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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실전회계다 - 기초에서 고급까지 한 권으로 끝내는
김수헌.이재홍 지음 / 어바웃어북 / 2016년 12월
평점 :
요즘 직장인들은 못하는 것 모르는 것이 없어야 살아남습니다. 아이들에게 코딩을 의무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기사가 나자 IT쪽 사람이 대뜸 한다는 말이 "전문인력을 싸게 먹으려는 획책"이던데, 그 사람 입장에선 위기의식에 그런 말이 나왔을지 몰라도 변화하는 세상에 본인이 적응하는 것말고는 아무 대안 없습니다. 아이들은 물론 현재 회사에 몸 담은 이들도 배울 게 생기면 코딩 아니라 뭐라도 당연히 배워야 합니다. 하물며 문명 사회의 상업 발달사와 궤를 같이하는 회계에 대해서라면, 자신이 운영하거나 몸 담은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나, 하다못해 주식 투자시 정확한 의사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도 이에 눈감을 수가 없습니다. 회계는 이미 교양이며, 그것도 필수 교양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회계지식에 밝아지면 안타깝게도 회계사들 일거리가 줄어들겠지만, 역시 해당 직종 종사자들이 걱정해야 할 문제일 뿐이며(현실이나 대세는 받아들이는 것 말고 답이 없죠), 일반인들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책 뒷면의 이한상 교수님 추천사를 보면 직장인들(혹은 누구라도)이 언제까지 "회알못" 신세에서 못 벗어나겠냐며 자극을 주시는 표현이 있으며, 본문에는 "얼마나 많은 회사가, 단지 회계에 무지하다는 이유로 손해를 보는지"를 개탄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알못"이 아니라 "잘알"이 되면 아직까지는 이익을 볼 수도 있는 국면이란 뜻도 됩니다. 이 국면이 지나면 애써 공부해 봐야 또 그저 현상유지, 남보다 뒤처지는 신세나 간신히 면할 뿐이니 때를 놓치지 말고 당장 지금 공부해야 같은 수고를 들이고도 보람이 크게 남을 것입니다.
시대의 이런 니즈를 다분히 고려해서인지 회계 대중서는 몇 년 전부터 여러 권이 나왔고, 그런 책들의 문제는 "알기 쉽고 타당한 내용들이지만 읽고 나면 남는 게 없고, 남는 게 있다고 해도 (수준이 낮아서)자신의 업무에 적용을 못한다"였습니다. 사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대중서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가질 수가 원래 없는 법이며, 어렵더라도 교과서를 사서 공부하거나 성인 대상 강좌를 듣거나 해서 정석대로 공부하는 길만이 답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일시적인 팁이 아닌 항구적으로 써 먹을 수 있는 지적 자산을 갖추려면, 대학생 때 전공자가 공부하듯 정성을 들여 정코스에 가까운 방식으로 공부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뜻에서입니다.
이 책은 펼치는 순간 "제목값을 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확 오더군요. 말 그대로, 단편적이고 사항 지적, 초보 개념 정리 수준에 머무른 지식이 다루지 못하는 과제(즉 현실에서 벌어지는 케이스 형태의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문제의 시작부터 끝까지 명쾌한 진단을 내려 주고, 그 풀이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제기되는 다른 회계 이슈까지 자상히 짚어 주는, 1) 실무에 도움이 되면서 2) 회계 스킬의 깊이 있는 응용이 가능하게 돕고 3)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경지가 어떠한지를 가르쳐 주는 내용입니다. 