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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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학부 시절에 가장 인기 있던 표준적 경제수학 교과서로 통하던 책을 쓴 A C Chiang이란 저자가 있었습니다. 중국계 미국인이던 그분의 성씨는 한자로 쓰면 張씨였는데(가장 흔한 중국 성씨이기도 하죠), 영문 표기가 같은 (그분보다 훨씬 어린) 이 작가님은 姜씨입니다. 姜은 표준 북경어 발음으로 "쟝"에 가깝지만 여튼 이분은 Chiang으로 자신의 성씨를 표기하네요. 중국은 광대한 나라라 한말로 중국계라고만 하면 어디 출신인지 따로 설명이 필요합니다. 이분의 빼어난 작품 몇(본래 과작을 하는 분이라)을 모은, 그리고 탁월한 번역이 함께해 준 이 선집을 몇 번 거듭 읽어 봐도, 과연 그 먼 선조가 중국 어느 지방 출신일지 감 잡을 수 있는 대목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 작가의 실물적 정체성(거기 대해 구태여 생각할 필요가 있다면)은, 그저 천재적 두뇌를 지닌 미국인 정도로만 정리해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물론 작품들 중 하나에 "동양적 인(仁)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았다"는 어렴풋한 한 마디가 들어있긴 했지만 말입니다.

출판사 서평 중에 이런 구절이 보이더군요. "머리를 쓰는데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 선집의 성격과 개성, 혹은 성취를 요약하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문구도 없을 것 같습니다. 소위 하드 SF 작품들(단편이든 장편이든)을 "즐기면서(문학이니까 당연히, 즐기지 못하면 그게 독서라고 할 수 없죠)" 읽어 가려면 사전 지식이 필요하고, 사전 지식이 충분히 갖춰진 독자라도 작가의 의도와 호흡을 맞춰 가려면 머리를 적잖이 써야 하겠습니다. 만약 이렇게 하드 SF의 정수를 즐길 만한 능력이 되는 독자라면 테드 창의 단어 구사 하나하나, 구성의 의도마다에 감탄을 보내며 작품의 음미가 가능하겠고, 지식이 설령 부족한 독자라도 이야기의 감동적인 전개에 인문적 전율을 체험하기에 충분합니다. 2년 전에 개봉되었던 SF 영화 <인터스텔라>가 영화치고는 하드한 편에 속했음에도 불구하고(실제로 킵 손 교수가 따로 이에 대한 논의만 모아 대중서 한 권을 내기도 했죠) 특히 한국 관객들은 그 감성적 코드만 따로 뽑아 즐길 줄을 알아서 천만 흥행을 달성시키기도 한 예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아직은 젊은 편이지만 활동 기간을 감안한다 쳐도 꽤 적은 수의 작품만 발표한 그인데, 이 책에는 모두 여덟 편의 단편이 역자분에 의해 추려져 정확한 우리말로 옮겨졌습니다. 저는 읽으면서 테드 창의 원래 세계도 우아하고 탁월하지만, 작품 본연의 의도가 이처럼 분명하게 전달되게 표현할 수 있다는 한국어 독해의 체험도 상쾌하게 이뤄 준 역자께도 감사 드리고 싶어지더군요. 처음부터 테드 창(다시 말하지만 그는 중국인의 인종적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외모만 지녔을 뿐 영혼은 이미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류의 미국인입니다)이 한국어로 작품을 쓴 게 아닐까 착각할 만큼요.

어떤 작품이 심오한 주제와 사색의 결과를 담는다고 해도, 그런 작가의 성취가 독자에게 바로 공감되게 하는 건 또 별개의 과제입니다. 어쩌면 그저 사색가, 사상가이기만 한 인물의 특질과, 작가적 재능이라는 게 이 지점에서 준별되는 게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테드 창은 그저 자연과학도 출신 작가라기보다, 그 어느 정통파(?) 인문 소양을 쌓은 이보다 더 정밀하고 깊이 있게, 인간 보편의 주제를 파고들어간 본격 문학에의 기여자라고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의 표제로 선택된 구절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출처인 <네 인생의 이야기>는 어느 어머니가 딸에게 들려 주는 내러티브 형식(에다, 분리된 어느 충격적인 공적 체험의 첨가, 분리, 융합?ㅋ)을 띠고 있습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렇게 거칠게 요약하는 자체가 이 작품을 제대로 대접한는 게 아니죠. 주인공 여성은 언어학자인데, 어느날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그녀의 연구실을 찾아와 "기괴한 언어"의 녹음 파일을 들려 주며 자문을 구합니다. "이것이 언어입니까?" 주인공은 확답을 피한 후, 혹시 외계인과의 접촉이 있었는지를 묻습니다. 이게 그녀의 직분상 당연히 도출되는 결론이었는지, 그 밖의 정보를 참고하거나 직감 따위를 함께 동원한 성과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1인칭 주인공은 의도적으로 이런 정보를 상대(우리들 독자, 혹은 그녀의 딸인 "2인칭" 주체)에게 감춥니다. 대신 그녀는 아주 많은 이야기를 "지적인 추론" 결과로 우리에게 전달합니다.

