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앞으로 5년
이경주 지음 / 마리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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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 혁명을 소개하고 대비를 촉구하는 책은 많지만, 이 책은 한국 최고의 기업에서 수십 년 근무한 전략기획통께서 다분히 한국 실정에 최적화한 현장 감각을 통해 우리 독자에게 최대한 쉽게 설명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4차 산업 혁명이 어떤 얼개와 기반, 분야, 트렌드를 통해 우리 삶을 통째 바꿔 나갈지에 대해 다양한 시각들이 있지만, 이 책은 3차 산업 혁명 당시 우리의 대응과 응전, 결과는 어떠했는지까지 차분히 돌아보면서,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미래상에 대해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 보다 현장감과 적실성 있는 충고를 베풉니다. 저자 같은 분만이 겪을 수 있었던 기억과 체험, 평가가 책 곳곳에 스며 있어서, 한국 산업 발전사의 한 토막을 접하는 보람도 느껴 볼 수 있습니다.

4차 산업 혁명이 한마디로 뭔지 아직 정리가 안 된 이들도 많이 만나는데요. 다른 가십 거리는 잘만 암기하면서 정작 우리의 미래를 통째 바꿔 놓을 담론, 프레임에 대해서는 인식이 미진하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저자의 정의가 다른 책들의 개념 규정과 큰 차이는 나지 않지만, 기업인답게 좀 더 직관적이고 간명한 표현이 눈에 띕니다. "4차" 혹은 네번째가 뭔지 정확히 알려면, 그 앞의 이벤트나 과정, 단계에 대해서도 이해가 필요합니다.

1차 - 석탄의 (연료로서의 본격) 사용, 채굴 : 경공업 (주로 영국)
2차 - 전기의 발명: 대량 생산 혁명 (주로 미국)
3차 - 정보통신 혁명
4차 - 인터넷 기반 유비쿼터스 혁명

저자께서는 일단 3차 산업혁명에 대처한 우리의 자세가 매우 진취적이었고, 그 결과도 성공적이었다며 자평합니다. 지금은 잊혀진 용어가 되었지만 한때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란 말이 일반인 사이에서도 유행했고, 거칠게 말하면 이 기술의 "세계최초도입" 덕분에 PCS 단말기가 저렴한 가격으로 일반에 보급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냉장고폰"들이 퇴출되고 점점 작아지면서도 기능성을 높인 모바일폰들이 시장을 지배하게 되었지요. 어떤 신문은 이 당시 "세계 거대 자본들의 실험장으로 전락했다"며 비관적 논조를 펴기도 했는데, 그게 그릇되었음은 지금의 결과가 잘 말해 줍니다. 본래 전통적인 셀룰러 방식의 단말에서는 문자 전송이 안 되었는데(초기 011 가입자), CDMA 덕에 누구나 통화 뿐 아니라 간단한 텍스트 전송으로 소통할 수 있었던 것도 한국이 최초였고, 반면 일본은 이 단계에서 전통 방식을 고집하다 갈라파고스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저자는 이처럼 변화하는 환경에 진취적으로 임해야 풍족한 미래가 보장된다며, 그때와는 달리 한국은 미적거리며 일본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실태에 경각심을 촉구합니다.

저자는 1세대 오너, 창업자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 말은 잘못 오해하면 현대, 삼성, LG 등의 위대한 거물들을 존경하자는 뜻으로도 들리는데, 물론 그러지 말자는 게 아니라 그런 탁월한 돌파력, 배짱, 과감한 결단력, 미래를 보는 혜안을 가진 경영자가 현재 부족한 실태를 개탄하는 의도입니다. 으뜸가는 대기업은 거의 2세, 3세가 경영을 맡고 있는데, 이들은 그 선대가 보여준 과감한 기업가 정신이 결여된 경우가 많다는 거죠. 어느 경제건 "사회는 곧 정글이며, 약자, 어린 자는 먹히고 짓밟히는 게 당연하다"는 결의로 대담한 개척 정신과 도전 결의를 가진 경영자가 필요한데, 또 그런 이들 중 살아 남은 적자(適者)가 주도하는 풍토 형성이 중요한데, 현 체제는 이런 "새 1세대 오너"들의 등장을 자꾸만 가로막고 있다는 겁니다. 기업 생태계 조성뿐 아니라 기업 내에서도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새 프로젝트와 아이디어 기안에 성공한 인물이 나타나면 그 사람을 중심으로 새 부서가 형성되는 등, 유연하고 자생적인 조직 문화가 만들어지는 게 매우 중요한데, 저자분이 일했던 시절 삼전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며 회고하시는군요.

M&A가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선진 기술과 노하우가 국내 기업에 활발히 수혈되는 게 중요하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한때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을 추진하다 크게 피를 본 삼성이고, 당시 이를 지켜 본 분의 발언이라 더 신뢰가 가는데요. 지금 중국은 거의 무차별적이라 할 만큼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그들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갑니다. M&A는 사실 과거 정주영 창업자 같은 경우 대단히 부정적인 시선으로 이를 보기도 했고("기업가는 제 손으로 회사를 키워 나가야 함"), 이의 대가 중 한 명이었던 김우중씨가 현재 고전하는 결과만 봐도 그리 호의적인 전망을 키우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하지만 신중하고 체계적인 실사를 통해 성공적인 M&A를 일궈 내면 그건 그것대로 단계의 도약을 낳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올해 초 큰 화제를 낳았던 "알파고"를 언급하며 이는 영국으로부터 "딥마인드"를 5억 달러에 인수한 구글의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지적합니다. 그 막강한 구글도 처음부터 R&D를 할 수 없었는데, 우리 기업들이 하물며 원천 기술 개발에 나서기란 너무도 무모하며, 이런 현실을 타개할 길은 M&A밖에 없다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죠.

기존의 낡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현재 일본 기업들은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에 30조 원 가까이를 투자한다는군요. 일각에서 왜 대기업에 거액의 정부 예산을 퍼주느냐고 하는데, 현기차 한 군데가 그나마 미래를 대비한다며 애를 쓰지만 사세를 다 기울여도 2조 정도가 한계라고 합니다. 한국이란 경제 단위가 미래에 살아남고 변화와 발전을 주도할 수 있는지 거시 전략을 보다 큰 관점에서 고안하는 게 중요하며, 한국의 좁은 국경 안에서만 사안의 가치판단을 행하려는 태도는 우리의 가능성을 스스로 폐쇄하는 결과에 다름 아닙니다. 저자께서는 로그데이터가 쌓이면 수동운전- 자율 하이브리드에서 완전 무인 가동으로 진화할 텐데, 이때 "빈 자동차"는 새로운 비즈니스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나는 차 안에 없지만 차가 나를 대신해서 현장을 살피며 정보를 모으고, 나를 대신한 센서들이 꼼꼼히 공간을 커버하는 유비쿼터스 세계가 지금껏 발견하지 못했던 숨은 차원을 열어주는, 연쇄적 혁명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야말로 인간이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고 신처럼 어디에나 자재(自在)하며 모든 정보를 관리, 통제, 생산하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기반임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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