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싸우지 않는가 - 저성장 시대를 돌파하는 강소기업의 3가지 전략
야마다 히데오 지음, 서라미 옮김 / 청림출판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자본주의 사회에서 "안 싸우고" 돈을 버는 사업가는 오히려 의심의 눈초리를 받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자 사이의 무한 경쟁, 완전 경쟁(혹은, 그에 가까운 경쟁)이 빚은 효율로 인해 오늘의 번영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경쟁을 피해가거나 독점을 통해 경쟁을 저해하는 모든 행위는,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의 기준, 잣대에 의해 "범죄"로 규정되며, 실제로도 사법, 공법이 아닌 제3의 영역인 "사회법(중 경제법)"에 의해 규율되고 있습니다.

어쨌든 사업가 입장에선, 가능하면 피 말리는 경쟁 없이 편하게 돈을 벌었으면 하는 마음이 당연히 듭니다. 앞으로 도래할 "제4차 산업혁명" 이후에는 어떻게 그 양상이 바뀔지 미지수이지만, 자본이란 본래 덩치를 키우면 키울수록 시장에서 이로운 위치를 점하며, 일제강점기에도 "물산 장려 운동"이 벌어진 배경이, 도대체 조선인 사업가들의 손에 종잣돈이 좀 모이게나 해 보자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덩치를 부풀린 자본은 개인의 사업 시작(소위 breakthrough) 단계에서만 요긴한 게 아니라, 이미 덩치를 키울 대로 키운 자본이 다른 경쟁자를 다 쫓아내고 독점 체제를 구축하는 데에 더 유용합니다. 가격에 의해 지배되지 않고, 반대로 가격을 나에게 가장 유리한 지점에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다면, 사업자 입장에선 그보다 더 좋은 상황이 없습니다. 반대로 소비자의 후생은 축소되며, 이 때문에 자본주의는 자체 생존을 위해 이런 독점 현상을 규제하며, 나아가 생산자들 간의 담합을 통해 이뤄지는 과점까지 제재합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주제는 그러나 이런 탈법, 초법, 예외적 현상이 아닙니다. 경쟁이 없어지니 사업가의 마음이 편한 것까지는 같은데, 덩치를 키워 경쟁자를 쫓아내거나 (언제 배신할 지 모르는) 경쟁자들과 뒷거래를 하는(그래서 소비자를 등치는) 게 전혀 아니라,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나만의 사업 영역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그 영역에서 나의 물건만 찾게 하자는 전략입니다. 다시 말해 "싸우고 싶어도 싸울 상대가 안 나타나, 오직 나 자신만이 경쟁 상대"인 블리스포인트를 가리킵니다. 이런 걸 가리켜 예전부터 블루 오션, 혹은 퍼플 오션 같은 말을 써 왔으나, 그런 용어들은 어찌보면 결과론으로서, 혹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 그런 시장을 운 좋게 발견하는 사례에 가까웠습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내용은 그런 사례보다, 진취적이고 혁신 친화적인 기업가들이 어떻게 해서 그런 안온한 자신만의 시장을 만들었는지, 그 비결에 대한 것입니다.

저자가 지향하는 미래 이상적인 기업의 목표상은, 바로 강소기업입니다. "소"는 사이즈가 작아야(이게 앞서 언급된, 규모를 키워 독점의 장벽을 높이는 지지난 세기의 악폐와 대조됩니다) 변화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다는 함의이며, "강"은 경쟁력을 통해 다른 참여자의 위협을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는다는 뜻이겠습니다. "강소기업"의 육성은 예전부터 대만 같은 신흥국에서 강조해 온 정책 목표이자 미덕이었는데, 개발 독재기의 한국은 정반대로 재벌 중심의 중후장대형 산업 구축에 몰두했습니다. 저자의 견해로는, 이제 아이디어 중심, 톡톡 튀는 창의력 위주로 수시의 혁신이 필요하며, 이런 환경적 변화에 맞는 빠른 의사 결정이 가능하려면 강소기업 체제 외에 답이 없다는 결론입니다.