헵타포드라는 외계 생명체(혹은 의식 주체)가 "체경(looking glass)"을 통해 정부 고위 당국과 의사소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 체경은 화학적으로 활성화되어 있었기에 어떤 분명한 통신의 매개로 쓰임이 입증되는 형편이고요. 이 체경에 등장하는 "거울 저편"의 그들과 필사적인 소통을 이루면서, 언어학자인 그녀는 패턴 분석을 통해 그들의 언어를 우리식 문법으로 정리하려 애씁니다. 그녀는 이 과정에서, 음성언어는 어차피 시간 차원의 지배를 받으므로(누구든 둘 이상의 음절을 동시에 발화할 수 없습니다) 시간 순으로 정돈되어야만 하지만, 문자언어는 2차원(적어도) 평면에 표시되는 게 보통이므로 연대기순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즉 인간은, 말을 할 때와 달리 글을 쓸 때는 여러 심상과 생각, 사건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다는 겁니다(일단 가능성으로는요). 이들 헵타포드의 B형 언어는 이를 현실화하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딸에게 들려주는 "너와 네 아빠, 그리고 엄마인 내가 겪은 인생 이야기"를 위의 외계인 사연과 교차하며 다룹니다. 딸이 2인칭 주인공(?)으로 등장할 때의 시제(tense)도 독특한데,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다 아는 걸 보면 (우리 눈치로)이게 분명 과거의 일이지만, 시제는 미래, 최소한 미래로 보일 법한 현재입니다. 이미 인식의 지평이 동시간대의 동시 지각으로 넓어진(?) 화자라서 미래의 일을 과거처럼 바라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외계인과의 소통 체험과 언어 연구를 통해 그녀는 주체와 격체의 치환, 과거와 미래의 교차가 적어도 부자연스럽지는 않은 지적 작용임을 받아들이게는 되었습니다. 이 작품에선 작가의 깊은 언어학적 소양도 잘 배어나는데요(도대체 모르는 게 뭐야?), The rabbit is ready to eat. 이란 문장을 두고 상(相. aspect)의 근원적 모호성에 대해 많은 숙고의 결과들을 토로합니다. 이런 게 다 중국어 발화 상황을 근거리에 둘 수 있었던 작가만의 이점이었을까요?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본래 우리 동아시아인들은 연속선상의 시간 개념에 대해 무신경한 편입니다. 여기서의 헵타포드 종족은 이방인(alien)으로서의 동양인을 함의하는지도 모릅니다.

<영으로 나누면>은 제가 예전에 영문으로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에서 다시 만났네요. 어떤 천재 수학자(역시 여성이라는 점이 눈에 띕니다)가 젊은 시절부터 주위의 기대와 촉망을 한 몸에 받고 자라났는데, 연구를 거듭하면 할수록 형식 체계로서의 수학이 너무나 큰 허점을 지니고, 절대적 확실성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은 다른 (불완전한) 언어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편의적 표기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고, 모든 의욕과 신념, 심지어 재능까지도 잃어버린다는 내용입니다. 대학생 시절 그녀는, 남편이 될 칼이란 청년과 교제를 시작하는데, 칼(이 사람은 위의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남편 게리와 비슷한 포지션이죠)의 말을 잠시 옮겨 보면요, "그 얼굴에서 그처럼이나 다른 표정이 나타난다는 점이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저런 깨달음이 담긴 표정을 평소에는 어떻게 감추고 있었는지가 신기했다." 우리가 흔히 "질리지 않은 사람의 매력"이란 게 다 이런 걸 두고 이르는 거죠. 이목구비가 단정하다 아니다를 떠나, 사람의 정신 세계가 단세포성이 아닌, 변화무쌍한 다양한 국면을 두루 포함해야 그 사람하고 함께하는 시간이 지루하질 않죠. 이처럼 테드 창의 작품은, SF의 세계에 인간 보편의 관심사, 일상적 측면까지 깊이 담아낸 작가적 통찰이 단연 돋보입니다. 테드 창이 의도적으로 배열한 작품 표제, 제사(에피그램), 형식 구분 기호가 마지막 9장에서 a=b로 합쳐지는 모습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이처럼 형식과 내용이 혼연일체를 이루는 구조에서, 테드 창은 정말 초지능의 외계인처럼 실험적 소통의 변방을 탐사 중입니다.

