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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4차 산업혁명의 미래 - 전 세계를 뒤흔드는 위기와 기회
미래전략정책연구원 지음 / 일상이상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4차 산업 혁명이 대체 뭐길래 이처럼 야단들이지? 궁금하거나 때로 불안하긴 한데 어딜 참고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서는 분들은, 딱 한 권으로 단시간에 현황을 파악하고 싶을 때 이 책을 고르면 될 것 같습니다. 일단 입문자에게 최적화한, 현상적 급변상과 각 산업별 최우선 순위 과제, 가장 도드라진 트렌드가 망라되어 있을 뿐 아니라,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사항들은 과감히 생략되었고, 매우 평이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쓰여졌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편집이 뛰어나서 선이해가 부족한 독자들도 쉽게 접근하고, 내용 파악이 한눈에 가능할 것 같습니다.
4차 산업 혁명이란 말, 개념, 공감대, 컨센서스가 이정도나마 실체를 갖추기 전에도, 글로벌 경제는 이미 끝없는 혁신과 변혁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째 투병 중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최초 대중서가 대략 3년 전쯤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왔었는데요, 그 당시라면 아직은 한국에 "4차 산업 혁명"이란 용어가 일상화되지 않았을 무렵입니다. 헌데 이미 그때부터도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심지어 종래의 좋은 선례조차 도움보다는 방해가 될 뿐이니 일체의 토대를 파괴한다는 기조로 임하는 혁신이라야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라는 위기의식, 각성이 만연했던 것입니다. 이 책 역시, "아무리 늦잡아도 십 년 후면, 세상에는 익숙히 여겨 왔던 모습이 단 하나도 제자리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란 살벌한 경고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이 책은 대단히 온건하고 단정한(?) 품으로, 잘 정돈된 정보와 주장을 독자에게 PT해 주는 편인데, 이런 책에서조차 그 담은 핵심 주장은 "모두 다 바뀐다. 남아나는 게 없다"이니, 현황의 절박함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만합니다.
4차 산업 혁명이란 제목과 컨텐츠 속의 키워드를 보고서 아 경제 관련 서적이구나, 나하고는 별 관련이 없겠는걸 하며 뒤로 밀어놓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몇 년 전부터 마음의 준비와 경각심을 다져 온 이들보다, 이런 분들이 더 먼저 꺼내들어야 할 게 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배려에서 비롯한 편집, 혹은 내용 편성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은 1장에서 기후 변화 등 인류 전반이 처한 환경적 조건의 실태, 셰일 가스 혁명 등 4차 산혁과 직접 관계는 없는 여러 중요 사건, 트렌드 등도 짚으면서 시작합니다. 어차피 4차 산업 혁명이 인위적으로 특정 집단에 의해 촉발된 흐름도 아니고, 의도치 않았던 여러 흐름이 합류하여 쓰나미와도 같은 거대 변혁이 세계를 휩쓰는 것인 만큼,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는 목적에서 이런 거시적 전망으로 주제를 고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후 변화 협약은 시대의 대세이지만(이런 관점에서, 트럼프 등 일부 정치인과 산업계의 움직임을 비판합니다), 반면 셰일가스 개발이 식수난, 환경 오염 등의 장기적 원인이라는 학계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더군요. 이 책이 이 토픽을 책 처음에 배치한 데 대해서는, 원자재 가격 하락이라는 작금의 한 거대한 대세를 짚으려는 의도가 있었겠습니다.
트럼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 책의 출간 시점에선 아직 미 대선 결과가 확정 발표가 안 되었었나 봅니다. 서문에서 박경식 원장께서는 미 대통령 당선인들이 언제나 보고(報告) 받는 <NIC 글로벌트렌드 20XX(연도는 당연히 매번 달라지죠)>를 거론하시는데, 전체로서 이 책은 우리 독자들에게 선사되는 "성의 있고 유익한 보고서"와 같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대통령도 아닌데 이런 내실 있는 정보, 리포트를 합리적인 가격에 입수할 수 있는 것도, 지난 시대의 "산업 혁명들"이 우리 후손들에게 남기고 간 그 혜택 중 하나입니다. 회사에서 힘들다고 너무 불평할 게 아니라, 분명 세상의 진보, 변혁으로부터 우리가 혜택을 입는 바가 더 큰 것입니다. 아니라면 아마 문명의 종말이 먼저였겠죠.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야말로 4차 산업 혁명에 가장
취약하다며, 이런 점에서 한국은 "준비가 그리 잘 된 나라라고 볼 수 없다"는 게 클라우스 슈밥(한국에서 4차 산혁의 전도사처럼
인식되는 학자, 저술가)과 다른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반면 이 트렌드를 현재 선도해 가는 듯 보이는 독일의 경우 숱한 강소기업,
소위 "히든 챔피언"들이 잔뜩 포진했다는 게 과연 그래서 리더로구나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이유지요. 사실 전(全) 역사를 통틀어
이런 경제구조의 특성을 언제나 유지해 온 게 다름아닌 대만인데, 최근 정치적 위기가 고조됨에 따라 드디어 빛을 볼 만한 시점에서
주춤한다는 게 제3자 눈으로도 안타까운 점입니다. 물론 이 책 중에는 예컨대 일본의 샤프 전자 같은 기업을 인수하기도 하는 등 그
나름 적극적으로 4차 산혁에 대비하는 대만 산업계의 현실도 일부 조명됩니다.
