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전문직의 미래 - 빅데이터, 인공지능, 기술혁신이 가져올 새로운 전문직 지형도
리처드 서스킨드.대니얼 서스킨드 지음, 위대선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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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포털에 게시된 언론사의 기사(조만간 외국어 간의 완전한 통역이 가능한 AI 소프트웨어가 등장한다는 내용) 밑에 이런 덧글이 달린 걸 본 적 있습니다. "통역사가 직업을 잃을 정도 같으면 다른 직업은 뭐..."

이 책의 역자께서는 서문의 말미에, '"원제 중 profession의 뜻은 '직업'이란 뜻이므로, '전문직의 미래'보다는 '직업의 미래'라는 게 차라리 적절하다."라는 언급을 하고 계십니다. 제가 위에 인용한 어느 네티즌의 덧글처럼, 도대체 통역사처럼 고도의 지식과 감각과 순발력을 요하는(물론 국제행사의 TV 생중계에 출연 가능할 정도의 일류를 두고 하는 말이겠죠?) 직종마저 "인공 지능이 떨어대는 유세"에 밀릴 정도라면, 사람이 고유의 정신과 육체적 기능으로 AI에 밀리지 않고 지켜낼 수 있는 직업은 하나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역자의 지적은 (설령 그런 의도로 하신 말씀이 아니라 해도) 백 번 타당합니다. 4차 산업 혁명의 핵심 동력, 트렌드, 지향점 중 하나인 AI가 몰고 올 미래는, "전문직을 필두로 한 직업 전반의 소멸과 퇴조상"일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직업 일반, 전반의 위기를 짚어내기 위해선 가장 대체되기 힘든 직업군일 "전문직"의 현 시점(4차 산업혁명이 노도와 같이 밀어닥치는 작금)에서 갖는 위상, 전망, 변화상이 무엇인지 짚어내는 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경제적"입니다. 이유는 앞에서도 말했듯, 전문직은 과연 AI의 효율성(엄청난 저장 용량과 정보 처리 속도를 앞세운)과 원가 우위(사람보다 싸니까 AI를 쓰는 거죠. 아니라면 사람을 고용하는 게 나을 거고요)에 밀려 사멸하고 말 것인지, 전문직이란 막연한 말로 포섭한다 해도 직종이 천차만별인데, 어떤 건 선방하고 어떤 건 근근히 버티며 어떤 건 벌써부터 단순노무직으로 전락하고 마는 중인지, 각론별로 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좋은 대학을 나와서 "사"자 붙은 직업만 가지면 열쇠 몇 개가 딸려온다느니 하는, 지극히 전근대적인 낭만과 환상이 뒤섞인 주문이 유행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AI가 선도하는 4차 산업 혁명의 물결은, 이미 "그런 사 자 붙은 직업부터 차근차근 정리해 주겠다는 듯" 공포의 저승사자처럼 다가오는 양 일반에 인식되어 있습니다. 저자 서문에 적힌 한 문장을 읽으며 슬쩍 웃음이 지어졌는데요, 말인즉슨 "... 벌써 이런 논의를 꺼내는 것만으로 이 책을 슬쩍 한켠으로 밀어 놓는 독자들이 많을 줄 안다."입니다.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서점에서 이 책을 펼쳐 든 이들이라면, 아마 이런 "매우 솔직한" 저자들의 언명과 너스레 때문이라도 책 읽기를 도중에 멈출 수 없을 줄 압니다. 5년 전쯤 안철수씨가 재인용한 유명한 말(윌리엄 깁슨) "미래는 벌써 우리 옆에 다가와 있지만, 다만 고르게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처럼, 현장의 전문직들이 전혀 피부로 와 닿지 않는 예언이라면 일말의 불안감도 느낄 필요가 없죠.

다른 한편으로, 전문직은 정말 기술 발전의 도도한 추세 앞에 소멸하고 말 운명일까요? 책 1장의 제사(題辭)에는, J S 밀(공교롭게도 부친의 천재 교육으로 위인이 된 인물이네요. 혹 몇 백 년 후인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인공지능을 가장 싫어했을 법한)과 케인즈(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천재형 두뇌였죠)의 말이 인용되어, 인공 지능 혹은 기계가 주도하는 문명 일반의 암울한 미래를 경고합니다. 사실, 이미 1차 산업 혁명 당시에도 지적되었고 많은 이들에게 곤경과 아픔을 안긴 바 있던 흐름입니다만, 기술의 발전은 결국 사람의 직업을 빼앗고 입지를 축소시키는 쪽으로 대세를 일찍부터 잡은 바 있습니다. 맑스의 공산주의 이념 역시 이런 위기 의식(프롤레탈리아 계급뿐이 아닌, 인류 일반의)에서 싹을 틔운 거겠고요. 이런 관점에서라면 현재의 전문직 잠식, 사멸 징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시간의 문제일 뿐 조만간 전면적으로 대두할 사회 문제임에 분명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리 문제를 단순화하여 짚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 책이 취하는 가장 바람직하면서도 믿음직한 태도인데요. 다시 역자 서문에서 일부를 인용하자면 "... 저자들은 논점의 단순화와 아젠다의 센세이셔널한 선점을 위해, 근거 없이 미래상을 왜곡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위기의 징후가 느껴지만, "이건 모두 현실이 아니야!"라며 무작정 부정한다거나, 정반대로 "우린 이제 죽었어!"라며 지레 절망에 빠지는 식으로는 문제의 해결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위험 중 어떤 건 사뭇 가능성 높은 현실이고, 어떤 건 터무니없이 과장되었으며, 어떤 건 확률이 반반이라 당사자의 현명한 대처에 따라 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근거 없는 낙천주의나 비생산적인 패배주의가 아니라, 정확한 현실 인식과 합리적인 대처 방안의 강구입니다.

