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 얽힌 흥미진진 인문학 1 영어에 얽힌 흥미진진 인문학 1
박진호 지음 / 푸른영토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영어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고 원어민들과 자유자재로 소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책을 찾아 읽고 뉴스를 즐겨 들으며 드라마나 영화도 자막 없이 감상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공부하는 게 최선일까요? 대학생 때에도 영어는 학습자의 발목을 잡고 안 놓아 주는 마계에 가깝다고들 합니다.

어원, 어근 중심 학습서가 예전부터 여러 종이 나와 있지만 그닥 학습 효율이 오르지 못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작정 철자와 음성 기호에 따라 뜻을 외워야 하는데, 무작정 덤비는 암기처럼 사람 두뇌를 피곤하게 만드는 작업이 또 없기 때문이죠. 사실 기존의 학습서들도 예문이 많이 나와 있어서, 문장 속에서 이 단어가 어떻게 쓰이는지 좀 끈기를 갖고 공부하면 의외로 얻는 게 많습니다. 그러나 많은 학습자들은, "책에 더 신경 쓰고 성의를 들이는 게 손해이며, 최소 노력으로 최소 정보만 습득하고 땡이라야 남는 장사"라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책 저자의 의도에 잘 안 따라와 줍니다.

이 책은 그런 종래의 학습서들과는 크게 달리, 단어 하나에 스며든 사연이랄까 역사, 문화적 배경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역사와 문화적 배경은 그 자체가 인문 컨텐츠의 핵심 구성 요소이므로, 단어 뒤에 깔린 이런 흥미진진한 사연을 추적하다 보면 영어 단어들의 뜻이 머리에 안 남을 수 없습니다. 얼개와 전후 맥락이 촘촘히 끈끈히 이어지는 "이야기"처럼 사람 머리에 오래 새겨지는 정보가 없으니 말입니다.

영어는 많은 학습자(非natiive)들을 어렵게 하는 게, 무슨 뜻인지 몰라 사전을 찾아보면 그 설명해 놓은 항목이 한두 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어 사전에서 어떤 엔트리를 놓고 봐도, 4번 정도를 넘어가는 어의가 달린 표제어는 매우 드물며 없다시피합니다. 이 많은 뜻 중에 뭘 골라야 할 지도 모르는 학습자가 다수이며, 그 중 많은 이들은 "내가 모르는 게 이렇게 많으니 더 열심히 노력해서 내 지식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게 아니라, 같은 지구인의 언어가 어쩌면 이렇게 모습이 다르고 판이한 과정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같은 위화감에 아예 학습 의욕 자체가 꺾이기 십상입니다.

저자께서는 "우리말보다 네 배 많은 어휘를 가지는" 영어의 단어 코르푸스 특성을 지적하며, 양이 많은 만큼 더 많은 사물과 사연과 인류의 지난 발자취를 담아낸 영어라는 말의 학습을 통해, 우리 인식의 지평이 넓어질 수 있음을 지적하며 일단 독자의 의욕을 고취시킵니다. 우선 이용자가 부담을 느끼지 않게, 최신의 시사 뉴스에 등장한 여러 어휘를 환기시키며, 한 단어에 담긴 여러 가지 의미,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단어의 뜻들과 인접 의미군의 단어 소개를 구수하게 펼쳐 놓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고 독자의 눈길을 잡아채는 요소입니다.

정치 최근사에 대해 저자께서는 다소 대담한 가설도 책 속에 소개합니다. 뭐 이런 "카더라"급 루머는 일단 독자가 읽기에 구미가 꽤 당기는 것도 사실이죠.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아무개의 먼 방계 후손이라는 역사적 지식부터 찔러 주시고는, 파파라치(이 단어의 단수형, 어원까지 자세히 가르쳐 주는 건 당연하고요)가 그 정부와 함께 탄 고급 승용차의 뒤를 쫓다 비명에 갔다는 "오피셜 경위"를 들려줌과 동시에, 사실은 며느리의 부정을 괘씸히 여기고 시가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그녀를 왕실 차원에서 응징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십니다. 물론 이 토픽이 주제는 아니고, 솜씨 좋으시게도 이에 얽힌 다양한 국면에서 영어 단어의 배경 사연을 설명하는 게 주된 포인트입니다.

찰스 폰지는 현대형 사기꾼의 원조라 부를 만한 기발한 방법으로 선의의 투자자들을 울린 악질 범죄자죠. 이 자가 eponym이 된 여러 파생 어휘부터 해서, 유럽의 지난 경제사가 사실 얼마나 지독한 비리와 비위, 협잡,  강도질에 의해 텃밭을 꾸렸는지 흥미진진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소금"은 영원히 성질이 변치 않기에 음식의 보존부터 해서 사람이 문명 생활을 일구고 사는 데 필수 불가결의 역할을 해 왔는데, 이 salt라는 어근에서 얼마나 많은 뜻이 파생했는지 책은 흥미롭게 짚습니다.

읽다 보면 저자만의 흥미로운 관점도 많이 발견되더군요. "라틴 계 민족은 대개 성적으로 문란한 게 보통이라 이런 규제 방법이 실효가 있을지 의문이다." 같은 다소 과감한 진단, 종교 개혁을 촉발한 메데치 가문 출신 교황 레오 10세의 "발가벗은 소년들을 시중들게 한 호사" 언급 등등. 영어뿐 아니라 역사 전반에 대한 폭 넓은 이해가 있어야 이렇게 끊김 없이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 속에서 영어 어원과 뜻을 풀어낼 수도 있구나 하는 놀라움을 느끼며 책을 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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