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브릴리언트! - 나카무라 슈지, LED로 세상을 밝히다
밥 존스턴 지음, 민청기 옮김 / 양문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과학, 혹은 그 무엇이든, 그것이 위대한 가치를 지녔다면 그 이유는 다른 데서 찾을 게 아닙니다. 인류 중 많은 이들, 인간들에게 폭 넓은 혜택을 빚을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칭송 받아야 하며, 반대로 숱한 생명들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그에 공연히 찬사를 바칠 일이 아니기도 합니다. 과학이 진정 위대한 이유는, 그것의 성과가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켰거나, 현존 혹은 잠재의 위험을 눈에 띄게 감소, 제거시켰기 때문입니다. 이런 공헌을 하는 데에 반드시 명문대 졸업이나 번듯한 학위가 필요한 건 아니겠습니다. 또 그러한 업적을 기리는 상(償)이, 버젓한 학위 보유자에게만 한정하여 주어져야 할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나카무라 슈우지(中村 修二)씨는 일본의 지방 국립대를 졸업했으며, 명문대 병설 대학원에 불합격했을 뿐 아니라, 마쓰시다 입사시에도 여러 결격 사유가 눈에 띄어 입사하지 못한, 대체로는 평범하다 할 수준의 엔지니어였습니다. 최근 몇 년 간 그의 생애를 다룬 책, 혹은 그가 직접 자기 주장을 담아 쓴 책이 여러 권 나오는 이나모리 가즈오 씨가 마침 이분의 가능성과 역량을 눈여겨 봐 그의 회사 교세라에 입사할 기회를 얻었고, 이후 이름도 없는 중소기업에 몸 담게 되었을 뿐, 인재의 제 가치를 알아 주지 않는 풍토 때문에 자칫하면 이름 없이 한 생을 마칠 뻔한, 남 보기에 그저 조금 두드러진 열정을 지닌 정도의 엔지니어였습니다. 비록 나이 40이 넘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고는 하나, 일본이나 우리 나라나 이런 성격의 학위 수여가 사회에서 어떤 평판을 받고 마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뢴트겐, 막스 플랑크, 퀴리 부인,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하이젠베르크, 채드윅 같은 쟁쟁한 석학, 영재 출신들, 위인전에나 실려 마땅한 인생들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경력을 꾸려 온 이분은,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모두가 의아해했지만, 노벨상 위원회는 그와 다른 두 분의 (공동)업적이 이 유서 깊은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판단했고, 설명을 들은 학계와 세계 언론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브릴리언트! 이 단어는 물론 (사람의 품성이나 두뇌가) 영리하다는 뜻도 지니지만, 일차적 의미는 "환하게 빛나는"이란 형용사죠. 토머스 알바 에디슨이, 아이들 전기에도 나오고 우리 모두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천 번이 넘는 실패 끝에 일궈낸 전구 발명"을 이룩한 이래, 인류는 백 년 넘게 별 큰 개량이 이뤄지지 않은 백열 전구만 써 왔습니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 들어 발광 다이오드라는 새로운 구조가 개발되었고, 2007년에 고휘도 청색 LED가 이 세 분, 이름도 없는 중소기업 연구원들에 의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일개 전구 따위의 개량이 무슨 큰 업적이냐고 되물을 수 있어도, LED처럼 다양한 분야, 시설, 장소, 상황에 적용되는 보편적 부품도 드물거니와, 성능이나 수명 면의 현격한 희생 없이 더 저렴한 비용으로 다량 생산이 가능하게끔(그것도 여러 단계를 뛰어넘어) 설계 구조를 혁신하는 건, 결코 만만한 수준의 창의적 쾌거가 아닙니다. 뻔해 보이는, 더 이상 살펴 보지 않은 구석이 과연 남아 있을지 의문인 분야에서 보란 듯이 이뤄내는 업적이 더 어려운 법이며, 동종업계에 종사하던 많은 이들이 "아, 왜 그걸 놓치고 못 봤을까?"라며 탄식하게 만들기란 흔히 보는 현상이 아니죠. 그런 순간은 역사책을 통틀어 몇 번 등장하는 게 고작입니다. 