이 선집에서 단연 압권을 이루는(제 개인적 생각으로) 단편은 <이해>입니다. 뇌 손상을 입은 평범한 남성이 정부 주도(CIA라고 하네요. 만만하면 불려나오나요?) 실험에 참가하여 약물을 주입받고 초지능의 소유자가 됩니다. 그저 추론이나 판단, 연산만 능해진 게 아니라, 감각, 지각 능력까지 극도로 민감해져서, 나노 단위의(ㅋㅋㅋ) 외부 자극만으로도 그 원인과 이후 추이를 정확히 예견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약물 주입이 아니라 해도 정상적인 지능 역시 계발을 하면 할수록 향상되는 이치처럼, 자잠재력의 발견에 아주 기냥 탄력이 붙은 그는 신경 세포 단위의 극미 요동만으로도 상대의 생각을 다 읽어내는, 초자연적 존재(물론 과학적으로 설명이 다 되니 초자연적이라곤 못 하지만 ㅋㅋㅋ)가 되고 맙니다. 헌데, 어디 정부가 실험 대상으로 삼은 이가 이 자뿐이겠습니까? 다른 누가 극히 간접적인 메시지를 전해 와 (그와 비슷하다며) 자신의 존재를 알립니다. 같은 초지능의 소유자지만 지능의 우월과 그 확인이 인생에 있어 최고 수위의 가치이자 목표인 그와, 이 새로운 "동류(자신보다 못한 다른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고 구원자가 되려 함)"는 서로 매우 성향이 다릅니다. 이들은 서로의 생각을 알기 위해 말을 할 필요가 없고, 그저 신경 세포 단위의 미세한 동요만으로 상대가 뭔 의도인지 정확히 짚어낼 수 있습니다. 둘 사이에 타협이 불가능한 가치관의 차이를 감지한 주인공은, 이제 뇌파의 발사(?) 등 상대 의식에의 (해킹 같은) 침입을 통해 그의 존재를 파멸시키려 듭니다. 하지만 상대 역시 비슷한 수준의 능력을 지녔는데 당하고만 있을까요? 우리 평범한 인간들로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줄 알지도 못하며, 혹 근처에 있었더라도 이상한 아저씨 둘이서 눈싸움 하는 모습 정도로만 보이겠지만) 구원자 성향인 레이놀즈가 주인공을 제압하길 바라야 하겠는데... 결말도 여태 이뤄진 거창한 전개에 걸맞게 극적으로 마무리됩니다. 제가 보기엔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고지로의 대결 못지 않은, 장렬함과 극적 타당성이 있더군요. 이렇게만 소개하면 장난스런 무협인가 오해하실 수도 있겠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신경과학과 생체 구조에 대한 완벽한 지식이 있어야 형상화할 수 있는 세계였습니다. 최민식, 스칼렛 조핸슨 주연 <루시>도 이 소설에서 큰 영향을 받았음을 독자는 자연스럽게 깨달을 겁니다.

이상의 세 작품이 특히 하드 SF의 개성을 진하게 구현했다면, <바빌론의 탑>과 <지옥은 신의 부재>는 본격 순문학 작가들이 자주 다루면서도 서투르게만 성과를 내는 "엄청난" 주제에 과감히 접근하면서, 테드 창 외에는 누구도 낼 수 없는 심오하고도 상상을 초월한 경지의 결론으로 과감히 마무리되는 내용입니다. <바빌론..>이 SF 장르에 포함되는 건, "분리된 하늘과 땅"이 실은 원통과 같은 연속체꼴이며, 이 때문에 하늘 끝까지 올라가 그에 구멍을 내려 든 주인공이 목표를 달성하고 도로 땅에 떨어졌다는 수학적 설명이 핵심이라는 이유 뿐이겠습니다. <지옥...>은 그나마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테드 창 스럽게" 드라이하고 논리적인 서술에만 의지한다는 이유뿐 이게 꼭 SF로 여겨질 필요가 없죠. 읽으면서 이런 생각지도 못한 대담한 해석과 제안이 그가 우수한 두뇌를 지닌 덕인지, 아니면 책을 많이 읽고 광폭의 사색에 잠긴 시간이 많아서인지, 한참을 고민하게도 되었습니다. 꼭 답을 한쪽으로만 정할 필요는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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