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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 쟁탈의 한국사 - 한민족의 역사를 움직인 여섯 가지 쟁점들
김종성 지음 / 을유문화사 / 2016년 11월
평점 :
인류 역사는 언제나 패권의 소재와 장악을 놓고 혈투를 벌인 종적으로 채워졌습니다. 현재의 패자(覇者)가 영원히 그 강성한 권력을 휘둘러 왔을 것만 같아도 자취를 거슬러 올라가면 미미한 위상에 머물러 있기도 했고, 반대로 패권 투쟁에서 밀려 약자의 처지로 떨어진 민족이라도 먼 과거에는 인접 국가나 부족을 두려움에 떨게 한 위세를 떨친 예도 허다합니다. 이처럼 여러 정치 단위에 흥망성세를 교차하게 한 "패권"의 실체는 무엇인지, 과거의 그 패턴이 이러이러했다면 현재의 우리가 미래를 위해 직시해야 할 대목은 무엇인지, 지난 역사는 많은 시사점과 교훈을 던져 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과거의 종적을 어떤 비생산적이고 패배주의적 틀에 갇혀 바라보게만 된다면, 그런 시선을 고집하는 이에게 어떤 발전이 있기가 힘들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먼저 우리 고대사를 돌이켜보며, 동아시아의 패권이 무역로의 이동을 따라 부침과 이동을 거듭했음을 지적합니다. 초원길을 따라 물자와 문명이 교류하고 이전되던 시절에는, 이 초원길을 장악하던 세력이 곧 패권을 쥐는 형국이었습니다. 이 무렵엔 농경 생활에 의존하던 중화 제국이 유목 민족(널리 우리 조상들도 포함합니다)에 비해 그리 나은 처지가 아니었고, (저자의 관점에 의하면) 공자가 동이의 문명에 법도가 있다며 동경한 것도 문화권 간의 실제 역량 차이를 반영하는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던 게 서역과 동맹을 추구하던 한 무제의 원대한 계략에 따라 장건지가 (본의 아니게) 개척한 새로운 무역로가 트이고, 이 새로운 "비단길"을 따라 동과 서가 새로운 교역 루트를 왕성히 이용하면서부터, 패권의 중심은 (보다 저위도에 놓여 있던) 농경 문명권으로 이동했다는 거죠.
저자는 이 대목에서, "이때까지만 해도 바닷길을 이용하는 세력은 여전히 제3위 서열에 머물러 있었다"고 지적하며, 대항해 시대가 열리고 본격 해상 무역로가 개척되며 "세력 관계는 크게 역전되어, 현재처럼 유목 민족 세력이 가장 열위에 놓이는 식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주장들은 대체로 통설이나 유력설에 따르는 편이며, 다만 저자의 문장력이 좋아 읽는 독자가 그 박력 있는 흐름을 잘 타며 읽게 되는 맛이 있다고나 하겠습니다. 어째서 몽골이나 중앙아시아 등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종족들이 현재처럼 미미한 꼴로 떨어졌는지에 대해, 저자의 단순명쾌한 프레임은 분명한 경로와 일관된 시야를 제공합니다.
우리의 고대사로 보다 주제를 좁히면, 저자는 여기서부터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 묘청 세력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전과(戰果)를 살리기 위해, 모화 사관과 왜곡된 반도 중심적 패러다임을 고집하며 여러 사료를 폐기하고 자신의 관점에 맞춰 내용을 축소, 왜곡했다는 태도입니다. 여러 문헌(이 중에는 그 신빙성이 의혹의 눈초리로 보여지는 것도 상당수겠습니다만)을 참조하고, 심지어 일부 드라마(<기황후>라든가)의 내용까지 거론하며, 저자는 광대한 만주 영토를 포기하고 서방(여기서는 중국 본토) 경략까지 단념한 몇몇 군주(장수태왕 등 - 저자는 고구려의 군주 칭호가 "태왕"이었음을 강조하는데, 책봉왕도 아니고 그렇다고 황제도 아닌 외왕내제 시스템에서 이 점의 부각은 의의가 있죠)의 전략적 실패를 거론하며, 우리의 이후 역사가 옹색하게 반도에 한정된 것이 그런 단견에서 비롯했다며 전략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일견 타당하기도 합니다). 저자 특유의 흥미로운 관점으로는 "소서노가 실질적인 백제의 창업자였다"라든가, 송나라 서긍이 지적한 재가승려가 실은 화랑도, 낭가 사상의 추종자였다는 것 등입니다. 이런 관점이라면 임란 당시 큰 전공을 세운 승병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재고가 필요하겠네요.