일반 회사원들도 도움이 되겠지만, 시험을 갓 통과한 초보 회계사들이 아직은 자격증만 갖췄을 뿐 자기 업무가 뭔지 조망할 만큼 감이 안 올 때 읽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가 뭔지 하는 구차한 설명은 다 생략하고, 첫부분부터 "이 회사가 장사를 잘하는지, 비전이 있는지 어떤지를 보려면 재무제표 어느 부분을 봐야 하는지"부터 시원시원하게 찌르고 들어갑니다. 나이 드신 분들 중 예전 기업회계기준으로 배우신 분들은 이후 IFRS, 또 그 후 K-IFRS가 도입된 후 어떤 부분이 바뀌었는지 잘 모르실 겁니다. "포괄손익"이라고 하면 감이 안 올 수 있지만, 이 개념의 대표적 항목이 "자산재평가 이익"이면 그제서야 뭔가 친숙해지겠죠. 이 자산재평가는 특히 외환위기 이후 종래 보수적인 기업 자산 평가 기법을 개선하여, 크게 변화된 경제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 실무진과 학계에서 중점논의된 바 있습니다. IFRS 도입 논의보다 한참 전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이 항목은 "당기손익"이 아닌, 대차대조표의 "자본" 항목으로 가서 해당 회사의 가치 평가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결론적" 단정을 책에서는 친절히, 그리고 날카롭게 정리해 줍니다. 모르시는 분들도 어차피 재무제표가 다루는 사항이 빤하니 이거 아니면 저거라고 생각들 하시겠지만, 이처럼 이 책의 강점은, 맥아리 없는 팩트 나열만 하다 끝나는 게 아니라(대중서, 입문서 중에는 이런 게 너무 많습니다), 특정 원칙이나 개념의 획정이 당신의 실무에서 갖는 의의가 뭔지를 확실히 짚고, 독자로 하여금 "큰 그림을 보고 직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준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그게 어쩼단 말이냐?" 같은 독자의 반문을 처음부터 해소시켜 주는 게 가장 돋보입니다.
회사원도 아니고 주식 투자에도 관심 없는 그저 일반 독자라 해도(즉 집에서 살림만 하는 분들이라도) 재미있게 읽을 만한 파트가 있습니다. 바로 백화점 매출 1~3위가 각각 어디인지, 또 꼴찌는 어디인지 같은 지극히 흔한, 그러나 다 알고 떠들어도 여전히 재미있는 화제로 시작하는 장입니다. 물론 "실전회계"를 가르쳐 준다는 책이 시시한 화제로 내용을 채우진 않습니다. 아주 일상적인 수닷거리로 말문을 연 후, 백화점이 각 개별 매장의 매출을 어떤 다른 방식으로 집계하고 자신의 장부에 반영하는지 같은, 매우 현실감 있는, 그러면서도 하드한 토픽으로 바로 넘어갑니다. 백화점의 이런 매출 처리 방식 하나를 두고서, 그만큼이나 많은 "회계 토픽"이 굴비 엮이듯 주루루 나온다는 게, 이 분야에 결코 낯설지 않은 독자 입장에서 읽어도 참신하고 뭔가 새로운 느낌이 오더군요. 진지하게 자신의 "회계 내공"을 쌓아가고 싶은 중급자 이상의 회사원은 물론, 회계사들도 읽어서 유익하겠다 싶은 대목이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이한상 교수님의 추천사 일부를 다시 원용하자면, "탁월한 직관의 힘" 같은 게 바로 이런 데서 드러나는 거겠습니다. 달인은 본래 부분을 응시하면서도 전체를 꿰뚫어 보는 게 달인이니 말입니다.
창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비록 엄두를 못 낸다고는 하나) 지하층 푸드코트부터 해서 그 많은 백화점 내 매장들이 본점과 어떤 식으로 손익을 배분하는지 궁금할 수 있습니다. 거대 업체는 직매입이냐 특정매입이냐로 나뉘고(직매입은 백화점의 직접 매출로 계상[計上]됩니다), 그 외 영세한 매장은 대부분 공간임대 형식인데 이게 갑/을로 나뉩니다. 갑/을은 갑질한다 할때 그 갑이 아님은 물론이고, 직장인들 소득세 뗄 때 갑근세 어쩌구 하듯 편의상의 부호일 뿐입니다. 갑型은 임대료만 받고, 을型은 구체적 수익을 비율에 따라 나누는 식이죠. 예전 국사 교과서에서 배운 도조/타조 구분과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게 회계지식의 본체에는 속하지 않지만, 회계라는 단일 영역에 시야가 국한된 게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물정에 두루 밝은 저자가 특정 화제로부터 끊김 없이 연관 분야의 실태를 주룩 짚어 주는 점이, 이 책을 소설책처럼 읽히게 하는 큰 원동력 중 하나입니다.