역자께서는 본인이 명문대 상경계를 졸업한 엘리트 출신이라서인지, 한편으로 "전문직의 점차 어두워져가는 전망"에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며 이 책을 펼쳐든 가상의 독자들에게 독려의 말을 건네며, 혹은 (아마도) 한창 장래 모색에 대한 걱정에 여념이 없을 자녀를 키우는 학부형으로서 "과연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설계하게 도와야 할까?" 같은 고민의 일단을 피력하기도 합니다. 이 책은 참으로 방대하게, 그러면서도 세심하고 치밀한 근거를 들어가며, "과연 지금의 어떤 직업이 살아남고, 어떤 직업은 파괴적 혁신(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개념을 그대로 원용하더군요) 없이는 사라지고 말지, 선입견이나 논리의 도약 없이 차분히 짚어 나갑니다.

의료 서비스의 경우, 몇몇 문예나 영상물에서 풍자의 대상이 되듯, 컴퓨터의 거친 알고리즘에만 의존하는 돌팔이들이 스스로의 무능을 폭로하며 전문직에서 퇴출되어 나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명 지금보다 더 기계에 의존하고, 방대한 데이타베이스에 종속될 것이며, 사물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유효하고 세밀한 정보의 도움을 받아, 치료보다는 예방의 기능에 더 힘을 쓸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의료 서비스의 퇴조를 부른다기보다, 오히려 본연의 인술적 기능으로 복귀하는 것이며, 종합적이고 최종적인 판단은 인간에 더욱 의지하는 결과를 부르겠습니다. 전산처리장치의 장점은 빠르고 정확한 정보의 처리입니다만, 이의 메타적 의미 분석이 불가능하다는 게 한계입니다.

책 앞에 나온 케인즈의 명언에도 드러나지만,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것보다 낡은 다수의 고정관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하는 게 몇 배는 더 어렵습니다. 바꿔 말하면, 인간은 자기 반성, 때로는 전면적인 자기 부정을 통해 거듭 태어날 수 있어서 위대한 것입니다. 기계는 치밀하고 실수가 없지만, 기계의 지능에 발전이란 없으며 "창조주"인 인간이 재 세팅을 해줘야 새로운 분야 작업을 개시할 수 있습니다. 구글이 알파고를 통해 "자체 학습"이 가능한 지능을 구현하겠다고 했지만 마케팅 표어와 학문적 성과를 혼동해서는 곤란하죠.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결정하는 문제에 대해, 기계의 건조하고 융통성 없는 결론이 냅다 내려지는 걸 과연 환자 중 몇이나 이의 없이 수긍할 수 있을까요?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도 인간이고 기적을 일궈내는 것도 인간의 영역입니다.

세무나 회계 서비스는 이미 많은 부분이, AI까지 갈 것도 없이 오래 전부터 소프트웨어를 통해 해결되는 중입니다. 하지만 빈도가 줄지 않는 각종 경제 사범의 현황에서도 알 수 있듯, 인간의 놀라운 창의성과 교활함(?)은 치밀한 법망을 빠져 나가며, 이를 적발해 내는 것도 인간의 육감이 하는 일입니다. 법률 서비스는 법정에 출석하여 펼치는 변론이라든가, 언어 속에 스며든 모호한 의미차이로 인해 쟁송의 승패가 180도로 바뀌곤 하는 현상들이, 그저 기계적인 처리만으로는 대체가 요원한 형편이죠. 20여년 전 컴퓨터그래픽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을 때, 일부에선 사이버 가수, 사이버 배우들이 모든 엔터테이너를 실직시킬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사람의 귀를 가장 잘 만족시킬 수 있는 음색과 선율, 사람을 가장 흐뭇하게 만들어 줄 신체 비율과 이목구비의 배치... 이런 것들은 현재 하나도 실현되지 않은 채, 단 한 명의 슈퍼스타 캐릭터도 사이버상으로 개발되지 못한 채 여전히 개성 넘치고 매혹적인, 디지털 파라미터로 도무지 함수변환되지 못한 연예인들이 은막과 모니터를 누비는 모습이죠.

책의 결론은 그렇습니다. 전문직들이 뼈를 깎는 혁신과 선제적 대응을 하지 않으면 현재의 모든 특권적 위치와 고소득은 (과거 육체 노동자들이 그러했듯)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AI가 진화하고 4차 산업 혁명이 전에 없던 상품- 용역의 생산- 소비 구조를 창출해도, 시스템의 문제를 발견해 교정하고 업그레이드하는 임무는 여전히 인간의 창의성에 맡겨져 있는 겁니다. 농경 혁명 이래 언제나 인류가 걸어 온 족적처럼, 낡은 건 쓸려나가고 새로운 건 대접받습니다. 그러면서 결국 기술의 진보는 (압제적인 스카이넷이나 매트릭스의 도래가 아닌)인류의 공영에 이바지하는 거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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