진한은 동만주, 변한은 (이후)한사군이 설치된 만주 서부 지역 등으로 그 판도를 정하고, 마한은 이들 가운데서 다소 옹색한 처지로 명맥을 이었으나 한 제국의 흥기로 인해 진한, 변한의 이주민들을 한반도 남쪽에 비정함에 따라 오늘날의 인식처럼 (후)삼한이 정립했다는, 일부 독자들에게는 매우 낯익은 설이 제기됩니다. 이런 입장에 따르면 <만주원류고>의 그 충격적인 기사가 이어지는 맥락으로 언급되지 않을 수 없겠는데요. 아니나다를까 금나라의 기원, 즉 고려 건국에 미온적이었던 안동 일대의 세력이 북상하여, 권력 공백 상태였던 여진족의 세력을 북돋웠다든가 하는 주장들이 그 뒤를 받습니다.
저자 고유의 주장 중 가장 설득력있게, 다른 사료적 근거와 잘 녹아들며 독자에게 어필하는 건 "고대 국가들은 영토의 장악보다 노동력의 확보가 더 큰 과제였다"입니다. 고구려와 백제 패망 후, 당나라가 왜 패잔국의 백성들을 본토로 실어갔는지, 혹은 아예 무대를 달리해서 바빌로니아 등 패권국이 피정복지(유대 지방이라든가)의 신민들을 수고롭게 재배치했는지 하는 게, 그저 세력 약화를 노렸거나 재흥을 예방하는 외에 더 본질적인 목표가 존재했던 거죠. 현재의 관점과 필요가 과거에까지 무분별하게 확장 적용되는 태도가 제법 소양 있는 독자들에게서도 발견되는데, 그런 안이한 관점에 경종을 울려주는 서술이라고나 하겠습니다. "패권의 이동"이라는 거대 패러다임 아래 이런 하위 구조 인식의 틀이 별 위화감이나 비약 없이 스며드는 논의 구조라서, 개별 주장의 타당성에 무관하게 독자를 설득하는 힘이 큰 듯했습니다.
항몽 전쟁사를 저자는 자랑스럽다는 태도로 되짚는데, 무신 출신 집권자들이 정국을 주도했었기에 이런 장기간 항쟁이 가능했으며, 만약 기존의 문신 출신들이 여전히 주도적이었다면 바로 외교적 수단으로 난국을 타개하려 들었을 테며(이자겸의 대금 사대처럼)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리라 단정합니다. 항몽 과정에서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장기간의 방어에 성공했으나, 이후 문신 세력 주도로 강화가 이뤄짐에 따라 유리한 협상력을 유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만 이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입니다. 현대 정치와 관련 저자의 의미심장한 주장은, 반도에서는 대륙과의 접촉 루트(외교)를 장악한 세력 사이에서만 왕조 교체가 이뤄졌기에, 중국처럼 내부의 힘이 외부의 힘을 능가하며 카리스마적으로 대두한 "서민 출신" 지도자가 등장할 기회가 없었다는 건데요. 중국은 물론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한고제 유방이라든가 주원장이라든가 마오 등의 좋은 예가 있죠. 현재 공산당 측에서는 마오를 부농 출신이라며 뭐가 켕기기라도 하는지 미화하는 경향이 다분합니다만.
단군-기자-위만 조선으로 교체되는 국면에서 역성 혁명이 이뤄졌다면 그건 단일 왕조의 연속으로 볼 수 없으며, 이런 관점에서 기자 조선설이 부당하다고 하시나, 기자 책봉설을 반대하건 찬성하건 무관하게 그런 "왕조 시대를 바라보는 상식" 자체가 뚜렷한 근거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잔티움 제국은 다 알듯 여러 번 왕실 가문이 교체되었음에도 단일 법통이 이어진 것으로 보며, 고대사에서 이는 한 가지 관점을 고집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무측천때 이미 당나라가 한 번 망했고, 중종 이후의 왕조는 "후당"으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지만 이에 대해서는 논의의 실익이 없을 뿐 아니라 일일이 논거를 들기도 힘들 만큼 반대의 여지가 많습니다.
후반부로 올수록 이 책의 주제의식이 어디에 놓였는지가 명확해지고, 이 책의 최고 장점은 1)이처럼 책의 서두와 본론, 종지부가 일관된 관점(물론 저자의 관점)에서 빈틈없이 연결되며, 2) 저자께서 오랜 연구와 사색을 거치신 듯 주장 사이의 논리적 뒷받침이 매우 치밀하다는 점입니다. 이런 미덕이 물론 사관의 정합성, 타당성까지 담보하는 건 물론 아니겠습니다만, 최소한 책을 읽는 재미는 확실히 보장해 줍니다. 그 결론에 동의하건 아니건 간에, 한민족이 그 생존을 위한 중대 기로에 놓인 지금 이런 책 한 권을 읽고 방대한 과거사의 반추를 통해 현명한 생존 전략을 모두가 궁리해 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