경영서를 쓰시는 저자들을 보면 1) 실무 최전선을 뛰다 나이 든 후 컨설팅 쪽으로 전환하신 분들 2) 처음부터 컨설팅 섹터가 주무대였던 분들 3) 학자 출신 세 부류로 대강 나눌 수 있는데, 이 저자님은 3)에 속합니다(컨설팅 쪽에서도 일정 경력 있음). 자신만의 파격적인 주장을 개진하신다기보다, 정평 있는 여러 다른 학자들의 견해를 촘촘히, 다양히 인용하시는 체제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본디 경영자나 통치자의 유형도, 자신만의 개성과 일관성을 이어가는 타입(멋있긴 하죠)보다 주변의 말을 경청하고 센스있게 취사선택 잘 하는 타입이 끝에 가서 더 성공하는 것처럼, 이 책은 균형 감각과 조화 있는 분별의 미덕이 잘 발휘된, 실무자들을 위한 개념 찬 요약서 같았습니다. 만약 "틈새시장(niche)", "블루 오션", "비경쟁 전략" 같은 주제들에 대해 여러 책들을 참고하는 수고 없이 단 한 권만 독파하고 최대한 실리를 찾고 싶다면 이 책이 최고의 참고서이겠습니다.

일단 그는 잘나가는 선두기업의 기본 전략이 뭔지를 정리합니다. 선두기업이란 우리가 잘 아는 필립 코틀러의 정의에 기반한 개념인데, 리더/챌린저/니처/팔로워 중 "리더"를 의미합니다. 시마구치 미츠아키는 코틀러의 개념과 정의를 다소 수정하여 1) 주변 수요 확대(치약의 예를 드는 저자의 재치가 돋보이더군요) 2) 동질화 전략(챌린저의 혁신을 무용지물화) 3) 비가격 대응 4) 최적 점유율 유지 등입니다. 4)는 지나치게 시장 점유를 확대하려 들면 역효과(법적 제재도 포함)가 난다는 상황 인식에 기초합니다.

저자가 염두에 두는 "이상적인 기업"이 이런 선두 주자를 의미하지는 않음은 명백하죠. 이 책은 코틀러의 범주 중 니처를 염두에 두고 논의를 이어나갑니다. 작은 기업이 그 유리한 틈새 시장 안의 강자 지위를 유지하려면 여러 (변칙적으로 보이는) 지혜가 필요한데, 저자가 앞서 "선두기업의 전략"을 정리하고 넘어간 건 이유가 있습니다. 전략이란 나 혼자 멋지게 잘 짠다고 상대가 그 의도에 고분고분 응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좋은 전략이나 자원을 가지면 상대도 당연 그 점을 고려에 넣고 반응합니다. 저자는 그래서 "선두 기업- 대체로 규모가 크고 가용 자원 pool도 방대한 곳"이 내 시장에 못 들어오게 하려면, 1) 너무 이익률을 높이지 말고, 2) 너무 시장을 단기간에 키우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이익률이 높거나 시장이 갑자기 커지면 대기업 역시 전망을 좋게 보므로 곧바로 진입합니다. 이후 이 니처는 바로 약자가 되어 시장에서 퇴출되는 수순인데 남 좋은 일만 시키고 희생자가 되는 셈입니다. 시장을 빨리 키우면 투자자금이 빨리 회수되는 장점이 있지만, 이걸 보고 대기업들도 눈독을 들이므로 "그 이후"가 보장이 안 됩니다. 책에는 노래방 기기 시장, 의료용 가운 시장에서 실제로 일어난 재미있는 사례가 많이 나오는데, 이런 구체적인 예증 소개가 이 책의 최고 장점입니다.

