 지음, 자오시웨이 외 그림, 한국학술정보 출판번역팀 옮김 / 이담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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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2015) 중국에서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그리고 우리 한국의 국가원수들을 초청하여 전승절 기념식을 열었습니다. 이 중에는 이른바 "열병식"도 포함되었는데, 사실 이보다 세인의 눈길을 더 끈 건 시 주석 부부가 정원 가운데에 서서 각국 수반을 맞으며 기념촬영을 하는 행사였습니다. 시 주석 내외와 사진을 찍기 위해 긴 lane을 걸어(올라)간 후 합류하여 사진을 찍고, 펑 여사의 정중한 손짓 안내를 받아 퇴장하는 방식이었는데, 글쎄 여러 복잡한 느낌이 들게 하더군요. 무튼 2차 대전에서 가장 큰 희생을 치르고 추축국을 격퇴한 쪽은 소련, 그리고 중국입니다. 이들 두 나라가 입은 인명 피해, 물적 손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독일과 일본의 악독한 초기 침략 공세(어느 누구라도 바로 항복할 수밖에 없을 만큼 기습적이고 파괴적이었던)를 강인한 항전 의지로 막아낸 공이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2차대전사를 소련 측 시각, 중국 측 시각으로 고찰하는 작업은, 비록 이들 국가의 학계(관변)가 적잖은 왜곡, 과장, 선전을 끼워넣는 습성이 있다 해도, 일단은 존중하고 의미를 둘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큰 몫을 해낸 건 바로 그들이었으니 말입니다.



이 책은 2015년 중국에서 출간된, <제2차 세계대전 연환화고(連環畵庫)> 시리즈의 첫째 권 한국어 번역판입니다. "연환화"의 기원은 남북조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가는데, 표의문자를 쓰는 중국독서문화의 특성상 대중들에게 널리 지식과 컨텐츠를 보급하기 위해, 신해 혁명 이후 특히 발전을 본 포맷입니다. 한자를 많이 써야 하는 일본 출판 풍토에서 "망가"가 널리 보급된 사실과 비슷하다 하겠습니다.



페이지마다 큰 규격의 삽화가 두 컷 배치되고, 삽화마다 작은 폰트로 사항 설명(역사 서술)이 세 줄 정도 병기된 형식입니다. 모두 140페이지 정도의 분량인데다 그림이 대부분이니 금방 읽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쉽게 이해된다는 장점은 별개로 하더라도 이게 겉보기와 달리 빨리, 간단히 소화되는 내용이 아니구나 하는 느낌이 1/5쯤 읽고선 바로 다가왔습니다. 도판이 많다고, 쪽수가 적다고 가벼이 볼 게 아니라는 점 처음 실감케 하는 독서였다고나 할까요.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니, 첫째 2차대전을 그동안 서유럽 승전국 위주의 관점으로 공부한 독자의 한계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주제에 대해 쌓아 두었던 기존의 지식, 그리고 이처럼 새로이 접한 시야를 서로 조화, 통합시키는 작업을 다소 방해한 듯했습니다. 두번째로, 같은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에 큰 시련을 겪은 중국측 지난 사정을 개관하는 마음이 결코 편할 수가 없는, 한국인으로서의 공통된 심회가 또 작용했겠지요.