한국 대기업은 그럼 정말로 큰 위기를 맞을 운명이면서도 대책 없이 현상에 안주하는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고 나서 많은 투자자들이 불안해하자 후계자는 기민히 대응하여 "전자 못지 않게 차세대 주력으로 바이오시뮬레이션을 키우겠다"는 발표를 이미 3년도 전에 대외적으로 천명했는데, 갤럭시노트 7 사태도 있었지만(이 책에도 짧은 언급이 있습니다) 대체로 삼성은 학계와 업계의 첨단 전망을 조기에 입수, 이해, 정리, 적응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제 나온 뉴스를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각종 악재(노트 발화, 최순실 등)에 겹쳤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삼전의 주가는 승승장구 중입니다. 섣부른 루머쟁이들의 말대로였으면 벌써 도산을 해도 시원찮았을 텐데요. 돈은 거짓말은 안 한다는 게 자본주의 시스템에서의 진리라서, 삼성의 미래는 좀처럼 위기에 휩싸일 것 같지 않습니다.
책은 대체로 한국 대기업들의 대처 자세에 대해 후하지까지는 않더라도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으며, 최소한 이런 노력을 한다 정도는 상세히 소개하는 편입니다. 물론 따끔한 일침을 가하기도 하는데, 중소기업과의 상생적 협력이 전폭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자체 역량 발휘에도 곧 한계를 맞을 뿐 아니라, 클라우스 슈밥 등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4차 산업혁명 본질과 대세에도 어긋난다는 이유에서죠. 실제로 4차 산혁에서 기업은 배제보다는 공생, 공유, 협업을 일궈 나가야 오히려 생존이 가능한데, 이 역시 4차 산업 혁명 트렌드가 컨센서스를 얻기 전에도 일부 선구자들의 혜안에 의해 일찌감치 지적되었던 사항입니다. 다만 구글이 안드로이드 OS를 널리 보급하려 애쓰는 건 좀 다른 전략적 견지에서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만.
한진해운, 현대중공업 등이 지난 십년기 그 좋았던 호황을 뒤로 한 채 실업자 대거 양산 등 처참한 몰락을 겪고 있음은 지금 우리가 다 보는 대로입니다. 저자들은 이를 놓고도 "4차 산업 혁명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재래 직종의 대거 퇴장, 사멸"의 일환으로 파악하시는데, 사실 여기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반대하는 편입니다. 대량 실직이 물론 4차 산혁의 불가피한 부작용 중의 하나이긴 합니다만, 저 기업들의 저런 문제는 경영진의 역량 문제라든가, 사태를 안이하게 본 노조 등 해당 기업 자체의 원인 이 더 큰 비중이 아닐지요. 현재 조선 해운업계 전체가 불황이고 급격한 구조 조정이 이뤄지고는 있습니다만 이는 이 업종이 태생적으로 겪곤 하던 경기연동적 이벤트에 가까우며, 이 과정을 잘 치러 낸 기업은 다음 호황기에 큰 재미를 보는 게 여태 지나 온 패턴이었습니다.
AI가 특수 기능에 한정된 "기계"가 아니라 진정 "지능"에 가까운 범용의 tool로 자리잡으려면(이게 단지 기능성의 제고 때문이 아니라, 가격 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혀 다른 분야에 호환이 가능해야 시장성이 생기지요), 아직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이 책에서도 IBM 왓슨의 예를 드는데, 현재 에어버스 등에서 항공기 정비 기능을 맡고 있으며, 수없이 많은 부품들의 노후도를 체크하는 등 숙련공보다 더 정확하고 빠른 완성도, 능률을 보인다는군요. 하지만 이는 문제를 좀 단순화한 감이 있습니다. 보잉 혹은 항공운송사 등이 "전면적으로" 왓슨을 채택하지 않는 건 다 그 나름의 이유, 한계가 있어서이죠. 물론 이 분야의 성능과 신뢰도는 앞으로 급격한 개선을 보일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범용이 아니면 그건 지능이 아닌데, 왓슨은 캐나다와 뉴질랜드 일부 은행에서 투자 업무의 일부를 이미 전담하고도 있습니다.
