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를 대비하라 - EU 집행이사회 조명진 박사
조명진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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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죠. 사실 돈은 거짓말도 안 할 뿐 아니라 오판도 하지 않습니다. 물론 개인의 돈은 잦은 실수를 범하지만, 간절히 이익을 바라는 마음과 마음들이 합쳐진 대세는 대개 미래를 정확히 맞힐 뿐 아니라, 심지어 미래를 형성하기까지 합니다. 브렉시트가 언론과 학계의 (희망섞인) 바람을 정면으로 배반하고 국민투표에서 가결되었을 때 시장은 처음엔 혼란상을 보였지만, 이후 차차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이는 시장(곧 "돈")이 바라본 미래가 그리 불안정하거나 비관적이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후 브렉시트 변수는 그보다 큰 폭으로 장을 흔든 다른 사건들과 뒤섞여 무엇이 그 순수한 효과인지 알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는데, 여기서부터는 전문가의 진단이 필요하죠. 그것도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사실 다른 배경색 때문에 혼란이 유발되는 불리한 점 없이 "그것만의 순작용"을 캐치하려면 초기에 정밀한 관측을 반드시 해 내야만 합니다. 조명진 박사님의 이 책은 그런 관측자들, 혹은 이후에라도 대세를 정확히 추적하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좋은 지침을 마련해 줍니다.

작금의 세계적 대세는 globalization이 아닌, (책의 표현대로) 국수주의 유사의 어떤 것입니다. 딱히 국수주의라고 규정하기도 어려운 게, 일단 흐름을 이끄는 지도자가 분명하지도 않고, 적극적으로 무엇을 주장하기보단 현재의 대세에 저항하는 "소극적"인 흐름이며, 결정적으로 이런 움직임이 그리 장기적인 추동력을 가질 것 같지 않다는 이유에서입니다(물론 어디까지나 희망섞인 추측이지만). globalization이 불과 20년전만 해도 세계의 미래를 완전히 결정지을 거역할 수 없는 대세로 여겨졌는데 이처럼 가까운 시점에서 커다란 장애물을 맞을 줄은 아무도 예상 못 했을 겁니다. 아직도 학부 교과서(분야 불문)는 globalization을 대전제로 삼고 각론을 전개해 나갑니다. 이제 어린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까지 수정이 이뤄져야 할 국면일까요? "브렉시트"는 그 자체로 의미심장한 사건이라기보다, 향후 이를 계기로 전체의 국면이 완전히 바꿔질지 그 상징성을 놓고 붙는 타이틀에 불과합니다. 이 책도 그런 분석과 예측이 내용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유럽의 통합은 원래 보수당(영국의 그 정당뿐 아니라 각국의 우파를 대변하는)에서 주도하던 것입니다. 미국이 단일 시장, 거대 영토, 축적된 자본으로 세계의 패권을 쥐어 가자, 자신들도 종래의 각개 약진상을 유지해서는 가까운 미래에 도태되리라는 절박감이, 특정 산업의 효율화(석탄, 철강 기반)라든가 "단일 시장의 형성"을 일단 목표로 만들기 시작했었죠. 노동과 자본을 싼 값에 이용하려면 이런 자본가측의 단일 대오 형성이 시급한 과제였고, 분명한 전망을 할 수 없었던 노동자측은 이에 저항하는 게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현 영국 노동당 당수 코빈 같은 사람). 그러던 게 주로 수정주의자, 혹은 지식인 좌파를 중심으로 "차별 없고 국경 없는 연대와 평화"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었고, 일정한 정책적 양보 끝에 우파가 노선 일부를 수정함으로써 양측이 합의에 도달, 항구적인 동력을 얻기에 이르렀죠.

좌우 양쪽이 공감하는 정책이 왜 이런 저항을 맞고 있는가? 저자는 명쾌하게 두 가지 논점을 듭니다. 하나는 이민자 감소, 다른 하나는 알지도 못하는 먼 곳에 사무실을 두고 결정을 내리는 관료제에 대한 반발입니다. "이민자 감소"같은 이슈가 이 소동의 중심에 선 걸로 보아 현재의 움직임이 어떤 이념적 기반까지를 지닌 건 아닌 게 확실하며, 이 때문에 "포퓰리즘" 같은 일시적 변덕이나 집단 감정 표출 정도로 격하하는 쪽도 있는 것입니다. EU 출범의 목표 중 하나가 단일 노동 시장 형성을 통해 인건비를 절감하자는 쪽에 분명히 있었던 만큼, 이제 국경 철폐가 명백한 현실로 다가온 지금 특히 노동자층이 가부간에 분명히 무슨 의사표시를 할지가 표면화되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노"를 투표로 표명했고, 아직까지는 개별 국민들의 의사를 존중해야 할 체제의 룰에 비추어 이는 존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관련 명백한 "임기응변"식 대응을 현재까지는 보이는 트럼프도, 자신을 찍은 자국의 개별 노동자들의 "긴급하고 당면한" 요구에 부응하는 모습이 분명해 보입니다. 미국 역시 이주 노동자 문제 때문에 심각하게 골치를 앓는데, 이는 멕시코와의 엄존하는 국경이 아직 철폐되지 않았는데도(nafta는 장기적으로 이를 추구합니다)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라틴인들 때문에 촉발되었고, 하루이틀 지속된 문제가 아닌 만큼 단칼에 해결되기는 매우 어려우며 무엇보다 미국의 자본가들이 이를 암암리에 반기고 있습니다.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재닛 리노가 불법이민자 여성을 베이비시터로 고용한 데서 크게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듯, 이미 뚜렷한 현실을 형성한 "불법"을 마냥 방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거 추방이나 방벽 건설(그것도 상대국 부담)으로 밀어붙이기도 매우 어려운 현실입니다. "브렉시트"와 직접 관계가 없는 미국의 사정도 현재 이런 판입니다.

미국은 불법이민자를 국외로 추방하고, 영국은 "국민의 뜻에 따른 이혼"을 감행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요? "브렉시트"로 촉발된 국수주의가 지속성을 못 가지는 이유는, 이런 일시적 과거회귀 움직임이 더 많은 사회 문제, 경제난을 낳을 수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영국은 거대 시장에서 고립된 후 과연 누구와 경제 파트너십을 새로 쌓아야 할까요? 해가 지지 않던 식민 영토도 다 잃은 판에 말입니다. 영국산 물품에만 관세가 높이 붙으면 어느 나라에서 이들 상품을 사 주겠으며, 보복으로 관세 장벽을 높인들 고충을 겪는 건 자국 노동자층입니다. 결정적으로 심각한 건 기업들이 아예 EU로 본거지를 옮기려 드는 경우입니다. 트럼프처럼 일일이 정치인들이 나서서 딴지를 걸거나 협박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저자께서는 달러의 장래가 불투명하므로, 향후 강세를 보일 전망이 있는 타국의 통화로 품목을 분산한 투자 전략을 짜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때 금값이 등귀하고 시장이 혼란스런 움직임을 보였을 때 전문가들이 내놓은 조언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게다가 저자는 EU의 약화가 곧 NATO의 약화로 이어져,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 전체에서 중국의 패권국 역할이 커질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렇다면 외환 품목 다변화의 요구가 무엇을 암시하는지는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죠. 중요한 건 한 가지 노선에 고지식하게 얽매일 게 아니라, 수시로 급변하는 세계 정세를 잘 살펴 현명하고도 정확히, 빠르게 대응하는 융통성이라는 게 저자의 충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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