책은 "관점" 위주로 서술되어 있지는 않고, 오히려 그 반대로 상세한 팩트를 중심으로 중일전쟁 초기를 조망합니다. 1권 후반부가 중일전쟁 포커스고, 전반부는 유럽에서 히틀러가 주데텐이나 체코 본토를 건드려 가며 망동을 부릴 시절을 짚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황의 디테일을 육하원칙에 맞춰 서술하기 때문에, 도판 비율이 높긴 해도 역사책 읽는 기분이 분명히 납니다(그러니 다시 강조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대충 넘기지 마시길요). 일러스트는 작가의 상상, 창작도 있고, 유명한 기록 사진 푸티지를 그대로 모사한 것도 있습니다(특히 히틀러나 마오를 담을 때). 어느 컷이건 앞의 것과 긴밀한, 혹은 함축적인 내용 연계를 맺기 때문에, 그림의 완성도와는 또 별개로 묵직한 품격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팩트의 서술, 벌써 취사선택부터가 "관점"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죠. 대부분의 서술, 요약은 누구나 동의할 만한 무난한 관점을 띱니다만, 예컨대 영국이 일본과 협정을 맺어 양쯔강을 경계로 세력권 인정을 해 줬다는가 하는 사실을 두고, "유화정책의 확장"으로 단정한 부분은 확실히 중국측만의 해석을 내세웠구나 싶었습니다("유화정책의 확장"이란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유화정책은 힘이 없어서 더 강한 상대를 달래는 건데, 상황에 떠밀려 가는 걸 어떻게 "확장"이라고 표현하겠습니까. 지들[영국]은 그걸 하고 싶어서 했겠냐는 거죠). 또, 미국이 노구교(루거우차오) 사건 전후로도 계속 일본에 광물, 자원을 수출하여 중국측의 피해를 가중시켰다는 점도 강조하는데, 이들 양국은 여튼 정식 외교를 맺은 사이라, 특별한 법적 조치 없이 대뜸 금수 조치를 내릴 수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구 열강의 소위 ABCD 포위망 형성이, 일제가 무모한 태평양 전쟁 감행의 직접 동기가 되었음은 엄연한 팩트입니다. 중국측의 피해의식이 과장되이 드러난 대목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여튼 우리 독자들은, 우리 경제와 정치, 군사 현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중국 측이 역사를 이런 관점으로 본다는 점만은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겠네요.


장개석 측의 남경 국민정부가 가장 아파해야 할 대목은, 일제가 1931년 만주(둥베이)를 병탄하고도 모자라 이처럼 중국 본토를 넘볼 단계에서도 소위 "공농홍군"의 토벌에만 주력하여 정권의 안위에만 신경을 기울였다는 사실이죠. 이 점은 같은 중국인 누구에게도 어떤 항변을 할 근거가 없습니다. 책은, 파죽지세로 밀고내려와 화북 거점의 상당수(누구나 강조하듯, 중국처럼 광대한 영토를 선이 아닌 면으로 장악하는 건 지극히 어렵죠)를 점령하고는, 상하이에서 중국측과 일전을 벌입니다. 책의 3장은 상하이 전투를 바로 다루는데, 독자들은 책에서 상세히 기술한 내용을 주의깊게 공부할 필요가 있겠네요. 확실히 이런 내용이 텍스트 위주라면 지루할 수 있는데 그림이 함께하니까 잘 읽히긴 합니다. 그림 위주라고 가벼이 보고 덤빈 사람이라면 부담스러울 수 있어도, 반대로 빼곡한 글자 위주의 전쟁사만 보던 독자라면 엄청 고마워질 겁니다.


80년대 학번 어르신들에게 아주 친숙할, 이른바 (협의의) 사회과학서적(두레, 일월서각 등등)에서 자주 봤던 이름 장즈중(장자충), 펑위샹(풍옥상) 장군 등의 활약이 이 상하이 전투에서 아주 두드러집니다. 흔히 "파시스트 강도"라는 표현을 쓰지만, 이 무렵의 일본 만군 측은 정말 뻔뻔스러울 만큼 억지를 지어내어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고 중국 측의 정당한 이해를 침해했죠. 우리는 중국측이 당시 변변한 항전도 한번 못해보고 일패도지한 줄 알지만, 특히 이 책은 9집단군, 21집단군, 항공 제4대대 등의 영웅적인 항전과 전과를 집중 소개합니다. 일본 측은 엄청 고전하다가 증원병력이 본격 파견된 후에야 승세를 굳히는데요. 이 과정에서 특유의 교활한 술수를 부려 화전 양면 전술을 구사하고 쿵샹시 등을 만나 위장평화공세를 펴기도 합니다. 참으로 가증스럽고 간악한 행태지요. 마오는 이 국면에서 따로 세운 공은 없으나 휘하의 세력에게 이러이러하게 대응하라며 먼 데서 지침을 내려준다고 하네요.

책은 연환화라는 그래픽의 역할에 크게 의존할 뿐 아니라, 책 앞에 인물들의 간략한 소개, 전황의 연대기식 정리 등을 곁들여 독자의 이해를 돕습니다. 지도가 좀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 1권에는 권두에 실린 소략한 세 컷뿐이라 그게 아쉬웠습니다. 중일 전쟁, 나아가 2차 대전 전사에 대해 그간 보이던 면만 주목한 우리 독자들에게 균형 잡힌 시야를 갖게 도와 주는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연환화 중 삽입된 텍스트는 당연히 모두 한국어로 번역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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