추천사에서도 소개된 부분입니다만, 이 책의 강점은 최신, 정말 최신 시사나 화제 사건으로부터 논의의 실마리를 물고 오는 태도에도 있습니다. 교과서를 파고들 때 가장 지루한 건, 지금 공부하는 이 지식이 배워서 어디에 응용되는지 확신이 안 설 때이며, 이때 공부가 의미없는 부호 암기처럼 지겨워지고 고비를 맞습니다. 이 책은 그렇기는커녕 (좀 정치지향 아닌가 싶게) 거의 매 챕터가 처음부터 화제성 회계, 금융 스캔들부터 짚고 넘어가는 식입니다. 동료들끼리 모여서 얘기를 해도, 남들 따라 "뭐가 잘못됐네 도둑놈들이네 " 목소리만 높이는 건 그저 동네 아줌마들 수다 수준을 못 벗어납니다. 직장인(남녀 불문)들 대화가 그 선을 못 넘으면 어디가서 말도 못 꺼낼 만큼 창피하죠. 대우조선 분식회계가 범죄로 들통났다면 구체적으로 어느 항목을 어떻게 건드렸는지, 원칙은 어떠해야 하는데 그런 장난질을 쳤다는 건지 핵심은 언급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핵심을 모르고 남들따라 목소리만 높이니 무식하단 소릴 듣는 거죠.
2014년에 크게 화제가 되었던 모뉴엘 사기 사건을 소재로 삼아, 이 책은 해당 파트에서 "매출 채권의 회계 처리 방식이 어땠기에" 그토록 회사 가치가 널뛰기를 하고 난다긴다 하는 금융기관의 담당자들을 감쪽 같이 속여 사기 대출을 받아내었는지 자세히 가르쳐 줍니다. 이걸 읽고 그대로 따라들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기우인 게, 이미 수법이 널리 알려진 건 재탕이 당연히 어렵죠. 반면 누가 유망하다며 주식 투자를 하라고 꼬드기거나, 사장님한테 와서 지네 회사 괜찮다고 파트너십을 권유하거나 할 때 이게 빈껍데기 허당인지 뭔지 알려면 이런 "매출 채권" 처리 방식이 뭔지를 알아야 누구한테 당하지 않을 겁니다. 이런 점에서도, 최소한 억울한 피해를 못된 놈들에게 입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식으로 무장하고 내공을 다지는 길밖에 없다는 점 다시 확인이 됩니다.
사실 "매출채권"뿐 아니라 모든 거래사건(이런 말을 씁니다)이, 자산, 부채, 자본, 수익, 등 8개 항목 어디에 배치를 하는지가 회계의 핵심 관건이며 회계사의 역량을 평가하는 기준입니다. 이걸 공정타당한 준칙에 의해 처리하면 윤리적 기업이고, 규정의 허점을 이용해서 남 못 보는 구석에서 장난을 치는 게 분식회계입니다.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뭐가 그 회사의 "재산(회계용어는 아닙니다)"인지 그저 "빚"인지 명쾌하게 구별이 잘 되질 않습니다. 회계용어 "자산"은 일상용어 "재산"과는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자산 대변"의 모호한 영역에는 정말 별의별 게 다 들어가고, 이걸 알아볼 능력 없는 이들이 사기꾼에게 당하는 거죠. 또, 별 확실성이나 근거가 없는 항목을, 그저 회계에 무지하다는 이유로 꾸역꾸역 자산으로 계상하는 기업들이, 이후 세무 당국에 의해 형편에 비해 크게 불리한 처분을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는지 알려면 그 중요한 관전포인트 중 하나가 금융사고, 회사 도산 따위가 어떤 경로로 벌어졌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지금은 정치나 군사 정변이 일반인들의 삶을 바꿔 놓는 주된 요소가 아니라, 경제 섹터 중요한 곳에서 무슨 변동이 일어나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세상입니다. 누가 떳떳지 못한 무슨 일을 꾸미고 있다면, 그 흔적은 범죄 현장의 DNA처럼 장부에 그대로 남습니다. 회계야말로 경제의 운용상과 실체, 미래의 전망까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청사진이나 타임라인과도 같습니다. "실무"와 "시사"와 "화젯거리"와 학문으로서의 회계를 이처럼 예술적으로 접합시킬 수 있다는 게 놀랍기만 할 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