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읽는 남자
안토니오 가리도 지음, 송병선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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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8월, 9월 세 번에 걸쳐, 한국에 번역 소개된 유일한 "동아시아(중국) 배경 법의학 소재 추리소설"인 "디 공(적인걸. 狄仁杰)" 시리즈 중 세 편을 읽고 리뷰를 올린 적 있습니다. 동양인의 생활 방식과 사고의 특성, 독특한 문화 풍습과 세계관이 저들 서양인에게는 매우 흥미롭게 와 닿았나 봅니다. 순전히 픽션으로만 꾸려진 것도 아니어서, 로베르토 반 훌릭의 경우 물론 그의 기발한 상상력과 전달 능력, 치밀한 미스테리 플롯 구성력도 돋보이지만, 상당 부분은 중국의 사서(史書), 기록물에 근거를 두거나 그로부터 영감을 받아 창작된 것들입니다. 이는 같은 동아시아인으로서, 꼼꼼하고도 방대하게 이뤄진 기록물의 깊이와 질적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주는 방증이며, 완성도 높은 서브컬처나 대중문학의 훌륭한 소스를 제공해 주는 문화 유산에 스스로 자부심을 느껴 마땅한 일이겠습니다.

이 소설은 그 반 훌릭의 "디 공 시리즈"와 궤를 같이하는, 그러면서도 현대에 고도로 발전한 법의학의 최신 성과도 충분히 반영한, 게다가 역사성까지 면밀히 구현한 팩션입니다. 작가 Antonio Garrido Molina는 스페인 태생의 소설가인데, 학문적 배경은 인문이나 문예 창작 쪽이 아니라 산업공학입니다. 산업공학이라는 게 사실 공대에 마련된 분과 중에는 가장 문과 색채가 농후하고, 특정 분야를 깊이 파기보다는 두루 너른 분야에의 비전, 이해가 중시되는 쪽이라서, 아마도 인기 대중 작가로 이만큼성공하는 데 바람직한 지적 밑거름을 제공해 준 듯합니다.

주인공은 우리말로 송자, 한자로는 宋慈라고 쓰며, 작가의 모국어이자 이 작품의 원본을 이루는 말인 스페인어로는 "송씨(Ci Song)" 정도로 읽히겠습니다. 작가께서, 역사상 실존 인물인 이 송자(宋慈)에 대해 참으로 깊은 연구와 애정을 기울인 듯, 그의 생애 초반부터 명판관으로 출세의 첫발을 내디디기까지, 상당히 세부적인 대목에까지 묘사가 이뤄지고 있어서 일단 역사에 관심이 있든 없든 책을 펼쳐 든 독자에게 큰 호기심을 심어 가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편입니다. 중국사에 관심 있는, 특히 송나라 때의 원숙하면서도 사대부나 서민에까지 제도의 활력이 고루 미친 시대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이 책은 필독서처럼 다가올 것 같습니다. 중국사에 대해 거의 이해가 없는 독자라 해도, 마치 요즘 미드 CSI 구경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어갈 수 있는, 본격 포렌직 스릴러라서 기본의 법의학물에 좀 질린 분들이라면 바로 매혹시킬 수 있겠네요.

자(慈)는 송씨 집안의 둘째 아들입니다. 보통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조명하는 설정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이 흔히 그렇듯, 주변의 편견과 시대의 질곡 속에 혼자 "고귀한 인간성, 가치"를 지키려 노력하는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고, 숙연한 마음을 자아내기도 하는 뭐 그런 경로를 그대로 따릅니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발리앙이 그러했듯, 혹은 올리퍼 푀치의 최근작 스릴러 <사형집행인의 딸>의 주인공 야콥 퀴슬이 그러했듯, 아니면 톰 롭 스미스의 걸작 <차일드 44>에서 소비에트 압제 하에 분투하는 주인공 레오 데미도프가 그러했던 것처럼, 무지몽매한 민중과 탐욕스럽고 사악한 지배계층이 쉴 새 없이 몰아넣는 곤경 속에서도, 정의롭고 선한 마음의 프로타고니스트는 자신의 의지를 도덕적인 방법으로 관철해 나갑니다.

송자의 집안은 그 가부장의 벼슬길(이래봐야 잡직의 하급 관리지만)을 위해 솔가하여 린안(책에 설명은 없지만 아마 남송 시대의 수도 임안[臨安. 현재의 항저우]인 듯합니다)으로 떠납니다. 아직 소년이었던 송자(이 책에서는 "자"라는 외자 이름으로만 표기됩니다)는 이곳 린안에서 평생의 은사이자 롤 모델인 펭 판관을 만납니다. 마스터는 자신처럼 대성할 기미가 보이는 어린 싹을 특유의 밝은 눈으로 발견하게 마련인데, 송자가 펭 판관을 존경하고 따르는 것 못지 않게, 펭 판관 역시 이 소년의 총명한 자질과 성실한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불의에 굴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착한 성품을 높이 평가합니다. 이 린안에 머물 시절만 해도 그는 아직 여리여리한 소년으로서, 다만 눈에 총기를 빛내며 접하고 마주친 모든 지식을 빨아들이겠다는 듯 의욕과 꿈에 가득차 있을 뿐입니다.