대한항공 노조가 어제 파업에 들어갔다는 뉴스를 접하셨을 겁니다. 뭐 우리나라엔 많은 국내외의 항공사가 노선 취항 중이니 걱정할 건 없지만, 여튼 대한항공 노사관계가 다른 회사에 비해 매우 사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은 많은 우려를 낳는 게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는데(함부로 거론하기 민감한), 그 중에는 승무원, 조종사의 기여분에 대해 노와 사가 인식하는 격차가 매우 크다는 게 있습니다. 사측의 경우, 이미 자동 항법 장치가 조종사 업무 대부분을 대체하며, 이에 비해 조종사측이 주장하는 기여도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는 주장을 폅니다. 이 책에서도 이와 관련, "자율주행에서 혹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 문제"를 의미심장하게 거론하고 있습니다. 노조 측의 주장을 제가 구태여 되풀이할 필요가 없는 게, 위 이 한 문장(관련이 없어 보이십니까?)으로 모든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그저 기술만능주의를 내세우지 않고, 첨단 트렌드의 현실적 한계에 대해서도 짚어 주는 게 이 책의 미덕 중 하나입니다.
구글이 내세우는 "딥 러닝"의 전략 목표는 이미 많은 이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입력한 정보의 충실한 응용, 연산, 혹은 약간 정도의 재생산이 아니라, "자발적, 자체적 학습을 통한 정보의 창조"에까지 다다르겠다는 거죠. 사실 "지능"이라 불릴 정도라면 이런 자격을 갖춰야 하고, 업계나 학계, 일반 소비자 중 눈높은 이들의 수요와 니즈를 충족시키려면 당연 이만큼의 눈높이를 지향해야 한다는 걸 구글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제가 의구심을 갖는 건, 그저 정보를 대량으로 입력하고, 신경망이라 불릴 정도의 정교한 회로 개선이 이뤄져도, 그게 양적인 면에서의 개선, 물량 공세이지 질적인 도약이 가능하겠냐는 점입니다. 양이 질을 대체한다는 건 유물론적, 기계론적 관점인데, 이게 틀렸다는 게 아니라 이에 전적으로 의존하기가 주저되는 게 인문적 사고의 부인할 수 없는 조심성, 기질입니다. 이는 과학 vs (협의의) 인문 같은 게 아니라, 양 vs 질 혹은 물질 vs 정신 프레임으로 봐야 하죠. 구글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엄밀히 말해 과학 단계가 아닌 엔지니어링의 치밀한 구축으로 기초과학의 성과를 대신하겠다는 포부이기 때문에, 여태 그런 식으로 질적 도약을 이룬 적 없는 인류의 역사 과정에 비추어서도 회의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문제는 4차 산업 혁명 트렌드보다는, 언어학과 뇌신경과학 분야의 천재들이 어떻게 하든 협업을 이뤄내어, 이론적 규명이 말끔히 이뤄진 후에야 의미 있는 성과가 가능하리라 봅니다.
통역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에서는 처음 "통역사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라고 하다가, 논의의 말미에선 "십 년 안에 AI는 각국 언어의 미묘한 뉘앙스에 대해서도 마스터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이에 대해서도 위와 같은 이유의 반론이 가능합니다. 시간만 지나도 현저한 기술적 개량이 가능한 건 반도체 회로 집적 등 일부 분야에서나 가능할 뿐입니다. 하나 유의해야 할 건, 일자리를 잃는 게 과연 누구냐는 거죠. 이 책의 결론은, 책 중 한 문장만 (구태여) 콕 찍어서 정리하자면, "스마트하게 일 못 하는 사람은 모두 밀려나게 된다"는 겁니다. 바꿔 말하면, 자기 분야에 애착을 갖고 자기 일처럼 성실하게 임하는 사람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되지 않는다"란 뜻도 됩니다. 업무 시간에 딴청피우는 자, 사장에 대해 원망과 탓질이 몸에 밴 자가, 4차 산업 혁명의 도도한 물결에서 첫번째 타깃이 됨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고용주에 대해 기계적 충성을 바치자는 게 아니라, 내 일이 정말 내 일이라 여기고 내 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성실성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논의가 마무리된 후, 별개의 레이아웃으로 "본질이 무엇인지" 리포트 형식으로 정리를 잘 해뒀다는 점입니다. 책 자체가 정리, 요약의 미덕을 잘 발휘하는데, 그로도 부족해서 정리 끝에 또 정리를 해뒀으니 독자로서 참 편하게 읽힙니다. "리쇼어링"과 "글로벌 현지 기지의 확충(타국 도시에의 본사 거점 구축)"이 서로 모순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의 말도 들었는데요, 그건 지적하는 초점이 서로 다른 겁니다. "리쇼어링"은 생산 기지, 자원 조달의 문제이고, 후자는 IT 편의나 세제 혜택 등에 중점을 둔 논의죠. 책에서는 상하이나 뭄바이를 들지만, 송도국제도시라든가 새만금도 이 시장을 노리고 힘찬 발걸음을 옮기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