그런 극적인 사건을 우리는 우리와 동시대에 목격한 것입니다. "전기 회로의 개량"이 "힉스 입자", "인공지능", "블랙홀 이론" 등에 비해 초라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당장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에 잔잔한, 그러나 필수적인 편의를 제공하는 폭과 깊이로는 이만한 업적이 또 없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LED 발명 자체가 나카무라 슈지 씨 등의 최초 업적은 물론 아닙니다. 이미 40여년 전부터 실용화, 대량 생산의 가능성이 넉넉히 점쳐졌고, 다만 이 기술 분야가 어느 정도 성숙기에 접어든 후로는 그 구조의 복잡성 때문에 어지간한 전문가라도 그 속성을 "한눈에 파악"하는 게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소소한 개선이 아니라 총체적, 비약적 혁신이 이뤄지려면 전체 구조가 한눈에 들어와야만 그 방법이나 방향성, 미진한 부분, 취약점 등이 모색될 텐데, 어지간히도 꾸준히, 그리고 굵직굵직한 발전이 그간 축적되었다 보니 엔지니어들조차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하는 형편이었던 겁니다. 사실 이런 구조가 P와 N형 반도체의 단일, 혹은 다중 접합을 통해 이뤄진다는 정도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도 물리 시간에 가르쳤던 내용입니다. 더 환하게, 더 오래 지속되게 회로를 만들려면, 이들 소자가 최적화된 모습, 패턴으로 배열되어야 하는데, 이게 초기 단계에서는 몰라도 현대 LED 회로처럼 고도로 집적된 부품을 놓고는, 연구의 양적 축적에 따른 자동적(?) 개선을 제외하고는 근본적인 환골탈태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걸 이분들이 거의 뿌리채 바꿔 놓았다고 할 놀라운 업적을 이룬 거죠. 다른 연구진들의 과거 수십 년 간 쌓아올린 업적이 만만치 않았기에, 이들의 혁신이 더 놀라운 겁니다. 마치 삼십대에 접어든 이가 갑자기 키를 15cm 더 키운 게 안 믿어지는 것과 비슷하죠.
저렴한 가격에 더 나아진 성능으로 보다 많은 이들(주로 가난한 나라의 빈곤층)에 결과적으로 엄청난 편의를 제공하게 된 업적이기에, 마치 괴테가 죽을 때 남겼다는 말처럼 "더 많은, 더 많은 빛을!"이 연상되어 더욱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돌이켜 보면 인간이 무지몽매한 의식으로 그저 먹고살기만을 위해 발버둥치던 아찔한 원시에서 이만큼이나 진화해 온 게, 어둠에서 빛을 향해 나아가려는 정신, 혹은 밝음을 희구하며 발버둥치는 인류의 간절한 몸부림, 그 중요한 단계의 상징과도 같은 업적이 아닐지요.
순수 이론적 측면에서 고찰해도, 일단 그들의 성과와 연구는 반도체 공학의 핵심 기반을 이루는 양자 역학 정수의 상당 부분이 원용됩니다. 뿐 아니라 이 책 저자의 평가에 의하면, "진정한 의미에서 최초로 평가받아야 할 나노 기술"이라 불릴 만큼, 최첨단 유기화학, 분자 생물학의 성과를 융합한 대단한 쾌거입니다. 우리 한국인들에게 매우 고무적인 건, 이들이 별볼일 없어 보였던 일개 중소기업의 연구원 출신으로 이처럼 놀라운 업적을 이룬 데서도 알 수 있듯, 자기 분야에 열의와 애정을 가지고 몰두하는 어떤 엔지니어도, 심지어 연구 전성기를 지났다고 할 연령대라 해도, 평지돌출 파천황의 놀라운 업적을 낼 수 있음을 다시 확인했다는 점입니다. 만약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이고 투명한 과정으로, 성실하고 열정 넘치는 엔지니어들을 주목하여 이들이 안정적으로 자기 일에 전념하게 지원해 준다면, 한국에서 제2 제3의 나카무라 씨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제 적성의 소중한 배양이 자신과 국가, 나아가 전 인류를 위한 소중한 발걸음일 수 있음을 어려서부터 가르치는 게 필요합니다. 특히 소홀해지고 있는 작금의 과학 교육 실정을 보면 이 부분이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군요. 뿌리지 않은 곳에서 어떻게 무엇을 거둘 수 있겠습니까? 언제나 노벨 상 수상자가 배출될까 개탄만 할 게 아니라, 그 바른 길이 바로 지척에 있었음을 이 소탈하고 수수해 보이는 늙은 엔지니어의 지난 치열한 삶이 잘 보여 주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