어느 정도는 역사적 기록에 근거를 둔 재구성이겠지만, 송자의 집안 식구, 그 중에서도 손윗어른들은 꽉 막히고 자기 중심적이며 심지어 폭력적이기까지 한, 전근대적 인간형들입니다. 그 아버지 되는 분도 지혜롭지 못하고 비틀어진 인간성을 지녔지만, 이 작품에서 어린 송자의 앞길을 가로막는 가장 못된 안타고니스트는 바로 그의 친형 "루"입니다. 의붓형도 아니고 친형이 자기 피붙이들에게 이럴 수까지 있을까 싶을 만큼인데, 심지어 그는 자신의 친아버지에게조차 (한때 자신의 의사를 거스르고 대처로 나가 살았다며) 냉대를 퍼붓고, 이미 육체적으로 쇠약해진 부친에게 이제는 자신이 가장이라며 폭언이나 학대도 서슴지 않습니다. 유교의 효순(孝順) 도그마에는 정면으로 어긋나는 모습인데, 실제로 중근세 중국에 이 정도 막나가는 인물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참된 인간적 각성이 부족한 채 그저 인습이나 제도적 강압에 의해 유지되는 인륜의 한계를 정확히 내다본, 그래서 재구성에 성공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의 아버지와 끊임없는 투쟁을 벌인 끝에 오늘날의 내 기질이 형성되었다"고 아주 자랑스럽게 회고하는, 우리 눈에는 어이없이 보이는 마오의 영혼 한 구석이 투영되어 보이기도 하더군요. 중근세가 암울한 건 단지 물질적으로 궁핍해서만은 아닙니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가족과 같은 일차 집단 안에서는 무엇보다 거짓 없고 진실된 인간 관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의 축복이라면, 이처럼 가족 사이에 건전하고 따스한 연대, 사랑의 감정이 구축되었다는 걸 가장 첫손에 꼽아야 하겠습니다.

여튼 갑자기 송자의 할아버지가 죽는 바람에, 송씨 일가는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와야만 하게 되었네요. 이 대목에서 작가(혹은 번역자)는 "장례 의식"을 치르러 낙향했다고만 하지만, 서양 독자는 물론 우리들도 "왜 부모님이 돌아가셨는게 공직에서 물러날 사유가 되는지" 어리둥절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인데, 이 표현을 그저 "삼년상"이라고만 옮겼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알다시피 삼년상에 들어가면 공직 생활이건 개인적 학습이건 올스톱입니다. 모든 걸 멈추고 시묘살이를 해야 공동체와 동료들로부터 도리를 다한 사람으로 인정 받는데, 이 풍습이 다른 문화권에서는 좀처럼 이해 안 되는, 그 비슷한 예가 전혀 없는 경우라서, 심지어 이 작가도 충분히 소화 못 한 채 작품화했을 수 있습니다.

고향으로 내려와 가부장이자 맏형의 독재에 시달려야 하는 송자는 그런 와중에서도, 병으로 고생하는 자신의 여동생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한창 나이때라 또래 소녀에게 눈길이 갈 만도 하건만, 엄마가 없는 이 집안에서 동생 병간호하느라 무지막지한 형이 부과하는 노동을 수행하느라 기운이 남아나질 않습니다. 이처럼 이 장편 소설에서 "사람처럼 보이는 유일한 캐릭터"는 주인공 송자뿐입니다. 그 아버지 되는 위인도 어쩌면 자식에게 저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한심하고, 한편으로 그 장남이 휘두르는 폭거에 비굴하게 굴복하는 모습이 처량하기도 합니다.

이런 환경이 주인공 소년 송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우선은 그의 연약한 여동생을 버젓한 성인으로 키워내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불굴의 정의감까지 이어지는 동력인 듯 보입니다. 펭 판관이 아니었다면 바른 길을 찾지도 못했겠지만, 일단은 착한 주인공이 범죄를 적발하고 정의를 세우는 판관으로 성장하기까지는 그의 내적인 자질이 더 강력한 동력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의 농장에선 물소가 쟁기질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과거 한국을 소개할 때 외국의 교과서에서 이처럼 물소가 농사에 쓰이는 그림이 나오곤 했다는 사실도 떠올랐습니다. 남중국은 제주도보다 다소 저위도인데, 과거 중화 문명의 영향을 깊이 받은(그 중에서도 남중국의 망명 정권과 교류가 잦았던) 우리를 그런 식으로 오해한 것도아주 무리는 아니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수한 두뇌와 불타는 사명감 중, 어느 것이 명판관(현대의 명탐정)을 키워내는 데 더 우선적 요소일까요? 물론 둘 다 필수불가결의 자질이나, 이 작품은 송 자 소년의 정의감과 바른 인성이 그를 (앞으로) 위대하게 만들 불씨였다는 전제에서 이야기를 이끌고 나갑니다(앞으로 시리즈가 계속 이어질 것도 같습니다). 물소가 쟁기를 끌고 나가는 질퍽한 논에서, 잘린 머리 하나가 발견되고, 이 머리는 소년이 몰래 사모하던 소녀의 아버지임도 드러납니다. 형과 지방관은 무슨 꿍꿍이인지 이 끔찍하고 억울한 죽음을 은폐하려 듭니다. 개인 차원의 불의와 부조리가 결국은 비틀리고 왜곡된 시대상 전체를 상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흥미진진한 장편은 앞으로 이어질 장대한 시대물, 스릴러의 시작을 알리는 흥겨운 나팔소리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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