특히 니처들은 기술니치(가장 이상적이지만 유지하기 어렵죠), 채널 니치(아주 좁은 경로만을 확보해 막고 있으면 대기업이 접근하기 어렵거나귀찮아서 간과합니다), 시공간 니치, 특수 니즈(수요) 니치 등의 전략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원도 적고 규모도 왜소한데 덩치 큰 대기업과 정면 맞대결을 하다간 자멸의 결과뿐입니다. 전환 비용 니치라는 전략도 있는데, 이 책에서는 캡슐 제조와 약품(펠릿 꼴) 투입을 전담하는 쿠오리커후스(퀄리캡스)社를 전형적인 예로 소개합니다. 이 사업은 첫째 이익률이 적정 수준이고, 둘째 정부의 인허가를 받기가 번거로우며, 셋째 기존의 니처가 쌓아온 평판이 확고한 데다 신규 사업자에 대해 소비자들(제약회사들)이 일일이 눈길을 주지 않고, 행여 작은 사고 한 번의 실수라도 바로 매장되므로 시장 진입을 감행하지 않는다는 거죠. 익숙한 건 그대로 몇 십 년이라도 같은 브랜드를 쓰는 예도 "전환 비용이 높은 예" 중이 하나로 드는데, 일본에서는 종이수첩인 "능률수첩"이 그런 브랜드 파워와 충성도를 유지하는가 봅니다.

선두기업이 강소기업에 빼내 들기 좋은 가장 좋은 전략은 "동질화"인데, 이는 쉽게 말해 "너희들이 갖고 있는 좋은 점은 (좀 치사하긴 해도- 자본주의는 원래 치사한 거죠) 우리가 바로 따라해서 없애 버리겠다"입니다. 여기에 강소기업(니처)가 응수할 수 있는 전략은 딜레마 전략인데, 2006년에 등장한 온라인 전용 보험사인 라이프넷의 사례가 그 좋은 모범입니다. 1) 영업사원을 통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가입하게 한다 2) 특약을 폐지하고 약관을 간이하게 한다 3) 원가 구조를 모두 공개하여 소비자에게 유리한 계약임을 분명히 밝힌다. 인데, 이걸 대기업에서 따라하다간 바로 타격이 옵니다(이른바, 자산이 부채로 바뀌어 버리는 결과). 그런데 제 생각엔 이 예는 일본의 실정에 제한된 것 같고, 실제로 삼성생명이나 동부화재 같은 경우 다이렉트 사업 부문도 바로 만들어서 이런 틈새시장까지 차지하려 드는 걸 볼 수 있고, 이들은 시장 규모를 천천히 키우는 전략을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으므로 다이렉트 섹터가 더 이상 니치도 아님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습니다.

경쟁과 협력을 합친 新전략을 "코퍼티션"이라 부르는데, 저자가 이 책 중 원용하는 네일버프와 브랜든버거는 이미 이십여 년 전부터 게임 이론 분야에서 큰 업적을 쌓은 학자들입니다(당시 한 번역서에서 "나레버프"라고 표기한 걸 보고 당황했던 기억이 있네요). 이들의 연구를 재원용하자면 아메리칸 항공과 델타 항공이 경쟁 관계일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 보완적 생산자 관계도 유지한다고 합니다. 이 역시 일반 대중들도, 삼성과 애플의 소송전이 격화되자 메모리 조달 계약을 해지하는 결과를 목격함으로써 역으로 이 둘이 그간 보완적 공생 관계도 이어왔음을 알 수 있었지요. 전적으로 특정 생태계에서 양자가 적대하기만도 오히려 어렵습니다.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게 마켓 메이커 전략인데, 저자께서는 라쿠텐 버스 서비스를 통해 이를 설명합니다. 우리 같으면 코버스 같은 버스 회사 연합(운송사업조합) 사이트에서 이를 전담하지만(만약 외주를 통하면 수익이 안 날 겁니다), 일본에서는 이 회사가 예매 업무를 대행하는데, 좌석의 쾌적도나 터미널 주변의 시설 정보도 제공하고, 혹 특정 노선이 수요가 초과되면 회사에 통보하여 증편할 수 있게 하는 등 부가 서비스를 통해 니처로서 입지를 굳힌 경우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부가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크지 않으므로 이렇게까지 온라인 예매 패턴이 진화하기란 좀 시일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양한 사례 소개와 연구가 책 읽는 재미를 몇 배로 늘려 주는 유익한 경영서였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